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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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여덟 살 눈높이’로 말하고 글쓰기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사사키 겐이치

 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4.19.



이 사전에 실린 세상의 의미는 뭔가 다르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의미 이상의 뭔가를 호소하고 있다. 다른 데는 없는 독특한 문장으로 말하는 이 사전은 평범한 사전이 아니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국어사전인 《신메카이 국어사전》이다. (9쪽)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생물학’이란 낱말을 찾으면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풀이합니다. 틀린 말풀이라 할 수 없습니다만, 어쩐지 허전합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전에서 ‘생물학’을 찾으니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보리 국어사전)으로 풀이합니다. 영 와닿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어린이가 사전을 뒤적이면서 생물학이 무엇인가를 얼마나 헤아리도록 도울 만한 뜻풀이일까요?


[숲노래 사전]

생물학 : 나는 누구이고 나를 둘러싼 숨결은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얽히면서 이 별에서 아름답고 즐거운 길을 찾아갈 적에 사랑이 될까를 다루는 길. 나를 비롯한 모든 숨결을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살림을 찾으려는 길.


  생물학을 다룬 책을 읽고 나서야 ‘생물학’이란 낱말을 찾아볼까 하고 생각했고, 여러 사전을 뒤적이다가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이런 말풀이라면 사람들이 사전을 안 뒤적이겠네 싶더군요.


  그렇다면 사전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을 생각하자면 먼저 ‘사전’이란 낱말부터 사전 뜻풀이를 봐야겠지요. 국립국어원 사전은 ‘사전’을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으로 풀이합니다. 어린이 사전은 “여러 낱말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낱말의 뜻, 소리, 쓰임새 들을 찾아보는 데 쓴다”로 풀이해요.


  어른 사전도 어린이 사전도 뭔가 빠뜨린 듯싶습니다. 더 깊은 뜻이나 대목을 짚어야 할 텐데 슬쩍 지나가거나 놓친 듯해요.


[숲노래 사전]

사전 : 말에 담은 생각을 찾아보면서 삶·살림·사람·숲·사랑을 다시 바라보거나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새롭게 알거나 받아들이도록 돕는 책. 문득 내뱉을 수 있는 어느 한 자락 삶을 오직 한 마디로 그려내어서 늘 새로울 수 있는 살림으로 지피는 이야기가 되는 바탕이 되는 말을 엮어서, 그 한 마디 말을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는 ‘오늘·사랑’을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한길로 이어서 즐겁게 나누도록 이바지하는 꾸러미. 나·우리 눈으로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엮은 말을 글로 담은 책.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


  ‘사전’이란 낱말 뜻풀이는 짧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전을 쓰는 일을 하면서 돌아보는데, 가면 갈수록 제가 쓰는 사전에 담을 ‘사전’ 뜻풀이가 길어집니다. 단출히 말하자면 사전이란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이 될 테지요. 풀이만 담는 책이 아니라 징검다리가 되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기에 사전이라고 여깁니다.



의외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전 편찬’이라는 분야 자체가 국어학회나 언어학회 등에서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83쪽)



  일본에서 사전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사사키 겐이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이기에 이런 책이 나올 만하지 싶습니다. 사전이라고 하는 책을 살뜰히 엮어 1000만이라는 사람들이 사서 읽는 일본이라고 하거든요.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아직 사전다운 사전을 엮으려는 발걸음이나 땀방울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목돈을 들여서 선보인 국립국어원 사전이 있으나 여러모로 허술하거나 엉망인 대목이 많아, 꾸준하게 손가락질을 받아요. 뜬금없는 올림말이 많고, 맞춤법이 뒤죽박죽인데다가, 겹말풀이·돌림풀이가 끊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야마다가 그런 뜻풀이를 쓴 것은 다른 사전의 모방을 되풀이하는 사전계에 대한 격분과 순수하게 사전의 진보와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04쪽)



  한국은 왜 온갖 사전이 아직 허술하거나 얄궂을까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탓이지 싶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볼 낱말은 낯설거나 어려운 낱말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사전이라고 하는 책은 우리 삶자리에서 흐르는 가장 쉬우면서 바탕이 되는 낱말을 찾아보면서 생각을 북돋아야 알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은 사전이 가면 갈수록 뚱뚱해지요. 뚱뚱해집니다. 이 말 저 말 자꾸 집어넣어 올림말 부피를 늘리기만 하거든요. 이와 달리 일본 사전은 뚱뚱해지지 않는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낡은 말’이나 ‘쓰임새가 다한 말’은 사전에서 빼낸다지요.


