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이들 사계절 그림책
조혜란 지음 / 사계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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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06


《빨강이들》

 조혜란

 사계절

 2019.11.17.



  빨강옷을 즐기는 할머니가 많습니다. 빨강옷을 즐기는 아이도 많아요. 가만 보면 할머니나 아이 모두 빨강이건 노랑이건 풀빛이건 하양이건 까망이건 모두 좋아합니다. 싫어하거나 꺼릴 만한 빛깔은 없달까요. 그런데 학교에서 맞추는 옷을 보면 하나같이 틀에 박혀요. 왜 노란 학교옷은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빨갛거나 푸르거나 파란 빛깔이 눈부신 학교옷을 맞추어도 아름답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학교옷을 따로 두기보다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갖은 빛깔로 무지개가 되도록 이끌 적에 아름답겠지요. 《빨강이들》에 나오는 할머니는 ‘빨강순이’입니다. 할아버지 가운데 빨강돌이가 되는 분은 드문데요, 할아버지도 빨강돌이에 노랑돌이에 하양돌이가 된다면 우리 삶터가 사뭇 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대통령이나 시장·군수라든지, 여느 교사도 칙칙한 옷이 아닌 눈부신 옷을 걸치면 확 달라지겠지요. 에어컨은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서 노란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으로 일하는 대통령이나 교사나 시장이 나올 수 있으면 얼마나 산뜻할까요. 가을빛을 옷에 담고, 가을내음을 마음에 담습니다. 겨울에 한결 붉은 찔레알처럼 그림책 빛결도 해사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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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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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



《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서 건넌다는 옛말이 있어요. 돌다리라고 하면 튼튼한 다리를 떠올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나 걷는 길이 이 돌다리나 돌길처럼 언제나 튼튼하면 좋겠다고 꿈꿀 만합니다.


  돌머리라고 하면 굳어버린 머리를 떠올려요.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려 하지 않을 적에 이런 말을 씁니다. 다리가 되어 누구나 홀가분하게 건너도록 하는 돌다리라면 듬직하다고 여기고,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리면 꿈도 사랑도 모두 멀어지고 만다고 여겨요.



“걱정 마. 너한테 책임을 전가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의 의지로 정한 일이야.” (10쪽)



  모든 돌은 다릅니다. 모래가 굳었다는 돌이 있고, 흙이 굳었다는 돌이 있어요. 불을 뿜는 멧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굳은 돌이 있다지요. 그런데 돌은 이렇게 다른 무엇이 굳을 적에 태어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야무진 굳음이나 굳셈이라면, 다른 눈으로 보면 멈추거나 고이거나 갑갑한 굳음이나 버팀인 돌이로구나 싶어요.


  이런 갖은 돌 가운데 빛나는 돌이 있습니다. ‘빛돌’이에요. 이 빛돌이 아니어도 모든 돌은 서로 다른 빛이 흘러요. 조약돌이든 몽돌이든 참말로 다르면서 새삼스러운 빛결입니다. 온갖 빛결인 돌인데, 그러한 빛결 사이에서 한결 눈부신 빛돌이 있어요. 이 빛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값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이 가루가 선배들이라는 건가요?” “맞아.” (35쪽)



  아홉걸음째에 이르며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롭게 앞으로 뻗는 《보석의 나라 9》(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다가 생각을 기울입니다. 다 다른 빛돌은 다 다른 굳기와 세기입니다. 다 다른 빛돌이기에 이 빛돌에 서린 넋이며 숨결이 다르기 마련이에요. 다 다른 빛돌인 터라 빛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바라는 삶이 달라요.


  이때에 고개를 갸웃할 수 있어요. 아니, 빛돌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넋이나 숨결이 있느냐고 말이지요. 어떤 분은 풀이나 나무한테는 넋이나 숨결이 없다고 여기기도 해요. 짐승을 고기로 삼을 수 없어서 풀이나 열매만 밥으로 삼는 분이 있는데, 풀하고 나무도 짐승하고 똑같이 넋이며 숨결이 있어요. 개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도 아픈 줄 느낄 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도 아픈 줄 느껴요.


  돌도 그렇습니다. 돌도 아픈 줄 느껴요. 돌은 딱딱할 뿐더러 목숨이 없겠거니 여기며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으나, 돌한테 흐르는 넋을 읽고 숨결을 느끼며 마음을 만난다면, 그 어느 곳에 있는 돌도 마구 걷어차거나 밟지 않겠지요.



