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가 말한다
강혜숙 글.그림 / 상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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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74


《쵸가 말한다》

 강혜숙

 상

 2014.11.15.



  아이가 노래합니다. 어버이가 들려준 노래를 가만히 마음에 담고서 살며시 부드러운 숨빛을 내뿜습니다. 어버이가 노래합니다. 낳은 아이에 돌보는 아이한테서 솟아오르는 기쁜 눈빛을 받아 어버이 가슴에서 깨어나는 숨결을 한 올씩 가다듬으면서 일렁입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둘이 부르는 노래는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먼먼 옛날부터 둘 사이에서 흐르던 사랑에서 비롯합니다. 대중노래도 유행노래도 교향노래도 나쁘지 않으나, 이런 노래는 몰라도 됩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적 없더라도 저절로 흐르는 노래를 부르면 되어요. 착하게, 상냥하게, 어질게, 슬기롭게, 기쁘게, 해님 같은 얼굴로 노래하면 아름답습니다. 작사가나 작곡가나 가수는 따로 없습니다. 모든 아이랑 어버이가 언제나 작사가에 작곡가에 가수입니다. 《쵸가 말한다》에 나오는 어린이(어린 여우)는 굳이 입으로 노래하지 않아도 온 몸짓이 노래예요. 이 어린이를 돌보는 어버이도 굳이 입노래만 바라지 않아도 되어요. 숲이 고스란히 노래이고, 마을이며 보금자리이며 하늘도 노래이거든요.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바라보며 사랑합니다. 돌보면서 보살핌을 받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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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읽는 그림책테라피 다음별 컬렉션 2
김성범.황진희 지음 / 나는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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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73


《숲으로 읽는 그림책테라피》

 김성범·황진희

 나는별

 2019.10.7.



  고흥 발포 바닷가는 2012년 언저리까지 국립공원이었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국립공원에서 빠지더니, 으리으리한 광주청소년수련원이 섰습니다. 국립공원이던 예전 발포 바닷가는 아름드리숲이 빛났고, 바닷물하고 모래밭이 참 싱그러웠습니다. 그러나 국립공원이던 때에도 그곳에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술판을 벌이는 사람이 많았어요. 고흥에서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은 ‘군사드론시험장’을 큰돈 들이면서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마음을 기울이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환경단체가 없네요. 이 모습을 보고 환경단체 뒷배를 끊었습니다. 《숲으로 읽는 그림책테라피》를 읽으며 어쩐지 ‘서울에 머무는 환경단체’가 떠오릅니다. 숲이란 무엇일까요? ‘환경·그린·녹색’이란 무엇인가요? 서울에서 맴도는 환경단체는 왜 ‘푸른숲’ 같은 수수한 길에는 손을 못 내밀까요? 숲에 깃들면 종이책이 없어도 됩니다. 멧골에서 냇가에서 바다에서 오롯이 하늘 흙 푸나무 바람 해 별을 품으며 깨어납니다. ‘테라피’ 말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요. 이론은 접고 살림을 노래하면 좋겠어요. ‘치유’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숲바람으로 마음빛을 ‘씻’고 춤춰 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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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7.


《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글·그림, 만만한책방, 2017.11.27.



