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77. 2015.5.11. 오이 썰기



  동글배추를 얇게 썬 뒤, 오이를 동그랗게 썰어서 빙 둘러 본다. 오이를 길게 썰까 하다가 동글게 썰어서 꽃접시에 빙 두르니, 제법 볼 만하면서 재미있구나 싶다. 다만, 나 혼자 재미있다고 느끼면 안 되고, 밥순이와 밥돌이도 재미있다고 여기면서 꽃밥을 즐겁게 먹을 수 있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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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돌이 쳇 -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노 가즈요시 외 그림, 박경희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9



맑은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이더라도

― 쥐돌이 쳇

 미야자와 겐지 글

 이노 가즈요시·스카사 오사무 그림

 박경희 옮김

 작은책방 펴냄, 2003.11.6.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맑고 싱그럽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착하고 보드라운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착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될는지 안 될는지 궁금합니다.



.. “무슨 소리야? 난 자네를 속이지 않았어. 분명히 별사탕이 있었단 말야.” “예, 있긴 있었지요. 하지만! 벌써 개미들이 와 있었다고요.” “뭐, 개미가? 그랬나. 정말 잽싼 놈들이로구먼.” “개미가 다 가져가 버렸다고요. 나같이 약한 쥐를 속이다니 물어줘요, 물어줘.” … 고양이 대장은 크게 웃으며, “아하하, 선생도 돼먹지 못하고, 학생도 나쁘군. 선생은 언제나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고, 학생은 배울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하고 말했답니다 ..  (11, 37쪽)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어린이문학 《쥐돌이 쳇》(작은책방,2003)을 읽습니다. 작은책방 출판사에서는 모두 여섯 권으로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을 선보였고, 《쥐돌이 쳇》은 여섯 권 가운데 첫째 권입니다. 첫째 책에는 〈쥐돌이 쳇〉과 〈새 상자 선생님과 쥐돌이 후유〉와 〈쥐돌이 흥〉과 〈도토리와 살쾡이〉 같은 네 가지 이야기가 담깁니다. 여러모로 ‘쥐돌이’가 많이 나오는 《쥐돌이 쳇》입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하나같이 살짝 어리석거나 어리숙합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살필 줄 모르고, 제 앞가림에 바쁩니다. 제 삶을 살뜰히 가꾸는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쥐 눈치를 살살 보면서 겉치레를 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 테 의원은 아주 어려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신이 대견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쥐돌이 흥은 그것이 너무도 아니꼬워서, “에헴, 에헴!” 하고 상대편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지만 가능한 한 높은 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 “이놈은 사회 분열을 꾀하는 놈이야! 분열 분자라고! 체포해라, 어서 체포해!”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쥐는 마치 돌팔매질을 하듯이 흥에게 덤벼들어 쥐돌이 오랏줄로 칭친 묶어 버렸습니다 ..  (48, 50쪽)



  쥐돌이는 왜 하나같이 으스댈까요. 쥐돌이는 왜 저마다 우쭐거리면서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릴까요. 쥐돌이는 왜 다른 쥐는 낮은 데에 두고 저는 높은 데에 두려 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은 쥐돌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나고 자란 일본에서 늘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사람살이를 바로 쥐돌이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보여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정치권력을 쥔 쪽에서 본다면,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살던 무렵(1896∼1933)은 일본이 군대힘을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던 때입니다. 곳곳에서 제국주의 물결이 넘쳤고, 사람들인 정치권력이나 군대힘에 억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가면서도 숨을 죽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총알이나 탱크나 군인옷 따위를 만들면서도 소리를 죽였습니다.



.. 쥐돌이 흥은 새끼 고양이들이 너무나도 영리했기 때문에 부아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쥐돌이 흥이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을 외우는 데 반 년이나 걸렸기 때문입니다 … 고양이 대장에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뭣 좀 배웠니?” 그러자 네 마리 새끼 고양이가 일제히 대답했답니다. “예, 쥐 잡는 법을 배웠어요.” ..  (58, 59쪽)



  쥐돌이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어도 새끼 고양이보다 어리숙합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가 아주 어릴 적에 손쉽게 깨우치거나 알아차린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깨우치거나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를 시샘하고, 괜히 거드름을 피우고 싶습니다. 새끼 고양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대목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고양이 앞에 놓인 쥐이면서도 고양이한테 거드름을 피우는 쥐돌이입니다. 아무리 새끼인 고양이라 하더라도 쥐 한 마리쯤 잡아먹기는 쉬울 텐데, 쥐돌이는 무서운 줄 모릅니다. 아니, 너무 무서운 나머지 무서움을 잊은 셈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양이한테 잡아먹히겠구나 하고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끼 고양이한테조차 거드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겠지요.


  쥐돌이 가운데 ‘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 새끼 고양이 사이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쥐돌이 흥은 어떻게 될까요? 거드름을 피우는 쥐 한 마리를 바라보는 새끼 고양이는 무엇을 할까요?



