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청소부 소소
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23


《책청소부 소소》

 노인경

 문학동네

 2010.12.5.



  누구나 싱그러운 바람을 마음껏 마실 수 있어야 하듯, 누구나 어느 책이든 마음껏 손에 쥐어 읽거나 안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해맑은 하늘을 넉넉히 누릴 수 있어야 하듯, 누구나 학교에 다니거나 말거나 즐겁게 하루를 지을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오늘날 ‘마음껏 책읽기를 할 수 있는 길’을 넘어서 ‘책이 꽤 넘치다시피 흐르’기도 해요. 책을 너도나도 내기 때문이 아니에요. 책으로 장사를 하거나 이름팔이를 하는 무리가 매우 커졌기 때문이에요. ‘이상문학상 저작권 3년 노예계약’은 새팔피라 할 만한 대목이지요. 출판사에서 내세우는 모든 문학상은 하나같이 노예계약인걸요. 그러나 글꾼 스스로 노예계약인 줄 알면서 상을 받고, 그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그 잡지사에 글을 실어서 돈을 벌어요. 2020년이 되도록 한국은 이 대목을 쉬쉬했어요. 《책청소부 소소》를 넘기면서 한켠으로는 살짝 재미있지만, 꽤나 따분하구나 싶더군요. 굳이 책을 ‘말끔히 지우’지 말고 불쏘시개로 써서 숲에 거름이 되는 재로 삼으면 되어요. 종이책은 모두 숲에서 왔거든요. 이젠 종이뭉치 아닌 숲을 읽고 바람을 마시며 해를 먹으면서 마음을 씻을 때예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와 바람, 그 후!
정희경 지음, 지수 그림 / 도미솔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19


《해와 바람, 그 후!》

 정수정 글

 지수 모래빛

 도미솔

 2016.5.15.



  서른아홉이란 나이에 이르도록 몸을 마음껏 움직이는 놀이를 멀리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발목을 크게 접질린 뒤앓이도 아니고, 군대에서 하도 얻어맞아 움츠린 탓도 아니고,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다가 뺑소니 자동차에 치여 손목이 망가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마음껏 춤추며 노는 삶을 배운 적도 누린 적도 본 적도 없거든요. 마흔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춤’이란 바람하고 놀며 풀하고 어우러지는 수다인 줄 알았어요. 이때부터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 없이도 춤을 추며 걸어다닙니다. 맨발로 풀밭에서 춤추며 노는 시골 아재로 살며 여러 해가 흐른 어느 날 별빛을 보다가 생각합니다. 넋이라는 빛줄기는 우리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나아가기에 늘 새롭게 반짝인다고 말이지요. 《해와 바람, 그 후!》는 모래알이 사르르 춤추는 결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모래알 그림은 대수롭지 않을 테지만, 모래빛이며 이 모래빛에 곁들이는 글이 사랑스럽습니다. 나그네한테는 해도 바람도 반갑지요. 마실님한테는 바람도 해도 아름답지요. 살림꾼한테도, 아이랑 어른한테도, 벌레랑 새한테도, 다 다르지만 서로 똑같이 숨결을 살리는 춤사위가 노래로 거듭납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문학상 : ‘이상문학상’이 ‘노예계약’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이 있다니, 참 대단한 이들이로구나 싶다만, 문학사상사란 출판사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문학상은 이처럼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은 없으나 ‘상금’이 막상 ‘상금 아닌 상금’이기 일쑤이다. 왜 그런가 하면, 출판사에서 준다고 하는 여러 문학상을 가만히 뜯어보면 ‘상금(또는 고료)’을 한몫에 1000만 원이나 2000만 원을 준다고 밝히지만, 막상 이 상금은 ‘글삯(인세)’을 미리 주는 셈이기 일쑤이다. 다시 말하자면, 출판사에서 주는 상을 받아서 그 출판사에서 책을 낼 적에 ‘책이 나온 뒤에 상금을 넘는 돈을 글삯으로 벌어들여 주지’ 않으면 글삯이 한 푼도 없다. ‘상금’은 모두 겉발림·이름팔이일 뿐, 선인세를 줄 뿐이다. 생각해 보라. 이게 무슨 상금인가? 상을 주려면 상금은 상금이고 글삯은 글삯대로 따로 챙겨 주어야 맞다. 상금 많이 주는 척하지만, 참말로 상금을 주는 출판사는 없는 셈이랄까? 상금을 주겠다면 몇 천만 원을 준다며 내세우지 말고, 다문 100만 원이든 300만 원이든, 글삯하고 따로 셈해서 그냥 주어야 옳으리라. 저작권을 엉터리로 알거나 마구잡이로 굴리는 이는 문학사상사뿐이 아니다. 창비나 문학동네나 비룡소나 이곳저곳에서 여태 내놓은 ‘문학상 공모 요강’을 들여다보라. ‘상금하고 인세는 별도’로 여기는 곳이 있을까? 그들은 여태껏 겉발림에 이름팔이로 사람들을 속여 왔다. 다들 눈가림을 했지. 그리고 여태 숱한 글꾼은 출판사가 이러한 짓을 눈가림으로 일삼았어도 슬그머니 넘어갔다. 상을 받았으니 그 상을 그들 글꾼도 똑같이 내세우면서 어깨동무를 한 꼬락서니이다. 2020년에 이르도록 이런 겉발림·이름팔이 문학상일 뿐이라는 대목을 따지거나 그런 출판사에서 책을 안 내거나 그런 잡지사에 글을 안 실은 글꾼이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그나마 2020년 이상문학상을 놓고는 이제서야 겨우 말 몇 마디를 하는 글꾼이 보이기는 하네. 문학상이 왜 그 나물에 그 밥인가를 사람들이 너무 모른다. 게다가 문학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선배작가(원로작가)하고 후배작가(신진작가)가 더없이 끼리끼리 노는 모습을 여태 쉬쉬해 왔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바보짓을 멈추자. 글다운 글을 쓰고, 삶다운 삶을 짓고, 사랑다운 사랑으로 오늘 하루를 가꾸기를 빌 뿐이다. 2020.2.4.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도서관