전주에 있는 마을책집 〈잘 익은 언어들〉 책집지기님이 고정순 님 그림책을 여러 가지 보여주고 이야기해 주셨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동안 문득 들추기는 했으나 막상 사지는 않은 그림책을 빚은 분이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곱씹었다. 예전에 나는 무엇을 읽었고, 오늘 나는 이 그림책을 어떻게 다시 듣고 새롭게 만나는가 하고 헤아렸다. 여러 가지 그림책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드를 올리고》를 장만하자고 생각했다. 이 그림책은 ‘내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 아니지만, ‘내가 장만할 만한’ 그림책이네 하고 느꼈다. 오늘 내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을 테지만, 그림책을 빚은 분이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 새롭게 거듭날 길을 헤아려 보면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 그림책이 꽤 아름다웁겠구나 하고 느꼈다. 다만, 그림책을 빚은 분이 사랑길을 가면 되겠지. 사랑길 아닌 다른 길을 간다면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노릇이요, 오롯이 사랑길로 그림책을 지으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러하지 않을까? 모든 새책집이며 헌책집은 모든 책을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사랑으로 읽고, 사랑으로 맞이하고, 사랑으로 다루며, 사랑으로 이웃한테 알려주는 하늘터가 아닐까? 두 팔을 올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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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노키즈존 : 아이가 시끄럽다고? 노래하거나 울거나 웃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아이가 마구 군다고? 그러면 아이를 가르치고, 어른으로서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주어야지. 여러 판 가르치고 보여주었는데도 아이가 안 하거나 못 한다고? 그러면 더 상냥하고 따스하게 가르치고 보여주어야지. 모든 아이가 한글을 척 보면 다 외워서 반듯하게 쓰는가? 글씨를 익혀서 반듯하게 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아이가 예의범절을 모른다고? 그러면 아이가 예의범절을 익히도록 온마을이, 온나라가, 온집안이 함께 마음을 기울여서 차근차근 이끌 노릇이지. 아이는 으레 넘어진다. 아이는 으레 떨어뜨린다. 아이는 으레 부딪히고 깨뜨린다. 이때마다 ‘너 한 판 잘못했으니 다시는 만지지 말거나 하지 못하’게 하면 잘 풀릴까? 넘어지고 깨지고 부수는 길을 어떻게 찬찬히 다스리고 돌보고 보듬으면서 튼튼하고 참한 사람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길을 익히지 못한 아이가 ‘나이만 먹는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 어릴 적에 이 아이가 둘레 어른한테서 받은 그대로 새로운 아이들한테 돌려주겠지. ‘노키즈존’을 말하는 사람은 어릴 적에 따스하거나 차분한 손길을 받았을까, 못 받았을까? 노키즈존을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할 까닭이 없다. 아이도 어른도 새롭게 배울 노릇이다. 아이는 다같이 어우러지는 마을에서 즐겁게 뛰노는 길을 익힐 노릇이요, 어른은 아이가 마을에서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상냥하면서 부드럽고 사랑스레 알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길을 익힐 노릇이다.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배워야지. 노키즈존이란, 어른하고 아이가 새롭게 만나며 배우는 길을 모조리 가로막고 만다. 아이도 배울 일이지만, 어른도 배울 일이다. 자꾸 장난을 치거나 개구지게 구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때와 곳을 가리도록 이끌어야 서로 즐거울까’를 어른도 배워야지. 언제까지 어른들이 골만 부리거나 아이를 꽁꽁 싸매거나 두들겨패거나 막말을 하는 길을 갈 셈인가? 아이가 ‘못 하게 막으’면 풀릴 줄 아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아이가 배울 수 있는 마을’로 달라져야 한다.


아이를 함께 아끼거나 돌볼 줄 모르는 마음이란 사랑이 없는 차디차거나 메마른 삶이겠지. 더구나 어른이란 사람 누구나 아이란 나날을 지나와야 한다. 아이로 살지 않고서 어른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5살 밑으로 안 된다”거나 “19살 밑으로 안 된다”고 금을 긋는 책이나 영화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마구잡이로 하거나 구는 짓을 “15살 밑”이나 “19살 밑”으로 그어 놓지는 않는가? 20살부터는 마구잡이로 구는 짓이 흐르는 책이나 영화를 거리끼지 않고 보아도 좋은가? 아이를 손사래치겠다는 곳이라면 ‘사랑이 없는 곳’이라고 느낀다. 또는 ‘생각이 없는 곳’이거나 ‘삶이 없는 곳’이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곳’이라 하겠지. 노키즈존이니 ‘아기를 밴 어머니’도 가면 안 되겠지. 스스로 아이였고, 오늘 곁에서 아이로 살아가는 숨결을 슬기로이 가르치고 이끌면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살아가도록 어깨동무하는 빛을 키우지 않는다면, 이 나라나 마을이나 터전이 갈 길은 뻔하다. 2019.12.1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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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원 화실 비룡소 창작그림책 35
이수지 글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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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책으로 삶읽기 544


《나의 명원 화실》

 이수지

 비룡소

 2008.12.26.



‘그래, 훌륭한 화가가 되려면 진짜 화가를 만나야 하는 거야!’ (6쪽)


나는 내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학교에서 그린 것을 똑같이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1쪽)


나는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도 크레파스로 ‘가을 운동회’나 ‘공룡 시대’를 그리고 있는데, 나는 물감으로 ‘수채 정물화’를 그린다 이겁니다. (28쪽)



《나의 명원 화실》(이수지, 비룡소, 2008)을 읽는데 마무리가 어영부영.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하는 이야기가 없이 덩그렁. ‘그래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하는 대목은 싹둑. 김이 샌다. 스스로 더 밝히거나 말할 수 없는 어린 날이라면 스스로 제대로 밝히거나 찬찬히 말할 만한 나중에 그릴 노릇이겠지. 이 책으로만 본다면 그린님은 겉멋으로 붓을 쥔 셈이고, 그 겉멋을 내내 품으며 사는 셈이지 싶다. 겉멋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멋에는 겉멋하고 속멋이 있으니까. 다만 속멋을 읽으며 나누는 기쁨이 없이 붓을 쥔다면, 이 그림에 무엇이 남고 어떤 씨앗을 심을 만한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는 왜 그림을 그리고 읽는가? 남한테 잘 보이려고 그리거나 읽는가? 큰상을 받아서 큰이름을 떨치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읽는가? 우리를 둘러싼 숱한 이야기를 찬찬히 담아내어 즐겁게 얼크러지면서 새롭게 웃음짓는 길에 서면서 붓을 쥐는 그림이 아니라면, 좀 덧없거나 밍밍하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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