“나에게 행복을 준 너희에게 깨끗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제약을 가진 나로선 계속되는 투쟁에 너희를 희생시키면서 이상과 거리가 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지.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제부터는 나를 두고 떠나거라. 아름다운 보석 생명체여.” (64∼65쪽)



  돌을 돌 그대로 바라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나무 그대로 바라볼 줄 몰라요. 돌빛을 돌빛대로 마주할 줄 모르기에 풀빛을 풀빛대로 마주할 줄 모릅니다. 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떨까요? 사람마다 다른 마음이 흐르며 다른 사랑이 샘솟는 줄 느낀다면, 우리는 나라를 어떻게 가르더라도 군대나 전쟁무기를 키울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넋이며 숨결인 줄 읽는다면 위아래로 가른다든지 괴롭힌다든지 따돌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마음이기에 짐승이며 푸나무이며 바다벗이며 돌을 마구마구 다룹니다. 사람마다 다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사랑할 줄 알기에 이 별을 이룬 모든 빛을 고루고루 아끼면서 손을 맞잡는 길로 나아가요.



“내가 너희에게 저지른 짓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 “비틀렸다는 이유로 과거를 버리면, 앞으로도 저희는 성장할 수 없어요.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존재로서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용과 평등은 고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으나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8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는 내내 싸움판 이야기입니다. 빛돌은 처음 태어날 적에 싸울 마음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빛돌을 둘러싼 사람이며 문명이며 기계이며 다들 제 눈앞만 바라보고 말아요. 제 눈앞만 바라보니 제 앞가림만 따지고, 제 앞가림만 따지니, 빛돌은 처음부터 언제나 빛돌일 뿐이었지만, 더없이 솜씨좋은 싸울아비로 바뀝니다.


  빛돌은 빛돌스러운 길을 찾을까요? 사람이나 기계나 문명이 빛돌한테 새길을 찾아 줄까요? 아니면 빛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부대끼고 알아보면서 새길을 찾을까요?



“자유다. 금강은 너희를 아끼면서도 가둬두진 않았어. 금강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이었지. 엄격한 제약에 묶인 자신에 대한 반동심 때문이었거나, 혹은 너희가 과거 주인이었던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되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군.” (103쪽)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눈부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꿈입니다. 야무진 마음이 되어 빛나면 좋겠어요. 눈부신 사랑 그대로 활짝 웃으며 깨어나면 좋겠어요. 맑은 꿈이 되어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으면 좋겠어요.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력이 있었으면 우리의 문제도 이미 해결했겠지.” (119쪽)



  남보다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이 누리는 살림을 빼앗거나 가로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흐르는 빛을 알면 되어요. 우리한테서 샘솟는 빛을 둘레에 넉넉히 흩뿌리면 되어요.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 한 톨이 첫걸음이 되어 앞으로 새롭게 깨어날 숲을 그립니다. 우리 스스로 빛돌이면서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빛나면서 이야기꽃을 이룹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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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 - 나는 어떻게 원하는 내가 되는가?
조 디스펜자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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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14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

 조 디스펜자

 추미란 옮김

 샨티

 2019.12.16.



내면의 느낌이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때 바깥에서도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신이 한 일을 더 꼼꼼하게 돌아보고 반복하게 된다. 그때 좋은 습관이 만들어진다. (17쪽)


이제 우리는 후성유전학의 발달로, 질병을 야기하는 것이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로 하여금 질병을 일으키게 만드는 환경이란 사실을 잘 안다. (90쪽)


당신이 중독된, 그리고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과거-현재 현실 속에 묶어놓고 있는 생존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05쪽)


몸은 감정을 느끼고 싶고, 따라서 감각 기관을 통해 물리적 현실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감각을 넘어선 세상에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114쪽)


하고 싶은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을 상징하는 단어를 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종이에 그 단어를 적는다. 그냥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적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148쪽)


일어나지도 않은 두렵고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 가상의 미래를 마음속으로 거듭해서 느끼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런 생각에 에너지를 대주면 대줄수록 그 상상의 결과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그 생각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짜 일어나지 않는가? (274쪽)


사람은 에너지가 변하지 않는 한 절대 변하지 않는다. (473쪽)



