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리 내려가는 글쓰기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다시 나왔다. 열두 해 만이다. 열두 해 앞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무렵, 그 책은 ‘돌아가신 이오덕 님’과 ‘아픈 몸으로 살던 권정생 님’ 두 분뿐 아니라, 둘레 다른 사람 가슴에 생채기를 입혔다. 그래서 그무렵 나는 이오덕 님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하고 ㅎ출판사하고 맞서 싸웠다. 다시 책마을 일꾼으로 돌아갈 수 없을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짙었으나, ‘책 하나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를 했다.


  지난 열두 해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난 열두 해 동안 내 삶은 어떠했을까? 나는 이제 책마을 일꾼으로 일하지 못 한다. 그러나, 나는 책마을 일꾼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책마을 일꾼으로 더 일할 수 없게 가로막히고 말았지만,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길로 갔으면 내 삶이 빛났을까? 나는 아직 모른다. 어느 길로 가든 삶은 늘 빛나기 마련이고, 고요하게 숨죽이기도 할 테며,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리라 느낀다.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나온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배가 몹시 아팠다. 찢어지게 아팠다. 뒷간에 가서 물똥을 눈다. 속을 쓸어넘기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한숨을 몰아쉰다. 비로소 조금 개운하다. 그렇구나, 지난 열두 해 동안 내 삶에 응어리처럼 맺힌 것이 내려갔구나. 고마운 일이다. 지나온 열두 해를 되짚으면서, 앞으로 걸어갈 열두 해를 꿈꾼다. 4348.4.24.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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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는 다녀오지 못하고



  아이들과 오늘 읍내로 저자마실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못 나갔다. 밥을 먹을 적마다 늘 놀면서 느긋한 아이들인 터라, 버스 타고 나갈 때에 맞추자니 도무지 맞출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하니, 읍내로 나가야 하는 날에는 밥을 아예 일찍 먹이거나 굶겨야지 싶다. 부랴부랴 서두른들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리하여, 두 아이 모두 낮잠을 푹 재운 뒤, 땅거미가 질 무렵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까지 한 바퀴를 달린다. 유채꽃이 잘 피어서 꽃내음 가득한 논둑길을 신나게 달렸다. 저자마실은 못 했어도 자전거마실을 했으니, 이래저래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재미난 놀이와 이야기를 누린다. 4348.4.24.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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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새롭게 나온다.

이 책은 지난 2003년에 한길사에서 무단출간을 한 적이 있다.

자그마치 열두 해가 지난 올해에 드디어 

제대로 옷을 입고 나온다.


이 이야기는 2003년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썼고,

알라딘서재에도 지지난해에 걸친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1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7 


지난날, 그러니까, 한길사에서 이 책을 함부로 펴내던 그 2003년에,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사를 제대로 못 만나셨구나 하고 느껴서

부디 제대로 된 출판사를 만나서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서울에 있는 여러 출판사를 헤아려 보곤 했다.


그때에 양철북 출판사를 알았고, 

청소년책과 어린이책으로 한길을 걷는 이곳이라면

앞으로 적어도 100년쯤은 넉넉히 책숲을 이룰 만하리라 느꼈다.


나는 아주 조그마한 징검돌을 놓았고,

양철북 출판사는 멋진 집을 지었기에

<이오덕 일기>도 살뜰히 태어날 수 있었고,

이제 이 책들도 곱다시 선보이는구나 싶다.


2003년부터 여태껏 묵히고 묵히던 이야기를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책을 찬찬히 읽고서

느낌글을 써야지.


책을 곱게 여미어 준 출판사에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올린다.

