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사명·소명 : 사명의식이 있다면 사명하고 멀어진다. 소명의식이 있어도 소명하고 멀어진다. “해야 한다”는 없다. 하고 싶다는 마음을 즐겁게 추스르기에 비로소 할 수 있고, 시나브로 이루며, 하나하나 열매를 맺는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까닭이 없고, 너가 있기에 될 까닭이 없다. 누구이든 좋다. 언제이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꼭’이나 ‘반드시’를 없애자. ‘즐겁게’를 품자. 차근차근 걷자. 1994.5.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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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9.


《분홍 몬스터》

 올가 데 디오스 글·그림/김정하 옮김, 노란상상, 2015.5.4.



“벼리야, 보라야, 이 그림책 읽었니?” “응, 읽었어.” “그랬구나. 재미있지 않니?” “응.” 재미있구나 싶은 그림책이라면 아이가 먼저 알아보고서 어느새 읽는다. 재미없구나 싶은 그림책이라면 슬쩍 들추다가 덮고는 안 쳐다본다. 《분홍 몬스터》는 전북 전주에 있는 마을책집 ‘잘 익은 언어들’에서 데려왔다. 그곳 책집지기는 이 그림책에 흐르는 아름다운 마음빛을 이웃하고 나누며 즐거우셨겠지. 우리 집으로 온 이 그림책은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서 우리 책숲을 찾을 분들한테 나긋나긋 생각빛을 이어주겠지. 그런데 몬스터란 뭘까? 이 영어를 으레 ‘괴물’로 옮기지만, 몬스터나 괴물은 누구일까? 사람하고 다르게 생겼다면, 좀 우락부락 생겼다면, 좀 낯설게 생겼다면 몬스터나 괴물일까? 가만히 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배롱꽃 도깨비”라기보다 “배롱이”이지 싶다. 그저 배롱빛인 즐겁고 이쁜 아이라고 느낀다. 너는 배롱이, 나는 노랑이. 너는 빨강이, 나는 파랑이. 너는 까망이, 나는 하양이. 너는 하늘이, 나는 꽃님이. 우리는 서로서로 다르기에 반갑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에 새삼스레 만나서 새롭게 이야기꽃을 지핀다. 다르니까 금을 긋고서 싸우거나 내쫓는 길이 아니라, 다르니까 손을 잡고 둥글게 춤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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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8.


《시간의 목소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글/김현균 옮김, 후마니타스, 2011.7.25.



아이들은 집에서 고구마를 씻어서 삶는다. 나는 마을 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는다. 고구마를 다 삶았다며 큰아이가 와서 “내가 거들 일 없나요?” 하고 묻다가 “어라, 아버지가 혼자 다 했네?” 하고 웃는다. “그럼, 슥슥삭삭 마쳤지.” 젖은 손발을 말리는 동안 《시간의 목소리》를 폈고, 집으로 돌아가서 더 편다. ‘하루·나날·때’하고 얽힌 삶을 조곤조곤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눈빛일까, 중남미라는 터전에서 피어난 꽃빛일까. 좀 수수한 말씨로, 여느 터전에서 책 한 줄 읽지 않거나 못한 채 살아온 사람들 말씨로 옮기면 어떠했으려나 하고 돌아본다. 왜 번역가나 작가는 ‘여느 사람들 말씨’를 안 쓸까? 왜 문학을 하거나 정치·경제·사회·교육·행정·과학·종교를 하는 모든 전문가는 ‘땅을 만지고 나무를 보듬으며 하늘을 마시는 사람들 말결’하고 등을 질까? 그러나 물을 까닭이 없겠지. 책을 읽은 사람은 책글을 받아들여서 새로 편다. 책을 안 읽은 사람은 흙이며 숲이며 바람을 읽고 느끼면서, 이 터전에서 자라나는 숨결을 사랑으로 품는다. “하루 목소리”를 되새긴다. 어제를, 오늘을, 모레를, 우리가 이곳에서 어우러지는 바람소리에 노랫소리를 곱씹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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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레에 한 꼭지는 하자고 생각하다가

그만 잊고서 지나갔다.

올해에

동시 일본글로 옮기기를

몇 꼭지 했을까?

부끄럽네.

오랜만에 하나 옮겨 보았다.


+ + +


冬場 (森歌/崔鐘圭)


冬が早く來れば

凍りついた川の水乘って

長い長いつららを取って

雪原で轉がるだろう


冬が身近に近づいてきたら

凍てついた川の水かいて食べて

長いつらら鼻に付けて

雪原にすっぽり埋まるでしょ


冬がさっさと訪ねてきたら

凍りついた手ふうふう息吹遊び

長い長いつらら箸

雪原には雪だるま遊び場


冬が もう 來たんだ

はだしで氷を踏んでみようか

素手で雪片を受けてみようか

ああ, 冷えるけど凉しい


+ + +


겨울 (숲노래/최종규)


겨울이 어서 오면

꽝꽝 얼어붙은 냇물 지치고

길쭉길쭉 고드름 따먹고

눈밭에서 구르지


겨울이 냉큼 다가오면

언 냇물 긁어서 먹고

길다란 고드름 코에 붙이고

눈밭에 폭 파묻히지


겨울이 얼른 찾아오면

언손 호호 입김놀이

길고 긴 고드름 젓가락

눈밭에는 눈사람 놀이터


겨울이 이제 왔어

맨발로 얼음 밟아 볼까

맨손으로 눈송이 받아 볼까

아아 시리지만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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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학교라면 : 모름지기 학교라면 둘레가 숲으로 가득한 멧골을 여럿 끼고, 널따란 들판을 품고, 구불구불 길다란 냇물을 감고, 저 끝에 바다가 있고, 밤하늘 별빛이 무지개처럼 흐르고, 온갖 이웃 숨결이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터에 있겠지. 이런 건물하고 저런 시설을 갖추는 학교가 아닌, 숲에서 숲으로 배우며 숲을 노래할 만한 데여야 학교라 할 만하겠지. 사람인 어른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다. 새가 가르치고, 풀벌레가 가르치며, 잎망울이랑 꽃망울이랑 열매가 함께 가르친다. 두 손으로 배우고, 두 발로 익히며, 온몸으로 받아들이니, 마음으로 사랑을 일깨우는 학교이다. 학교라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살림을 한다. 학교라면 졸업장을 주지 않고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학교라면 수업 시간이 아닌, 스스로 뛰놀고 스스로 일하며 스스로 꿈꾸면서 스스로 피어나는 터전이다. 학교라면 너랑 내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신나게 바람을 먹고 빗물로 씻으며 햇볕으로 몸뚱이를 튼튼하게 다스리는 자리이다. 2012.10.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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