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6.


《신기한 그림 족자》

 이영경 글·그림, 비룡소, 2002.5.20.



아침에 기름집에 전화를 넣는다. 실비가 뿌리는 날씨인데 “비가 와서 …….”라고 하며 머뭇거리는 목소리. 그렇구나 여기며 전화를 끊는다. 낮 세 시가 다 되어 빗방울이 굵은 때에 기름집 짐차가 고샅에 선다. 어라? 빗줄기가 굵은데 오셨네? 아침에 실비일 무렵 오셨다면 비를 안 맞았을 텐데. 오늘 책숲 알림종이를 들고 읍내로 가서 복사해서 부치려고 했더니 이튿날 해야겠다. 세 시 버스를 타고 가면 늦는다. 2002년에 나온 《신기한 그림 족자》를 편다. 어릴 적에 곧잘 들은 옛이야기를 담았다. 집에 걸어 놓은 그림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날마다 돈을 조금씩 내주어 살림을 꾸린다지. 그림임자는 나날이 누리는 ‘많지 않아도 먹고살기에 알맞은 돈’이 성에 차지 않아 골부림질을 하다가 하루 살림돈마저 누릴 수 없었다지. 가만 보면 지구별 곳곳에 이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얼마나 누려야 넉넉하느냐고, 무엇을 어떻게 누구하고 누리면서 스스로 즐겁겠느냐고 묻는 이야기이리라. 살짝 다르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한테는 전쟁무기가 얼마나 있어야 걱정없을까? 전쟁무기하고 군대에 돈을 대느라 휘청거리는 살림 아닐까? 책에 적힌 글을 꽤 고친다. “당산나무 아래 묶어”가 아닌 “당산나무에 묶어”처럼. 글은 꽤 아쉽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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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손글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1.3.)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얼결에 인스타그램에도 사진하고 글을 올립니다. 새로운 누리길에 처음 사진이나 글을 올릴 적에는 헤매지만, 몇 판 하고 나면 이제 아무렇지 않습니다. 익산에 지난해에 문을 연 그림책집 지기님이 손글월 이야기를 띄우셔서 며칠 동안 생각만 하던 ‘들깨’ 이야기를 한달음에 노래꽃으로 씁니다. 술술 잘 나왔네 싶어 읍내 우체국에 가서 부쳤어요. 손글로 담아서 나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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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두사람 6
요시다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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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546


《일하지 않는 두 사람 6》

 요시다 사토루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그렇게까지 해서 놀래키고 싶어하다니. 어린애라니까. 그래도 좀 힘이 나네.” (33쪽)


“평일에는 대학에 가고, 주말엔 알바라니, 성실한 양아치네.” “애초에 난 양아치가 아냐.” (111쪽)


“왜 하루코가 사과해?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잖아.” “그, 그게 아니라, 유키한테 험담을 하는데도 아무런 말도 못 해줘서 미안해.” (118쪽)



《일하지 않는 두 사람 6》(요시다 사토루/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고서 여러모로 아쉬웠기에, 일곱걸음이 잇달아 나왔으나 눈이 가지 않는다. 이 만화책을 다섯걸음까지 읽으며 생각하기로, ‘일하지 않는 둘’이 아니라 ‘돈벌이를 안 하는 둘’을 그리기에 뜻있다. ‘돈벌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누리려는 둘’을 그리기에 고운 줄거리이다. 그리고 그 둘 곁에는 이 둘이 ‘돈벌이를 안 할 뿐’이며, 언제나 ‘착하고 상냥한 마음이자 눈길로 지내려는 숨결’이 흐르는 줄 느끼면서 다가오는 이웃이 있기에 볼만하다. 부디 이 얼거리를 되살려 주기를 바랄 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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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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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559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

 이루리

 북극곰

 2019.7.12.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상한 교육을 받고 자라서 이 제도가 얼마나 나쁜지조차 잊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바로 이 이상한 교육 제도 때문에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33쪽)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뿐입니다. (47쪽)


소피의 가족은 호랑이가 가져온 시련을 아주 놀라운 태도로 해결합니다. 삶의 수많은 문제를 헤쳐 나가는 열쇠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태도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135쪽)


우리에게는 두 가지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몸에 있는 눈이고, 또 하나는 우리 마음에 있는 눈입니다. (293쪽)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푸름이더러 그림책을 읽으라고 건네는 어른은 없다시피 합니다. 초등학교 높은학년쯤 되면 그림책보다는 글책을 더 읽으려는 어른이 많습니다.


  이제는 그림책 나이를 ‘0살부터 읽는 책’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그림책을 0살부터 읽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열다섯 살 푸름이나 스무 살 젊은이더러 읽으라고는 선뜻 이야기하지 않는 흐름이에요. 어린이문학도 매한가지이고요.


