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0 (라가와 마리모) 학산문화사 펴냄, 2015.5.25.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켜고 싶다면, 마음을 읽어서 마음을 이야기하면 된다. 귀를 간질이는 소리를 켜고 싶다면, 귀에 간지럽게 스며들 만한 모습을 읽고서 이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를 켜고 싶다면, 사랑을 나누어 밝히는 꿈을 읽고 이 결을 살펴서 이야기하면 된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 열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아름다운 노래는 어떻게 켤 수 있는가?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면 켤 수 있다. 사랑스러운 노래는 어떻게 켤 수 있는가? 스스로 사랑이 가득한 삶이 되면 된다. 그러니까, 스스로 어떤 노래를 켜고 싶은가를 알아야 하고, 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된다. 스스로 설 때에 스스로 길을 열고, 스스로 서지 못하면 스스로 길을 걷지 못한다. 4348.5.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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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0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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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토끼 (성미정·배재경) 난다 펴냄, 2015.2.15.



  어머니가 쓴 동시에 아이가 그림을 붙인 《엄마의 토끼》라는 동시집을 읽는다. 두 사람이 함께 엮었다는 데에 뜻이 있는 동시집이로구나 싶다. 다만, 이 동시집에 실린 글을 아이하고 함께 나눌 노래로 썼는지, 아니면 아이가 보내는 하루를 지켜보면서 일기처럼 썼는지 살짝 아리송하다. 아이가 보내는 하루를 지켜보면서 일기처럼 이 모습을 쓸 때에도 틀림없이 동시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일상 기록’에만 머문다면 동시가 되지는 않는다.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꿈을 꾸는 사랑이 피어나는 숨결을 담아서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동시가 된다고 느낀다. 어느 모로 보면 ‘산문 동시’도 쓸 수 있다고 할 테지만, 애써 ‘동시’라는 틀로 쓰는 글이라 한다면, 이 글을 ‘노래’가 되도록 추스르거나 가다듬을 때에 한결 기쁘면서 환한 이야기가 되리라 느낀다. 여러모로 아쉽다. 4348.5.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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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토끼
성미정 지음, 배재경 그림 / 난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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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56) 나의 42


서울에 돌아온 이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는데 서울 풍경에 점차 나의 눈이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새봄이 오면서 나의 서울 생활이라는 나무에도 잔뿌리가 내리는 느낌이다 …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 사이를 오가며 느낀 나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을 다소 거리를 가지고 관찰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나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수복-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문학동네,2015) 31, 32쪽


 나의 눈이 익숙해지는

→ 내 눈이 익숙해지는

→ 눈이 익숙해지는

 나의 서울 생활이라는

→ 내 서울살이라는

 나의 개인적 체험을

→ 내가 겪은 일을

 나의 의무로

→ 내 의무로

→ 내가 할 일로

→ 내 몫으로

→ 내 일로

 …



  이 보기글에는 ‘나의’라는 말마디가 네 군데에 나옵니다. 이 말마디는 모두 ‘내’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아니면, ‘나의’이든 ‘내’이든 모두 덜어야 합니다. “서울이 차츰 눈에 익숙해진다”고 하면 되고, “새봄이 오면서 서울살이”도 잔뿌리를 내린다고 느낄 만하며, “두 문화 사이를 오가며 겪은 일”을 글로 갈무리하면서, “이러한 일을 즐겁게 받아들인다”고 하니까, 이처럼 ‘나의’나 ‘내’ 없이 부드럽게 글을 쓰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보고 겪고 쓰고 움직이는 삶이니, ‘내’를 사이사이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말마디를 넣고 싶으면 ‘내’를 올바로 넣으면 되고, ‘내’라는 말마디가 없어도 ‘바로 내가 일구는 삶’인 줄 글흐름에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4348.5.28.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서울에 돌아온 뒤 처음에는 모두 새롭게 보였는데 서울 모습에 차츰 눈이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새봄이 오면서 내 서울살이라는 나무에도 잔뿌리가 내리는 느낌이다 …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 사이를 오가며 내가 겪고 느낀 일을 바탕으로 서울과 서울사람을 여러모로 차분히 바라보고 나서 남기는 글을 내가 할 일로 받아들여야 할 듯했기 때문이다


