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창비시선 167
이경림 지음 / 창비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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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7



시와 삶

―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이경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7.9.25.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을 적에는 잎만 바라봅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봅니다. 햇볕이 내리쬐든 바람이 불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애벌레한테는 잎을 배부르게 갉아먹어서 몸을 살찌우는 일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몸집을 불리고 불린 뒤에 허물을 벗어서 더 큰 애벌레가 되려 하고, 다시 더 큰 애벌레가 되려 하며, 이윽고 밥먹기를 그치려 해요.


  밥먹기를 그치는 애벌레는 깊이 잠들고 싶습니다. 자고 또 자고 다시 자면서 고요히 꿈을 꾸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애벌레는 고치를 짓습니다. 애벌레는 고치에 깃들어 먼먼 옛날부터 ‘저(애벌레)를 낳은 어미가 했’듯이 잠이 듭니다. 잠이 들면서 꿈을 꾸고, 애벌레가 꾸는 꿈은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지금 누가 실바람으로 잔가지를 지나간다 / 지금 누가 저 황원에서 쓸쓸히 노래하고 있다 (저 깊은 강)


내 속에 궁전 하나 있네 / 사이프러스 나무 숲에 둘러싸인 궁전 (내 속의 알함브라)



  잠에서 깨어나는 애벌레는 온몸이 간지럽습니다. 온몸이 간지러울 뿐 아니라 쑤십니다. 몽툭한 다리가 사라지면서 길고 가느다란 다리가 생깁니다. 더듬이가 생기고 날개가 돋습니다. 길쭉하고 통통하던 몸은 날렵하면서 가벼운 몸으로 바뀝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번데기를 벗고 밖으로 나오면서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애벌레는 한참 동안 몸과 날개를 말립니다. 첫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오를 때까지 바람이 잠들며, 풀과 꽃과 나무는 새로 깨어난 나비를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풀밭이나 숲에 서면 온갖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눈길을 모아 풀줄기나 나뭇잎을 들여다보면 조그마한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면서 잎을 갉아먹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나비가 날고, 한쪽에서는 애벌레가 자라요. 한쪽에서는 풀이랑 나무가 새 잎을 내놓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애벌레가 풀잎이랑 나뭇잎을 갉습니다.


  그리고, 나비뿐 아니라 잠자리도 하늘을 날고, 수많은 새가 저마다 다른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릅니다.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먹는 새가 있고, 나비나 잠자리는 안 쳐다보는 새가 있습니다. 수많은 목숨이 서로 얼크러지면서 들바람이 불고 숲바람이 붑니다.



내가 사랑한 건 그 남자 / 가 아니라 담요였네 언 몸 녹여주던 담요! / 그것의 부드러움 그것의 휘감김 그 가벼움을 / 사랑했네 그 밑의 따스함 그 밑의 어두움 그 밑의 / 은밀함 그 알몸 덮어버리는 폭력! (내가 사랑한 담요)



  이경림 님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창작과비평사,1997)를 읽습니다. 김정란 님은 시집 끝자락에 비평을 붙입니다. 김정란 님은 이경림 님 시를 놓고 “80년대에 등단했더라면, 그녀의 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경림의 시는 부서진 80년대의 대서사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부활한 90년대의 소서사의 한 전형이다(113쪽).” 하고 말합니다.


  김정란 님이 말하듯이, 참말 이경림 님 시는 1980년대에 살아남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는 ‘똑같이 흘러야’ 하지 않습니다. 더 깊거나 넓게 알아보거나 사랑해 줄 사람이 적더라도,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아끼거나 가슴에 품을 사람은 늘 있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서사’이든 ‘소서사’이든, ‘서사(敍事)’란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삶 이야기’입니다. 이름난 사람들 이야기뿐 아니라, 이름 안 난 사람들 이야기요, 권력자나 정치꾼 이야기뿐 아니라,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시골사람 이야기요, 도시에서 옹기종기 모여 어깨동무하는 골목사람 이야기입니다.



