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 - 어린이를 위한 첫 환경그림책 모두가 친구 17
토드 파 지음, 장미정 옮김 / 고래이야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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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71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

 토드 파

 장미정 옮김

 고래이야기

 2010.6.7.



  사람마다 다르니, 사람마다 사는 길이 다르고, 이 다른 길에 따라 사랑하는 결이 다르겠지요. 그러나 다르다고 해도 사랑은 사랑이요, 삶길은 삶길이면서 사람은 사람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면서 “넌 미루나무로구나”라든지 “넌 버드나무였네” 하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같은 미루나무여도 가지마다 달린 잎은 생김새이며 빛깔이 모두 다릅니다. 버들잎도 크기이며 빛깔이 똑같지 않아요. 멀리서 얼핏 본다면 같은 빛깔인 듯 여길는지 모르나 곁에서 보면 모두 달라요.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펴면서 이 그림책에서 얘기하는 ‘나(내)’는 누구인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이 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아이는 저마다 다를 텐데, “아이(내)가 별(지구)을 사랑하는 길”이 너무 어른스러워요. 아니, 어른한테서 배운 대로 따라가는구나 싶어요. 아이답게 이 별을 사랑하는 길을 다루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온누리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고장이며 마을이며 보금자리에서 서로서로 다르게 이 별을 사랑하면서 돌보는 모습을 참말로 다르면서 곱게 펼쳐 보인다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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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의 그림책 - 그림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틴 솔즈베리 지음, 서남희 옮김 / 시공아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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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70


《100권의 그림책》

 마틴 솔즈베리

 서남희 옮김

 시공사

 2016.8.19.



  온누리에 아름다운 그림책이 많습니다. 아름다이 하루를 짓고 싶은 손길로 아름다이 손빛을 밝히니 아름다운 그림책이 태어납니다.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많아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려는 눈길로 사랑스레 손길을 가꾸니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샘솟아요. 《100권의 그림책》은 숱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책 가운데, 엮은님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고 하는 여러 나라 그림책을 ‘태어난 해’를 바탕으로 속그림까지 주주룩 보여줍니다. 다만 이 《100권의 그림책》은 ‘아름다운 그림책을 아름답게 바라보기’보다는 ‘아름다운 값어치가 있으니 목돈을 들여서 사모을 만하다’고 하는 눈길로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값있는 그림책 모으기’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쓸쓸합니다. 쓸쓸해요. 오래된 그림책을 값어치로 따져야 할는지 모르겠어요. 먼먼 옛날부터 물감 한 방울에 온사랑을 쏟아서 빚어낸 그림책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이 땅에서 살아갈 꿈을 키웠는가 하는 이야기를 읽지 않은 채 ‘값진 그림책 모으기’로 흐른다면, 그림책을 읽는 뜻이란 뭘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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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코어 걸 2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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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시키는 대로만 하니 즐거울 수 없지



《하이스코어 걸 2》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저 막과자집 말이지, 할머니도 나이가 많아서 이제 곧 문을 닫는데. 할머니 기운 내라고 매일같이 다니고는 있지만, 아깝게 됐어.” (25쪽)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느 때부터인가 게임기하고 오락실에 빠집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붙이는 재미나 즐거움’이란 없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게임기를 만지거나 오락실을 드나들 적에 비로소 활짝 핀 웃음꽃이 될 뿐, 다른 데에서는 어떠한 일도 재미나 즐거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에 재미가 없다면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학교가 즐겁지 않은데 학교에 머물러야 할까요? 학교에서 마주하는 또래가 마음을 북돋우거나 열지 않는데, 학교에서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이끄는 어른인 교사가 삶을 슬기로이 바라보도록 가르치지 않는데 보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못 한다고 포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직접 해보고 도저히 못 하겠으면 그때 나한테 말해. 그럼 내가 멋지게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50쪽)



  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릅니다. 둘레 어른이 보기에 어떠한 말썽도 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한테 거울이 될 만하다고 여깁니다. 다만, 이 아이는 둘레 또래나 어른한테 마음을 열지 않는데,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는 줄 그닥 느끼지는 않습니다. 살아가며 어떤 길을 걸어야 즐거운가를 아직 모르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가도 아직 모를 뿐입니다.