나는 이제 '이오덕 님 유고 정리 책임자'는 아니니

내가 굳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할 일은 없으나,

'책으로 숲을 짓는 이웃'으로서 '예쁜 출판사' 일꾼들 모두한테

기쁘게 고맙다는 뜻을 올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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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04) 박빙의 1


누가 이기고 있는지 아는 것이 불가능했다. 박빙의 승부라는 것은 명백했다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276쪽


 박빙의 승부라는

→ 살얼음판이라는

→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 아슬아슬하게 겨룬다는

→ 가까스로 이기거나 진다는

 …



  운동경기나 선거 같은 자리에서 으레 쓰는 “박빙의 승부”입니다. 워낙 흔히 쓰는 말투이기도 하기 때문일 테지만, ‘박빙’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찾아볼 마음을 품는 사람은 매우 드물겠지요. 


  한자말 ‘박빙(薄氷)’은 ‘살얼음’을 뜻합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한국말은 ‘살얼음’이요, 한자로 옮기면 ‘薄氷’이 될 뿐이며, 이 한자말에 ‘-의’를 붙인 말투로 “박빙의 승부”가 널리 퍼졌습니다.


  ‘승부(勝負)’라는 한자말은 “이기고 짐”을 뜻합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한국말로는 “이기고 짐”이요, 이를 한자로 옮기니 ‘勝負’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이 “薄氷の勝負”처럼 쓰는 말투를 한국에서 한글로만 바꾸어 “박빙의 승부”로 적는다고 하겠습니다.


 살얼음판 같은 경기

 살 떨리는 경기

 아슬아슬한 경기

 조마조마한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

 땀나는 경기


  ‘살얼음’은 “살짝 언 얼음”을 뜻합니다. 살짝 언 얼음은 쉽게 깨지거나 갈라집니다. 냇물이 살짝 얼었다면, 이 얼음바닥을 함부로 디디면 안 됩니다. 얼음장이 와장창 무너지면서 빠질 테니까요.


  살얼음판을 걸을 때에는 아슬아슬하거나 조마조마합니다. 살이 떨린다고도 합니다. 아주 살몃살몃 걸어야 할 테고, 손에 땀이 줄줄 흐를 테지요.


  곰곰이 따진다면, ‘박빙’이나 ‘승부’ 같은 한자말을 쓰든 말든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낱말을 써야 한다면 써야 합니다. 그러나 더 따진다면, 한국말로 ‘살얼음’이 있고 ‘이기고 짐’이 있으면, 이 같은 한국말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굳이 한자말을 받아들이거나 일본 말투대로 “박빙의 승부”처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아는 사람이 영어를 쓰기에 ‘표현의 다양성’이 되지 않습니다. 러시아말을 잘 아는 사람이 러시아말을 섞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해도 ‘표현의 다양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일본 말투가 아닌 일본말을 섞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해도 ‘표현의 다양성’이라 하지 않습니다.


  삶이 녹아난 말을 쓸 때에 서로서로 잘 알아듣습니다. 사랑을 담아 쉽고 바르면서 아름답게 말을 나눌 때에 서로서로 즐겁게 알아듣습니다. 요즈음은 “박빙의 승부”라 말해도 “아슬아슬한 한판”인 줄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아이들은 이런 말투를 못 알아듣습니다. 무엇보다 ‘박빙’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어설프게 “박빙의 승부 =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알아듣기보다는,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써서,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즐겁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팀이 박빙의 우위를 지켜 가고 있다

→ 우리 팀이 가까스로 앞선다

→ 우리 편이 살짝 앞선다

→ 우리 쪽이 아슬아슬하게 앞선다


  아슬아슬한 모습을 가리킬 적에는 “아슬아슬하게 앞선다”처럼 적어도 되고, “살짝 앞선다”나 “가까스로 앞선다”나 “아주 조금 앞선다”처럼 적어도 됩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한다”나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2.3.16.달/4348.4.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었다. 틀림없이 아슬아슬하게 맞붙었으리라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었다. 살얼음판임은 틀림없었다


“이기고 있는지”는 “이기는지”로 다듬고, “아는 것이 불가능(不可能)했다”는 “알 수 없었다”로 다듬습니다. ‘승부(勝負)’는 “이기고 짐”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말뜻 그대로 “이기고 짐”으로 손질해도 되는데, 바로 앞에서 “누가 이기는지”라고 나오니, 이 대목에서는 덜어도 됩니다. ‘명백(明白)했다’는 ‘틀림없었다’로 손봅니다.