.. 시원한 바람이 쏴아쏴아 불자 밤나무가 후드득후드득 알밤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치로는 밤나무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밤나무야, 밤나무야. 살쾡이가 여길 지나가지 않았니?” 밤나무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살쾡이는 오늘 아침 일찍 마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갔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 “오늘 사례 말입니다, 황금 도토리 한 되와 소금에 절인 연어 머리 가운데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황금 도토리가 좋겠군요.” 살쾡이는 연어 머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듯 빠른 말투로 마부에게 명령했습니다. “도토리를 한 되 가지고 오너라. 한 되가 안 되거든 도금한 도토리라도 섞어서 가지고 와, 얼른!” ..  (63, 82쪽)



  《쥐돌이 쳇》은 〈도토리와 살쾡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나옵니다. 숲속 재판에 어린이가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음이 맑은 어린이는 숲속 재판에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착한 말씨로 골칫거리를 손쉽게 풀어 줍니다. 이리 재거나 저리 따지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슬기로운 생각을 펼쳐 보여요.


  가만히 돌아보면, 모든 어린이는 어른이 됩니다. 모든 어른은 어린이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어린이가 마음이 맑다면, 모든 어른도 어릴 적에 누구나 마음이 맑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그리 안 맑은 마음으로 사는 어른이 있더라도, 이녁은 예전에 맑고 밝으며 착한 마음씨로 환하게 웃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안 맑은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흐리멍덩한 어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무리 마음이 어지러워지거나 흐리멍덩해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제부터 밝은 숨결이 되고 포근한 사랑이 되면 즐겁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은 수수하고 투박한 이야기를 지어서 이 같은 생각을 찬찬히 밝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도 맑고 어른도 맑으니, 사람들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답게 살기를 바랐지 싶어요. 《쥐돌이 쳇》에 나오는 모든 쥐돌이 같은 어리석은 일본사람이 바보스러움을 하루 빨리 깨닫고 착하며 참된 넋으로 거듭나기를 바랐지 싶습니다. 이 동화책을 읽는 우리는 우리대로 슬기롭고 착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을 때에 하루가 즐겁겠지요.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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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58. 흐르는 이야기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사진으로 담을 만한 숨결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흐르는 이야기도, 어제 그곳에서 흐른 이야기도, 모레 저곳에서 흐를 이야기도, 저마다 다르면서 아기자기하게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스스로 찍을 수 있고, 우리 이웃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찍을 수 있습니다. 들과 숲을 곰곰이 지켜보면서 찍을 수 있고, 하늘이나 건물이나 자동차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찍을 수 있습니다.


  냇물을 찍는 사진이 바다를 찍는 사진보다 낫지도 덜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댐을 찍는 사진이 웅덩이나 둠벙을 찍는 사진보다 덜떨어지지도 낫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 풀집을 찍는 사진이 큰도시 아파트를 찍는 사진보다 낫지도 덜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입니다. 기록은 기록입니다. 기록하려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사진을 찍으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으려면 기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기록은 ‘이야기’를 헤아리지 않고 ‘남기려’고 하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진이란 ‘이야기’를 헤아리기에 사진이요, 남기든 안 남기든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유리원판으로 찍든, 대형필름으로 찍든, 35미리필름으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사진은 디지털로 찍든 필름으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든 손전화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찍을 때에는 사진이고, 기록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찍는다면 기록이거나 다른 것이 되지요. 이를테면,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새로운 숨결이 퍼지기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재미난 노래가 감돌기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은 뒤 살며시 웃습니다. 다 함께 사진을 찍어요.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서, 웃음과 노래를 가득 실어서 사진을 찍어요.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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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순이 13. 저물녘에 너와 나 (2015.4.21.)



  사진순이가 저물녘에 마당에서 사진놀이를 즐긴다. 무엇을 찍을까? 무엇을 바라볼까? 기쁘게 바라보는 곳을 사진으로 담고, 즐겁게 마주하는 숨결을 사진으로 빚겠지. 사진순이를 가만히 바라보니, 사진순이는 나를 살며시 바라본다. 서로 마주보다가 서로 오늘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는가를 사진 한 장으로 갈무리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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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3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9



아이들한테 ‘여행’은 무엇일까

―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2.8.20.



  사뿐사뿐 얌전하거나 조용하게 걷는 아이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뜀뛰는 걸음’으로 다니기 마련입니다. 바빠서 뜀뛰듯이 걷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면서 기쁘게 뜀뛰듯이 걷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활짝 웃고, 아주 자그마한 선물 하나에도 밝게 노래합니다. 작은 몸짓이 큰 날갯짓이 되듯이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지 못하게 막습니다. 오직 운동장에서만 뛰거나 달릴 수 있는데, 바깥에서 뛰거나 달려도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라고 막기 일쑤입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면 자동차가 많으니 천천히 둘레를 살피면서 걸으라고 시킵니다. 자동차 걱정이 없는 곳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 되고, 자동차 걱정이 있는 곳에서는 얌전히 굴어야 하는 오늘날 아이들인 셈입니다.