  일본이란 나라에서 사전 한 자락을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서 읽는 바탕이라면, 일본은 “읽는 사전”이기 때문이에요. 한국은 “책꽂이 구석에 모셔놓고 먼지를 먹이는 사전”이지요. 일본은 사전에 담긴 낱말을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며 말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한국은 “사전이기보다는 단어장 구실”을 하느라, 말빛이나 말결을 살피는 책이 아닌, “낯설거나 어렵다 싶은 낱말을 좀 흔한 다른 말로 바꾸어 놓은 단어장”에 머뭅니다.



소리도 없이 변하는 ‘말’을 절대적으로 정해진 의미로 한정하는 것은, 국가나 권력이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많은 출판사가 각각의 해석으로 국어사전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좀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376쪽)



  입시 얼거리인 한국에서는 예부터 ‘영어 단어장’이 나돌았습니다. 영어 단어장은 사전이 아닌 단어장입니다. 이 영어 한 마디를 저 한국말 한 마디로 1:1로 맞춘 틀이 단어장이지요. 오늘날 숱한 한국말사전은 ‘한자말 : 한국말’이나 ‘한국말 : 한자말’로 맞대어 놓은 단어장 얼거리예요.


  일본사전하고 얽힌 숨은 길을 적바림한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고마운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을 읽는 이웃님이 한국말도 한국말사전도 새롭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새로운 낱말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아침에 몇 가지 낱말을 새로 지었습니다. 새말짓기는 1984년부터 날마다 했는데요, 흔히 나도는 말이 제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혀짤배기에 말더듬이였던 터라, 웬만한 영어나 한자말을 소리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소리를 내기 부드럽고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을 했어요.


홀어르신·홀할머니·홀할아버지 ← 독거노인

-바라기 ← 추종자, 팬(fan), 지망생

포근말·좋은말·꽃말 ← 덕담

맛길·맛내기·맛솜씨 ← 레시피, 조리법, 요리법


  사전에 ‘나몰라’는 오르지 않습니다만, ‘소극적, 방관, 방치, 외면, 도외시’ 같은 뜻을 ‘나몰라’로 즐겁게 나타낼 만하고, 이렇게 쓰는 분이 무척 많아요. 때로는 ‘나몰라라’ 꼴로도 씁니다. ‘아이돌봄’이란 말은 ‘육아, 양육, 보육’을 담아낼 수 있어요. 예전에는 ‘보모, 보육사’라 하고 요새는 ‘베이비시터’란 영어도 쓰지만 ‘아이돌봄이(아이돌보미)’란 말을 즐겁게 쓸 만하지요. 글만 쓰는 사람을 놓고 ‘전업작가’라고 하던데, ‘-잡이’란 낱말은 어느 일을 깊게 할 적에 써요. 이 틀을 헤아리면 ‘글잡이·붓잡이’란 말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편자인 이마 씨는 좀처럼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이 점을 강하게 호소했다.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알 수 있고 또 어른들에게도 부족함이 없도록 설명한다는 이 방침은 현재도 준수하고 있습니다.” (146쪽)



  사전 뜻풀이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쓰는 말글이라면 으레 ‘여덟 살 눈높이’가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열 살 눈높이’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섯 살 눈높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훨씬 좋다고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눈높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함께하거나 나누거나 어깨동무하는 품이나 틈은 더욱 넓거든요. 다섯 살 눈높이로 알아들을 사전풀이라면 다섯 살부터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전문가 눈높이로 쓴 사전풀이라면 전문가 말고는 모르겠지요.


