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라는 곳



  놀이터가 있기에 놀 수 있지 않다. 어디에서든 놀면서 놀이터에서도 논다. 놀이터에서는 어떤 놀이를 해도 다 재미있다. 꼭 이런 놀이만 해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이터에서는 옷을 얼마나 더럽히든 대수롭지 않다. 마음껏 뛰놀면서 땀투성이랑 흙투성이가 되어도 즐거우니까 놀이터에서 뒹군다. 놀고 놀고 자꾸 논다. 놀고 놀며 신나게 논다.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에 와서, 참말 두 아이가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논다. 저녁햇살이 새삼스레 눈부시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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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객 한윤형



  나는 한윤형 님 글을 읽은 일이 없다. 내가 ‘진보가 아니’기 때문도 아니고, ‘ㅈㅈㄷ을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 눈길이 한윤형 님 글에 가지 않았고,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즐거움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한윤형 데이트 폭력’이나 ‘한윤형 사과글’도 따로 읽지 않는다.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고, 이런 일이 왜 생기는가 하고 알쏭달쏭했다.


  낮에 손빨래를 하며 문득 생각에 잠긴다. 폭력이란 무엇일까? 폭력을 일으키는 쪽은 거의 다 ‘사내(남자)’이고, ‘폭력을 일으키는 사내(남자)’는 거의 다 힘(권력)이 있다. 사내가 거머쥔 힘은 ‘주먹힘’이랑 ‘발힘(발길질을 하는 힘)’을 비롯해서 ‘이름값 힘’에다가 ‘돈힘’이 있다. 요즈음은 여기에다가 ‘사회권력’이나 ‘정치권력’이나 ‘교회권력’이라는 힘이 있다.


  아무튼, 한윤형 님이 ‘글을 안 쓰겠다(절필)’고 밝힌 듯하다. 낯부끄러워서라도 글을 쓸 수 없을 테며, 낯부끄러운 짓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런 사람 글을 실어 줄 만한 매체가 선뜻 나오기도 어려울 노릇이리라 본다. 그러면, 한윤형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리에서 가만히 돌아본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다가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아이들한테 빽 소리를 지르고는 스스로 내가 몹시 밉거나 싫어서 아플 때가 있다. 여린 아이들을 나무란들, 또 빽 소리를 지른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해’서 도무지 나한테 뭐가 좋을는지 알 수 없으나, 아이와 지내면서 곧잘 이런 바보짓을 하면서 참말 스스로 바보가 된다.


  바보짓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 바보짓을 삭이면서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다. 바보짓을 낱낱이 돌아보면서 나무를 쓰다듬고 풀을 뜯는다.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되찾아서 자장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재운다. 아이들을 다그친 날은 어김없이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눈물이 뚝뚝 듣는다.


  한윤형 님 같은 이들이 ‘진보논객’ 같은 허울좋은 이름은 모두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빈다. 신경숙 님 같은 이들도 ‘작가’ 같은 허울좋은 이름은 모조리 내다버릴 수 있기를 빈다. 도시를 떠나서 시골로 가고,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으면서 적어도 몇 해쯤 ‘참말 글 한 줄 안 쓰고 책 한 줄 안 읽는’ 삶을 보내 보기를 바란다. 나중에 ‘참으로 글을 안 쓰고 못 배기겠다’ 싶다면, 다른 글은 쓰지 말고 ‘시골에서 손수 씨앗을 심고 돌보면서 곡식이랑 열매를 거두는 이야기’하고 ‘숲에서 바람이 구름을 날리면서 들려주는 노랫소리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마음이 온몸에 깃들지 못하기에 폭력을 저지른다.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만 폭력을 일삼는다. 사과글로는 폭력을 씻지 못한다. 삶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비로소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사랑을 가슴에 담으려면 ‘참회록 쓰기’ 같은 일보다는 ‘씨앗 심기’와 ‘나무 어루만지기’와 ‘숲바람 쐬기’가 가장 걸맞고 알맞으리라 본다. 이제 나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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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41. 얼마든지 논다



  아이한테는 ‘놀이가 밥’이다. 참으로 옛날부터 지구별 모든 어버이가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요사이는 따로 인문학이나 교육학에서 이론을 내세워서 ‘아이가 놀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학자이든 교사이든 이녁이 어른이기 앞서 아이로 지내던 나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아무 이론이 없더라도 ‘노는 아이가 웃는’ 줄 알아차리리라 본다. 신나게 놀면서 자란 아이가 튼튼한 몸이 되고, 개구지게 뛰놀면서 큰 아이가 씩씩한 마음이 되며, 해맑게 노래하면서 놀던 아이가 사랑스레 꿈을 지피는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이런 얘기를 굳이 이론이나 책을 빌어서 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아이하고 함께 놀거나, 아이가 얼마든지 놀도록 마당을 마련하고 마루를 내주며 자리를 깔면 된다고 느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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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놀이 3 - 길턱에서 미끄덩



  길턱에 올라서서 걷던 산들보라가 미끄덩한다. 작은아이는 ‘미끄러진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늘 ‘미끄덩’이라 말한다. 하기는. ‘미끄덩거리다’도 표준말로 한국말사전에 나온다. ‘미끄랑’거릴 수도 있고 ‘미꾸렁’거릴 수도 있으며, ‘미꾸당’거릴 수도 있겠지.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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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 앞에서 사진 찍으려면



  아이들하고 살면서 아이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퍽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우리 아이를 어버이로서 찍는데 왜 어렵다는 말이 나올까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사진에 찍히려고 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고 싶어서 놀아요.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어버이 앞을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아이들하고 나들이를 다니면 두 아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 앞에서 달립니다. 으레 꽁무니만 바라보다가 뒷모습만 찍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길턱에 올라서며 논다고 하니, 모처럼 아이들 앞에 서서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습니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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