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42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514



둘이 된 한 넋이 가는 길

― 유리가면 42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단행본 기획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5.5.15.



  두 아이는 다르게 놉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목숨이니 다르게 놀밖에 없습니다. 네 아이가 있으면 네 아이가 다르게 놀고, 백 아이가 있으면 백 아이가 다르게 놉니다. 천 아이나 만 아이가 있으면 참말 천 가지나 만 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놉니다.


  한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을 적에도 두 사람은 다르게 사랑합니다. 한마음이 되는 사랑을 같더라도, 두 사람이 사랑으로 다가오는 몸짓은 다르지요.


  다르기에 같을 수 있고, 같기에 다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따로 살아온 발걸음처럼 다르지만, 앞으로 걸어갈 한길을 똑같이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나날이 같더라도, 그동안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삭이고 가꾼 넋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솥밥을 먹더라도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먹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지내도 언제나 마음으로 만나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 “아니에요, 마스미 씨. 저,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약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마스미 씨, 전 이제 더 이상 ‘꼬마’가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 주세요!“ (12∼13쪽)

- “알았나? 너희들도 신경쓰지 말도록! 상대는 상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라!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연기가 있어!” (37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05) 마흔둘째 권을 읽으면, 마음이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고,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찾는 마야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마야와는 다르지만 마음이 흔들거리다가도 언제나 새삼스레 차분하게 제자리를 되찾는 아유미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마음결을 가꾸면서 삶을 짓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마음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삶을 빚습니다.


  다만, 두 아이는 아직 서툽니다. 스스로 우뚝 서기에는 아직 서툴고 어립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서툴지 않습니다. 연기를 한 햇수가 길지 않아서 서툴지 않습니다. 두 아이가 하고 싶은 〈홍천녀〉라고 하는 연극은 바로 두 아이 마음속에 벌써 있으나, 아직 이 숨결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서툴고 어립니다.





- “당신의 따뜻함이 좋아요.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랍니다.” (42쪽)

- “괜찮아, 할멈. 난 기타지마 마야한테는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지지 않아. 걱정 마.” (49쪽)



  마야가 하는 연극을 아유미가 할 수 없습니다. 아유미가 하는 연극을 마야가 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는 ‘한 가지 연극’을 ‘두 가지 이야기’로 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이는 저희를 가르치고 이끈 스승님하고 똑같은 연극을 선보일 수 없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대로 이녁 삶을 바친 연극을 했습니다. 마야는 마야대로 제 삶을 바치는 연극을 해야 하고, 아유미는 아유미대로 제 삶을 바치는 연극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서로 맞잡이로 지내야 하면서 동무입니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지켜보면서 언제나 제(마야와 아유미) 마음속을 고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해. 여긴 매화골, 사랑하는 사람은 이츠신인데, 왜?’ (65쪽)

- “미안해, 사쿠라코지. 지금까지 정말로 미안해! 난 최악의 상대 배우야.” (124쪽)

- “이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지! 하지만 말이야, 자신이 믿지도 않는 걸 연기해 보이면, 관객은 그걸 믿을 수 있을까?” (135쪽)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꼭 이 사람을 좋아해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을 멀리한다든지 그 사람하고는 등을 져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유리가면》에서는 ‘영혼의 반쪽’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한 넋’이었는데 ‘두 넋’으로 갈라진 사이라는 이야기가 가없이 흐릅니다.


  ‘둘이 된 한 넋’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한 넋이 두 넋으로 나뉠 수 있을까요.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둘에서 둘이 비롯하지 않습니다. 하나에서 모든 것이 비롯합니다. 처음 하나에서 새로운 하나가 태어납니다. 그래서 ‘둘이 된’ 하나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로 나뉜 하나’는 다른 몸을 입으나 언제나 한넋, 곧 한마음입니다. 이를테면 거울이라고 할 수 있고,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몸과 함께 늘 움직이는 고요한 그림자 말이지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늘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하나였으니, 하나를 둘로 가랐다고 해서, 이 ‘둘로 나뉜 둘’을 더하면 한결같이 하나입니다.




