묶음표 한자말 209 : 고택古宅



추사 고택으로 가는 길 끝이 없는 / 밭고랑에 납빛 적의를 번쩍이며 / 잔설들이 잠복해 있다

〈추사 古宅 길〉, 《노향림-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창작과비평사,1998) 70쪽


 추사 고택으로 가는 길

→ 추사 옛집으로 가는 길

 추사 古宅 길

→ 추사 옛집 길



  이 보기글을 보면, 시에 붙인 이름에는 ‘古宅’이라 적고, 싯말에는 한글로 ‘고택’이라 적습니다. 시에 이름을 붙일 적에는 한자를 드러내어야 그럴듯해 보인다고 여길 수 있고, 싯말에서는 굳이 한자를 안 드러내어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든 싯말이든 모두 쉽고 정갈하게 한국말로 ‘옛집’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싯말을 살피면 ‘적의’와 ‘잔설’과 ‘잠복’ 같은 한자말이 잇달아 나옵니다. 이 낱말은 모두 한글로 적습니다. 한자를 안 밝힙니다.


  한자말이기에 한자를 밝혀서 적어야 할는지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赤衣/翟衣’나 ‘殘雪’이나 ‘潛伏’으로 한자를 밝혀서 적으면 시가 될까요? 한글로 적으면 시가 될까요? 한자도 한글도 아닌 한국말로 ‘붉은옷/납빛으로 붉은 옷’이나 ‘남은 눈’이나 ‘숨다’로 적으면 시가 될까요?


 옛집 . 낡은 집 . 오래된 집 . 묵은 집


  집은 집입니다.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이면서 “옛집”입니다. 새로 지은 집은 “새로 지은 집”이면서 “새집”입니다. 옛집이기에 ‘옛집’이라 하고, 새집이기에 ‘새집’이라 합니다. 이를 구태여 ‘古宅’이나 ‘新宅’이라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추사 옛집으로 가는 길 끝이 없는 / 밭고랑에 납빛 옷을 번쩍이며 / 남은 눈이 숨었다


“납빛 적의”에서 ‘적의’는 ‘赤衣’일까요, ‘翟衣’일까요? 아무래도 불교에서 쓴다는 ‘赤衣’이지 싶은데, 그러면 “붉은 납빛 옷”이나 “납빛으로 붉은 옷”으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그냥 “납빛 옷”으로 적을 수도 있어요. ‘잔설(殘雪)’은 ‘남은 눈’으로 손질하고, “잠복(潛伏)해 있다”는 “숨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고택(古宅) : 옛날에 지은, 오래된 집


..


묶음표 한자말 210 : 호구虎口



서른넷 으젓한 나이를 도끼로 삼고 / 평생의 적수와 호젓하게 만나는 / 虎口의 바람으로 간다

《복거일-五丈原의 가을》(문학과지성사,1988) 33쪽


 虎口의 바람으로 간다

→ 범 아가리 바람으로 간다

→ 범 아가리에 바람으로 간다

 …



  ‘虎口’라는 한자말에서 ‘虎’와 ‘口’는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tiger mouth’에서 ‘tiger’도 ‘mouth’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한국말은 ‘범’과 ‘입’입니다. 그리고, ‘입’은 사람한테만 쓰고, 새한테는 ‘부리’라 하고, 짐승과 물고기한테는 ‘주둥이’라 합니다. ‘아가리’는 구멍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쓰고, ‘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씁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에 나오는 ‘虎口’는 한국말로 “범 아가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시를 쓴 분이 한자나 한문을 좋아해서 일부러 썼다면, 어찌할 수 없겠지요. 아마 어떤 이는 한자나 한문이 아닌 영어를 좋아해서 ‘tiger mouth’ 같은 영어를 쓸 수 있고, ‘wind of tiger mouth’처럼 시를 쓸 수 있어요.


 호구에 들어가다

→ 범 아가리에 들어가다

 순순히 널 따른다고 날 호구로 아니

→ 고분고분 널 따른다고 날 바보로 아니


  시를 쓰는 자리이든 여느 자리이든 외국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습니다만, 한국사람이 읽을 시라면 굳이 외국말까지 빌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서른넷 의젓한 나이를 도끼로 삼고 / 평생 맞잡이와 호젓하게 만나는 / 범 아가리에 바람으로 간다


‘적수(敵手)’는 ‘맞잡이’나 ‘맞들이’나 ‘맞수’로 손볼 수 있습니다. ‘평생(平生)’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온삶’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호구(虎口)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 호구에 들어가다 / 호구를 벗어나다.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호구를 잡다 / 순순히 널 따른다고 날 호구로 아니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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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04) 밑의 1


