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0 숨으로 쉬는 바람



  우리는 ‘살려’고 ‘숨’을 쉽니다. 그렇지만, 막상 ‘살려’고 하는 우리들이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냥 삽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숨을 쉬기는 하지만, 정작 숨을 쉰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면서 숨을 쉬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숨을 쉽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느낍니다.


  살면서 ‘삶’을 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살지만 ‘삶’을 거의 안 느끼거나 아예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아침을 새로 맞이할 때마다 그야말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삶을 늘 못 느끼거나 안 생각하는 사람은, 아침을 다시 맞이할 때마다 그야말로 ‘다시 찾아온 아침’에 해야 하는 수많은 일을 떠올리면서 바쁩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새롭게 하루를 삽니다. 삶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똑같은 하루를 다시 보냅니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숨을 쉬는 일에서도, 숨을 늘 스스로 바라보고 제대로 쉬는 사람은 내가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가꾸는 숨결이 어떠한 바람결인가를 돌아보면서 내 살결이 늘 새롭게 피어나도록 북돋웁니다. 숨을 늘 안 보고 안 느끼면서 그냥 쉬기만 하는 사람은 내가 몸으로 받아들이는 숨결로 마음을 가꾸는지 안 가꾸는지 모르는 채 그저 하루를 보내기만 합니다.


  숨을 안 쉬면 죽기 때문에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을 안 쉬면 죽기 때문에, 숨만큼 사람한테 대수로운 것이 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수로운 숨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숨을 잊고 숨결을 잃습니다. 숨을 모르고 숨결을 안 배웁니다. 숨을 등지고 숨결을 제대로 안 익힙니다.


  숨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숨과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몸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숨과 마음과 몸을 제대로 바라보기에 삶을 이루고, 숨과 마음과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럭저럭 살림을 꾸리고 밥을 먹는다고 해서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먹고사는 일을 한다고 해서 ‘삶을 짓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삶을 짓는다고 할 적에는 날마다 새로운 몸짓으로 새로운 웃음과 노래를 짓는 이야기를 이룹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온삶 가운데 가장 바탕이 되면서 가장 대수로운 일부터 제대로 바라보면서 해야 합니다. ‘숨쉬기’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냥 버릇이 되거나 길든 채 마셨다가 내쉬는 숨이 아니라, 제대로 바람결을 느끼고 살피면서 나한테 맞아들여야 하고, 나한테 맞아들인 바람결이 우리 몸에서 새로운 숨결로 흘러서 내 마음결을 가꾸도록 새 기운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에는 ‘바람을 마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람이란 무엇일까요? 바람이란 바로 하늘입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바로 바람입니다. 바람은 파란 하늘을 이루는 거미줄 같은 뼈대이면서 바로 하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바람)만 제대로 쉬어도 몸이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쉴 때에 몸이 무럭무럭 자라요. 아이들이 자라는 까닭은 밥을 먹기 때문이 아니라,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바람(숨)을 먹느냐에 따라서 몸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리하여, 밥은 영양에 맞추어 먹더라도, 바람이 제대로 들지 않는 곳에서 사는 아이는 몸이 여리거나 파리하지요. 바람이 제대로 들면서 싱그러운 곳에서 사는 아이는 밥을 적게 먹어도 몸이 튼튼하면서 씩씩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으레 ‘더 낫다는 학교’를 찾아서 집을 옮기려 합니다. 아이가 다닐 학교와 직장을 살펴서 ‘집 사고팔기’를 되풀이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누리면서 새롭게 지을 삶을 생각하는 ‘보금자리 가꾸기’에 마음을 쏟는 어른이 너무 드뭅니다. 이러니, 아이는 아이대로 바람다운 바람을 못 쐬고, 어른은 어른대로 쳇바퀴질 같은 회사를 다니며 돈만 버느라 바람다운 바람을 못 마십니다. 도시 문명사회에서는 그저 경쟁과 다툼과 경제와 지식과 졸업장만 판칩니다. 삶다운 삶이 없이, 사랑다운 사랑조차 싹트지 못해요. 바람결이 아무런 힘을 못 쓰니까요.


  바람 한 줄기가 내 둘레에서 흐르다가 내 몸으로 들어와서 온몸을 휘감은 뒤 다시 불길처럼 내 몸 바깥으로 터져나가도록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쉬기’가 곧바로 ‘숨 터뜨리기’로 거듭나야 합니다. 불 같은 바람을 마시고 뱉으면서, 온몸에 파란 거미줄을 이루어 나 스스로 새로운 하늘이 되어야 합니다.


  숨은 곧 바람이고, 바람은 곧 하늘숨입니다. ‘숨 = 바람 = 하늘숨’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을 숨쉬는 사람이란 누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숨을 쉬는 목숨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하늘을 마시는 사람이 바로 ‘님’입니다. 바람숨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님, 그러니까 ‘하느님’입니다. 내 가슴속에 님이 깃들고, 내 가슴속에 깃든 님을 깨우는 바람을 마시기에, 이 바람이 새로운 숨결이 되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을 심을 수 있고, 이 새로운 생각이 모든 새로운 것을 이루어, 바야흐로 내 삶이 깨어납니다.


  숨을 쉬면서 모든 것을 짓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모든 삶을 짓습니다. 하늘을 머금으면서 모든 꿈을 짓습니다.


