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하여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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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3



‘노래하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운다

―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코르네이 추콥스키

 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 2006.4.21.



  우리 집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노래를 하고 싶으니 노래를 합니다.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노래하고 싶으니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합니다. 큰아이는 휘파람 소리를 처음 들은 날부터 저도 휘파람을 불고 싶다고 외치더니, 여러 해에 걸쳐서 꾸준히 애쓴 끝에 이제 휘파람을 제법 잘 불 줄 압니다. 악보를 볼 줄 몰라도 휘파람을 불 줄 알고, 음계를 아직 잘 몰라도 휘파람을 마음껏 붑니다.


  작은아이는 ‘노래하는 놀이순이’ 누나 곁에서 늘 노래를 듣는 동안 차츰차츰 노래 솜씨도 놀이 솜씨도 늘어납니다. 아침저녁으로 온 집안과 마당을 뛰거나 달리면서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목청껏 노래합니다. 이리하여, 이 아이들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가든,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큰아버지한테 나들이를 가든, 어디에서나 목소리가 참으로 큽니다.


  목소리 큰 아이를 거느리면서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목소리 높낮이를 가눌 까닭이 없이, 그야말로 신나고 즐겁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차츰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목소리를 알맞게 가누면서 놀 줄 압니다. 철이 제법 들어서 목소리를 가눌 줄 알더라도, 놀이에 사로잡히면, 그야말로 새처럼 하늘을 나는 기쁜 노래가 우렁차게 터져나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무의식중에 단어를 창조한다는 사실에 … 아이들이 언어를 창의적으로 익혀 갈 때는 실수조차도 언어 지식의 조각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아이가 단어를 만들어 내고 구성하는 능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열 살만 되어도 어떤 어른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탁월하고 유연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입말에 대한 지식을 익히도록 도우면서 점점 더 많은 새 단어를 알려줘 어휘력이 풍부해지도록 해 줘야 할 임무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 아이들이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을 잘하도록 가르친다는 뜻도 된다. (18, 19, 20, 35쪽)



  코르네이 추콥스키 님이 빚은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양철북,2006)를 읽었습니다. 한 번 읽고 나서 덮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새롭게 돌아봅니다.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 언저리일 적부터 이 책을 읽었고, 작은아이가 다섯 살을 한껏 누리는 요즈음에 이 책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다섯 살이란 어떤 나이일까요? 두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다섯 살에는 어떤 숨결이 될까요? 두 살에는 마음이 어떻게 자랄까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다섯 살이나 두 살에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어느 만큼 헤아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버이로서 나이가 더 많다는 생각만으로, 또 어버이로서 ‘나는 그 나이를 지나가 보았으니까 그 나이를 알아’와 같은 생각에 젖어서, 막상 아이를 꾸밈없이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무슨 놀이를 하든 아이들은 놀이에 푹 빠져들곤 한다. 특히 상상력을 동원하는 놀이를 좋아한다 … 아이는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금도 힘겹게 여기지 않는다 … 아이를 존중한다면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의 양분을 빼앗아 버려서는 안 된다 …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삶은 오직 즐거움과 끝없는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 아이들은 대개 동화책에 슬픈 내용이 나오는 걸 아주 싫어한다. 누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놀라운 재주를 발휘해 행복한 환상을 만들어 내고 그 행복이 무너지지 않을까 도끼눈을 뜨고 감시한다. (48, 51, 56, 71, 74쪽)



  쉰 살인 사람은 스무 살도 마흔 살도 모두 지나가 보았습니다. 여든 살인 사람은 서른 살도 쉰 살도 모두 지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이를 지나가 보았다고 해서 그 나이에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맞아들이는 마음을 ‘모두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어린이와 푸름이로 지내기는 했으되, 열 살부터 스무 살 사이에 오직 입시공부만 했다면, 이동안 그저 집이랑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았다면, 열 살부터 스무 살 사이에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이거나 꿈이거나 사랑인가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른 살부터 쉰 살 사이에 ‘돈 버는 바깥일’에만 마음을 쏟으며 살았다면, 정작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인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나 ‘사랑을 헤아리는 마음’을 얼마나 안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른하고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랑 아이 사이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이가 되어서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마음을 아이들 눈높이와 마음결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올바로 알 수 없습니다.



