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8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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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545


《80세 마리코 8》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0.31.



“편집장님은 늘 프레젠테이션 하고 계시잖아요.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그걸 좋다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거예요.” (21쪽)


“어떤 이야기를 가져와도 여기 사람들은 바뀌지 않아요. 오랜 시간 같은 풍경에 세뇌되어 의욕을 잃어버리고 주도권은 집주인에게 빼앗겼죠.” (43쪽)


“난 (우리 옷가게) ‘피에∼르’에 인생을 걸었다고.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야.” (50쪽)

‘셀카 찍는 거 부끄럽구나. 이런 걸 다들 잘도 하네.’ (73쪽)


“패션쇼에 집착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당신은 그걸 증명했어요.” (107쪽)



《80세 마리코 8》(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는데 어쩐지 아프고 힘들다. 여덟걸음에 이른 이 줄거리는 나로서는 텃고장 인천이 확 떠오른다. 바로 인천이라는 고장은 ‘늙어죽어’ 가는 곳이요, 이런 모습을 막삽질이란 이름으로 감추면서 어떻게든 토목건설 쪽으로 돈을 덮으려고 하는 몸짓이 너무 드세다. 그런데 ‘늙어죽어’ 가는 곳은 오래된 골목마을이 아닌 벼슬아치이다. 시장이나 구청장이나 국회의원을 맡는 이들이 바로 ‘늙어죽어’ 가는 마음이나 눈길이더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곱게 돌보고 정갈히 가꾸는 골목마을은 ‘평균수명이 높으나 매우 젊고 밝은 기운이 흐르’는데, 이러한 골목빛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그런 공무원이나 정치꾼이야말로 ‘늙어죽어’ 가는 꼬라지가 아니겠는가. 여든 살 할머니는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면서 소설도 힘껏 쓰고, 스스로 ‘누리소설 잡지’까지 열어서 그 나이에 편집장을 맡아서 젊은(?) 아줌마를 곁에 두면서 일한다. 누가 늙은이인가? 나이가 여든이나 아흔이기에 늙은이인가? 아니다. 생각이 새롭지 못하고, 생각을 틔우지 않을 적에 ‘낡은’ 머리이기에 ‘늙은’ 몸이 된다.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시장이나 국회의원, 또 공무원하고 교사로 있는 이들이 부디 이 만화책 《80세 마리코》를 찬찬히 새겨서 읽고 책모임을 하기를 바란다. 모쪼록 낡은 머리를 집어치우고 늙은 눈길은 걷어내어 밝고 산뜻하게 다시 태어나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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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틈날 때 : “언제 이런 걸 다 했어?” “뭐, 그냥 틈날 때 했어.” “너무 바빠서 빈틈이 없네.” “그러게, 바쁘니까 내는 때가 틈인걸.”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따라서 ‘틈’은 다르다. 너무 바쁘니까 틈을 못 내기도 하고, 너무 바쁘기에 틈을 내기도 한다. 남이 만들어 주는 틈이 아닌, 스스로 내는 틈이다. 그리고 이 틈이야말로 모든 일을 즐겁게 이루어 사랑스레 맺는 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틈을 내는 사람은 마음을 틔우니 눈길이 트고 생각을 새로 연다. 틈을 내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마음을 틔우지 못해 눈길도 생각도 새로 열지 못하거나 않는다. 보라, 책 하나 읽을 틈이 없는 사람하고, 책 하나 읽으려고 쪽틈을 내는 사람을. 또 보라, 꽃 한 송이 냄새 맡을 겨를이 없는 사람하고, 꽃 한 송이 냄새 맡으려고 길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앉아 들꽃에 코를 대는 사람을. 두 사람 틈에는 무엇이 있는가. 1999.9.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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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달력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2.12.)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두 아이는 저희 나름대로 새 달력을 벌써 그렸습니다. 저도 새해에 쓸 달력을 손수 그리든지 얻든지 해야 할 텐데, 아직 아무 일도 안 합니다. 다른 일에 마음을 쏟거든요. 그동안 걸어온 길을 통째로 되짚으면서 갈무리하는 이야기를 엮으려고 하는데, 두어 꼭지를 새로 쓰고, 여태 쓴 글에서 추린 글자락을 되읽고서 손질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열두 살 사름벼리 새해 달력이 다달이 눈부십니다. 이처럼 수수하면서 눈부신 달력을 선보인 그림쟁이는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둘레에 나도는 달력은 하나같이 너무 멋을 부립니다. 더구나 요일이나 달을 알아보기 어렵게 한자나 영어로만 적어요. 왜 그럴까요? 한국에서 쓸 달력은 한글로 적으면 되지 않을까요? 늦지 않게 저도 제 달력을 손수 그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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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글쓰기 사전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스토리닷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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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가 지은 책


