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삶’을 읽으려는 마음은 얼마나 있는가



  영화 〈매트릭스〉나 〈인터스텔라〉나 〈루시〉 같은 영화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제대로 ‘읽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어떻게 읽는지 알 길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 생각을 어떻게 가다듬는지 헤아릴 길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얼추 짚을 수 있다. 언론이나 매체나 학교나 사회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본 영화’조차 참뜻이 감추어지도록 사람들을 길들이려고 무던히 애쓴다.


  〈주피터 어센딩〉이라는 영화를 곰곰이 두 차례 본다. 이 영화가 들려주려는 목소리를 새삼스레 생각한다. 이 영화가 모든 수수께끼나 실마리를 풀지는 않을 테지만, 여러모로 궁금하던 대목을 찬찬히 짚는구나 하고 느낀다. 무엇보다 〈주피터 어센딩〉이 지구별이 ‘노예 별’인 줄 똑똑하게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목이 재미있다. 이 대목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말을 들을 적에 깊이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우리 삶을 제대로 가다듬거나 슬기롭게 가꾸자고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을까?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꾸준히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지구별 사람들이 머잖아 바보스러운 제도권사회를 스스로 떨치고,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짓는 길로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그래야지. 그렇게 되도록 북돋우려고 이런 영화가 하나둘 나온다고 느낀다. 4348.5.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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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주피터 어센딩
라나 워쇼스키 외 감독, 채닝 테이텀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별을 날다 (주피터 어센딩)

Jupiter Ascending, 2015



  ‘별을 나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영화 〈주피터 어센딩〉을 본다. 열두 살부터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열두 살 어린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어느 만큼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실마리를 얻을 만할까. 스물네 삶 젊은이나 마흔여덟 살 어른은 이 영화를 보면서 저마다 생각과 슬기와 셈과 철을 얼마나 곱게 가다듬을 만할까.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이 있고, 이 책을 놓고 제법 긴 느낌글을 쓴 적이 있다(http://blog.naver.com/hbooklove/220107844847).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쓸 적에 ‘새마을운동’과 ‘제도권학교’를 퍽 길게 이야기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채 바보스러운 굴레에 갇히도록 하는 얼거리를 따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한 사람을 나무라거나 우러른다고 하더라도, 이쪽이나 저쪽 모두 ‘새마을운동’과 ‘제도권학교’ 울타리에서 맴돌 뿐이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똑같이 시멘트를 사랑하고, 대학교에 목을 맨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으며, 도시를 아름답고 푸른 숲으로 가꾸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 한 사람을 나무라든 우러르든,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짓는 길을 바라보려고 하는 하루를 여는 사람이 퍽 드물다고 느낀다. 왜 그러할까?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삶을 짓는 사람은 대통령을 바라보지 않는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신문도 방송도 책도 안 본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대학교도 제도권학교도 졸업장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바람을 읽고 흙을 읽으며 나무를 읽는다. 삶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은 별을 읽고 온누리를 읽는다. 삶을 사랑스레 지으려는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꿈을 읽는다.


  영화 〈별을 날다(주피터 어센딩)〉에서 지구가 어떤 별인가 하는 대목을 참으로 똑똑히 보여준다. 지구는 ‘노예 별’이다. 다만, 스스로 노예인 줄 모르는 노예로 가득한 별이다. 지구는 틀림없이 ‘노예 별’인데, 온누리(은하계)에서 아주 구석진 곳에 있는 별일 뿐 아니라,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별이기도 하다. 왜 그러한가? 지구라는 별은 대단히 작으면서도, ‘대단히 작은 것 하나’에서 모든 것이 비롯하기 때문이다. 씨앗 한 톨이 우람한 나무가 되듯이, 대단히 자그마한 지구별 하나가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무시무시한 힘을 뽐내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사람 하나’가 이 무시무시한 힘과 울타리를 깨부술 수 있다. ‘따스한 숨결이 흐르는 사랑이라는 마음’이라면, 오직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노예인 모습을 떨쳐내고는, 온누리를 뒤흔들 기운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눈이 있어’서 ‘무엇인가를 보기’는 하지만, 제대로 보지는 못한다. 제대로 보려는 생각조차 못한다.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맨눈으로 ‘옵스’를 보거나 ‘차크라’를 보거나 ‘밴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느 때에는 머리도 생각도 제대로 열지 않은 탓에 코앞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못 알아보는 사람이니, 사람은 그저 노예에 머문다. 그렇지만, 스스로 머리를 불태워서 불바람을 온몸에 일으키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슬기로운 숨결이 바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은 별을 날아야 한다. 별을 날지 못한다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노예(종)가 된다. 생각이 없는데다가 별을 날지 않으려는 사람은, 영화 〈주피터 어센딩〉에 나오듯이 ‘다른 외계사람’이 수만 해를 살도록 도와주는 ‘물(생명수)’이 될 뿐이다. 잘 생각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노예인 사람이 ‘다른 외계사람이 수만 해를 살도록 돕는 물’이 된다. 이 기운을 알아차리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 〈주피터 어센딩〉은 〈매트릭스〉 다음을 노래하는 영화이다. 〈매트릭스〉는 ‘나’를 돌아보도록 하는 영화라면, 〈주피터 어센딩〉은 ‘너’를 바라보도록 하는 영화이다. 4348.5.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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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느긋하게 빨래