‘이후(以後)’는 ‘뒤’로 다듬고, “모든 것이”는 “모두”로 다듬으며, “서울 풍경(風景)이”는 “서울 모습이”나 “서울이”로 다듬습니다. ‘점차(漸次)’는 ‘차츰’으로 손보고, ‘서울 생활(生活)’은 ‘서울살이’로 손보며, “나의 개인적(個人的) 체험(體驗)을 바탕으로”는 “내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나 “내 하루를 바탕으로”로 손봅니다. “다소(多少) 거리(距離)를 가지고”는 “살짝 떨어져서”나 “차분히 떨어져서”로 손질하고, “관찰(觀察)한 기록(記錄)을 남기는 것을”은 “바라보고 글로 쓰기를”이나 “바라보며 쓰는 글을”로 손질하며, “나의 의무(義務)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기”는 “내 일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기”나 “내가 할 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느끼기”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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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돼지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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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5



진흙탕이 없는 도시에 간 돼지는

― 꼬마 돼지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1997.5.20.



  아놀드 로벨 님이 빚은 조그마한 그림책 《꼬마 돼지》(비룡소,1997)를 읽습니다. 꼬마 돼지는 시골집에서 늘 사랑받으면서 지냅니다. 그런데 시골집에서 꼬마 돼지를 아끼는 두 사람 가운데 농부는 돼지가 진흙탕에서 놀도록 해 주고, 농부 아내는 돼지가 놀던 진흙탕이 지저분하다면서 없앱니다.


  꼬마 돼지는 언제나 즐겁게 놀던 진흙탕이 사라지니 ‘살맛’이 사라집니다. 이 시골집을 떠나겠노라 다짐합니다. 진흙탕이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 생각합니다.



.. 농부와 농부 아내는 꼬마 돼지를 사랑했어요. “우리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돼지라고 생각한단다.” 하고 두 사람은 말하곤 했지요 ..  (9쪽)



  돼지한테서 진흙탕을 빼앗는 일은 삶을 몽땅 빼앗는 일하고 같다고 할 만합니다. 돼지로서는 진흙탕 없는 보금자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즐거움을 빼앗긴 채 지내야 한다면, 돼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림책 《꼬마 돼지》에서 농부 아내는 왜 돼지한테 물어 보지 않았을까요. 꼬마 돼지가 날마다 진흙탕에서 노는 줄 안다면 진흙탕을 섣불리 없애지 않았을 텐데, 꼬마 돼지가 ‘사는 보람’을 어떻게 누리는가를 왜 헤아리려 하지 않았을까요.


  가만히 생각하면, 돼지한테서 진흙탕을 빼앗는 일이란, 나무한테서 흙땅을 빼앗는 일하고 같다고 할 만합니다. 돼지는 시멘트바닥에서 살 수 없고, 나무는 시멘트바닥에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도시 한복판이라면 진흙도 뻘흙도 찰흙도 없습니다. 도시 한복판은 자동차가 달리기에 좋은 길바닥이요, 구두를 신고 또박또박 걸어다니는 길바닥입니다. 그래서 돼지는 도시에서 살 수 없습니다. 진흙탕이 있는 시골에서만 삽니다.



.. 농부 아내는 돼지우리로 왔어요. “맙소사! 여기가 가장 지저분하구나.” 농부 아내는 소리를 질렀어요. 그래서 농부 아내는 돼지우리를 치우고, 꼬마 돼지를 깨끗이 목욕시켰어요 ..  (16∼17쪽)



  진흙탕은 지저분한 곳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림책에서 농부 아내는 진흙탕은 ‘지저분한 곳’이라 여겼고, 꼬마 돼지는 이 말을 고스란히 따릅니다. 집을 떠난 꼬마 돼지는 ‘지저분한 바람이 부는 도시’를 보고는 ‘저 지저분한 곳’에 틀림없이 진흙탕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도시에는 진흙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꼬마 돼지는 도시에서 어떤 일을 겪을까요? 꼬마 돼지가 도시에서 진흙탕이라고 여겨서 뛰어든 곳은 어떤 곳일까요?


  어느 모로 보자면, 그림책 《꼬마 돼지》는 살짝 에둘러서 도시 문명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돼지가 살기에 알맞지 않은 곳입니다. 도시는 돼지뿐 아니라, 소도 닭도 살기에 알맞지 않은 곳입니다. 도시는 토끼나 노루나 사슴이 살 수 없는 곳이요, 도시는 범이나 늑대나 여우나 사자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도시는 코끼리도 기린도 살 수 없는 곳이며, 두더지나 고슴도치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도시는 나무 한 그루가 느긋하게 뿌리를 내리거나 가지를 뻗을 수 없는 곳입니다. 풀 한 포기도 섣불리 씨앗을 드리울 수 없는 데가 도시입니다.