  그림책을 꾸준히 펴내는 북극곰 출판사 일꾼으로서 어떤 그림책으로 즐거운 나날인가를 밝히는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이루리, 북극곰, 2019)을 읽었습니다. 남들이 좋아하는 그림책보다는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책을 꼽고,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우리 삶터가 여러모로 안타깝다고 느끼는 마음을 같이 밝힙니다.


  글쓴님이 안타까이 바라보는 대로 입시지옥이라는 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린이도 어른도 고단할 테고, 그림책을 다같이 느긋이 누리는 살림도 좀처럼 짓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름만 0살부터 읽는 그림책이 아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더라도 어깨동무하며 누리는 그림책이 되자면, 우리 삶터도 함께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후룩후룩 읽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글 한 줄을 자꾸자꾸 곱씹다가 노래처럼 읊는 그림책입니다. 휙휙 넘기는 그림책이 아니에요. 그림 하나를 오래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눈을 감고서 우리 앞으로 어떤 꿈을 펼칠 만한가 하고 이끄는 그림책입니다.



전래동화를 만든 사람들은 과거의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전래 동화를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 옛날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229쪽)



  그런데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을 읽다가 전래동화가 ‘옛날사람 생각’이라고 밝힌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전래동화’라는 이름은 동화책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입으로 들려준 이야기’에 붙인 이름일 뿐이니까요. 예부터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들려주면서 이어온 이야기는 동화도 아니고 ‘전래동화’조차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나 전래동화란 이름을 붙인’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는 옛날사람이 옛날사람으로 사는 길이 되는 생각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으로 살림을 가꾸는 길을 재미난 줄거리로 기쁘거나 슬프게 엮어서 들려주는 따사로운 말빛이라고 할 만하다고 여깁니다.


  생각해 봐요. 1950년에 쓴 동화는 ‘전래동화’일까요? 2000년에 쓴 동화는 2020년 오늘로 보자면 ‘전래동화’일까요? 앞으로 2500년쯤 될 무렵 2020년을 돌아보면 요즈막 동화도 ‘전래동화’가 되겠지요?


  이야기이든 동화이든 언제 어디에서 누가 지었는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2020년에 쓴 동화 가운데에도 낡은 생각이 바탕인 글이 있습니다. 생각이 새로운가 낡은가를 볼 일이요,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살림을 슬기롭게 짓는 길을 스스로 찾도록 이끄는가 아닌가를 살필 일이겠지요.


  우리는 아름다운 동화를 읽으면 됩니다. 아주 옛날부터 흐르던 이야기에 전래동화란 이름을 붙였든, 이제 갓 나온 동화이든, 아름답게 삶을 짓는 노래를 부르는 동화를 읽으면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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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전래동화 : ‘전래동화’라는 이름이 우습다. 동화는 그저 동화일 뿐이다. 더구나 먼먼 옛날부터 글이나 책이 아닌 말로 삶을 밝혀서 이야기를 지어서 나누었다. 이야기를 말로 하든 글로 옮기든 언제나 이야기일 뿐이다. 동화라는 옷은 입되 이야기는 없이 짜임새만 있다면, 이런 동화는 재미없다. 어느 때를 가르려고 굳이 ‘전래동화’란 이름을 쓰는구나 싶지만, 1950년에 누가 지은 동화라 해도 아름다운 동화이면 그냥 동화라 할 뿐이다. 1850년에 지었든 2020년에 지었든 모두 동화이다. 그런데 동화란 이름도 어쩐지 엉성하다. ‘이야기’이면 되지 않을까? 삶이야기를, 사랑이야기를, 살림이야기를, 마을이야기를, 숲이야기를, 꿈이야기를, 하늘이야기를, 별이야기를 쓰고 들려주면 넉넉하리라. 2020.1.7.


傳來童話 : 傳來童話という名がおかしい。 童話はただ, 童話でしかない。 ましてや, 遠い昔から文や本ではなく言葉で生を明かして話を作って樂しんだ。 話を言おうが文章に移そうが, いつも話でしかない。 童話という服は着るのに, 話はなしに結構なところさえあれば, こんな童話は面白くない。 ある時期を見分けようと, あえて傳來童話って名前を書くんだと思うけど, 1950年に誰が著した童話としても, 美しい童話ならただ童話と言うまでだ。 1850年に書いても2020年に書いても, みんな童話だ。 ところで、童話って名前もどうも粗?だ。 物語でいいんじゃないか。 生の物語を, 愛の物語を, 生活の物語を, 村の物語を, 森の物語を, 夢の物語を, 天の物語を, 星の物語を, お話を書いて聞かせてもらえれば十分であろう。 (作 : 森の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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