  두 아이를 둘러싼 다른 어른들 눈길은 매우 또렷합니다. 게임기하고 오락실에 푹 잠긴 아이는 말썽쟁이에 앞날이 캄캄하다고 여깁니다. 학교에서 얌전하거나 고분고분할 뿐 아니라 시험점수가 좋은 아이는 앞날이 걱정없거나 밝으리라 여깁니다.


  자, 이런 눈길은 얼마나 알맞을까요?



“질 때마다 짜증 부리는 놈일수록 이기는 보람이 있는 법이야. 오락실은 불량배들의 소굴이 아니라 얼간이들의 소굴이라는 걸 증명해 볼게.” (64쪽)



  만화책 《하이스코어 걸》(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 두걸음은 첫걸음에 이어 이야기를 지핍니다. 첫걸음에서는 초등학생인 ‘겜돌이·겜순이’가 게임기하고 오락실에서 마음이 아늑해지는 길을 찾았다면, 두걸음에서는 중학생이 된 ‘겜돌이·겜순이’가 나옵니다.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이라는 건 경쾌하고 기분 좋은 법이니까.” “야구치, 너는 그래서 항상 즐거워 보이는구나.” “반대로 너는 항상 지루해 보이던데. 취미라곤 공부밖에 없지?” (48쪽)



  게임기나 오락실이 넘쳐나지 않던 때에는 길에 자동차가 드물었습니다. 길에 자동차가 드물었을 적에는 모든 아이들이 길바닥을 골목이나 빈터로 삼았고, 마음껏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웃고 춤추면서 놀았습니다. 길에 자동차가 늘면서 아이들은 빈터이자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길에 자동차가 늘면서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더 빨리 달리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더 빨리 달리면서 아이들이 길에서 얼쩡거리는 몸짓이 싫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길을 모두 가로막으면서 학교하고 학원에 내몹니다. 이러면서 게임기하고 오락실을 건네지요. 몸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손가락하고 눈알만 굴리게 한달까요.


  그나마 이런 구석에서 겨우 마음을 푸는 아이가 여럿 있으나, 숱한 아이들은 게임기를 만지지 못하고 오락실 곁에 다가서지도 못합니다. 겜돌이·겜순이는 참하지 않으며 바르지 않은데다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어른들 눈길이랄까요. 그렇다고 이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골목길이나 빈터를 돌려주지 않습니다.



‘재미있어 보인다, 야구치. 만약 내가 강해진다면 어떤 얼굴을 하려나.’ (119쪽)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삶이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시키는 길 말고는 바라볼 수 없는 하루라면 즐거울 수 없습니다. 오늘 숱한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시킬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뿐 아니라, 나라를 이끈다는 어른이나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은 무슨 생각일까요?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바람을 가르며 노는 아이를 언제 만날 만할까요? 자동차 걱정을 안 하고서 신나게 연을 날리고 나무를 타는 아이를 언제 마주할 만할까요? 아니, 이제 마을 어디에 홀가분하게 타고 오를 나무가 있을까요? 가지를 다 쳐서 젓가락처럼 삼는 소나무를 타고 오르며 놀 수는 없습니다. 가지가 치렁거리면서 곧게 서며 줄기가 우람한 나무여야 아이들이 타고 놀 텐데, 이런 나무를 모조리 없애고 찻길만 늘리고 오락실(이제는 피시방)만 세우는 어른들은 이 삶터 앞길을 어떻게 할 셈일까요?


  놀지 못한 채 자라나면 꿈이 없기 마련입니다. 신나게 뛰놀 적에 비로소 스스로 꿈을 키우기 마련입니다. 놀면서 튼튼한 마음으로 큽니다. 바람을 먹고 햇볕을 마시는 아이들이 아름다이 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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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전문용어를 다루는 눈



[물어봅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까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울 듯해요. 전문용어는 일본 말씨이든 영어이든 한자말이든 다 그대로 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모든 전문용어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오래오래 쌓거나 다스린 말입니다. 또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에 문득 얼핏 쓰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서 굳어진 말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씨나 일본 영어일 숱한 전문말이 이와 같은데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며 그 전문가라는 길을 왔기에, 그 전문가로서는 처음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을 그대로 쓰곤 합니다. 또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깊이 알지 못하거나 넓게 알아내지 못한 탓에 그냥 쓰는 전문말도 수두룩합니다.