.. 길 맨 끝에는 커다란 도시가 있었어요. “여기는 공기조차 지저분하구나. 보드랍고 기분 좋은 진흙탕이 가까운 데 분명히 있을 거야.” 하고 꼬마 돼지는 말했어요 ..  (34쪽)



  도시에서는 사람들만 삽니다. 사람들만 왁자지껄하게 몰려서 사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적잖이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고 여깁니다. 다른 모든 짐승과 풀과 나무가 살 수 없도록 꾸민 도시에서, 오히려 귀염둥이 짐승을 집에 두려고 합니다. 개하고 고양이는 그저 개하고 고양이이지만, 도시에서는 집개와 집고양이가 됩니다.


  모든 짐승을 모조리 몰아낸 도시에서 경제성장이나 문명사회를 이룹니다. 도시에는 정치와 교육과 예술이 있습니다. 도시에는 관공서와 학교와 공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락 한 톨이 나지 않고, 딸기 한 알이나 파 한 뿌리도 자라기 어렵습니다. 도시에는 돈이 있으나 풀도 나무도 없고, 새도 벌도 나비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는 논이나 밭이나 들이나 숲이 없으니까요.



.. 농장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비가 쏟아지고 또 쏟아졌지요. 농부가 말했어요. “봐라! 저기 돼지우리에 진흙탕이 새로 생겼구나.” 그러자 농부 아내가 말했어요. “내가 약속하지. 다시는 진흙탕을 치우지 않으마.” ..  (59∼60쪽)



  돼지가 살 곳은 시골입니다. 진흙탕이 있는 시골이 돼지한테 살가운 보금자리입니다. 숲바람이 푸르게 불고, 온갖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시골이 돼지한테 기쁜 삶터입니다.


  그러면, 사람한테는 어떤 곳이 보금자리나 삶터로 아름답다고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두어야 즐겁게 삶을 노래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삶자리를 어떻게 일구어야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따스한 마음이 피어나는 곳이 즐거운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너른 사랑이 샘솟는 곳이 기쁜 삶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아끼면서 돌볼 수 있는 터전이 아름다운 삶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서로서로 아끼고 도우며 헤아리는 하루가 될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사람하고 다른 숱한 목숨이 곱게 어우러지는 숲이 된다면 우리는 모두 따스한 사랑을 가꾸는 넋이 되리라 봅니다.


  진흙탕이 없는 도시로 간 돼지는, 진흙탕이 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즐거움을 찾아서, 기쁨과 노래와 웃음을 찾아서, 따스한 사랑을 찾아서 나는 내 보금자리로 갑니다. 4348.5.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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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



  한밤에 어떤 꿈을 꾸다가 퍼뜩 잠이 깬다. 한숨을 가늘게 몰아쉰다. 손을 뻗어 두 아이가 이불을 잘 덮고 자는지 살핀다. 작은아이는 이불을 걷어찼다. 이불을 여민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내가 꾼 꿈은, ‘우리 집 살림이 아주 많이 힘들어서, 두 아이만 집에 두고 혼자 바깥일을 해서 돈을 벌러 나왔는데, 낮에 겨우 쉬는 짬을 내어 집에 전화를 거니, 집에서 아이들이 전화를 안 받아서 속을 태우고 태우다가 깨어난 꿈’이다. 여덟 살과 다섯 살 아이만 집에 두고서 바깥일을 보러 나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슬기롭고 씩씩하게 잘 지내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꿈처럼 바깥일을 할 마음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꿈에서 곁님은 멀리 배움길을 나가서 집에 없고, 나는 이래저래 곁님 배움삯도 마련하고 살림돈도 마련해야 해서 바쁜 몸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꿈을 꾸었지만, 이 꿈만큼 가슴이 철렁하고 힘든 꿈은 없었다. 4348.5.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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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5-28 09:25   좋아요 0 | URL
힘내세요.

파란놀 2015-05-28 09:5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늘 씩씩하니까
이 아이들을 기쁘게 바라보라는 꿈이었지 하고 느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