  두 아이 저녁을 먹인다. 그러고 나서 씻긴다. 시원하지? 오늘 하루만 입은 옷이지만 모두 갈아입힌다. 새로운 철에 새롭게 꺼내 입은 옷이니, 하루만 입고 새로 빨아서 이튿날 햇볕에 보송보송 말리면 더욱 즐거울 테지.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저녁 내내 바지런히 움직이며 팔힘이 좀 빠지지만 시원하고 상큼하다. 4348.5.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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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80) 얄궂은 말투 102 : 야생 채소


그 전까지는 동물 사냥에 의존하거나 야생 채소, 과일을 주워 먹었다

《정혜경-밥의 인문학》(따비,2015) 27쪽


야생(野生) :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

채소(菜蔬) :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


 야생 채소

→ 들나물

→ 나물

→ 들풀

 …



  한자말 ‘채소’는 한국말로 ‘남새’를 가리킵니다. 남새나 채소는 사람이 따로 씨앗을 심어서 기르는 풀입니다. 길러서 먹는 풀을 가리켜 남새나 채소라고 하는 만큼, ‘야생 채소’처럼 적은 보기글은 좀 엉뚱합니다. ‘채소’는 ‘야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들에서 풀을 뜯어서 먹었다면 ‘나물’을 먹은 셈입니다. ‘나물’은 들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서 돋는 풀 가운데 사람이 먹는 풀을 가리킵니다. ‘들나물’이라 적든지 ‘나물’이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4348.5.25.달.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때까지는 짐승을 사냥하거나 나물하고 열매를 주워 먹었다


“그 전(前)”은 “그때”나 “그에 앞서”로 손보고, ‘동물(動物)’은 ‘짐승’으로 손봅니다. “사냥에 의존(依存)하거나”는 “사냥만 하거나”나 “사냥을 하거나”로 손질하고, ‘과일(果實)’은 ‘열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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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58 : 새벽 여명


새벽 여명과 함께 구름이 엷어지면서 비행기 창 아래로 대륙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희은-어디에도 없던 곳》(호미,2013) 15쪽


여명(黎明) :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

새벽 : 먼동이 트려 할 무렵

먼동 : 날이 밝아 올 무렵 동쪽

새벽빛 : 날이 새려고 먼동이 트는 빛


 새벽 여명과 함께

→ 새벽빛과 함께

→ 새벽에 찾아드는 빛과 함께

→ 새벽을 밝히는 빛과 함께

→ 새벽녘 빛과 함께

 …



  ‘새벽 여명’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 글월에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새벽 여명’은 말이 안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한자말 ‘여명’은 ‘새벽빛’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월대로 말을 한다면 ‘새벽 여명’은 “새벽 새벽빛”이라고 하는 셈입니다.


  한국말은 ‘새벽빛’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옮기면 ‘黎明’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여명과 함께”처럼 글을 쓸 노릇이고, 한국말로 쓰고 싶다면 “새벽빛과 함께”처럼 글을 쓸 노릇입니다. 꾸밈말을 넣고 싶다면 “새벽에 찾아드는 빛과 함께”라든지 “새벽을 밝히는 빛과 함께”처럼 쓸 수 있습니다. 4348.5.25.달.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새벽빛과 함께 구름이 엷어지면서 비행기 창 아래로 넓은 땅이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륙(大陸)’은 ‘뭍’이나 ‘넓은 땅’으로 손보고, ‘서서(徐徐)히’는 ‘천천히’로 손봅니다. “그 모습”에서 ‘그’는 ‘대륙’을 받는 대이름씨 구실을 하는데, 한국말에서는 이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 없이 “대륙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처럼 쓰거나 “대륙이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처럼 씁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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