김치, 폭행, 헌책, 사전, 숲집

[왜 썼나?] 글쓰기는 숲짓기로 나아가더라



― 우리말 글쓰기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사진

 스토리닷

 2019.7.22.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생기기보다는, 누구나 제 삶을 즐겁게 글로 담아내어 도란도란 나눌 수 있을 적에 아름다운 마을로 거듭난다고 느껴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나오기보다는, 누구나 제 살림을 기쁘게 말로 펼쳐서 두런두런 나눌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7쪽/머리말)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북적거립니다. 글쓰기 강의가 넘실거리고, 글쓰기를 다룬 책이 쏟아지며, 혼자서 책을 펴내는 이웃이 늘어납니다. 이런 모습을 여러 눈길로 볼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오늘날 이 ‘글물결’을 ‘살살이꽃’ 같구나 하고 느낍니다.


  살살이꽃은 어떤 꽃일까요? 바리데기 이야기를 보면 ‘숨살이꽃·피살이꽃·살살이꽃’이 나옵니다. 오랜 이야기에 나오는 살살이꽃하고 오늘 우리가 들녘에서 만나는 살살이꽃이 같은지는 아리송하지만, 꼭 하나는 알 수 있어요. 꽤 많은 꽃은 살살이꽃입니다. 어떤 대단한 꽃 한 송이라기보다, 거의 모두라 할 꽃은 살살이꽃입니다.


  첫째, 나물이 되지 않는 풀은 없고, 약이 되지 않는 풀도 없어요. 둘째, 살살 바람 따라 춤을 추지 않는 풀도 없답니다. 바람이 불 적에 살랑살랑, 살짝살짝, 살살 춤을 추는 풀꽃입니다. 그리고 이 풀꽃을 나물로 삼으니 피랑 살이 되고 숨이 되어요. 다시 말해, 모든 풀꽃은 살이 되고 피가 되며 숨이 되어요. 바리데기 이야기에 나오는 세 가지 약풀은 우리 둘레에 너른 풀꽃 가운데 세 가지를 스스로 알맞게 고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먼 데에서 찾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 살살이꽃은 영어로 이름을 들자면 ‘코스모스(cosmos)’예요. 아, 대단한 꽃이름이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날 글물결이 이 코스모스, 살살이꽃처럼 눈부신 모습이라고 느껴요.



[겹말 2016.9.22.] 말을 찬찬히 배우지 않거나 못하는 채 글을 쓰기만 하는 사람이 늘면서, 얄궂은 겹말이 엄청나게 나타나지 싶다. 글이란 언제나 말이고, 말이란 언제나 마음을 짓는 생각인데, 이 얼거리에서 말뜻을 차근차근 못 짚거나 못 다루기에 겹말이 나타난다. (28쪽)