밑의 수레바퀴에 묶어 둔 밧줄을 내 지팡이에 매어 두었소

《마인다트 디영/김수연 옮김-황새와 여섯 아이》(동서문화사,1990) 200쪽


 밑의 수레바퀴에

→ 밑에 있는 수레바퀴에

→ 밑에 깔린 수레바퀴에

→ 밑에 놓인 수레바퀴에

→ 밑쪽 수레바퀴에

 …



  밧줄을 ‘묶’고, 지팡이에 ‘매어’ 두었다고 적는 보기글입니다. 지난날 어린이책에서는 ‘묶’는 일과 ‘매’는 일을 잘 가려서 적었습니다. 요즈음은 두 낱말을 제대로 가리는 분이 자꾸 줄어듭니다. 신발끈을 매고 목끈을 맵니다. 두 손을 오랏줄로 묶고 짐을 묶습니다. 염소를 묶어 놓으면 풀을 뜯어먹을 수 없고, 염소를 매어 놓아야 풀을 뜯어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밑의 수레바퀴”는 아쉽군요. ‘밑의 (무엇)’처럼 적으면, 수레바퀴가 ‘밑에서 어떻게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 어렵거든요. 밑에 있는지, 밑에 깔렸는지, 밑에 놓였는지 모릅니다. 밑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았는지, 밑에 여럿 있는지, 밑에서 구르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니 “밑 + -의” 꼴이 아니라, 뜻과 느낌이 제대로 드러나도록 써야 합니다. 그냥 “밑쪽 수레바퀴”처럼 적으면서 “수레바퀴에서 밑이 되는 자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4340.10.5.쇠/4348.4.16.나무.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7) 밑의 2


위의 눈은 / 추울 거야 /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 밑의 눈은 / 무거울 거야 / 몇백 명이나 지고 있으니

《가네코 미스즈/서승주 옮김-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2006) 28쪽


 밑의 눈은

→ 밑 눈은

→ 밑쪽 눈은

→ 밑에 깔린 눈은

→ 밑에 있는 눈은

 …



  눈이 내립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입니다. 밑쪽에 있는 눈은 ‘깔리는’ 눈입니다. 위쪽에 있는 눈은 ‘덮이는’ 눈이에요. 한쪽은 깔리고 한쪽은 덮입니다. 또는, 위나 밑을 모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밑에 있는 눈”과 “위에 있는 눈”으로 하면 돼요. 그리고 “밑쪽 눈”와 “위쪽 눈”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위에 덮인 눈은 / 추워 /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 밑에 깔린 눈은 / 무거워 / 몇백이나 등에 지니까


“위의 눈”은 “윗눈”이나 “위에 있는 눈”이나 “위에 덮인 눈”으로 다듬습니다. “추울 거야”는 “추울 테야”나 “추워”나 “춥겠지”로 손보고, “무거울 거야”는 “무거울 테야”나 “무거워”나 “무겁겠지”로 손봅니다. “지고 있으니”는 “지니”나 “등에 지니까”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27) -의 : 프랑스의 마을, 할머니의 아들


옛날에,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할머니 아들은 아프리카에서 … 할머니의 아들이 생일 선물로 뱀을 보냈지 뭐야

《토미 웅거러/장미란 옮김-크릭터》(시공주니어,1996) 3, 5, 7쪽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에서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

→ 어느 조그만 프랑스 마을에

 …



  이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어도 됩니다. 또는 ‘-에서’를 붙입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니까, “옛날에, 프랑스에서, 어느 조그만 마을에”처럼 글머리를 열면 되지요. 또는 “옛날에, 프랑스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처럼 글머리를 엽니다.


 할머니 아들 (o)

 할머니의 아들 (x)


  이 보기글을 보면 “할머니 아들”이라고 적은 대목이 있어요. 이 대목에서는 ‘-의’를 안 붙여요. 이러다가 다시 “할머니의 아들”처럼 적습니다. ‘-의’ 없이 “할머니 아들”이라 적으면 되는 줄 알면서, 다른 자리에서는 그만 ‘-의’를 붙이고 말아요.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 자리에도 ‘-의’가 없이 알맞게 잘 쓸 수 있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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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73. 2015.4.2. 싹싹 비운 그릇



  밥을 먹는다. 두 아이가 부침개만 먼저 날름날름 먹는다. 부침개 그릇은 어느새 싹 빈다. 다시 부침개를 한 장 얹는다. 또 부침개 그릇만 먼저 빈다. 이 어여쁜 아이들아, 배추도 풀도 골고루 먹어야지. 밥도 국도 먹어야지. 부침개만 먹니? 밥돌이가 헤헤헤 웃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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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원의 가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70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10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92



시와 싸움터

― 五丈原의 가을

 복거일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8.4.15.