- “하지만, 〈홍천녀〉의 무대 위에서 전 제 운명의 상대와 만날 수 있어요. 내 분신, ‘영혼의 반쪽’, 생명을 나눈 또 하나의 나 자신.” (157쪽)

- ‘마스미 씨, 보라색 장미의 사람! 이제 당신한테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요! 한 사람의 여자로서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요! 대신 당신에게 난 여배우로서 최고의 존재이고 싶어요! 내게 무한한 힘을 주는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뿐인 내 팬! 그러니 부탁이에요. 보라색 장미의 사람!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 저와 제 홍천녀를! 저,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예요! 지금은 그 첫걸음!’ (206∼207쪽)



  지구별을 이루는 목숨붙이는 모두 다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누리면서 언제나 지구별을 이룹니다. 너와 내가 있습니다. 나와 네가 우리로 모입니다. 다 함께 지구별에서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먹으며, 빗물과 이슬을 들이켭니다. 누구나 흙을 밟을 뿐 아니라, 흙에서 자라는 목숨을 받아들입니다. 밥도 옷도 집도 모두 이 땅, 이 지구별에서 테어나서 자랍니다.


  ‘둘이 된 한 넋’인 ‘영혼의 반쪽’은 목숨을 나눈 숨결이겠지요. 언제 어디에서나 한마음이 되고, 다른 몸에 깃들어서 살지만 늘 한곳을 바라봅니다. 한집에서 한사랑을 나누려 하고, 한꿈으로 나아가는 한길에 섭니다. 한뜻을 이루려고 온힘을 기울이니, 머잖아 둘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리가면》에 나오는 ‘보랏빛 장미로 찾아오는 사람’인 마스미 씨는 제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합니다. 이는 마야도 매한가지입니다. 둘은 마음으로는 만날 수 있고, 언제나 한마음이 되어 만나지만, 정작 이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주춤거립니다. 두려워 합니다. 모든 이름과 돈과 몸뚱이를 내려놓으면 되는데, 아직 이름도 돈도 몸뚱이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둘은 언제쯤 모든 사슬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는 한몸이 되는 한마음인 한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바람을 부르니

쏴악

가벼우면서 빠른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다가

머리카락을 하늘로 날리면서

분다.


눈을 감고

파란 숨결을 떠올린다.

내가 부르면

내가 ‘바람아’ 하고 부르면

곧바로 날아들면서

시원스레 웃음짓는

예쁜 동무

바람이.



2015.5.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백꽃아, 다음 겨울에 만나자



  오월을 앞에 두고 우리 집 동백나무도 꽃송이가 거의 다 떨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꽃봉오리를 벌린 아이가 몇 안 남는다. 마지막으로 봉오리를 터뜨린 귀여운 아이들아, 곧 여름이 다가오고, 바야흐로 너희들은 씨앗으로 단단히 여물겠구나. 겨울 끝자락과 봄 첫머리에 반가웠어. 여름과 가을 지나고 새로운 겨울에 다시 만나자. 네 꽃빛과 꽃망울을 언제나 가슴에 담으면서 지낼게.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집에만 남은 갓꽃



  바야흐로 논삶이를 하는 철이다. 이제 논둑이나 밭둑마다 유채꽃이나 갓꽃을 모두 베어 넘긴다. 아직 논갈이를 하지 않은 논에도 유채꽃은 모두 진다. 경관사업을 하느라 심은 유채는 작달막하게 살짝 자라다가 어느새 수그러든다. 바람에 씨앗을 날려 들녘이나 숲에 깃든 뒤 스스로 깨어나는 아이들은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쐬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처음에는 키가 작으나, 이듬해에는 숙숙 오르고, 세 해나 네 해가 지나면 밑둥이 퍽 굵으면서 크게 자란다.


  경관사업이란 ‘구경하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들이나 숲을 가꾸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꽃만 며칠 보았다가 모두 밀어내고 마는지 모른다. 돈으로 뿌리고 돈으로 갈아엎는다.