참 이상도 하지 산다는 건 / 마알간 잠의 밑바닥에는 바닥 모를 우물이 파이고 / 고통과 사랑과 그리움과 배반과……, / 진짜들은 늘 허공에서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토론토에서)


어머니를 속에 감춘 계집아이 하나와 / 계집아이를 속에 감춘 어머니 하나가 / 손잡고 갑니다 (숨은 모녀)



  삶은 대단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삶은 언제나 오직 하나이기에 대단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날’이란 하루도 없기에 삶은 늘 대단합니다. 1월 1일을 이틀쯤 누리거나 7월 1일을 안 누려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거나 열네 시간인 사람은 없습니다. 아파서 자리에 눕느라 다른 일을 못 하더라도, 몹시 바빠서 쉴 겨를이 없더라도, 모든 사람은 똑같은 스물네 시간을 맞아들이고, 똑같은 삼백예순닷새를 맞이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나날을 저마다 새로운 삶으로 누리니, 누구한테나 삶은 대단합니다.


  역사책에 남을 만한 일을 했기에 대단한 삶이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오르내릴 만한 자리에 서기에 대단한 삶이 아닙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삶이 수수하면서 대단합니다.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자장노래를 부르는 삶이 투박하면서 대단합니다. 거리낌없이 뛰노는 아이들 하루가 대단하고, 신나게 웃고 노래하면서 놀 줄 아는 아이들 삶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삶을 언제나 시로 쓸 수 있습니다.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문화를 북돋우거나 예술을 살찌우는 몸짓이 되어야 시가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쓰기에 시이지 않습니다. 문학상을 타거나 문학잡지에 글을 싣거나 이름난 작가한테서 추천을 받아야 시인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즐거웁게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이야기를 짓는 삶이 된다면 누구나 시인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가꾸고 기쁘게 일구는 삶을 노래할 줄 안다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덤프트럭은 시절 없이 오가고 방범대원은 골목골목 호루라기를 불어댄다네 / 상처들은 나무마다 환하고 그 사랑 가로등 아래 우울한 그늘 만드네 (상처들은 나무마다 환하다)


가은으로 가는 문은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 사천원짜리 표를 사서 네시간을 달리면 있다 아니 / 가은으로 가는 문은 기억의 직행버스를 타고 슬쩍 / 눈 감으면 있다 거기 검은 마을을 안온하게 지키는 밝은 유리문이 있다 (加恩이라는)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에는 어떤 삶이 깃들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바로 이 시를 쓴 이경림 님 삶이 깃들었을 테지요. 눈물이 흐르기도 하는 삶이 깃들고, 웃음이 번지기도 하는 삶이 깃듭니다. 아픈 삶이 깃들고, 설레거나 벅차는 삶이 깃듭니다.


  그늘을 바라본 삶을 시로 노래하고, 햇살을 마주한 삶을 시로 노래합니다. 도시에서 지내던 하루를 시로 읊고, 시골로 마실을 가거나 이웃나라를 다녀온 하루를 시로 읊습니다.


  시집을 덮고 고요히 생각에 잠깁니다. 책상맡에 촛불을 켜고 지긋이 바라봅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저녁에 느즈막하게 잠든 아이들을 가까스로 재우고서 비로소 숨을 돌리는 깊은 밤에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어떤 시를 쓸 만할까요? 나는 오늘 하루 잠들고 나서 이튿날에는 어떤 시를 쓸 만할까요?


  시 한 줄에 흐르는 삶을 읽다가, 내 삶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시 두 줄에 감도는 사랑을 헤아리다가, 내 삶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밤오줌을 누려고 큰아이가 잠에서 살짝 깹니다. 쉬를 누고 다시 자리에 누운 아이를 다독입니다. 이불을 여미어 주고, 작은아이도 살핍니다. 이불을 걷어찬 작은아이는 반듯하게 누인 뒤 이불을 새로 여밉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 눈을 감으면 언제나 두 팔을 옆으로 뻗어 한손으로 한 아이씩 머리와 가슴과 배와 팔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기쁜 꿈을 꾸자고 속삭입니다. 꿈을 꿀 수 있기에 삶이 즐거우면서 아름답겠지요. 4348.7.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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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사람



  술을 퍼마신 뒤 바보짓을 저지른 여러 사람 이야기가 요즈막에 불거졌다. 진보논객이라는 ㅎ씨는 이녁 여자친구를 날마다 두들겨팼다 하고, 이름난 만화가 ㄱ씨는 술자리에서 으레 성추행을 했다 한다. 바보짓을 저지른 사람은 ‘거의 날마다’ 또는 ‘날마다’ 또는 ‘자주’ 술을 마신다고 한다.