[권정생 2005.6.7.]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하고 ‘한마음 한몸’이 되지 않고서는 돕는 손길을 내밀 수 없다. 아니, 돕는 손길이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못 된다. (37쪽)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더구나 날마다 쉬지 않고 쓰며, 꾸준히 씁니다. 어느 하루 더 많이 안 쓰고, 어느 하루 덜 쓰지 않습니다. 날마다 거의 비슷한 결로 씁니다. 다만, 이 얘기는 사전을 제대로 엮으려는 길을 갈 적에만 들어맞습니다. 다른 사전을 늘어놓고서 짜깁기를 하는 일꾼이라면 글을 거의 안 쓰겠지요. 장삿속에 파묻힌 사전을 쓸 적에도 구태여 스스로 글을 쓸 일이 없을 테고요.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사람은 어느 나라이든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한국도 매한가지예요. 워낙 큰 덩이요, 여느 눈썰미로는 쓰거나 엮을 엄두조차 못 내는 책이 사전입니다. 더구나 사전이란 책을 한 자락 마무리를 하자면, 짧게는 이백 해나 삼백 해요, 길게는 오백 해나 즈믄 해입니다.

  꽤 벅찬 일이니, 사전이라는 책을 쓰자면 나라에서 돈을 대거나, 뜻있으면서 돈이 넉넉한 분이 뒷배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라돈을 받은 적 없이 혼자서 사전이라는 책을 씁니다. 개미처럼 듬직한 이웃님들 작은 손길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이 길을 나아갑니다.



[그림책 2019.4.5.] 새로운 길을 밝히는 걸음으로 아기한테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을 밝히고, 어린이한테는 새롭게 배우는 길을 밝히고, 젊은이한테는 씩씩하게 나서는 길을 밝히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슬기롭게 빛나는 길을 밝히고, 아저씨 아주머니한테는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책이다. (40쪽)


[굴 2006.2.6.]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즐겁게 노래를 하는 살림인가를 생각하는 길이라면, 우리가 입으로 읊는 모든 말은 곧 골이 된다. (41쪽)



  사전은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사전은 치우칠 수 없을 뿐더러, 일부러 덜어내거나 보탤 수 없습니다. 사전은 차가워서도 아니되고, 뜨거워서도 아니됩니다. 어느 쪽에 몸을 담글 수 없되, 모든 쪽을 두루 헤아리는 눈길이 되어야 합니다. 매몰차게 굴어도 안 될 노릇이지만, 끈끈하게 굴어도 안 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따가워야 하는 자리에서는 더없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야 하고, 포근해야 하는 곳에서는 그지없이 아늑한 품이 되어야 해요.


  마치 얼토당토않다 할 만한 두 갈래 길을 한꺼번에 가는 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길이 사전길일까요? 보기를 들어 볼게요. ‘전쟁’하고 ‘평화’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삼아서 풀이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시샘’하고 ‘사랑’이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찬찬히 짚어야 한다면, 어떻게 짚어야 할까요? ‘눈물’하고 ‘웃음’은? ‘너’랑 ‘나’는?


  얼핏 어림을 할 수 있을까요? 사전 지음이는 늘 두 갈래 길을 걷되, 차갑지도 뜨겁지 않아야 합니다만, 고요하면서 춤추는 넋이어야 합니다. 차분하게 풀이를 하되, 깐깐해야 하고, 아무렇지 않고 짚어 주되 언제나 바탕은 사랑어린 생각을 마음에 심도록 징검다리 구실을 할 노릇입니다.



[글쓰기 2018.3.8.] ‘쉽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해본다’나 ‘하고 싶다’나 ‘한다’는 마음이 되어 보셔요. (49쪽)


[꽃 2019.3.3.] 꽃은 기다린다. 저를 눈여겨보거나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다가 가만히 다가와서 쓰다듬어 주기를. (59쪽)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 2019)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처음 담으려고 했던 “글쓰기 사전” 알맹이 가운데 9/10을 덜어내고 1/10만 남겨서 단출한 “글쓰기 사전”으로 묶었습니다. 어떤 분은 되묻겠지요. 이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란 책이 썩 얇지 않은데, 아홉 곱절 부피로 내려 했다고?


  이 책 하나에 제 온삶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 하나로 밝히려고 한 이야기는 몇 가지 있어요. 첫째, 누구나 사전이라는 책을 쓸 수 있다는 실마리를 조용히 보여주려 했습니다. 둘째, 누구나 글을 아름답게 써서 사랑스레 나눌 만하다는 수수께끼를 가만히 풀려 했습니다. 셋째,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으면서 대단하다는 넋을 나누려 했습니다. 넷째, 모든 책은 숲이면서 모든 숲이 책이라는 얼개를 부드러이 들려주려 했습니다.