  봄이 무르익으면서 동이 일찍 틉니다. 이제 새벽 다섯 시 반 무렵이면 어슴푸레한 빛이 드러나고, 곧 따스한 기운이 퍼지면서 붉은 해님이 떠오릅니다. 다시 아침입니다. 어제에도 찾아온 아침이고 오늘도 찾아오는 아침입니다. 이 아침은 모레에도 새롭게 찾아오겠지요.


  아침볕을 쬐고 아침바람을 마시려고 마당에 서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새들이 푸르륵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릅니다. 처마에서 우듬지로 옮기고, 마당에 선 나무에 있다가 지붕으로 옮기며, 지붕에 있다가 지붕 너머 전깃줄로 옮깁니다.



.. 떨어지는 것은 으레 / 맨 아래 단추다. / 원래 공평하지 못한 게 삶이다. / 마음에 걸리면서도 며칠을 미적거리다, 눈 감고 찬물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 바늘을 찾는다 ..  (하숙 2)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새봄을 맞이한 감나무는 매화꽃이 모두 지고 매화잎이 푸르게 돋아서 짙게 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움이 틉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늑장을 부리는 나무라 할 테지만, 감나무보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더 늦게 돋습니다. 감나무는 새봄 사월에 이르러 비로소 조그맣게 잎사귀를 내밀면서 보들보들한 옅노랑빛을 보여주는데, 무화과나무는 아직 겨울눈이 터지지 않습니다. 대추나무를 보면 대추나무는 훨씬 늦어요.


  가만히 나무를 바라봅니다. 지난해에도 보고 지지난해에도 보던 나무를 바라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니 해마다 똑같은 모습을 본다고 할 텐데,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새롭게, 해마다 새로 돋는 잎도 그야말로 새롭습니다. 봄이 새롭고, 하루가 새로우며, 꽃과 잎과 나무가 모두 새롭습니다.



.. 겨울엔 / 겨울 마음으로 설 일이다 ..  (눈사람)



  나뭇줄기를 어루만집니다. 어느 나무이든 지난해와 대면 줄기가 굵고 가지가 넓게 퍼졌습니다. 나무는 해마다 차츰차츰 자랍니다. 봄이 저물고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도 한결 넓어지겠지요.


  나무를 어루만지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무처럼 아이들도 해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지난해에 입던 옷이 올해에 안 맞기 일쑤이고, 봄에 입던 옷이 가을에 안 맞기 마련이에요.


  그러면, 어른은 얼마나 자랄까요. 어른도 몸이 자랄까요. 아니면, 어른은 뱃살이 늘까요. 아니면, 어른은 늘 똑같은 몸으로 나이만 먹을까요. 아마, 어른도 아이처럼 해마다 새로운 철이 찾아온다고 느끼면서 기쁘게 웃으면 한결 튼튼하면서 씩씩한 몸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퇴직금 봉투를 품에 넣어도, / 서른여덟 나이를 덮기엔 / 옷이 얇아라 ..  (사표 2)



  복거일 님이 쓴 시집 《五丈原의 가을》(문학과지성사,1988)을 읽습니다. 복거일 님이 처음 내놓은 시집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아닌 한자로 ‘五丈原’이라 적는 복거일 님은 서울대 상대를 마치고 은행과 기업체와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1983년에 사표를 내고 ‘오직 글만 쓰겠노라’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회사원을 그만두고 글쟁이가 되는 삶을 놓고 복거일 님은 ‘자유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복거일 님이 쓰는 글에 ‘자유’나 ‘자유인’이나 ‘자유주의’ 같은 낱말이 자주 나옵니다.


  ‘자유(自由)’는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을 ‘자유’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글만 쓰며 살든 회사원으로 살든, 또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든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든, 우리 스스로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뜻을 살리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입니다. 글만 쓰고 살더라도 ‘얽매이는 것’이 있다면 자유가 아닙니다.