  술이란 무엇일까? 바보짓을 일삼으려고 몸에 퍼넣기에 술인가? 삶을 즐기려고 알맞게 마시려는 술이 아닌가?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 가게나 술집에서 술을 사다가 마시는 사람이 꼭 바보짓을 일삼지는 않는다. 참말 즐겁고 아름답게 술을 맞이하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삶이 아름답고 사랑이 따스하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주먹부림(폭력)을 일삼을 테고, 스스로 사랑을 생각하지 않기에 바보짓으로 흐를 테지.


  지난날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지내고, 여러모로 책하고 얽힌 일을 하며 서울에서 여러 작가를 만날 적에 으레 술자리에 갔는데, 술을 정갈하게 마시는 작가나 평론가도 많으나, 술을 지저분하게 마시는 작가나 평론가도 많았다. 스스로 ‘어른’이나 ‘유명인’이라고 하는 이들은 술김을 빌어서 ‘못된 손’이 되기 일쑤였다. 술김이 아니어도 벌건 낮에 ‘음담패설’을 참으로 즐긴다.


  밤새 술을 퍼마시는 작가나 평론가가 꽤 많은데, 이들한테 아이가 없을까? 이들은 이녁 아이가 보고 싶지는 않을까? 이들은 이녁 아이한테 음담패설을 물려주고 싶을까? 이들은 이녁 아이가 코앞에 있는 술자리여도 ‘못된 손’이 되려나? 이들은 집안일을 어떻게 할까? 이들은 이녁 아이들하고 놀아 주기는 할까?


  진보논객 ㅎ씨나 이름난 만화가 ㄱ씨가 적어도 한 해 동안 술을 못 마시도록 하면서 어린이집에서 날마다 자원봉사를 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술 없이 ‘맨마음’으로 아이들을 날마다 만나서 이녁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 본다. 4348.7.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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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61 : 트렌드 흐름


 지금의 트렌드 흐름을

→ 오늘날 흐름을


trend : 동향, 추세

동향(動向)

1. 사람들의 사고, 사상, 활동이나 일의 형세 따위가 움직여 가는 방향

2.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의 낱낱의 움직임. ‘움직임새’로 순화

추세(趨勢) : 어떤 현상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



  영어 ‘트렌드’는 ‘동향’이나 ‘추세’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동향’이나 ‘추세’는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거나 나아가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동향’은 ‘움직임새’로 고쳐쓸 낱말이라고도 하는데, 움직이거나 나아가는 결이란 곧 ‘흐름’입니다.


  ‘트렌드 흐름’은 영어하고 한국말을 나란히 쓰기는 했으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 셈입니다. 영어를 쓰고 싶다면 영어를 써도 될 터이나, 굳이 영어로 말하기보다는 한국말로 손쉽게 ‘흐름’이라고 적으면 넉넉하리라 봅니다. 4348.7.1.물.ㅅㄴㄹ



도시 비즈니스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지금의 트렌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 도시에서 사업을 해 본 사람이라면 오늘날 흐름을 잘 읽으리라 본다

《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정영희 옮김-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남해의봄날,2015) 120쪽


“도시 비즈니스(business)를 경험(經驗)한”은 “도시에서 사업을 해 본”이나 “도시에서 사업을 한”이나 “도시에서 장사를 해 본”으로 손봅니다. ‘지금(只今)의’는 ‘오늘날’로 손질하고, “파악(把握)하고 있을 것이다”는 “알리라”나 “읽으리라 본다”나 “헤아리리라 본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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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6 알·애벌레·번데기·나비



  알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알입니다. 알은 으레 풀잎이나 나뭇잎에 처음 자리를 잡습니다. 요즈음은 아파트 벽이나 쇠기둥에도 알이 붙을는지 모르나, 알을 낳는 ‘어미’는 풀잎이나 나뭇잎이 아니라면 아무 데나 알을 두지 않습니다.