  마을을 돌보고 보금자리를 보살피려는 씨앗이라면, 꽃이 피고 지면서 씨앗이 맺을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면서 아낄 테지. 씨앗은 꽃이 되고 꽃은 새롭게 씨앗이 된다. 새롭게 씨앗이 된 숨결은 다시금 새로운 꽃으로 거듭난다. 삶은 꽃빛으로 흐르다가 씨앗으로 고요히 갈무리한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5) 으애― (‘―’를 붙이는 말투)


부엉이는 창가를 한다. 부―엉 … 애기가 코― 자면서 … 너는 너는 나―리 … 들녘새는 펀―한 들녘 … 순이가 찾아내니까 으애― 하고 울었습니다 … 옛이야기처럼 살―살― 바람결에 고개를 … 이―슥하여 내리는 밤이슬 … 웃수머리 둥구나무, 조―그만하게 보였다

《오장환-부엉이는 부끄럼쟁이》(실천문학사,2014) 16, 18, 20, 27, 39, 42, 46, 62쪽



  일본에서 나온 책을 보면 ‘―’를 퍽 자주 씁니다. 말을 늘인다든지 길게 소리내려고 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를 넣습니다. ‘에또’는 일본말인데 이 일본말을 ‘에―또’처럼 적기도 해요. 이렇게 적으면 껍데기는 한글이어도 아주 일본말(일본글)인 셈입니다.


 부―엉 → 부엉 / 부어엉 / 부엉부엉

 코― 자면서 → 코 자면서 / 코오 자면서


  긴소리를 나타내려고 ‘―’를 넣는다고도 할 수 있으나, 한국말에서는 ‘―’를 넣지 않고 긴소리를 나타냅니다. 영어 같은 서양말에서는 ‘:’ 같은 기호를 써서 긴소리를 나타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국말을 글로 적을 적에는 ‘:’도 쓰지 않고 ‘―’를 쓰지도 않습니다. 말소리를 그대로 받아서 적은 뒤, 입으로 읽을 적에 길게 소리를 냅니다. ‘부엉’이라 적더라도 이 글을 읽을 적에 ‘부어엉’이나 ‘부우엉’처럼 소리를 내지요.


 너는 나―리 → 너는 나리 / 너는 나아리

 펀―한 들녘 → 펀한 들녘 / 퍼언한 들녘


  이 보기글은 오장환 님이 일제강점기에 쓴 동시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쓴 다른 분들도 오장환 님처럼 ‘―’를 으레 넣었습니다. 그무렵에는 ‘―’를 넣지 않으면 글이 안 된다고 여긴 듯합니다. ‘그녀’ 같은 일본말도 일제강점기에 지식인이 받아들였고, ‘の’를 ‘의’로 옮겨서 적는 글버릇도 일제강점기에 지식인이 받아들여 퍼뜨렸습니다. 그래도 요즈음에는 ‘―’를 넣어 글을 쓰는 분이 크게 줄었습니다. 한국말하고 어울리지 않는 기호이기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적에는 이런 기호가 덧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으애― 하고 → 으앵 하고 / 으애앵 하고

 살―살― 바람결에 → 살살 바람결에 / 사알사알 바람결에


  한국말은 ‘붉다’를 ‘불그스름하다’라든지 ‘발그스름하다’라든지 ‘불그죽죽하다’처럼 새롭게 나타내기도 합니다. 붉은 빛깔이 살짝 옅거나 짙다는 느낌을 나타내려고 말을 늘여서 적습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를 ‘맴맴’처럼 적기도 하지만 ‘매앰매앰’처럼 적기도 하고 ‘매애앰매애앰’처럼 적기도 합니다. 한국말은 ‘매―앰’처럼 적지 않습니다. 홀소리를 사이에 넣어서 긴소리를 나타냅니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도 ‘개골개골’을 바탕으로 ‘개애골개애골’이라든지 ‘개고올개고올’처럼 적습니다.


  ‘살살’ 같은 낱말은 ‘살살살살’처럼 적을 수 있고, ‘사알사알’이라든지 ‘스을스을’이나 ‘사알살사알살’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이―슥하여 내리는 → 이슥하여 내리는

 조―그만하게 보였다 → 조그만하게 보였다


  어느 모로 본다면 ‘―’를 넣어서 글을 쓰는 놀이를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 같은 기호를 넣어 글을 쓰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겨레는 이런저런 기호가 없이도 얼마든지 닿소리와 홀소리를 늘이거나 줄이거나 깎거나 다듬어서 말놀이를 즐겼습니다. 한두 가지 기호로는 담아낼 수 없는 그윽하거나 너른 말맛을 닿소리와 홀소리를 쓰면 얼마든지 가꾸거나 북돋울 수 있습니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