  수학 전문가라면 수학 전문말을 쓰겠지요. 살림 전문가라면 살림 전문말을 쓸 테고요. 자, 생각해 봐요.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수학 전문말은 누가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속뜻이나 참뜻이 아리송한 말이 있지 않을까요?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누가 못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살림 전문가를 비롯해서 살림 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으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롭게 가꿀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요?


  대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면서 깊거나 넓은 길을 파고든다고 해서 그 갈래에 있는 사람만 ‘전문가’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아요.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삶에서 자라며 삶으로 가꾸고 삶으로 나눕니다. 논문으로만 쓰고, 학회지에만 선보이고, 방정식 풀이에만 애쓴다면, 이러한 수학말은 굳이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새롭게 지을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이때에는 그저 ‘끼리말(끼리끼리 쓰는 말)’에 머물거든요.


  그런데 알아두어야 합니다. 끼리말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끼리끼리로 갇힌 채 오랫동안 맴도느라, 끼리말을 배우면서 학문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분들은 그 끼리말이 아니고서는 그 학문을 할 수 없네 하고 느끼기 쉬울 뿐이에요. 그리고 그곳 바깥에 있는 이들은 먼저 끼리말 때문에 걸려넘어져서 그곳으로 들어오기 어렵고, 이러면서 그 학문자리는 끼리말이 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단단해진 끼리말이야말로 ‘좋은 전문말’로 여기면서 굳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싹이 틀 틈이 없는 셈입니다.


  어린이는 ‘구구단’이란 이름부터 낯섭니다. 아니, ‘덧셈·빨셈’도 낯섭니다. ‘더하다·빼다’는 어린이도 알고 삶으로 누리지만, 여기에 ‘-셈’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쩐지 하나도 모르는 자리라고 여기고 말아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덧셈·뺄셈’처럼 삶말로 수학말 한 가지를 가다듬었습니다만, 이를 아직도 한자말로 쓰는 어른(전문가)이 있고, 이를 그냥 영어로 쓰는 어른(전문가)도 있어요.


  학문이 깊이하고 너비를 두루 품자면, 삶이라는 자리로 들어서야 합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지 않은 세간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곳에는 모든 학문이나 전문성이 골고루 깃듭니다. 책 한 자락을 찍고 엮는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관리하고 회계에도 수학이 있지만, 옷을 마름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데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논밭을 일구는 연장인 쟁기나 가래나 호미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쟁기날이나 삽날이나 호미날에 수학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별자리에는 수학이 없을까요? 또, 별자리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없을까요?


  벼꽃에도 과학이며 철학이 흐르고, 벼알인 나락을 훑어서 햇볕하고 바람에 말린 뒤에 절구질로 빻아서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골라서 물을 맞추어 솥에 앉혀 밥을 짓는 이 흐름에도 과학이며 수학이며 철학이며 문학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그저 이를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 실험이나 문학 작품이나 철학 이념으로 풀어낸 전문가란 어른이 매우 드물 뿐입니다.


  살림 전문가 곁에 선 수학 전문가라면 이런 수학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물 부피하고 쌀알 숫자를 어느 만큼으로 맞추어야 하는가?”라든지 “더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쌀을 어떠한 결로 씻고, 쌀알이 솥에 어떤 결로 켜켜이 앉아야 하는가?”를 방정식을 지어서 풀도록 할 수 있어요.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서 달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지구로 돌아오는 길만 수학 방정식을 지어서 풀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을 가장 쉽고 빠르며 꼼꼼하게 걸레질을 하는 ‘함수’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등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호미질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차원이나 오차원 방정식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네 학교나 사회에서 전문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쓰는 말은 아직 너무 단단한 울타리에 갇히곤 합니다. 바로 학문이란 자리에 있으려면 대학교 바깥이나 연구소 언저리로 나아가면서 깊고 너른 품이 되어야 할 텐데, 좀처럼 삶자리나 살림자리나 사랑자리로는 안 나아가거든요.