  알은 따스한 볕을 받으면서 어느 날 조용히 깨어납니다. 조용히 깨어난 알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벌레가 나옵니다. 아주 조그마한 벌레는 ‘아기 벌레’라 할 만합니다. ‘애벌레’입니다. 애벌레는 볼볼 기면서 알껍질부터 갉아서 먹습니다. 신나게 먹은 뒤 쉬고, 다시 먹습니다. 알이 붙은 풀잎이나 나뭇잎도 먹습니다. 신나게 먹고 또 먹습니다.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는 잎똥을 눕니다. 푸른 빛깔이 도는 똥을 누면서 잎사귀를 꾸준히 먹습니다. 이제 애벌레는 조금 자랍니다. 허물을 벗습니다. 조금 큰 애벌레가 됩니다. 조금 큰 애벌레가 되면 잎사귀를 더 많이 먹습니다. 잎사귀를 더 많이 먹으니, 풀똥을 더 많이 누고, 풀똥을 더 많이 누던 어느 날 다시 허물을 벗어 더욱 큰 애벌레가 됩니다.


  더욱 큰 애벌레는 바지런히 잎사귀를 갉아먹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몸이 무척 무겁습니다. 커다란 덩치만큼 굼뜨는 몸은 아닙니다. 어쩐지 잠들고 싶습니다. 아니, 잠들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듯합니다. 맛난 잎사귀를 더 먹지 않습니다. 마땅한 자리를 찾아 꼬물꼬물 기어서 찰싹 달라붙습니다. 이윽고 몸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어느덧 고치가 생깁니다.


  고치에 깃든 애벌레는 조용히 고즈넉히 잠듭니다. 잠든 애벌레는 아주 천천히 번데기로 바뀝니다. 번데기로 바뀐 몸은 그대로 고치에 머뭅니다. 번데기로 몸이 바뀐 줄 깨달은 애벌레는 ‘내가 어디로 가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잠듭니다.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없이 깊디깊이 잠이 듭니다.


  잎사귀를 잊고, 애벌레 몸뚱이를 잊으며, 번데기가 된 새로운 몸까지 잊은 이 아이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꿈결에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르는 누군가를 봅니다. 바람결이 몹시 보드라우면서 재미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꿈속에서 바람을 부릅니다. 번데기라는 옷(몸)을 입은 아이는 바람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바람아, 나도 네 등을 타고 하늘 구경을 해도 되겠니?” 바람은 고개를 살레살레 젓습니다. “아니야, 나는 아무도 내 등에 태우지 않는단다. 하늘 구경을 하고 싶다면, 네가 스스로 하렴.” “내가 어떻게 하늘을 나니?” “그래, 못 나는구나. 못 날면 할 수 없지. 못 날면 하늘 구경을 못 하지.” “그래도 하늘 구경을 하고 싶어.” “네가 살짝 등을 내 주면 될 텐데.” “아니야. 나는 아무도 내 등에 태우지 않아. 다만, 나는 누구나 하늘로 오르려 하면 함께 놀지. 너도 얼른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아, 졸립다. 더 자야겠어. 더 잘 테니 이따가 보자.” 바람과 꿈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는 더욱 깊이 잠듭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어느 만큼 꿈속을 헤매었을까요. 번데기는 갑자기 온몸이 간질간질합니다. 고치가 답답합니다. 뭔가 다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갑갑한 껍데기는 이제 내려놓고 싶습니다.


  고치가 갈라집니다. 번데기라는 옷(몸)을 입은 아이는 바깥으로 나옵니다. 눈이 부십니다. 퍽 오랫동안 깜깜한 고치에 깃들어 잠을 잤으니, 눈이 따갑습니다. 게다가 몸이 축축합니다. 내 몸이 왜 이리 축축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는 갑자기 등짝이 아픕니다. 등짝이 쩍 갈라집니다. 쩍 갈라진 등짝에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 아이가 나옵니다. 딱딱한 껍데기를 벗고 바깥으로 나온 아이는 몹시 홀가분합니다. 다만, 눈이 부시고 몸이 축축하니, 눈을 쉬고 몸을 말려야 합니다.


