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92. 2015.6.13. 딸기빵


  숲에서 훑은 멍석딸기를 빵 한 조각에 얹어서 함께 먹는다. 딸기알이 톡톡 터진다. 다시 딸기알을 빵조각에 올려서 같이 먹는다. 딸기알이 오독오독 씹힌다. 온 식구가 저전거를 타고 바닷마실 나와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딸기빵을 먹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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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긴신에 물 들어갔어



  산들보라가 긴신에 물이 들어갔으니 뻬 달라고 말한다. 나는 산들보라한테 “얘, 네가 신을 벗어서 털면 돼.” 하고 말한다. 그러나, 산들보라는 이렇게 못 한다. 어른으로서는 말로 하기 쉽지. 아이로서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서 움직이기는 아직 어렵다. 그래도, 시늉을 낸다. 그래, 시늉을 내렴. 그렇게 하고 또 해야 신을 혼자 신고 벗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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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54) 일상의 5


 일상의 즐거움

→ 즐거운 하루

→ 하루가 즐겁다

 일상의 실천

→ 늘 실천

 일상의 물건

→ 늘 쓰는 물건

→ 자주 쓰는 물건



  “삶을 산다”고도 말하니, “일상을 산다”나 “생활을 산다”처럼 말할 수도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그런데 “생활을 산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생활을 한다”처럼 말하지요.


  한자말 ‘일상(日常)’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뜻해요. ‘생활(生活)’하고 같은 셈이요, ‘생활’은 한국말 ‘삶’하고 같습니다. 다만, 한자말 ‘일상’은 늘 되풀이되는 모습을 가리키는 대목이 살짝 다릅니다. “일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면 “언제나 되풀이하는 일”이나 “날마다 하는 일”이나 “늘 똑같이 하는 일”을 가리키고,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는 “바쁜 하루를 되풀이하며 산다”나 “바쁘게 산다”나 “바쁘게 하루를 산다”를 가리켜요.


  ‘일상 + 의’ 꼴로 “일상의 행복”이나 “일상의 인문학”처럼 쓰는 사람이 차츰 늘어납니다. ‘일상’이라는 한자말하고 ‘-의’라는 토씨를 곁들여서 쓰는 말투입니다. 그런데 ‘일상’이라는 낱말이 쓰이는 자리를 보면 ‘날마다’이거나 ‘늘’이라고 할 만합니다. 날마다 하는 어떤 일을 가리키고, 늘 마주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려고 하지요.


  실마리를 쉽습니다. ‘날마다’나 ‘늘’이나 ‘언제나’를 쓰면 돼요. 때와 곳에 따라 ‘자주’를 쓸 만하고, ‘하루’나 ‘삶’ 같은 낱말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어울리는 말을 나 스스로 헤아리면서 찾습니다. 4348.7.4.흙.ㅅㄴㄹ



* 더 살펴보기 *


일상의 생활은 의식주로 요약된다. 일상의 기본은 먹고 입고 쉬고 자는 일이다

→ 우리 삶은 옷밥집으로 이루어진다. 삶을 이루는 바탕은 먹고 입고 쉬고 자는 일이다

《정수복-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문학동네,2015) 25쪽


※ ‘일상’이라는 한자말이 ‘생활’을 뜻하기에 “일상의 생활”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의식주(衣食住)로 요약(要約)된다”는 “옷밥집으로 이루어진다”로 다듬고, ‘기본(基本)’은 ‘바탕’으로 다듬습니다.


 일상의 생활은

→ 하루 삶은

→ 우리 삶은

→ 우리 하루는

→ 사람살이는

→ 여느 삶은



일부러 그것을 찾아다닌 것도 아닌, 다만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 일부러 그것을 찾아다니지도 않은, 다만 늘 있는 일을 쓸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지누-잃어버린 풍경 1》(호미,2005) 6쪽


※‘기록(記錄)일 뿐이었는데도’는 ‘쓸 뿐이었는데도’나 ‘적을 뿐이었는데도’로 손봅니다.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는데도