  사전을 비롯한 모든 인문책이, 또 신문·방송이 부디 적어도 여덟 살이나 열 살 눈높이로 맞추면 좋겠습니다. 여덟 살이나 열 살 눈높이인 사람부터 누구나 쉽고 즐거우면서 넓게 온누리를 품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길을 밝히면 좋겠어요. 그때에는 사전뿐 아니라 이 별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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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우리말이 아름다운 시



[물어봅니다]

한국말사전을 쓰는 샘님이 보기에 우리말이 아름다운 시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를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꼽기 어려우면 두 가지를 꼽아 주셔도 좋겠습니다.


[이야기합니다]

우리말을 잘 살려서 쓴 시로 흔히 윤동주 님이나 김소월 님이나 백석 님을 들곤 합니다. 이분들 시도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저도 이분들 시를 즐겨요. 다만 이분들 시보다 한결 즐기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때부터 끝없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이 가운데 두 가지를 들 텐데요, 앞에서는 널리 알려진 싯말 그대로 옮기고, 뒤에서는 제가 아이들한테 노래로 들려줄 적에 손질한 싯말을 옮기겠습니다.


※ 햇볕 (이원수)

ㄱ.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ㄴ.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 햇볕 (숲노래가 손질한 글)

ㄱ.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ㄴ.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되어요


제가 손질한 대목은 “초록이 되고”를 “풀빛이 되고”이고, “열매 속에 들어가선”을 “열매에 들어가선”이며, “온세상을”을 “온누리를”이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되어요”입니다.


이원수 님이 쓴 노래를 그대로 아이한테 불러 주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손볼 수 있다면 한결 고우리라 생각했어요. 저는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으로 부릅니다. 이는 이원수 님도 이렇게 노래를 고쳐서 부르기를 바라신 대목인데요, 사람들 입에 워낙 박혀서 고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여기셨다고 하지요.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한테는 새롭게 빛나는 말로 노래를 하고 싶어요. 고운 노래가 더욱 눈부시도록 살짝 손길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겨울 물오리 (이원수)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 겨울 물오리 (숲노래가 손질한 글)

얼음 어는 냇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판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냇물에서 같이 살자


지난날에는 ‘강’이 아닌 ‘내’라고만 했고, 드넓은 내일 적에는 ‘가람’이라 했다지요. 모래가 고운 냇물은 으레 ‘모래내’라 해요. 이 냇물 이름은 나라 곳곳에 참 많습니다. 하늘을 별빛으로 가르는 모습도 ‘미리내’라고 해요. 미르(용)가 노니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겨울 물오리〉란 노래에서 “강물”을 “냇물”로, “얼음장 위에서도”를 “얼음판에서도”로 손질해서 부릅니다.


저는 이 두 노래를, 동시를, 두 아이가 0살이던 무렵부터 10살이던 때까지 셀 수 없도록 불렀습니다. 예닐곱 살 무렵까지는 날마다 짧으면 한나절을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어요.


두 노래 가운데 〈햇볕〉은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마음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스스로 듬직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가 하는 실마리를 참 잘 밝혔다고 느껴요. 어린이도 어른도 다같이 햇볕이 되고, 햇빛이 되며, 햇살이 될 적에 오롯이 사랑으로 피어난다고 하는 뜻을 놀랍도록 단출히 풀어냈습니다. 게다가 우리 밥이란 바로 햇빛이면서 사랑이고, 우리 살림도 해님처럼 일구고 나누면서 활짝 웃자고 하는 마음까지 들려주어요.


동시 〈겨울 물오리〉는 이원수 님이 숨을 거두기 앞서 이녁 딸아이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려서 남긴 노래라고 해요. 저는 이 동시 〈겨울 물오리〉가 이원수 님으로서 우리한테 마지막으로 남기는 눈물글(참회록)이라고 느꼈어요. 이원수 님은 서슬퍼런 이승만·박정희 독재가 춤추던 때에도 독재정권을 나무라는 동화를 꾸준히 썼어요. 전태일 님이 몸을 불살라 죽은 뒤에 곧장 쓴 〈불새의 춤〉은 참으로 엄청났지요. 이 동화 〈불새의 춤〉은 1970년대뿐 아니라 1980년대에도 곧잘 가위질이 되었는데요, 1981년에 숨을 거둔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문학으로 눈물글을 남겼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로 〈겨울 물오리〉로요.