  한동안 잎사귀에 매달려 눈을 천천히 뜨고 몸을 말린 아이는 문득 ‘내 몸이 예전하고 사뭇 다른’ 줄 알아차립니다. 뭘까요? 무엇일까요? 눈을 떠서 하늘을 볼 수 있고, 몸이 다 말라서 가벼운 아이는, 잎사귀를 붙잡은 발을 모두 놓습니다. 어느새 하늘을 가르면서 바람 옆을 함께 납니다. 어, 이 아이 등에 날개가 달렸습니다. 이 아이는 나비입니다. 조그마한 알에서 애벌레를 지나고 번데기를 거쳐서 새로 태어난 나비입니다. 나비는 바람 등짝을 간질이면서 날개를 팔랑입니다. 바람은 새로 찾아온 동무가 반갑습니다. 오래오래 함께 하늘을 누빕니다. 파란 하늘에서 파란 숨을 마시면서 새롭게 삶을 누립니다. 4348.3.4.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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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현을생 지음 / 민속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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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5년 7월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7



곁에 있는 사랑을 사진으로 찍는다

―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현을생 사진·글

 민속원 펴냄, 2006.7.15.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꽃을 좋아하면서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은 으레 꽃밭이나 숲이나 시골을 찾아갑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꽃을 구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꽃을 좋아하기에 ‘꽃이 흐드러지는 시골이나 숲’으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은 어느 만큼 있을까요? 꽃을 만나러 나들이를 다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꽃을 마주하면서 꽃내음을 맡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은 어느 만큼 있을까요?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으로’ 꽃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적하고, ‘꽃이 있는 곳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똑같은 꽃을 사진으로 찍더라도 느낌하고 결하고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삶자리 둘레에 있는 아름다운 숨결을 사진으로 찍을 적하고, 먼발치에 있는 아름다운 숨결을 찾아나서며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느낌이나 결이나 이야기가 사뭇 다릅니다.


  늘 곁에 있기에 아름다운 줄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깊고 넓게 느끼기에 늘 곁에 두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먼 곳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는 아름다운 숨결을 두지 않고 먼발치에 있는 아름다움만 생각하면서 삶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나들이를 가기에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서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나들이를 간다고 하더라도 ‘나들이를 간 그곳’에서도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바라보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움을 알아채거나 느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도 곁에 있는 줄 알아챌 때에 사진으로 찍지, 곁에 있더라도 못 알아챈다면, 아무것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보원사지를 간다. 전각이 복원 안 된 절터에 서면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 든다 … 도량을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죄스러울 정도로 적막하여 숨소리를 죽이는데,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사진을 찍지 말라 하여 가슴이 덜컹한다. (70, 79쪽)



  1998년에 ‘탐라목석원’에서 펴낸 사진책으로 《제주 여인들》이 있습니다. 《제주 여인들》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인 현을생 님은 1955년에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고, 1974년에 제주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었으며, 2014년부터 서귀포시장이 되어 공무원 한길을 잇습니다. 현을생 님은 ‘빛깔있는 책들’ 가운데 《제주 성읍 마을》(대원사,1990)에 사진을 찍었고, 2006년에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민속원,2006)라는 사진수필책을 선보입니다. 현을생 님은 공무원으로 오랜 한길을 걷는 동안 언제나 ‘사진가 한길’도 함께 걸었습니다.


  1990년, 1998년, 2006년, 이렇게 드문드문 사진책을 내놓은 현을생 님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주도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사진으로 담아서 엮고, 제주도에서 물일을 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서 엮으며, 현을생 님이 골골샅샅 두루 찾아다니는 절집에서 만난 숨결을 사진으로 찍어서 빚은 이야기에는 어떠한 바람내음이 깃들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현을생 님 사진은 ‘곁에 있는 사랑’을 찍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먼발치에 있는 사랑을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현을생 님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사진으로 찍고, 현을생 님을 둘러싼 이웃하고 동무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남녘(한국)에 있는 여러 절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은 현을생 님이 ‘절집마실’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찍을 수 있습니다. 절집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돌아다닌 발자국이 아니라, 절집마실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어느 날 문득 절집을 사진으로 찍은 발자국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절집은 아직 인간들의 소음이 미치지 않아서 시골 외갓집 가는 기분으로 들어설 수가 있어 그 또한 편안하다 … 하도 오랜만에 이 절을 찾은 탓에 이 나무가 그냥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합장하여 천 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나무뿌리에 기도 드린다. (108, 118쪽)





  제주섬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제주 해녀를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 엮은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절집마실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제주섬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거나 느끼면서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엮으려는 마음일까요? 제주사람으로 제주섬에 살면서 찍는 사진일까요? 제주마실을 해 보니 무척 기쁘고 좋거나 예뻐서 찍는 사진일까요?