→ 하루 일을 적을 뿐인데도

→ 그날그날을 썼을 뿐인데도

→ 늘 있는 일을 쓸 뿐이었는데도

→ 늘 하는 일을 적을 뿐인데도



이 책은 예술과 사진에 관한 나의 생각과 사진가로서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느낀 바를 여러 지면에 그때그때 수필 형식으로 발표했던 것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 이 책은 예술과 사진을 보는 내 생각과 사진가로서 학생들한테 사진을 가르치며 있던 일, 그리고 살면서 느낀 바를 여러 곳에 그때그때 수필처럼 쓴 글을 모아 다시 엮었다

《육명심-사진으로부터의 자유》(눈빛,2005) 5쪽


※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입니다. “사진에 관(關)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내 생각”이나 “사진을 느끼는 내 생각”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여러 지면(誌面)에”는 “여러 곳에”로 고치고, “발표(發表)했던 것들”은 “내놓았던 글들”이나 “썼던 글들”로 고칩니다. “재편집(再編輯)한 것이다”는 “다시 엮었다”나 “다시 묶었다”로 손봅니다.


 일상의 삶에서 느낀 바

→ 살아가며 느낀 바

→ 사는 동안 느낀 바

→ 하루하루 살면서 느낀 여러 가지

→ 여태껏 살아오며 느낀 이야기

→ 살아오며 느낀 그대로



이곳의 자연과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내가 직접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 이곳 자연과 여기서 사는 사람들을,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호시노 미치오/이규원 옮김-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5) 248쪽


※ “이곳의 자연과”는 “이곳 자연과”나 “이 자연과”로 다듬습니다. ‘생활(生活)하는’은 ‘살아가는’이나 ‘사는’으로 다듬고요. ‘직접(直接)’은 ‘몸소’나 ‘바로’로 고쳐 줍니다.


 내가 직접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꾸밈없이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보자는



조선인들 사이에 일본어 습득이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이는 다분히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생존의 도구’로서 기능했다

→ 조선사람 사이에 일본말 배우기가 아주 빠르게 퍼졌으며, 이는 적잖이 ‘먹고사는 연장’ 구실을 했다

《손준식,이옥순,김권정-식민주의와 언어》(아름나무,2007) 152쪽


※ ‘조선인(-人)’은 ‘조선사람’으로 다듬고, “일본어(-語) 습득(習得)이”는 “일본말 배우기가”로 다듬습니다. “급속도(急速度)로 확산(擴散)되었으며”는 “아주 빠르게 퍼졌으며”나 “재빠르게 번졌으며”로 다듬고, ‘다분(多分)히’는 ‘적잖이’나 ‘적이’로 다듬어 줍니다. “생존(生存)의 도구(道具)”는 “살아남는 연장”으로 손보고, ‘기능(機能)했다’는 ‘움직였다’나 ‘돌아갔다’로 손질합니다. 또는, 앞말과 이어서 “‘살아남는 연장’ 노릇을 했다”처럼 다듬어 봅니다.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 먹고사는

→ 하루하루 버티는

→ 하루를 살아가는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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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7 별, 깨어나기



  하늘을 보면 ‘별’이 있습니다. 무척 멀다 싶은 곳에 별이 있습니다. 별이 얼마나 있는지 숫자를 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별이 얼마나 있는지 숫자로 세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별을 볼 뿐이고, 별을 생각할 뿐이며, 별을 마주할 뿐입니다.


  먼 옛날에 어떤 사람이 ‘별’이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생각해서 이 이름을 붙였을까요? 영어로 ‘star’라는 낱말은 언제 누가 처음으로 이 이름을 생각했을까요? 영어에서는 ‘star’라는 낱말이 ‘astro’하고 같다 하며, ‘concider’라는 낱말도 ‘별(star)’과 얽힌다고 합니다. 별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가꾸기에 ‘concider’라는 낱말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별을 헤아리다”처럼 말합니다. 옛 시인이 “별을 헤아리며”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시인이 아닌 여느 아이와 어른 누구나 “별을 헤아린다”고 말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별을 ‘헤아린다’고 해요. 그러면 ‘헤아리다’는 무슨 뜻일까요? ‘헤아리다’는 ‘헤다’에서 왔고, ‘헤다’는 ‘세다’에서 왔습니다. ‘헤아리다’는 첫째 뜻이 “숫자를 알아보려 하다”입니다. ‘헤아리다’ 둘째 뜻은 “어느 것을 미루어서 생각하다”입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에서나 영어에서나 ‘별·star’는 말밑이나 밑쓰임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생각’과 ‘셈’과 ‘헤아림’은 모두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한국말에서도 ‘생각하기’란 ‘별을 바라보면서 하늘 흐름을 살핀다’는 소리가 되고, 별을 읽을 줄 알 때에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을 때에 ‘삶을 알아보거나 읽는다’고 말할 만합니다.