잘 보셔요. 얼음이 언 냇물이 추워서 동동동 구르는 아이는 오리를 보면서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 얼음판에서 맨발로 웃으며 뛰노는 오리를 보며 시나브로 기운을 내고, 어느덧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하고 외치면서 “오리들아 이 냇물에서 같이 살자” 하고 노래하지요.


이원수 님은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 지난날 친일시를 가슴에 묻고 살았구나 싶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눈물글을 쓸 수 없을 테니까요. 이원수 님을 기리는 곳에 ‘이원수 친일시’를 크게 붙였다고 하는데, 그 친일시 곁에는 꼭 이 〈겨울 물오리〉를 나란히 붙여놓고서, 1981년에 전두환이 칼춤을 추던 그무렵 눈물글로 남긴 동시라고 하는 덧말도 적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이쁜 낱말을 골라서 이쁘장하게 꾸며서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아름다움이란,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슬기로운 사랑이 바탕이 되어 태어난다고 느껴요.


잘잘못을 떠나, 우리가 저마다 살아온 길을 찬찬히 짚으면서 그 모든 발자국을 고이 끌어안고서 눈물로 씻고 웃음으로 피우며 허물벗기하고 날개돋이를 할 줄 알기에 비로소 동시요 시이며 문학이지 싶습니다. 제가 꼽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린 시’라면 이원수 님이 남긴 두 가지 동시입니다. 삶을 사랑으로 밝히기에 아름다운 〈햇볕〉이고, 삶을 눈물로 빛내기에 아름다운 〈겨울 물오리〉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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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31.


《아나스타시아 10 아나스타》

 블라지미르 메그레 글/한병석 옮김, 한글샘, 2018.6.25.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아픈 작은아이. 이 곁에서 나란히 아픈 큰아이. 덩달아 아픈 곁님. 세 사람은 얼마나 무럭무럭 크려고 한꺼번에 골골댈까. 넷 가운데 멀쩡한 사람이 집일을 도맡고, 이래저래 심부름을 한다. 한참 드러누웠다가 문득 기운이 올라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은 기운을 다 썼는지 새로 눕는다. 이것을 먹고 싶으며 저것을 먹고 싶다 해서 이모저모 차려 주면 “다 맛없어.” 하면서 물린다. 아플 적에는 물도 안 마시지. 내가 얼결에 이것도 저것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올해에는 마음읽기를 어느 만큼 틔웠으니 새해에는 마음노래를 한결 기쁘게 부르자고 생각한다. 한 해 마무리를 하는 노래꽃으로 냉이 이야기를 썼다. 냉이 마음을 읽고서 옮기는데, 참 많은 풀이 겨울바람을 품고서 더욱 푸르더라. 《아나스타시아 10 아나스타》를 아껴서 읽는다. 오롯이 숲아이로 태어나서 자라는 ‘아나스타’ 곁에는 갖은 푸나무하고 새하고 짐승이 동무이자 이웃으로 지낸다. 아나스타를 낳은 어머니 아나스타시아는 꽤 떨어진 채 즐거이 숲살림을 노래한다. 생각해 보니 오늘날 이 나라 어린이는 ‘학교 또래’만 있을 뿐, 새도 푸나무도 바람도 짐승도 벌나비도 동무나 이웃으로 못 삼는다. 이렇다면 마음읽기도 마음벗도 다 멀어지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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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목소리 1
나츠 미도리 지음, 치쿠야마 키요시 그림, 문기업 옮김, 스기모토 아야 협력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250


《꼬리의 목소리 1》

 니츠 미도리 글

 치쿠야마 키요시 그림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9.6.30.