  어릴 적부터 어른들 말 가운데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한 가지가 있어요. 어른들은 으레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흔하게 쓰이면서 값도 빛도 잃는다’고 말하더군요. 둘레에서 어른들이 이렇게 말할 적마다 도리질을 쳤습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인 사랑이란, 참말로 가장 아름답기에 사람들 누구나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고, 가장 흔하게 쓰더라도 늘 새롭게 빛나니 값을 잃거나 빛을 잃을 일이 없다고 느껴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끝없이 “사랑해” 하고 말한들 사랑이 빛바래지 않습니다. 쓰면 쓸수록 새롭게 차오르는 사랑입니다. 아니, 쓰기에 새롭게 솟아나는 기운을 가리켜 사랑이라 하겠지요. 누구나 누리고, 누구한테서나 샘솟기에 사랑이라 할 테지요. 어디에서나 피어나고 얼마든지 자라나기에 사랑이라 하겠고요.


  마음을 스스로 깨우는 길을 다루는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조 디스펜자/추미란 옮김, 샨티, 2019)를 찬찬히 읽는데, 글쓴님은 이렇게 두툼하게 여러 과확실험을 바탕으로 책을 여미고 싶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첫 줄을 읽고서 끝 줄을 읽기까지 글쓴님 마음이 어떠한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마 글쓴님부터 스스로 알 테지요. 굳이 이렇게 두툼하게 온갖 실험결과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꿈을 이루는 길은 늘 하나인걸요. 스스로 사랑이라는 마음이 되어 스스로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지으면 되어요. 이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 = 초자연적’이고 ‘초자연적 = 사랑’입니다. 이 책은 ‘초자연적’이라는 일본 말씨로 옮겼는데요, 쉽게 생각하면 좋아요. “우리는 사랑이 될 수 있다”를 들려주는 셈입니다. 아니 “우리는 늘 사랑이다”를 들려주는 셈이에요.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잃거나 잊기에 바쁘게 몰아치는 쳇바퀴로 치닫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거나 버리기에 모든 일이 고단할 뿐 아니라, 뜻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고 말아요.


  스스로 사랑이라는 빛으로 몸을 감싸기에 모든 꿈을 이윽고 이룹니다. 스스로 사랑이라는 하루로 마음을 다독이기에 모든 말이 아름답고 모든 글이 알뜰하며 모든 살림이 푸집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사랑하면 됩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그 노래를 사랑하면 되어요.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그 글을 사랑하면 되지요. 낳아서 돌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면 바로 그 아이를 사랑하면 돼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언제나처럼 그 책을 사랑하면 될 뿐입니다.


  사랑이기에 흔들리지 않아요. 사랑이기에 모자라지 않고 안 넘쳐요. 사랑이기에 즐겁고, 사랑이기에 고우며, 사랑이기에 새롭습니다. 우리가 숲님이 되는 길은 노상 하나예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랑이라면 우리가 걷는 길은 하나같이 숲으로 뻗어요.


  가만히 보면 사람을 살찌우는 이 별에 있는 숲은 밑바탕이 사랑입니다. 사람으로서 참사랑으로 빛날 적에는 참으로 숲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이야기하는 오늘을 넉넉히 나누는 몸짓이 되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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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곁에서 돌보는 손길로 (2018.3.15.)

― 부산 〈산복도로 북살롱〉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 197

070.7842.1809.

blog.naver.com/booksalonbusan



  전북 완주에 있는 책마을에서 일하는 분이 책마을을 새롭고 알뜰히 가꾸는 길이 없을까 걱정이라면서 말씀을 여쭈길래, “그러면 부산 보수동 책골목을 누려 보셔요. 이러다 보면 저절로 길을 찾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부산 보수동 여러 헌책집을 알려주고, 또 이만 한 책골목이 그동안 어떻게 책잔치를 스스로 일으키고 마을을 바꾸어 내면서 가꾸는가 하고 보탬말을 들려주려고 오랜만에 부산마실을 합니다.