.. 빈 책상들을 치우고 / 새 자리를 잡으면, / 삼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던 入社同期도 / 추억이다 ..  (감원)



  시집 《오장원의 가을》은 자유를 노래한 글일까 궁금합니다.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온 이야기가 흐르는 시, 회사에서 겪은 여러 이야기가 흐르는 시, 추상과 비유가 흐르는 시, 오직 글만 쓰겠노라 외치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 이러한 시는 ‘어떤 자유’일까 궁금합니다.


  한자말로는 ‘자유’인데, 한국말로는 ‘홀가분’입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얽매이지 않으면서 제 마음대로 일구는 삶’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고, 이러한 삶을 ‘홀가분’으로 나타냅니다.


  ‘홀가분’은 “홀로 가벼움”입니다. 홀로 날갯짓을 하며 날듯이, 홀로 삶을 일굴 수 있는 모습이고, 홀로 삶을 일구기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 스스로 옥죄는 짐덩이 같은 무게가 없는 모습이기에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참다이 홀가분한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 너를 홀가분하게 맞이합니다. 내가 홀가분하기에, 이 아름다운 홀가분함으로 너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까, 다 함께 홀가분하게 꿈을 꾸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 “우리 고향에 있는 얘긴데, 능금을 먹으려면, 삼대가 걸린답니다. 능금나물 심는 사람, 가꾸는 사람, 능금을 따 먹는 사람.” 내 얼굴을 흘긋 살피고서, 박형은 말을 이었다. “지금 능금나물 심어서 따 먹잔 얘긴데…….” 말끝을 흐리면서, 그는 밖을 내다보았다. 나도 따라 내다보았다 ..  (능금나무)



  나는 우리 시골집에 나무를 심습니다. 내가 이듬해나 몇 해 뒤에 따먹을 열매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심는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돌보면서 저희 아이를 새롭게 낳아서 새롭게 물려줄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똑같이 ‘한 그루’이지만, 나부터 새롭게 마주하고,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마주하며,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도 새롭게 마주할 나무입니다. 같은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나부터 홀가분하고 너도 함께 홀가분한 노래라 한다면, 바로 나무를 심는 노래이리라 느낍니다. ‘나는 자유야!’ 하고 외치는 노래가 아니라, ‘나는 사랑이야!’ 하고 노래하면서,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사랑이야!’ 하고 외치는 노래일 때에 비로소 참다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답게 퍼질 수 있는 씨앗 한 톨이라고 느낍니다.


  복거일 님은 요즈음도 시를 쓸까요? 부디 조용히 시를 쓸 수 있는 넋이 되기를 빕니다. 싸움터에서 조용히 벗어나서, 아름다이 꿈을 꾸는 삶노래꾼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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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6 10:22   좋아요 0 | URL
아..지난 시간 88년 이면 호돌이 굴렁쇠.
늦은 4학년.먼지나는 신작로.무궁화꺽꽂이.
또..내 기억폴더에..뭐가있더라....

파란놀 2015-04-16 11:22   좋아요 1 | URL
88년에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면서
나라는 그대로 얼어붙고
어디에서나 최루탄 냄새가 자욱했지요...

[그장소] 2015-04-16 11:50   좋아요 0 | URL
그들은 그저 바톤 터치만 할 뿐 이란걸..새삼스럽게...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
를 읽다..웃다 울다..그랬어요.
복거일시인의 시선 번호가88년이면 몇번이 붙는지 몰라도 황시인은 32번 째 문지 시선 입니다.
개정도 있고 재판인쇄도 있으나..그건 그렇다 치고 83년9월
자서를 시작으로 열죠.만
웃어요.그저..시간의 흐름을 막론하고 어쩌면 지금 현대를 그대로 읊나..
싶어서. 이런 시간차 공격을 뭐라 표현하는가 싶어서..서늘해지죠.

파란놀 2015-04-16 17:23   좋아요 1 | URL
먼 옛날도 없이
오늘도 없이
늘 흐르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이 시집을 새삼스레 읽는 동안
`1980년대 첫무렵에 회사에 사표를 쓰고 당차게 나온` 그분이
오늘은 어떤 일을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6 17:45   좋아요 0 | URL
아..모든 글을 업으로 사는 이들은..시대를 타고 난다 아니 산다..던가?요.. 그것이 저항이든 순응이든...
 

블럭놀이 11 - 불이 났어요



  방바닥에서 책상으로 조각을 잇는다. 책상에 불이 나서 소방차가 달려가서 불을 끄려 한단다. 그래, 그렇구나. 불이 났구나. 그런데 왜 불이 나니? 불이 안 나게 해 주렴. 불이 안 나고, 모두 사이좋게 즐겁게 놀도록 해 주렴.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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