박빙(薄氷)

1. = 살얼음

2. 근소한 차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박빙의 승부 / 우리 팀이 박빙의 우위를 지켜 가고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40) 박빙의 2


6·4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결과가 나왔고

《고성국·지승호-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철수와영희,2015) 10쪽


 박빙의 결과가 나왔고

→ 아슬아슬하게 나왔고

→ 손에 땀을 쥐게 했고

→ 엎치락뒤치락했고

 …



  선거를 했을 적에 어느 한쪽이 살짝 앞섰다는 뜻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슬아슬한 선거였으면 손에 땀을 쥐게 했겠지요. 엎치락뒤치락하는 선거였다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4348.4.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6·4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도 아슬아슬하게 나왔고


“-에도 불구(不拘)하고”는 “-가 있었어도”로 손질하고, “결과(結果)가 나왔고”는 “나왔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참사(慘事)’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뜻합니다. ‘비참(悲慘)’은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함”을 뜻합니다. 그러니, ‘참사’ 뜻풀이는 겹말입니다. 처음부터 “끔찍한 일”이나 “슬프고 끔찍한 일”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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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21 2015-04-24 21:04   좋아요 0 | URL
이북에서 쓰는 말이 궁금하네요
 
여우난골족 우리시 그림책 9
백석 지음, 홍성찬 그림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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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3



한집안 사랑노래

― 여우난골족

 백석 글

 홍성찬 그림

 창비 펴냄, 2007.2.9.



  설이나 한가위가 되면 온 나라가 들끓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시골로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거꾸로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도시를 빠져나가서 시골로 가는 사람들 물결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설이나 한가위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떨어져 지낸 어버이’를 만나려는 마음입니다. 자가용을 몰건 기차나 버스를 타건 저마다 찻길에서 온 하루를 쏟아부은 끝에 비로소 시골집에 닿습니다.


  여느 때에는 시골이 고요합니다. 여느 때에는 시골마을에 오가는 차가 아주 드뭅니다. 여느 때에는 시골마을에서 찻소리를 들을 일이 없습니다. 군내버스와 택배 짐차가 아니라면, 여느 때에 시골마을 둘레를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서 도시에서 살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잊거나 잃은 채 도시에서 복닥거리면서 살까요?


  고향은 꼭 태어난 곳만 가리킬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보냈으나 스무 살부터 쉰 살이나 예순 살까지 도시에서 지냈다면, 이제 도시가 고향이라고 할 만합니다. 더욱이, 아주 젊은 날에 시골을 떠나서 도시에 뿌리를 내린 뒤, 도시에서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들한테는 도시가 고향입니다. 시골집은 아이들 어버이한테나 고향입니다.



.. 명절날 나는 어머니 아버지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  (2쪽)





  요즈음은 한집안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퍽 어렵습니다. 설이나 한가위에도 얼굴을 못 보기 일쑤입니다. 새마을운동이 일기 앞서는 도시로 떠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으레 한집안이 가까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지냈을 테지요. 새마을운동이 일어난 뒤부터 시골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아주 많고, 경제개발이 춤추는 가락에 휩쓸려 공장 노동자는 설도 한가위도 잊은 채 쳇바퀴로 굴러야 했습니다. 이무렵부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요즈음은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자가 고향을 못 찾기 일쑤요, 한국으로 찾아온 이주노동자가 고향나라로 못 가기 일쑤입니다.


  따로 나뉘어 사는 형제나 자매 가운데 누군가 아기를 낳으면 한집안 사람들이 모여서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집안에서 누군가 숨을 거두어야 비로소 한집안 사람들이 모여서 낯이라도 볼 수 있을까요. 여느 때에는 한 달에 한 번쯤 얼굴조차 못 보며 지내기 일쑤는 아닐까요. 어머니 품에서 함께 사랑을 물려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저마다 고된 하루를 보내지는 않는가요.