  그러나 꼭 짚을 대목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하는 전문말을 아직 붙잡는 전문가 어른이 많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인 분이 전문말을 붙잡는다고 해서 이 말씨를 잘못이라거나 나쁘다고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런 말을 그대로 붙잡을 뿐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즐거운 말씨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노래하듯이 나누면 되어요.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이란 없어요.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말을 생각하면 되어요. 손을 잡으면서 기쁘고 사랑스레 춤추는 말을 헤아리면 됩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하나씩 바꾸기보다는, ‘살림하는 자리에서 한결 즐겁게 쓸 새로운 말을 하나씩 생각해 보기’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바꾸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때로는 바꾸는 쪽이 한결 수월하거나 나을 수 있습니다. 바꿀 만한 말은 바꾸기로 해요. 그대로 두는 쪽이 낫다 싶으면 한동안 그대로 두되, 앞으로 우리 생각이 새롭게 자란다면 그때에 더 살펴서 손질해도 되고, 새말을 지어서 써도 되겠지요.


  살림하는 전문가는 밥을 하면서 물 부피가 몇 씨씨인가 하고 살피거나 재지 않아요. 밥알이 몇 톨인가를 세지 않아요. 이 눈썰미하고 마음에 흐르는 사랑 어린 손길을 헤아린다면, 전문말을 풀어내는 상냥하면서 알뜰한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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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하고 싶은 대로 : “하고 싶은 대로” 할 노릇이다. ‘좋아 보이는’ 대로 하거나, ‘뜻있어 보이는’ 대로 하거나, ‘올발라 보이는’ 대로 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나 놀이는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달리 할 까닭이 없다. 두어 살 아이로 살아갈 적에도, 아홉열 살 어린이로 살아갈 적에도, 열다섯 살 푸름이로 살아갈 적에도, 스물네 살 젊은이로 살아갈 적에도, 마흔 살 아저씨 아줌마로 살아갈 적에도, 일흔 살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갈 적에도 늘 하나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노릇이다. 일흔 살 할머니도 꽃무늬 깡동치마를 입으면서 춤출 수 있다. 눈치를 봐야 하지 않다. 서른 살 아저씨도 바지 아닌 치마를 두를 수 있다. 왜 치마를 가시내만 두르는가. 열 살 어린이도 글씨가 깨알같은 책을 읽을 수 있고, 여든 살 할아버지도 그림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자가용을 몰아도 되고, 두 다리로만 다녀도 된다. 자전거를 타도 되고, 택시를 타도 된다. 하루에 세끼를 먹어도 되고, 하루에 한끼만 먹거나, 며칠에 한끼를 먹어도 된다. 햄버거를 먹든 짜장국수를 먹든 대수롭지 않다. 한국사람이란 옷을 입었으니 김치를 잘 먹어야 하지 않다. 쌀밥을 먹어야만 힘이 날 까닭이 없다. 어느 자리 어느 곳 어느 때에서든 우리는 모든 일이며 놀이를, 다시 말해서 삶·살림·사랑을 “우리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가는 길”이면 된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길인데, 우리 스스로 갈 길이 아닌, 저쪽 저 사람이 가는 길이 놀랍고 대단하고 좋고 멋지고 뜻있고 알맞고 올바르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더라도, 저쪽 저 사람 길은 저이가 가는 길이다. 다만, 우리가 저 사람이 가는 길을 같이 가고 싶다면 “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귀여겨듣고 우리 마음에 먼저 새겨야겠지. 저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어 스스로 사랑하면서 저 길을 가는가를 헤아리지 않고서 ‘좋음·올바름·뜻깊음’을 섣불리 앞세우려 한다면, 저 사람이 가는 길 발끝에도 못 닿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힘들고 괴롭다. 이런 길도 되고 저런 길도 된다. 어느 길이든 다 뜻일 수 있고 좋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남 눈치를 안 보아야 하고, 남이 세운 뜻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부터 생각해서 찾을 노릇이요, 이렇게 찾아낸 우리 길을 신나게 노래하면서 갈 노릇이다. 1992.8.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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