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지음 / 강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84



‘내 땅’을 가꾸려는 꿈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글

 강 펴냄, 2012.5.16.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한승오 님이 쓴 산문책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강,2012)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기에, 한승오 님 글에는 시골내음과 흙내음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겪은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골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돌아보는 글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배운 이야기를 쓴 글이며, 오래도록 흙을 만진 이웃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적은 글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기에 땅한테서 배웁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만지면서 살면 나무한테서 배워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우고, 모두한테서 배웁니다. 풀 한 포기한테서도 배우며, 나비 한 마리와 벌레 한 마리한테서 배워요.



.. 한평생 농사만 지어 다섯 자식을 키운 팔순의 할머니가, 고추가 흙냄새를 맡았다고 그랬다 … 과연 저 어린 모가 생명의 춤을 파랗게 출 수 있을까 … 그 딱새가 작년과 같은 딱새인지 그 새끼인지는 모르겠다. 꼭 그 집에 날아들어 빈집을 고치고 거기에 다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  (11, 13, 20쪽)



  딱새를 바라본 한승오 님은 딱새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그럼요, 그렇지요. 제비를 보았으면 제비한테서 삶을 배우고, 까치나 까마귀를 보았으면 까치나 까마귀한테서 배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곳에서는 모든 이웃을 곁에 두면서 배웠습니다. 둘레에 있는 이웃사람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이고, 내가 먹는 밥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뿐 아니라,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도 우리를 가르치는 숨결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만 다니면서 학교에서만 배웁니다. 학교 바깥에서 ‘우리는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하고 ‘모든 숨결’한테서 배우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더욱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학교에서 쓰는 교재와 교과서 언저리에서만 배워요. 다른 책이나 스승한테서 배울 길이 막힙니다.



.. 땅을 잃은 사람들은 돌아갈 땅이 없다. 땅을 떠난 사람들은 땅에 돌아가리라는 마음을 망각한다 … 대문 밖 벽에 걸어둔 호미가 없어졌다. 벽에 못을 박아, 거기에 삽, 낫, 호미 따위를 걸어두었더니, 이웃 아주머니가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설마 어떤 도둑이 낫이나 호미를 가져갈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호미가 없어졌다 ..  (56, 73쪽)



  스승이 훌륭하면 제자가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훌륭하더라도 제자는 안 훌륭할 수 있습니다. 한편, 스승이 안 훌륭하더라도 제자가 훌륭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 학교에서 배웁니다. 스승한테서 배우려 하면 스승이 보여주는 몸짓과 말짓과 삶을 고스란히 배웁니다. 더 나은 배움이 없고, 덜떨어지는 배움이 없습니다. 모두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배움이든 받아들이는 사람 몫입니다. 배우려 하는 마음이 없다면,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책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배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더라도 흙빛과 흙내음과 흙결을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열 해를 살거나 백 해를 살거나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골내기 아닌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흙 한 줌을 만지면서 이 땅이 우리한테 가르치려 하는 숨결을 넉넉히 배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시에서도 땅을 배우고, 시골에서도 땅을 배워요. 우리는 대학생으로서도 배우고, 어린이로서도 배웁니다. 젊은이로서도 배우며, 할머니나 할아버지로서도 배웁니다.



.. 사오 년 전 우연히 보았다. 볍씨를 물에 담글 때 비닐하우스 옆 작은 벚나무가 꽃망울을 하얗게 터뜨리는 것을. 그것은 날짜의 옷을 훌훌 벗어던진 시간의 알몸, 바로 생명의 시간 … 지난봄 나에게 땅을 건네던 날, 최소한 오 년 동안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말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계속 지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아내와 내가 일 년 농사 끝에 그 많은 피를 다 뽑아 놓으니 이제 와서 ..  (81, 87쪽)



  한승오 님은 시골에서 땅을 빌려서 피를 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해 동안 애써서 피를 죄다 뽑았더니, 이듬해에 땅임자가 그 땅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이런 일은 시골에서 흔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빌려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한 해가 지나서 입을 싹 씻는 일입니다.


  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삶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땅임자를 탓할 수 없어요. 빌린 땅이고, 땅을 빌리면서 ‘문서’로 몇 해 동안 빌리겠노라 하고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문서로 밝혔다 하더라도,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면 손을 들어야 합니다.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지 않아도 ‘시골에서 살려’면 땅임자 말을 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 언제 옥수수를 따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내게 옆집 아주머니가 그랬다. 옥수수수염이 잘 익었을 때 따라고 … 펌프는 고장이 났다. 이번 한 번만 물을 대면 되는데. 고장 난 펌프를 뜯어내 읍내까지 가서 고쳐 오는 일이 번거로웠다. 대신 비를 기다리기로 작심했다 … 아주머니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그 물에 섞여 내 논으로 들어온다. 나는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점 논에 뿌리지 않건만, 내 논은 어쩔 수 없이 농약과 비료에 몸을 섞는 것이다 ..  (98, 145, 153쪽)



  그런데, 한승오 님은 ‘빌린 땅에서 애먼 품 팔기’뿐 아니라, 웃논에서 흘러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겪습니다. 참말 한승오 님한테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닥칠까요? 시골에서 아름답게 삶을 짓고 싶은 사람한테 왜 이런 가시밭길이 끝없이 일어날까요?


  시골살이가 힘들다는 뜻일까요? 그렇지만, 도시에서도 이처럼 힘든 일이 있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안타깝거나 슬픈 일이 툭툭 불거집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일도 샘솟고, 밉거나 괴로운 일도 찾아옵니다.