  하느님이 온누리를 지었다는 뜻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 땅은 다른 어떤 놀라운 ‘남’이 짓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숲도 내가 지었고, 끔찍한 전쟁무기도 내가 지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곁님과 이루는 보금자리도 내가 지었고, 무시무시한 차별·경쟁·신분·노예도 내가 지었습니다. 좋고 나쁜 모든 것을 바로 내가 지었습니다.


  숨을 엉터리로 쉴 때에 내가 모든 엉터리를 짓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때에 내가 모든 아름다움을 짓습니다. 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과 하늘을 마시는 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읽고 느껴서 알아야 합니다.


  ‘숨쉬기’는 ‘숨보기’라고 할 만합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숨을 내 눈과 마음으로 함께 바라봅니다. ‘몸에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결이 있고, ‘온눈(제3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눈을 함께 써서 바람결을 읽고 느껴서 삭입니다. 바람결이 불꽃처럼 피어나도록 북돋웁니다.


  한숨을 쉬면서 새숨으로 나아갑니다. 한숨에서 멎으면 제자리걸음이 되면서, 그저 무거운 몸뚱이가 됩니다. 한숨을 쉬었으면 바로 ‘두숨’, 곧 ‘새숨’으로 뻗어야 합니다. 두숨이나 새숨으로 뻗지 않고 그저 한숨만 내쉬기에, 내가 지은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과 고단함만 찾아듭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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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2. 밤개구리를 만나러



  해 떨어진 저녁에 두 아이를 이끌고 논둑마실을 나선다. 하루 내내 비가 온 날이다. 논마다 물이 찰랑거리고, 개구리가 우렁차게 운다. 지난해 이맘때를 헤아리니, 개구리 노랫소리가 조금 줄어든 듯하다. 아무래도 농약을 많이 쓰는 논이기 때문에 개구리가 이듬해에 새로 깨어난다 하더라도 숫자는 차츰 줄어든다. 아무튼, 아이들하고 밤개구리 노랫소리를 들녘 한복판에서 호젓하게 듣는다. 눈을 감는다. 조용히 춤을 추면서 밤개구리한테 마음으로 말을 건다. 이렇게 하고 나서 걷다가 달리다가 놀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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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개구리를 함께



  마을 어귀 빨래터 담벼락에 풀개구리가 한 마리 앉는다. 아이들은 풀개구리를 곧바로 알아챈다. 아이들 키높이에 있기 때문일까. 풀개구리한테 마음이 있기 때문일까. 풀개구리는 갈라진 자리에 납작하게 붙어서 골골거리면서 꼼짝을 않는다. 얘, 두려워 하지 않아도 돼. 느낌으로 헤아려 보렴. 우리가 너를 다치게 할 만한지, 아니면 너하고 동무인지 헤아려 보렴. 그러면 돼. 아이들은 살짝 풀개구리를 건드린 뒤 집으로 간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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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꽃(국수나무꽃) 책읽기



  해마다 이맘때에 숲이나 들에서 흔히 보는 고운 꽃송이가 있다. 찔레나무에 피는 꽃송이도 멀리 꽃내음을 퍼뜨리지만, 이 나무에서 피는 꽃송이도 무척 멀리 꽃내음을 퍼뜨린다. 그래서 숲길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달콤한 꽃내음을 맡으면서 ‘아, 나무와 바람과 흙과 해가 이렇게 곱구나’ 하고 생각한다.


  찔레꽃은 시골살이 첫 해에 새롭게 알았고, 국수꽃(국수나무꽃)은 시골살이 다섯 해 만에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동안 왜 이 꽃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에는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묻기만 해도 손쉽게 꽃이름을 알 수 있는데, 그동안 왜 국수꽃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찔레꽃이 한쪽에서 흐드러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수꽃이 흐드러진다. 찔레꽃과 국수꽃은 누가 심었을까? 아마 멧새와 들새가 심었을 테지. 찔레알과 국수알을 먹은 멧새와 들새가 숲과 들 이곳저곳에 물찌똥을 누었기에, 흙이 까무잡잡하게 고소한 곳마다 찔레와 국수가 예쁘게 어우러지면서 오월 한 달을 아름답게 밝히겠지. 멧새야, 들새야, 너희가 국수알을 따먹고 물찌똥을 누어서 우리 집 뒤꼍에도 국수나무가 자라게 해 주렴.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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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해당화를 심었을까



  네 사람이 바닷길을 걷는다. 군내버스를 내려서 사십 분 남짓 고갯길을 걸어서 바닷가에 닿는다. 바다에 가까이 오니 길가에 고운 꽃이 여러 송이 피었다. 꽃이 잔뜩 열리지는 않았으나 제법 커다란 꽃송이가 소담스레 곱다. 무슨 꽃일는지 궁금했는데 해당화라고 한단다. 해당화라, 그렇구나. 어릴 적부터 노랫말에서만 듣던 그 해당화를 눈앞에서 보는구나.


  내가 태어나서 자라던 도시에서도 누군가 해당화를 심은 적이 있을 테지. 아마 나는 어릴 적에도 해당화를 보았으리라. 그러나 그무렵에는 해당화를 제대로 마음에 새기지 못했으리라. 마흔 살이 넘어서야 이름을 제대로 알아보는 해당화를 코앞에 두면서 살살 쓰다듬어 본다. 먼저 돋은 잎은 짙푸르고, 새로 돋는 잎은 옅푸르다. 푸른 잎사귀와 발그스름한 꽃송이는 더없이 곱게 어우러진다.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함께 누리려고 심었을 해당화를 곰곰이 헤아린다. 이 나무를 심어서 돌본 사람이 들인 따순 손길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어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하루를 짓는지 돌아본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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