[더 2017.6.4.] 글쓰기를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글”이란 없다. 사진을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사진”이란 없다. 사람과 삶을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사랑”이란 없다. 우리는 아무 걱정을 할 까닭이 없다. 그저 우리 이야기를 글로 쓰면 되고, 우리 삶을 사진으로 찍으면 되며, 우리 사랑을 도란도란 나누면서 살림을 지으면 된다. (84쪽)


[마을책집 2018.12.13.] 마을책집에는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다. 자, 보라.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으니 책터가 얼마나 눈부신가? 우리 삶에서도 이와 같다.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는 안 봐도 된다. 아니, 치울 적에 아름답다. 시험점수를 높이려는 길이 아닌, 살림자리를 빛내려는 길을 가기에 스스로 눈부시기 마련이다. (108쪽)



  저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또는 몸에서 받을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더없이 안 만만찮은 몸이지요. 어린 날부터 늘 듣던 말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어?”예요.


  그렇지만 김치를 못 먹을 수 있지 않나요? 또는 김치를 안 먹어도 되지 않나요? 서른 즈음 이른 어느 날 ‘쌀로 지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없는 분을 살짝 만난 적 있습니다. 그분이 그때까지 받아 온 짐이 얼마나 컸는가를 한눈에 알아차렸습니다. 김치를 못 먹는 사람보다 쌀을 못 먹는 사람이 받아야 하던 손가락질이나 눈치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우리는 왜 ‘김치나 쌀이 아주 마땅하다’고 여길까요? 왜 사내는 치마를 두르면 안 되고, 왜 가시내는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고 여길까요? 뭐, 요새는 사내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가시내도 머리카락을 짧게 치기도 하지만, 아직 학교나 사회 곳곳에서는 한켠으로 치우친 눈길이 대단히 드셉니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에 딱 한 줄로 실을까 하다가 차마 실을 수 없어 덜어낸 이야기가 있는데, 성폭행입니다. 저는 이 일을 ‘머리에서 잊기로 하면 잊히리라’ 생각했으나 아니었어요. 성폭행뿐 아니라 주먹질도 잊힐 수 없는 일입니다. 이밖에 어마어마하달 수 있는 일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죽을 고비를 끝없이 넘고 또 넘은 나날이었어요. 거꾸로 보자면, 저는 어릴 적부터 살아남으려고 용을 쓰고 악을 쓰고 이를 깨문 나날이었습니다.



[마음 2012.3.3.] 모든 글은 먼저 마음으로 쓴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온갖 이야기를 가다듬는다. (109쪽)


[맞춤법 2017.7.11.] 아이들은 맞춤법이 틀려도 저희 하고픈 말을 글로 옮긴다. 우리 어른도 이처럼 글을 쓰면 아름다우리라 본다. (112쪽)



  사전이란 책을 쓰는 일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글종이(원고지) 500쪽을 쓰는 하루를 서른 해쯤 살아내면 누구나 쓸 만합니다. 글을 누가 어떻게 그만큼 날마다 쓰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요? 네, 물어보셔요. 스스로 물어보시면 스스로 풀잇길을 찾아냅니다.


  자, 종이에 써도 글이고, 마음에 써도 글입니다. 나뭇잎에 써도 글이며, 하늘에 대고 써도 글입니다. 숲바람을 읽어도 책읽기요, 구름길을 읽어도 책읽기입니다. 꽃노래를 읽거나 풀벌레 노랫가락을 읽어도 책읽기예요.


  넉넉히 들을 줄 알면서, 기쁘게 말할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전쓰기를 하는 셈이요,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셈입니다. 글이나 사전이나 책을 쓰는 수수께끼는 바로 이 한 가지예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책이자 사전이면서 사랑이고 꽃입니다.