  《삼킨 꿈》을 덮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을 누구나 숲으로 가꾸면서, 열매도 얻고 장작과 나무도 얻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알차게 지으면서 이웃이 서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기쁘게 지으면서 다 함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쓴맛을 보면서 꿈을 삼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 싶기에 새롭게 꿈을 꿉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대로 받아들이면서 삭입니다. 이러면서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늘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리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서 흙을 살뜰히 보듬어 주기를 기다려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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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잠옷 바지 기우면서



  큰아이 잠옷 가운데 바지 한 벌은 무릎에 구멍이 났다. 구멍을 기우기로 하고 꽤 오랫동안 기우지 못했다. 기운다는 생각만 하고 참 오래도록 바느질을 안 했다. 큰아이는 얼마나 오래 ‘구멍 기우기’를 기다렸을까. 큰아이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를 너른 마음으로 기다려 주었을까.


  작은아이도 못 신는 작은 양말을 가위로 오린다. 작은 양말에 있는 눈사람 무늬가 한복판에 오도록 해서 큰아이 잠옷 바지에 덧댄다. 구멍을 기우는 동안 서너 차례 바늘에 찔린다. 이래서 골무를 해야 할 테지. 그러나 바늘에 찔려도 따끔하기만 할 뿐 피는 나지 않는다. 굳은살이 많이 박혔을까.


  내 어릴 적을 떠올린다. 우리 어머니는 내 옷에 난 구멍을 기우다가 곧잘 바늘에 찔리곤 하셨다. 바느질을 못해서 찔리지는 않으셨으리라.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느라 고단하기에, 바느질을 하다가 살짝 마음을 놓다가 찔리셨겠지. 4348.4.22.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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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스 (제인 고드윈·안나 워커) 파랑새 펴냄, 2009.4.24.



  버스와 자동차를 보면 온마음을 쏟는 작은아이를 생각해서 《빨간 버스》라는 그림책을 장만한다. 이 그림책은 아이 마음에 어떻게 스며들 만할까. 버스와 얽히는 삶은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로 깃들 만할까. 버스에서 포근한 숨결을 느끼면서 잠드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빚은 사람은 어떤 삶을 바탕으로 이런 이야기를 엮었을까. 가만히 보면, 버스에서 사람들이 흔히 잔다.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달릴 수 있기도 하지만,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는 동안 그야말로 느긋하게 잠들 수 있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한테 얼마나 포근한 품이 되는가를 곰곰이 되새긴다. 4348.4.22.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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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스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09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5년 04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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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8) -의 : 나비의 하는 짓


바둑이는 나비의 하는 짓을 보고 속으로 ‘간사스럽다’고 중얼거렸지만

《이원수-도깨비와 권총왕》(웅진주니어,1999) 48쪽


 나비의 하는 짓을 보고

→ 나비가 하는 짓을 보고



  이원수 님은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를 쓰면서 “나의 살던 고향은”처럼 글을 썼습니다. 이런 말버릇 탓에 “나비의 하는 짓” 같은 말투도 문득 튀어나옵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르듯이 “나비가 하는 짓”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고향의 봄”이라는 이름도 알맞지 않습니다. “고향 봄”이나 “봄 고향”처럼 말해야지요. “고향의 하늘”이 아닌 “고향 하늘”이라 해야 알맞습니다. “고향의 마을”이 아닌 “고향 마을”이라 해야 알맞아요. “고향 노래”이고 “고향 동무”이고, “고향 이야기”입니다. 4348.4.2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둑이는 나비가 하는 짓을 보고 속으로 ‘꾀바르다’고 중얼거렸지만


‘간사스럽다’는 ‘奸邪’일는지 ‘奸詐’일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느 한자로 썼든 ‘꾀바르다’나 ‘약빠르다’나 ‘괘씸하다’로 손보면 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41) -의 : 벼의 쓰러짐


벼의 쓰러짐은 무엇보다도 우선 당혹감을 몰고 왔다

《한승오-삼킨 꿈》(강,2012) 154쪽


 벼의 쓰러짐은

→ 벼가 쓰러져서

→ 벼가 쓰러지니

→ 벼가 쓰러지면서

→ 벼가 쓰러진 뒤

 …



  벼가 쓰러지면 “벼가 쓰러졌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쓰러지면 “사람이 쓰러졌다”고 말해요. 기둥이나 나무가 쓰러지면 “기둥이 쓰러졌다”나 “나무가 쓰러졌다”고 말하지요. 한국말로는 “벼의 쓰러짐”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당혹감을 몰고 왔다’ 같은 대목도 나옵니다. 한자말 ‘당혹감’은 “무슨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을 몰고 왔다”는 셈인데, 한국말로는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라고 말할 뿐, 이러한 마음을 ‘몰고 온다’고 하지 않아요. 4348.4.22.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벼가 쓰러지니 무엇보다도 먼저 어찌할 바 몰랐다


‘우선(于先)’은 ‘먼저’로 다듬고, “당혹감(當惑感)을 몰고 왔다”는 “어찌할 바 몰랐다”나 “어찌할 줄 몰랐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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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3.20. 큰아이―꿀 모으는 나비



  그림순이가 마당에 앉아서 뭔가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린다. 무엇을 볼까? 그림을 마친 그림순이가 보여준다. “꿀을 모으고 있어요♡”라고 그림 끄트머리에 덧붙인다. 새봄에 피어난 꽃에 나비와 벌이 앉아서 바삐 오가는 모습을 그렸구나.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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