  별을 바라볼 때에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저 보면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뭇느낌을 마음에 품지 않은 채 그저 별을 바라보면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좋음도 나쁨도 아닌 마음으로 별을 바라볼 때에 깨어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도 따지지 않고, 미움과 싫음과 반가움 같은 마음도 없이, 오로지 고요하면서 차분하고 밝은 마음으로 별을 바라볼 때에 깨어날 수 있습니다.


  고요누리가 되는 넋으로 별을 헤아립니다. 어둠도 빛도 아닌 눈길로 별을 헤아립니다. 별을 바라보는 때는 밤(어둠)입니다. 낮에도 틀림없이 별이 저 먼 하늘에 있으나, 햇빛에 우리 눈이 가려지니 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몸에 달린 눈’이 아닌 ‘마음으로 뜨는 눈’으로 별을 헤아린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밤이나 낮이나, 별빛과 별결과 별살과 별넋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해한테서 빛과 볕과 살이 나오듯이, 별한테도 똑같이 빛과 볕과 살이 있을 테지요. 곧, 지구별에서는 해님이 베푸는 빛과 볕과 살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기운을 북돋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별에서 다른 수많은 뭇별이 베푸는 빛과 볕과 살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별을 헤아리기에, 우리가 이 몸으로 선 지구별을 제대로 헤아립니다. 별을 헤아리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 몸도 제대로 못 헤아리고, 지구별도 제대로 안 헤아립니다. 지구별도 똑같은 별이기에, 온별누리에 있는 가없는 별을 헤아리는 넋으로 지구별을 헤아려야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와 마주한 너를 제대로 바라봅니다.


  별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몇 가지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종교는 거머쥘는지 모르나, 별을 모르니 삶을 모르고 사랑을 모르며 꿈을 모르지요. 천문학만 되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점성술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學(굳은 철학)’이나 ‘-술術(굳은 재주)’에서 그치지 말고, ‘열린 배움’과 ‘트인 손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배울 때에 배움입니다. 누구한테서나 배울 때에 배움입니다. 어디에서나 지을 때에 손길입니다. 언제라도 지을 때에 손길입니다.


  지구별과 가까이 있는 달과 해와 ‘해누리(태양계)’에 있는 모든 별부터 제대로 차근차근 헤아리면서, 우리는 나를 이루는 ‘조각(별 조각)’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도 ‘별’입니다. 온별누리에 있는 별은 별 하나하나가 모여서 온별누리(은하계)를 이루고, 내 몸을 이루는 세포는,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서 ‘내 몸이 됩’니다. 별이 곧 삶이고, 별이 곧 목숨이며, 별이 곧 꿈이자 사랑입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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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만난 찔레꽃



  찔레꽃을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찔레꽃은 숲이나 들에서 으레 보았고, 우리 집 뒤꼍에서 늘 본다. 그런데, 바닷바람이 드세게 부는 바닷가에도 찔레넝쿨이 뻗으면서 하얗게 꽃을 피우네. 찔레야, 너한테는 ‘바다찔레’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겠네. 바닷바람이 짜면서 고되지는 않으니? 너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떤 꿈을 키우니? 바람이 드센 바닷가에서는 누가 너희한테 찾아와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니? 개미가 있을까? 벌이나 나비가 이 둘레로 날아올까? 아니면 자그마한 새가 너희를 찾을까? 땅바닥을 기면서 돌둑을 타는 바다찔레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쓰다듬는다. 4348.7.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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