[사진 2005.5.6.] 사진을 찍고 싶으면 글을 써 보면 된다. 글을 쓰고 싶으면 사진을 찍어 보면 된다. 밥을 맛있게 짓고 싶으면 밭을 살뜰히 지으면 된다. 밭을 살뜰히 짓고 싶으면 밥을 맛있게 지으면 된다. 아이를 돌보고 싶으면 어른이 되면 된다. 어른으로 곧게 서고 싶으면 아이를 돌보면 된다. (149쪽)


[우리말 살려쓰기 2017.4.30.] ‘우리말 살려쓰기’란 무엇인가? 나는 이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말에 담는 생각을 살려서 쓰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말’이 아닌 ‘말에 담는 우리 생각을 살리려고 힘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우리말을 살리려는 일이라고 느낀다. 둘째, ‘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 되는 말’을 살리려고 힘을 쏟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때에 이 생각(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란 ‘꿈·사랑·길’이라고 본다. (180쪽)



  멋을 부리는 멋글을 써도 나쁘지 않아요. 멋글을 쓸 적에는 멋이 남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학위를 따려고 쓰는 글도 나쁘지 않아요. 이런 뜻으로 쓰는 글이라면 틀림없이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학위를 얻겠지요.


  사랑하는 님한테 사랑을 띄우고 싶어서 사랑글을 쓸 수 있어요. 자, 사랑글을 쓰면 무엇이 남을까요? 멋이 남나요? 자격증이나 학위가 남나요? 아니지요. 사랑글을 쓰면 바로 사랑이 남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살피려는 글을 쓰면 무엇이 남을까요? 네, 마땅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만 남겠지요.


  그러니까,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쓸 노릇입니다. 좋은 글도 나쁜 글도 없습니다. 스스로 남기고 싶은 삶이나 뜻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쓰면 될 뿐입니다. 이 삶을 사랑하고 싶으면 오직 사랑만 쓰셔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바란다면 오로지 꿈만 쓰셔요.



[종이 2008.8.25.] 아이가 우리한테 오고서야 기저귀를 눈여겨본다. 이때까지 기저귀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지 못했다. 사전에 실린 말뜻으로는 ‘기저귀’를 바라볼 수 있었어도, 아이 샅에 기저귀를 대는 살림을 짓고서야 비로소 ‘기저귀’가 그냥 낱말 하나가 아닌 엄청나게 오래며 깊은 삶이 넓게 스민 사랑인 줄 깨닫는다. (211쪽)


[책쓰기 2015.1.8.] 나는 왜 글을 쓰고, 이 글을 왜 묶어서 책으로 펴내려 하는가.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들한테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231쪽)



  글을 써도 돈도 되고 책도 잘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네, 이러한 생각이 나쁘지 않고, 이러한 생각대로 이루는 사람도 제법 있어요. 그렇다면 또 물어볼게요. 글을 써서 돈도 벌고 책도 잘 팔려서 무엇을 이루거나 누리고 싶나요? 돈도 벌면서 사랑도 얻고 싶나요? 그런데 글 한 줄로 책을 엮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사랑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던가요? 사랑보다 돈이 앞서는 터라, 사랑은 그저 허울어린 껍데기 입말림으로 그치지 않던가요?


  사랑으로 쓴 글은 사랑이 물씬 배어나옵니다. 돈바라기로 쓴 글은 돈냄새가 풀풀 납니다. 이름값을 노리고 쓴 글은 이름내음이 고약하게 넘치지요. 논문이나 학위를 노리고 쓴 글을 보셔요. 얼마나 겉치레가 자르르 흐르는가요? 신문 사설이나 논설을 보셔요? 얼마나 겉발림이나 허풍이 반드르르 흐르는가요?