아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모든 사람이 ‘시인’이다 … 아이들은 보통 깡충깡충 뛰거나 달리면서 노래를 만들어 낸다 … 아이들이 지쳐서 그만 뛰면 노래 만드는 것도 끝이 난다. 슬프거나 아프거나 졸리는 아이는 시를 단 한 줄도 만들지 못한다. 아이들은 시인이 되려면 생기가 넘쳐야 한다. 초봄, 푸른 풀밭 위에서 산들바람과 햇살에 흥이 겨우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쏟아내며 활기차게 뛰어논다 … 아이들이 만들어 부르는 노래에는 한숨이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 교사들에게 시인을 키워내는 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좋은 시를 감상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도 교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여겨야 할 것이다. (104, 106, 107, 111, 118쪽)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쓴 러시아사람은, 러시아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어버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수많은 어버이가 함께 읽고 돌아볼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분이 바라본 곳은 ‘러시아 아이’나 ‘러시아 어른’이 아닌, ‘지구별 사람’이요, ‘마음에 하느님과 숲님과 땅님과 별님 모두를 품은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참말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시인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누구나 숲님이라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노래꾼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저마다 땅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사랑둥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언제나 별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꿈지기라 할 만합니다.



대부분 엄마들이 갑작스럽게 애정이 샘솟을 때 이렇게 리듬감 있는 노래를 쏟아붓는다 … 우리 가운데 수백만 사람들은 시를 열렬히 사랑하고, 시에 흠뻑 빠지고, 그것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다 …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햇살 아래로 데려가, 진심을 담아서 그가 편협한 마음의 동굴에 갇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아주 쉬운 말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 아이들이 이어가고 전했기 때문에 특히 빼어난, 소중한 보물 같은 노래를 전승할 수 있다 … 동화 몇 편이 아이들을 현실적 생활 능력이 없는 낭만주의자로 만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만 하고, 실제 아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관료주의자들이 하는 짓이다. (132, 133, 143, 149, 195쪽)



  아이한테 노래를 들려주면 아이는 노래를 들을 뿐 아니라,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거친 말씨를 들려주면 아이는 거친 말씨를 들을 뿐 아니라, 스스로 거친 말씨를 내뱉습니다.


  저기 있는 사람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겨서 미워하거나 시샘하거나 괴롭히면, 이 미움과 시샘과 괴롭힘은 바로 우리한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이리하여, 전쟁무기로는 평화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전쟁무기는 서로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이나 몸짓이 아니라, 내가 너를 밟고 서려는 마음이나 몸짓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전쟁무기를 손에 쥐니 너도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는 나랑 마주하려 합니다.


  우리가 어버이로서 아이를 마주할 때에도, 또 어른과 어른으로서 서로 마주볼 때에도, 언제나 가슴에 사랑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흐를 적에 시를 쓰고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샘솟을 적에 웃으면서 삶을 짓습니다. 사랑이 가득할 적에 밥을 기쁘게 지으면서 이야기잔치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구슬, 블록, 인형만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생각을 가지고도 놀기 때문이다 … 안타깝게도 로크 방식으로 교육받은 아이들 가운데 많은 아이들은 열 살이 되면 바보가 되고 만다. 어린 시절을 빼앗기면 누구라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왜 동화 아니면 전동기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전동기를 발명하는 데에도 자유로운 환상과 상상이 필요한데 말이다 … 아이들이 동화를 보든 안 보든 다를 것이 없는 게, 아이들은 읽을 동화가 없으면 자기 스스로 안데르센, 그림, 예르소프가 되기 때문이다 … 민중한테서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서도 배워야 한다 … 시인은 화가이자 동시에 음악가여야 한다.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현되어 전개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아이가 노래하고 손뼉 칠 수 있어야 한다..  (155, 173, 182, 187, 222, 224쪽)