  2015년으로 넘어설 즈음 쓸쓸한 일이 있었기에 그때부터 부산마실을 끊었는데, 네 해 만에 보수동을 찾아가니 여러모로 달라졌습니다. 문을 닫은 책집이 제법 있고, 책집지기가 바뀐 곳도 있으며, 책골목에 찻집이 꽤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흐르는 빛도 포근하게 흐릅니다. 사람에 늘 치이는 고장이라지만, 사람한테 치이면서도 사람한테서 숨결을 받아들여 얼크러지는 고장이기도 하네 싶어요. 미운 일이 있어도 그 미운 일마저 품는 고장이랄까요.


  2016년 5월에 문을 열었다는 〈산복도로 북살롱〉입니다(2019년 2월에 보수동을 떠나 동래로 옮겼습니다). 가파란 디딤돌을 오르내리면 어느새 보수동 책골목에 닿는, 그렇지만 한갓지면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골목에 깃든 책집이에요. 이런 자리에 이렇게 책집을 꾸며서 이처럼 돌보니 멋스럽습니다. 언제나 우리 손길로 터를 일구고, 우리 마음으로 터를 품으며, 우리 사랑으로 터를 빛내네 싶어요.


  북적판인 헌책골목하고는 사뭇 다른 결이 있는 〈산복도로 북살롱〉에 깃들어 아직 차가운 봄비를 느낍니다. 보수동 곁에 사는 분들은 여러 빛깔 책맛을 누리겠네요. 너른 저잣거리까지 가깝고 여러모로 아기자기하지요.


  오늘 이곳에서 어떤 책을 만날 만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리 동네 고양이》(황부농, 이후진프레스, 2018)를 넘깁니다. 우리 마을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찬찬히 담았을 테지요. 먼먼 다른 마을이 아닌 바로 우리 마을에서 우리 곁에 있는 반가운 동무를 만납니다.


  책집지기님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하는 《책의 소리를 들어라》(다카세 쓰요시/백원근 옮김, 책의학교, 2017)를 고르기로 합니다. 두툼한 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일본에서 ‘책소리’를 널리 펴려고 하던 분은 책집에만 책을 두는 길이 아닌 온갖 곳에 책을 두려고 했다지요. 그런데 책사랑이는 예전부터 그랬어요. 책사랑이인 의사는 병원에 여러 책을 둡니다. 치과에 가면 만화책이 많은 곳이 있는데, 이를 고치려는 어린이가 무서워하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도우려고 부러 만화책을 두기도 한다지요. 그렇다고 모든 치과에 만화책이 있지는 않아요. 의사하고 간호사가 만화책을 알고, 어린이 마음을 헤아리는 치과라면 만화책을 한켠에 놓아요.


  꽃집에 책을 놓아도 좋아요. 꽃을 다룬 책뿐 아니라, 시골살이나 시골살림을 다룬 책이라든지 사전도 좋지요. 꽃을 바라보듯 말을 바라보도록 북돋울 만하거든요. 꽃을 아끼듯 마을을 아끼자는 뜻으로 마을살림을 다룬 책을 놓아도 어울립니다. 아니, 어떤 책을 놓든 책사랑이 마음길이며 손길에 따라 이웃이 책 하나를 새롭게 바라보며 다가서도록 이끄는 징검다리가 되어요.


  책이 있으면 책을 둘 자리가 있어야겠지요. 이러한 얼거리로 엮었구나 싶은 《아무튼, 서재》(김윤관, 제철소, 2017)를 집습니다. 그런데 좀 허전합니다. ‘아무튼’이란 이름을 붙여서 여러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지 싶은데, 어느 하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이 책을 쓰기는 하겠지만, 아직 얕구나 싶어요.


  책시렁이나 책칸을 서른 해나 쉰 해쯤 누려 보고서야 서재 이야기를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이야기이든 더 오래 누려야 더 잘 쓰지 않아요. 다만, 깊이뿐 아니라 너비도 꽤 허술해요. 한두 해를 지켜본 이야기를 쓰더라도 열두 달이나 스물넉 달을 날마다 다르게 마주하면서 사랑한 숨결이 아니라면 어설프더군요. 마음으로 느끼고 읽어서 다루지 않는다면 껍데기를 그럴듯하게 매만진다든지 겉치레에 치우치고 말아요.