  우리 집에 눌러붙으려는 마을고양이가 늘어납니다. 적잖은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 헛간에서 태어나 잘 뛰어놀고 자라다가 뿔뿔이 흩어졌는데 지난해부터 슬금슬금 섬돌 언저리를 맴돌며 해바라기를 하고 사람손을 타려는 마을고양이가 생겨요. 겨울이라 그럴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마을고양이나 골목고양이가 아늑히 깃들 만한 빈터가 나날이 줄어듭니다. 서울이야 워낙 땅값이 비싸서 쪽틈에도 뭔가 세우니 그렇다지만, 시골도 어딘가 빈틈이 있으면 자꾸 뭔가 올리거나 시멘트로 덮어버립니다. 이 별은 차츰차츰 ‘사람만 살려는’ 길로 나아가려는 듯해요. 《꼬리의 목소리》 첫걸음을 읽습니다. 사고파는 물건이 아닌, 지겨우면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닌, 팽개쳐도 되는 물건이 아닌, 오롯이 숨이 있고 마음으로 말할 줄 알며 서로 사랑하며 어우러질 줄 아는 목숨붙이를 마구 다루는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큰 병원 울타리에 머물며 팔짱을 끼는 수의사 한 사람하고, 법으로도 사회에서도 안 돌보는 목숨붙이를 마음으로 아끼려는 지킴이 한 사람이 맞물립니다. 살랑거리는 꼬리를, 축 처진 꼬리를, 춤추는 꼬리를 보며 알 수 있을까요. ㅅㄴㄹ



“수의사 양반, 충고하지. 현실을 모른 채 살고 싶다면, 소독된 병원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좋아 …… 동화에서 본 듯한 귀여운 동물의 달콤한 품에서 깨고 싶지 않다면, 이제부터 내가 가려는 곳에는 평생 접근하지 마!” (56∼57쪽)


“아냐. 굶주림으로 인한 착란 현상으로 자신의 앞다리를 먹은 거지. 흔한 일이야.” (70쪽)


“법률상 애완동물은 개인의 재산. 즉 ‘물건’에 지나지 않아. 유괴하면 절도고, 죽이면 기물파손이 되지. 학대당하는 애완동물을 구출해도, 주인의 소유권이 우선이라 법적으로는 절도야.”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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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역 애장판 下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249


《수역 下》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11.6.30.



  눈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눈만 뜨면 만나요. 눈앞에 없으면 그이 곁으로 찾아가야 만날 텐데, 먼길을 달려갈 수 있고 고요히 꿈나라에서 마주할 수 있어요. 멀거나 가까운 길은 없습니다. 마음이 닿으면 먼길이란 없고, 마음이 안 닿으면 그저 멀 뿐입니다. 《수역 下》를 펴면 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댐을 짓는다면서 마을이 가라앉아야 했고, 마을을 떠나야 하면서 그 마을에 깃든 모든 이야기에다가 못에 빠지는 바람에 죽고 만 아이를 그릴 수 없는 아픔까지 잊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을을 떠난들 잊거나 모른 척할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물에 가라앉았어도 마음으로 늘 그리는 마을이요, 꿈에서 언제나 만나는 아이인걸요. 잊으려 할수록 더욱 떠오릅니다. 모른 척하며 멀리 달아나려 하지만 언제나 그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길은 하나이지요. 몸을 넘어 마음으로 만나는 길을 살피고,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홀가분하면서 따사로운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그릴 줄 알면 돼요. 그리움도 사랑도 가슴에 묻습니다. 꿈도 노래도 가슴에서 지핍니다. 물이 흐릅니다. 물결이 입니다. 빗물이 못물에 톡 떨어져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ㅅㄴㄹ



‘오늘은 즐가웠어. 잠들면 작별이려나? 또 올 수 있을까?’ (41쪽)


“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린 척하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어디에 가든 내 머리는 이곳을 못 떠날 것 같은데.” (72쪽)


“이대로 강을 쭉 내려가다 보면 너희 동네가 나올지도 몰라. 때를 놓치면, 난 네 부모와 할미를 볼 낯이 없어진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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