[푸름이 1991.9.27.] 어느 분 글에서 얼핏 ‘푸름이’란 낱말을 읽는다. 푸름이? 푸름이가 뭐지? 아, 그래, 그렇구나. ‘청소년’은 한자말이었구나. ‘푸름이’가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이름이네. 와, 멋지다. ‘어린이’처럼 ‘푸름이’로구나. 그래, 출판사 이름도 ‘푸른나무’였네. 다 그런 뜻이었네. (266쪽)


[학번 2000.3.25.] 나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으니 고졸이다. 고졸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자꾸 “그래도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다니까 학번이 있을 거 아니에요? 몇 학번이에요?” 하고들 물어본다 … 학번을 묻는 그들은 학번으로 줄을 세우려는 뜻이 뼛속까지 새겨졌다고 느낀다. (272∼273쪽)



  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쓰면서 구태여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냥 글쓰기가 아닌 “우리말 글쓰기”입니다. 그냥 글쓰기를 말하지 않고 “글쓰기 사전”으로 말합니다.


  마음에 생각을 심는 말을 옮긴 글이 요즈음에는 꽤 많이 사라졌다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아름다이 살림을 가꾸는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려는 뜻을 펴는 말을 옮긴 글도 요사이에는 퍽 많이 없어졌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에요.


  토박이말이 아닌 ‘우리말’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우리 사랑으로 나누는 말’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남이 쓰는 말을 따라가지 말자는 소리입니다. 남 눈치를 보지 말자는 소리입니다. 오직 ‘우리 스스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찾아서 차곡차곡 글쓰기를 노래하자는 소리입니다.



[헌책 2004.7.1.] 모든 책은 헌책이다. 모든 책은 새책이다. 모든 책은 삶이다. 모든 책은 사랑이다. 모든 헌책은 새책이다. 모든 새책은 헌책이다. 모든 헌책은 웃음이다. 모든 새책은 눈물이다. 모든 책은 씨앗이다. 그냥그냥 말놀이를 해본다. (286∼287쪽)



  물어볼게요. 글씨를 잘 써야 좋은 글이던가요? 이름난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어야 좋은 책이던가요? 널리 알려진 사람이 썼기에 좋은 글이던가요? 널리 알려진 사람이 쓴 책이라서 좋은 책이던가요?


  누가 썼든 좋은 마음이 흘러야 좋은 글이지요? 어느 출판사에서 펴냈든 좋은 생각이 가득해야 좋은 책이지요?


  글씨가 삐뚤빼뚤이어도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글맛이 다르고 줄거리가 달라요. 글씨는 반듯하더라도 마음이 없다면 글맛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줄거리가 없겠지요.


  요즈막에는 ‘캘리그래프’라는 영어를 써서 번듯번듯 손글씨를 뽐내곤 하는데요, 캘리그래프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그냥 ‘우리 손글씨’를 수수하고 투박하게 쓰면 더 좋겠습니다. 자랑할 일도 없고, 숨길 일도 없어요. 생채기를 감출 까닭도 없지만, 또 내세울 까닭도 없겠지요.


  우리는 마음을 나누려고 말을 해요. 글이라고 다를까요? 글도 같아요. 잘 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니고,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려고 쓸 글이 아니에요. 돈이 되도록 쓸 글조차 아닙니다. 그저 하나예요. 너랑 내가 마음으로 만나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쓸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글입니다.



[글씨] 마음에 씨가 있어 ‘마음씨’이다. 말에 씨가 있어 ‘말씨’이다. 글에도 씨가 있으니 ‘글씨’이다. 우리는 어떤 결이나 무늬나 빛이나 넋으로 글에 씨를 담으면서 노래할 수 있을까. (311쪽)

[나] 네가 스스로 너다움(나다움)을 가꾸면서 환하게 빛내기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다. 거꾸로 보아도 같다. 내가 스스로 나다움을 돌보면서 눈부시게 밝힐 수 있기에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있다. (312쪽)

[돈] 서로 즐겁게 일하면서 나누는 이음고리로 돈이 있다. 내 일삯을 돈으로 받고, 네 일삯을 돈으로 준다. 때로는 마음으로 일값을 치르고, 때때로 푸성귀나 열매나 뜨개옷이나 손글월로 일값을 주거니받거니 한다. (315쪽)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라는 책은 제가 한글을 처음 익힌 1982년부터 2019년 사이에 쓴 글 가운데 추려서 손질해서 엮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동안 수첩이나 공책을 꽤 잃거나 빼앗겼어요. 때로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던 날도 있어 마음에 눈물로 새기기도 했습니다.