..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할 때마다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복숭아나무가 많은 마을에 사는, 신리 고모 ..  (8쪽)




  ‘우리 시 그림책’ 아홉째 권으로 나온 《여우난골족》(창비,2007)을 읽습니다. 백석 님이 쓴 글에 맞추어, 홍성찬 님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늘날 같은 문명사회로 접어들기 앞서, 한겨레가 어디에서나 맞이한 설날 언저리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설을 앞두고 누구나 웃음지으면서 어우러지는 삶을 그리고, 설을 맞이해서 서로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하루를 그립니다. 설을 쇠는 동안 어른과 아이가 무엇을 하며 노는가를 그리고, 큰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따사로이 피어나는 숨결을 그립니다.


  제금을 나서 살던 살붙이가 하나둘 모입니다. 저마다 제금을 나면서 낳아 돌본 아이를 이끌고 모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어우러집니다. 조그마한 시골집 한 채에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 그득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안방에들 모이면, 방 안에서는 새 옷 내음새가 나고 ..  (23쪽)





  설을 맞이해서 설빔을 아이들은 몹시 설레면서 기쁠 테지요. 설을 앞두고 아이들한테 설빔을 마련해 주는 어버이도 바느질을 한 땀 두 땀 할 적마다 설레면서 기뻤을 테고요. 모처럼 한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였으니, 늙은 어버이도 한결같이 웃음꽃이 될 테고요.


  그렇지만, 모처럼 만난 한집안 사람들이 곧 모두 헤어져야 합니다. 그야말로 먼걸음을 했을 텐데, 멀리서 찾아온 사람은 더 일찍 고향집을 나서야 합니다. 가까이에서 찾아온 사람도 어느새 고향집을 나서야 합니다. 기쁜 웃음꽃도 어느새 저물면서, 시골마을 고향집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 그래서 창문에 처마 그림자가 비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 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에서,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  (36쪽)




  우리는 꼭 한집안 사람들끼리만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웃이 있고, 사랑스러운 동무가 있습니다. 모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누구와 살더라도 한결같은 웃음꽃일 수 있으면 됩니다. 어디에서 살더라도 한결같은 사랑노래일 수 있으면 됩니다. 나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물려준 사랑을 고이 받아들여 기쁜 몸짓으로 북돋웁니다.


  노래를 부르는 삶입니다. 늘 얼굴을 마주하든, 설이나 한가위에만 겨우 얼굴을 마주하든,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삶입니다. 시골마을에서는 꿈을 키울 수 없다고 여겨서 도시로 갔으면, 도시에서 꿈을 키우면서 살면 됩니다. 도시에서 키운 꿈을 곱게 갈무리하고 마무리지었으면, 시골로 돌아와서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시골마을에서 꿈을 키워서 지을 수 있고, 이제는 굳이 도시로 가지 않더라도 시골에서 새로운 꿈과 이야기와 노래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림책 《여우난골족》을 생각합니다. 꽁꽁 얼어붙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이지만, 모두 웃음노래입니다. 웃지 않거나 노래하지 않는 사람은 안 보입니다. 반가우면서 살가운 한집안 사람들이니, 웃음이 끊이거나 노래가 끊일 일이 없습니다. 웃음과 노래가 늘 이어지니, 한겨울에도 추위가 아닌 웃음이랑 노래를 떠올립니다.


  ‘한집안 사랑노래’가 자라고 자라서 ‘한마을 사랑노래’가 됩니다. 한마을 사랑노래는 자라고 자라서 ‘한나라 사랑노래’가 됩니다. 한마을 사랑노래는 다시 자라고 자라서 ‘한별 사랑노래’가 되고, 이윽고 ‘한누리 사랑노래’가 됩니다.


  조그마한 집에서 샘솟은 노래가 마을과 나라를 지나서, 지구별에서 흐르다가 온누리로 넓게 퍼집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기쁘게 웃음지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습니다. 4348.4.24.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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