 꽂히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2.4.)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얼추 열 몇 해쯤 앞서 ‘존재’라는 일본 말씨를 놓고서 108꼭지 글자락을 여미어서 조그맣게 책으로 꾸민 적 있습니다. 그 뒤로는 “이제 ‘존재’ 이야기는 많이 짚었으니 쉴까?” 하면서 아홉 해 가까이 멀리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홉 해 사이에 아무렇게나 춤추는 ‘존재’를 수두룩하게 보았고, 어린이책에까지 마구 스며드는 터라 고작 108꼭지를 짚었다고 해서 그칠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요 몇 해 사이에 ‘존재’ 쓰임새를 꽤 그러모았는데, 아침에 불쑥 이 말씨를 확 파고들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 두벌손질을 마칠 《우리말 수수께끼 놀이》가 있는데, 이 일을 한동안 미루고 아침나절을 여기에 옴팡 쏟았습니다. 이제 손을 쉬고 빨래를 하고 부엌일을 하고서 새 동시꾸러미 두벌손질을 붙잡으려 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572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9.15.



사전은 지도이자 나침반이 된다 ㅣ사전이 없다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 (16쪽)


예전에는 단어의 뜻을 영어로 적었다. 이젠 이탈리아어로 적는다. 그렇게 나만의 개인적인 사전, 독서의 과정이 담겨 있는 나만의 어휘집을 만든다. (41쪽)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75쪽)


“당신 혼자 번역하는 게 좋겠어. 다른 사람이 옮기는 것보다 당신이 하는 게 좋아. 당신 뜻을 온전히 번역해내지 못할 위험이 있잖아.” (96쪽)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줌파 라히리/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를 읽었다. 단출하게 나온 책이라 ‘이 책이 작기’ 때문에 ‘이 작은 책이 크다’고 말하는가 했더니 아니더라. 글쓴이는 좀 말을 질질 끌고, 여러모로 덧씌우는구나 싶던데, ‘사전이라고 하는 책’이 언제나 이녁보다 크다는 이야기를 펴더라. 그렇다면 사전은 뭘까? 그저 낱말을 줄줄이 엮어서 이 낱말을 저 낱말로 알려주는 책일까? 미국사람이 펴는 이탈리아사전은? 한국사람이 펴는 영어사전은? 오늘날 웬만한 사전은 사전이 아닌 ‘단어장’이기 일쑤이다. 낱말마다 서린 숨결이나 자취나 이야기를 안 담거나 못 담기 일쑤이다. 왜 일본을 빼고 사전을 읽는 사람이 드물까? 일본은 ‘사전 낱말풀이에 이야기를 담는 길’을 진작부터 걸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 사전을 읽는 사람이 많다. 이와 달리 한국을 비롯한 꽤 많은 나라는 단어장 틀을 안 벗어나는 사전이 많은데, 그래도 옥스포드 사전이나 롱맨 사전처럼, 꾸준히 이야기라는 살을 입히는 사전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전은 늘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이라는 자취를 손수 담아서 누리면 된다. 남이 지은 사전도 좋으나, 늘 우리 사전을 우리가 스스로 지을 노릇이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는 책은 ‘글쓴이 삶을 담은 글쓴이 사전을 글쓴이가 스스로 느껴서 비로소 찾아나서는 길’을 들려주는 셈인데, 같은 말을 너무 자주 되풀이하느라, 이 작은 책이 꽤 헐겁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