  더 나은 사진은 없습니다. 덜 좋은 사진은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면서 찍을 수 있으면 모두 사진입니다.


  여행사진은 여행하는 숨결이 깃드는 사진입니다. 생활사진은 삶으로 녹이거나 삭이면서 사랑하는 넋을 담는 사진입니다. 기록사진은 차곡차곡 아로새기려는 사진입니다. 패션사진은 한결 돋보이도록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저마다 뜻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 잘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고, 더 잘 ‘기록해야’ 하는 사진이 아니며, 더 예쁘장하게 보여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네가 좋아해 줄 만한 모습을 찍는 사진이 아니요, 남이 더 부추기거나 우러를 만한 그림을 빚는 사진이 아니며, 예술이나 문화라는 이름을 얻어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곁에 있는 사랑을 곱게 느끼면서 함박웃음이나 빙긋웃음을 기쁘게 짓는 삶을 노래하는 사진입니다.



건축 양식이 어떻고, 공간구조가 어쩌고 하는 전문적 지식은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두 팔 뻗어 안고 싶을 만큼 그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 절 가운데 있는 석탑과 대웅전 문창살의 속내. 어쩌면 이토록 단아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만들어졌을까 … 절 마당과 기와지붕이 금세 하얀 도화지로 변한다. 그것은 마치 내리는 눈발이 투명한 꽃으로 피어 있는 순간처럼 보인다. (210, 283, 349쪽)





  사진수필책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는 수수하면서 투박합니다. 글도 수수하고 사진도 수수합니다. 글도 투박하고 사진도 투박합니다. 구성진 멋을 보여주는 글이요 사진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현을생 님은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를 이야기합니다. 바람이 머무는 풍경소리를 헤아리면서 쓴 글입니다. 풍경소리에 머무는 바람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근사근 숲길을 거닐어 절집을 드나드는 동안 맞아들인 숲노래를 갈무리한 글입니다. 절집에서 하룻밤을 묵는 동안 밤새 흐르는 숲노래를 가슴으로 삭혀서 찍은 사진입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현을생 님이 제주섬이나 제주 해녀나 절집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예술이나 정치나 교육 같은 것을 따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제주섬하고 제주 해녀하고 절집이 사랑스러워서 찍는 사진입니다.


  절집을 찍을 적에 건축양식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이천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천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천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에, 무엇이 달라질까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라면 모르되,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 아니라면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건축물을 지은 사람’하고 ‘건축물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따사로운 사진이 됩니다.





서둘러 공양간 안으로 들어선다. 비구니 스님께서 전을 부치란다. 어찌 저 정갈한 스님의 마음을 내가 대신 만들 수 있겠는가 … 국보가 아니더라도, 보물이 아니더라도 그냥 좋다. 제발 나를 버리지만 말아 달라 애원하듯 서 있는 돌미륵을 몇 번이고 쳐다보며 헤어지는데 …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그 돌문의 주길은 너무도 아름다워 도저히 밟아 지나갈 수가 없다. (294, 301, 331쪽)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곁님이 사랑스럽습니다. 곁님은 곁에 있는 님입니다. 한집살이를 하는 짝꿍도 곁님이고, 한집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곁님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도 곁님이요, 텃밭에서 자라는 남새도 곁님이며,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도 곁님입니다. 내 삶자리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든 ‘곁붙이’는 ‘곁에서 사랑스레 빛나는 님’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도 나무도 풀벌레도 새도 이웃집도 고샅이나 골목도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모두 ‘곁에서 곱게 빛나는 님’으로 느끼면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곁에서 빙그레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모든 숨결을 따사로이 사랑하면서 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공무원 한길을 걸을 뿐 아니라, 사진 한길을 함께 걷는 현을생 님은 서귀포시에서, 또 한국에서, 앞으로도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을 사진하고 글로 곱게 여미시겠지요. 삶을 아끼고 사랑하면 곁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알아볼 수 있고, 삶을 노래하고 즐기면 곁에서 흐르는 맑은 바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사진은 늘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4348.6.1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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