.. 라보눈 방송국은 펭귄나라의 방송국이에요. 거꾸로 읽으면 눈보라 방송국이 되지요. 이 방송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꾼은 펭귄 화이트블랙이에요. 그런데 화이트블랙에게 걱정이 생겼어요. 이야깃거리가 떨어졌거든요 ..  (2쪽)



  아이들은 한국에서 미국이나 프랑스나 남극이나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을 찾아가야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웃나라를 모릅니다. 아이들은 이웃마을도 모릅니다. 이웃나라나 이웃마을은 ‘어른이 흔히 말하거나 알려주니’까 비로소 알 뿐입니다.


  아이들은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는 곳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뒹굴 수 있는 곳이 재미있습니다. 낯선 나라로 찾아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먼 나라에 여러 날 머물러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호텔에서 묵거나 기차를 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여행길, 그러니까 마실길이 됩니다. 신나게 놀고 뛰면서 지낼 수 있는 자리가 비로소 여행터, 그러니까 마실터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여행을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날마다 마실을 합니다. 집안에서도 날마다 새롭게 마실을 합니다. 집밖에서도 언제나 새롭게 마실을 누립니다. 마루와 마당과 부엌을 오가는 걸음도 기쁜 마실이 됩니다. 이웃집이나 학교나 우첵구을 다녀오는 길도 멋진 마실이 됩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즐거울 때에는 모든 걸음걸이가 마실이 됩니다.




.. “여행하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화이트블랙은 너무나 지루해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지끈! 깜짝 놀라서 잠이 깼어요. 배가 빙산에 부딪힌 거예요! 배는 무서운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어요. “배를 잃어버린 건 아쉽지만 라디오에서 이야기할 거리는 되겠지. 게다가 사고도 한번 당해 봤으면 했는데, 잘 됐다.” ..  (5쪽)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님과 마르그레트 레이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시공주니어,2002)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두 레이 님이 1930년대에 처음 그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번지던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자전거에 챙긴 그림꾸러미였고, 두 레이 님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림책을 그리며 사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림꾸러미였다고 합니다. 예순 해 가까이 짐꾸러미 사이에서 묵다가 뒤늦게 빛을 본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그림책이니,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배(군함과 고기잡이배)는 퍽 예스러워 보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이 남극에서 다닌다는 ‘라보는 방송국’은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아무튼,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은 남극에서 라디오 방송을 이끈다고 하며, 어느 날 문득 방송국에서 사람들한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났다고 여겨서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자고 생각합니다.


  쪽배를 타고 홀로 길을 나섭니다. 쪽배를 타고 한참 바다를 가로지르다가 졸려서 잠이 듭니다. 그만 얼음덩이에 부딪혀서 쪽배가 부서지고, 전쟁터로 가는 군함에 살짝 올라탑니다. 군함에서 대포에 숨었는데, 대포를 쏘니 펭귄은 포알과 함께 멀리멀리 날아 아프리카에 떨어집니다. 아프리카에 떨어진 펭귄은 새로운 짐승을 만나고, 사막을 끙끙거리면서 가로지릅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에 함께 타며,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에 빠집니다. 고기잡이배에 잡히고, 깊은 밤에 고기잡이배에서 그물 하나를 훔쳐서 몰래 빠져나옵니다.


  이름이 ‘화이트블랙’이라는 펭귄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숱하게 넘깁니다. 여느 펭귄으로서는 겪기 힘들 만한 일을 수없이 겪습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온갖 고비를 만날 적마다 생각합니다. ‘이 멋진 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재미있다’고.




.. 밤이 되어 모두 잠들자 화이트블랙은 갑판으로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말리려고 널어 놓은 큰 그물 하나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화이트블랙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물을 끌고 펭귄나라로 헤엄쳐 가는 동안,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렸어요 ..  (22쪽)



  남극으로 돌아간 펭귄은 오랫동안 재미난 이야기를 이웃하고 동무한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펭귄은 겪기 힘들거나 겪을 수 없던 일이었을 테니 몹시 재미나다고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꼭 세계 여행을 해야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계 여행은 ‘아슬아슬한 고비’가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세계’란 내 보금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여행길에 나서면서 이야깃거리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이때에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남극에 나무를 심어 본다면(그림책이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나무심기도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남극에 사는 짐승들마다 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귀여겨들어서 방송국에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태어난 수수께끼를 깊이 헤아리고 살피면서 이런 생각을 푸는 실마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는 기쁨 꿈을 멋지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구름 이야기를, 하늘 이야기를, 눈 이야기를, 그러니까 펭귄 화이트블랙 둘레에 늘 있는 가장 수수한 이야기를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여미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삶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새로운 숨결을 마십니다. 곁에 있는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없으면, 어느 곳으로 가든 새로운 눈길을 열기 어렵습니다.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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