  술하고 책이 어울린다고 여기는 책집지기님 눈빛대로 놓인 《언니는 맥주를 마신다》(윤동교, 레드우드, 2016)까지 장만하기로 합니다. 부산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너덧 시간 남짓 걸리는 버스길에서 읽는데, ‘글쓴이가 좋아하는 보리술’ 이야기라기보다는 ‘난 이런 보리술도 저런 큰가게에 가서 찾아내어 맛을 봤지롱’으로 기울어지느라 아쉽습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아서 책으로 묶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혀끝뿐 아니라 눈빛으로도 술맛을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는 적잖은 ‘수입 맥주’는 ‘그 나라 것을 그대로 사들인’ 보리술이기보다는, ‘이름만 붙이고 한국에서 가루를 섞은’ 것이곤 합니다. 술맛인지 가루맛인지, 또 어떤 물맛인지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보리술뿐 아니라 막걸리이든 포도술이든 제대로 밝히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부산은 골목이 매우 좁습니다. 집하고 집 사이가 아주 좁아요. 이 좁은 틈에 찻길을 내고, 자동차가 넘치니 골목 한켠에 아슬아슬하게 붙입니다. 이 틈으로 버스에 택시에 짐차에 숱한 자가용이 섞입니다. 집도 사람도 차도 많다 보니, 다리를 느긋이 쉰다거나 한갓진 자리를 찾기란 만만찮은 부산이에요. 이러한 부산에서 책집은 어떤 몫을 맡으면서 나아갈 만할까요. 서울보다 더욱 복닥거리는 마당이여 터전일 부산에서 태어나고 흐르는 책집은 부산사람한테 어떠한 삶길을 밝히고 어떠한 노래를 들려주는 쉼터로 퍼질 만할까요.


  자동차는 며칠쯤 세우면 좋겠어요. 바쁜 일은 하루를 쉬든 하루조차 안 쉬든 언제나 바쁜 일이니 며칠쯤 내려놓아도 좋겠어요. 느긋하기에 읽는 책이 아니라, 바쁘기에 이때에 틈을 내어 읽는 책이라고 느껴요. 살림돈이 많아야 사서 읽는 책이 아닌, 팍팍한 살림이기에 쪼개고 덜어서 아름책 하나를 만나려고 책집마실을 한다고 여겨요.


  부산이 부산스러운 터로 이어가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냇가나 못가에서 부드럽게 꽃피며 어우러지는 부들처럼 부들부들 상냥하게 바람이 일렁이는 터로 달라지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하며, 이제 시외버스에서 책을 다 읽고 살짝 눈을 붙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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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1.18.


서울에 가니 ‘서울길’이에요. 그런데 적잖은 이들이 ‘상행선’이라든지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서울을 벗어나면 ‘부산길’이나 ‘인천길’이에요. 그러나 꽤 많은 이들이 ‘하행선’이나 ‘내려가다’라 하더군요. 고흥 같은 시골에서 서울을 거쳐 인천으로 가면 “서울로 올라갔다가 인천에 내려오네” 하고 말하는 이가 제법 있어요.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리는 길이 아닌 오가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헤어지거나 멀리할 적에 ‘절교’ 같은 한자말을 쓰는 이가 많았는데 요새는 일본말 ‘손절’을 쓰는 이가 늘어요. ‘헤어진다’나 ‘끊다’라 하면 되어요. 아들을 좋아하니 아들사랑이면서 아들바보요 아들바라기입니다. 딸을 좋아하면 딸사랑이자 딸바보이고 딸바라기일 테지요. 길을 걸어요. 거님길에는 거님돌을 깔지요. 바람을 알기에 바람아씨입니다. 숲을 알아 숲아씨예요. 슬기롭게 빛을 나누는 빛아씨이고요. 뒷걸음 말고 앞걸음을 합니다. 걸음은 늘 앞으로만 가지 않거든요. 옆걸음이나 샛걸음도 있잖아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할머니이니 ‘흰할머니·흰할매’예요. ‘흰어르신’인데 ‘흰꽃어른’처럼 새말도 지어 봅니다. ㅅㄴㄹ


서울길 ← 상행선

끝·끝장·끊다·등지다·손사래·멀리하다·안 보다 ← 손절, 손절매, 절교

아들사랑·아들바라기·아들바보 ← 남아선호

거님돌 ← 보도블록

거님길 ← 보행로, 인도

바람아씨·숲아씨·빛아씨 ← 마녀

앞걸음 ← 진보, 진전, 발전, 전진

흰늙은이·흰어르신·흰할매·흰할배·흰꽃·흰꽃어른 ← 백발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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