  종이에 적은 글은 종이에 적은 대로 애틋하더군요. 마음에 새긴 글은 마음에 새긴 대로 아프데요. 애틋한 마음은 애틋하게 손질했습니다. 아픈 마음은 아프게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이 잘라냈습니다. 아직은 다 털어내거나 밝힐 수 없기에 지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뚜렷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1982년부터 2019년 사이에 쓴 모든 글은 언제나 한 가지가 밑바닥에 흐르더군요. 바로 ‘사랑’이요, ‘꿈’이요, ‘노래’였어요. 여기에 ‘숲’이자 ‘사람’이고요.



[사랑] 사람답게 살아가는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새로운 숨결이 드러나는 길이 사랑이라고 느낀다. (324쪽)

[이오덕] 박정희 독재가 서슬퍼렇게 새마을운동으로 모든 시골을 무너뜨리던 무렵, 제발 그런 짓을 멈추고 아이들을 참답게 사랑하며 가르치는 터전이 피어나기를 꿈꾸면서 ‘참교육’이란 말을 처음 썼다. (331쪽)

[치마바지] 바지를 품은 치마. 치마인 척하는 바지. 치마랑 바지를 함께. 마음껏 치마멋을 즐길 수 있는 옷. 자전거를 달릴 적에 든든하면서 거뜬하다. 치맛속을 들여다보려는 응큼한 사내를 한칼에 물리칠 수 있다. (338쪽)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이 별에서, 꿈을 사랑스레 이루려고 걷는 이 별에서, 노래하며 사랑을 꿈꾸는 이 별에서,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인 이 별에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이 별에서,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글을 씁니다. 그저 사랑을 담아서. 오직 꿈으로. 참말로 노래하면서. 언제나 숲바람을 마시고, 사람이라는 숨결을 빛내면서. ㅅㄴㄹ




한 줄 써도 노래

두 줄 적어도 노래

석 줄 그려도 노래

닷 줄 적바림해도 노래


또박또박 글씨를 쓰고

똑똑히 글월을 적고

또렷이 글발을 그리고

오롯이 글자락 적바림하지


마음에 담아서 가꾸는

고요하며 환한 씨앗 같은

생각을 우리 눈으로 보며

같이 나누려는 글이야


말을 담은 그림이지

노래를 실은 무늬이지

꿈을 얹은 사랑이지

뜻을 품은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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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2.


《검은 여우》

 베치 바이어스 글/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2002.2.28.



이레쯤 앞서부터 곁님이 바늘을 깎는다. 우리 집에는 이런 나무 저런 나무가 제법 있다. 뜨개질을 할 적에도 온하루를 쏟아서 길디긴 날을 한 땀 두 땀 나아가는 곁님은, 겨울볕을 먹으면서 여러 날에 걸쳐서 바늘을 깎고 다듬는다. 손수 깎은 뜨개바늘은 값을 매길 수 없겠지. 손수 지은 뜨개옷도 매한가지이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기쁜 하루를 누리려고 지은 살림에 어떤 값을 매길까? 나물 한 줌에, 무 한 뿌리에 어떤 값을 매겨야 알맞을까? 온사랑을 담아서 쓴 동시 한 꼭지나 책 한 자락에 어떤 값을 매겨야 걸맞을까? 사고파는 값이 아니라, 즐기거나 나누거나 사랑이 흐르는 빛일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오늘이 되겠지. 《검은 여우》를 처음 쥔 지는 여러 해 되었으나 그만 까맣게 잊었다. 책상맡에서 퍽 오래 먼지만 묵은 책을 탈탈 털어서 펴는데 어느새 마지막 쪽을 넘긴다. 여우하고 마음으로 생각을 나눈 아이 마음이 대견스럽고, 이 아이를 너그러이 살핀 어른들이 고맙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이 꽝 하고 터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비록 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총을 팔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맨몸으로 따사로운 빛을 나누는 아이들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는 보금자리가 될 테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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