  ‘노래하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웁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아이’는 내 앞에 있는 어린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마흔 살이 넘은 나도 ‘노래하는 아이’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나이는 내려놓고, 내가 두 살이거나 다섯 살 무렵일 적에 얼마나 기쁘게 노래하면서 뛰놀았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코앞에서 웃고 노래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새롭게 생각하고 삶과 사랑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내가 지난날에 어떻게 웃고 노래했는가를 되새기면서, 내가 나를 슬기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깨닫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시인이면서 화가이자 음악가입니다. 그리고, 어른도 누구나 시인이면서 화가이자 음악가입니다. 살림을 아기자기하게 가꾸는 어버이를 보셔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비질을 하고 국을 끓이며 바느질을 하는 모든 몸짓을 보셔요. 이 모든 몸짓은 예술이자 춤사위입니다. 정갈한 살림살이는 행위예술이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김치도 된장도 예술이자 문화입니다.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뜨개옷이랑 ‘손길을 타서 태어난 모든 살림살이’는 언제나 사랑이면서 꿈입니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돌아보면서 스무 살에서 쉰 살까지 흐르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아이가 되는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곱게 이어진 끈을 생각하고, 아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고 보살피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나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기에 날마다 기쁩니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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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읽는다. 어떤 책을 내 손에 잡든, 내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인다. 꼭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않다. 꼭 어떤 책으로 배워야 하지 않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기에, 이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여서 내 삶을 새롭게 가꾸는 힘, 바로 슬기를 북돋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책을 손에 쥐어서 읽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서 기쁘게 생각을 살찌우지 않는다면, 책읽기가 아름다운 길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힘들다.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책이 곁에 있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이 훌륭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한다. 생각을 슬기롭게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스러운 책이 둘레에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사랑스러운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올바로 헤아리지 못한다. 꿈을 기쁘게 키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놀랍고 멋지며 알찬 책이 코앞에 있더라도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거나 번거로워 할 뿐이다.


  마음이 고운 사람이 모든 책을 고운 숨결로 어루만진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 모든 책을 착한 눈빛으로 밝힌다. 마음이 너른 사람이 모든 책을 너른 넋으로 어깨동무한다. 마음이 환한 사람이 모든 책을 즐거운 노래로 북돋운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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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찾아야만 읽는 책



  어떤 책이든 스스로 눈여겨보아야,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스스로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어느 책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눈빛을 밝혀서 살피지 않는다면, 새로 나오는 책을 하나도 못 알아본다. 스스로 책방에 가서 새책을 살펴야 하고, 스스로 인터넷을 열어 두리번거려야 한다.


  스스로 찾아나서려고 하는 손길이 없다면, 나한테는 아무런 책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나한테 책을 선물해 주었어도, 스스로 이 책을 읽을 만한 겨를을 기쁘게 내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아무 책도 없다’고 할 만하다.


  알려고 하는 이야기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낼 적에 알 수 있다. 알려고 하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지 않는다. 수수께끼를 스스로 내고, 실마리를 스스로 푼다. 그러니, 모든 책은 언제나 스스로 찾을 뿐 아니라 스스로 샅샅이 챙겨서 읽을 때에 ‘내 슬기’가 된다. 스스로 찾지 않고 스스로 읽지 않으며 스스로 삭이지 않으면 ‘내 책’도 ‘내 슬기’도 ‘내 마음’도 될 수 없다.


  모든 일은 내가 그 일을 알아야 하고, 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나한테 찾아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은 나한테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보지 않는 일은 ‘나한테 찾아와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일을 맞이하든 ‘좋다거나 싫다’고 하는 느낌으로 갈라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사랑이 되어 넓게 얼싸안아야, 바야흐로 아름답게 누리는 삶짓기가 된다. 아름답게 누리는 삶짓기를 할 적에 드디어 책 한 권을 펼쳐서 읽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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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6-18 07:52   좋아요 0 | URL
지혜가 넉넉해지는 글입니다. 참 좋습니다^^

파란놀 2015-06-18 08: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넋 북돋우셔요~
 

잠든 작은아이 잠옷 갈아입히기



  어느덧 여름이 무르익어서, 이제 마루문은 모기그물 달린 문을 열면서 잔다. 방문도 활짝 연다. 그런데 다섯 살 작은아이가 바깥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씻은 뒤에 ‘굳이 겨울 잠옷’을 입겠다고 한다. 두툼한 겨울 잠옷을 입어야 할까 하고 바라보지만, 작은아이는 ‘겨울 잠옷’을 입겠다는 생각보다 ‘씻고 나니 살짝 추워서’일 테고, 겨울 잠옷에 새겨진 무늬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곯아떨어져서 잠들 때까지 가만히 지켜본다. 그리고, 작은아이가 잠자리에서 곯아떨어져서 꿈나라로 간 뒤, 두툼한 겨울 잠옷을 벗긴다. 웃도리부터 벗기고 등판에 맺힌 땀을 식힌다. 이러고서 민소매옷을 위에 입힌다. 아랫도리는 반바지로 갈아입힌다. 작은아이는 잠자면서도 팔과 다리와 머리를 척척 내밀어 준다. 저도 더운 줄 알았을까? 4348.6.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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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Charlotte's Web Collection (샬롯의 거미줄 컬렉션) (2013)(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Paramount Catalog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샬롯 거미줄

Charlotte's Web, 2006



  거미 ‘샬롯’이 있다. 돼지 ‘윌버’가 있다. 여리고 작은 돼지를 아끼는 어린 가시내가 있다. 어린 가시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 어린 가시내를 사랑하는 아버지한테는 늘 이녁을 믿고 보살피는 곁님이 있고, 이웃이 있다. 그리고, 아주 수수하면서 투박하다고 하는, 딱히 이름이 날 일이 없다는 시골마을이 있다. 〈샬롯 거미줄(Charlotte's Web)〉은 아주 수수하고 투박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자그마한 일을 들려준다.


  거미는 어디에나 있다. 돼지도 어디에나 있다. 어린 가시내랑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디에나 흔하거나 똑같이 있지 않다.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일은 무엇일까? 그냥 흔하거나 너른 일일까? 아니면 언제나 놀라운 모습일까? 우리가 거미줄을 걷어내어도 거미는 이튿날이면 새 거미줄을 짠다. 이 거미줄을 또 걷어내어도 거미는 다음날에 새 거미줄을 짠다.


  〈샬롯 거미줄〉에 나오는 거미한테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따스한 마음’이다. 둘째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글씨를 거미줄로 짤 수 있는 솜씨’이다. 거미 샬롯한테는 따스한 마음만 있지 않다. 그리고, 거미 샬롯한테는 빼어나거나 놀라운 솜씨만 있지 않다. 거미 샬롯한테는 두 가지가 함께 있으며,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돼지 윌버는 거미 샬롯한테 ‘돼지인 내가 참말 대단하거나 눈부시거나 놀랍거나 다소곳한’가 하고 묻는다(some pig, terrefic, radiant, humble). 거미 샬롯은 돼지 윌버한테 딱히 어떤 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거미와 돼지는 서로 동무라고 말한다. 거미는 돼지더러 ‘네(돼지)가 나(거미)를 다른 짐승들처럼 겉모습이나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쁘게 동무로 맞이해 주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 마음과 말이 모든 일이 놀랍고 사랑스레 일어나는 바탕이 되었다고 말한다.


  삶이 빛나는 까닭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떠도는 이야기라든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든지, 널리 알려진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저마다 제 삶에서 스스로 빚어서 길어올리는 이야기가 있기에 삶이 빛난다. 거미 샬롯이 왜 아름다운가? 샬롯이 낳은 새끼 거미가 왜 아름다운가? 돼지 윌버가 왜 사랑스러운가? 어린 가시내가 왜 착한가?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왜 믿음직한가?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면서 동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책으로 1952년에 처음 나오고, 영화로도 나온 〈샬롯 거미줄〉은 한국에서 “우정의 거미줄”이라는 이름으로도 옮기기도 했다. 거미와 돼지 사이에 피어난 ‘우정’이라고 할 텐데, ‘우정’이라는 한자말은 모든 실마리를 풀어 주지 못한다. 거미와 돼지는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하는 ‘따스한 마음’이 있으며, 이 마음을 ‘열린 넋’으로 가꾸며, 이 넋을 ‘기쁘며 고운 솜씨’로 가다듬는다. 거미와 돼지는 서로 ‘참다운 사랑’으로 만난 맑고 환한 숨결이다. 4348.6.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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