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사진책

사진책시렁 74


《내가 사랑한 사진책》

 최종규

 눈빛

 2018.7.9.



  1990년대 끝자락 어느 날 헌책집에서 만난 책벗 한 분이 “최종규 씨는 사전을 쓴다면서? 사전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미쉬’를 어떻게 풀이할 생각이야? 때로는 백 마디 말이 아니라 사진 하나로 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아미쉬마을 사진책을 넌지시 건넵니다. 헌책집 한켠에 있던 아미쉬마을 사진책을 가만히 넘기며 생각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사전에는 사진뿐 아니라 그림을 마음껏 써요. 사진이나 그림이 어울릴 뜻풀이가 있으니까요. 꽃송이나 딱정벌레나 아미쉬마을을 사진하고 그림으로 새롭게 보여주면 한결 재미있습니다. 사전을 쓰며 사진책을 꽤 건사했고, 사전을 쓰는 밑책도 잔뜩 있는 터라, 이 모두를 여미어 2007년부터 책숲을 열었고, 이 책숲은 사진책도서관 구실도 합니다. 비평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눈길로 한 칸씩 담아 차곡차곡 모으니 어느덧 이야기꾸러미가 된 사진책’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진글을 썼고, 이 글은 《내가 사랑한 사진책》이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어린이·푸름이하고 함께 읽을 만하도록 써야 글이라고 여깁니다. 서양 이론·일본 한자말 아닌 삶말·살림말로 사진을 사랑하면 이야기가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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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1


《Minamata》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사진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글

 Holt, Rinehart & Winston

 1972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영국에서는 먼지구름으로 숱한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때에는 거의 공장하고 큰고장 살림집뿐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어마어마하다 싶은 자동차에 지하상가에 쇼핑센터에 아파트에 갖가지 첨단문화시설에 군부대에 …… 하늘이며 땅을 더럽히는 것들이 철철 넘칩니다. 왜 돌림앓이가 퍼질까요? 우리 스스로 하늘땅을 망가뜨린 탓입니다. 우리 손으로 허물고 만 하늘땅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또 하늘땅을 정갈하게 되돌릴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이 별은 와르르 무너지는 길로 가겠지요. 사진책 《Minamata》는 아름터하고 죽음터 사이를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차분하게 사진으로 선보이고, 낱낱이 글로 드러냅니다. 두 스미스 님은 미나마타란 작은 바닷마을에 들어선 공장 하나 때문에 그토록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아프지 않다는 대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작은마을 작은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아름터를 다시 가꿀 만한가를 넌지시 드러내지요. 바닷마을이라면 바다를, 시골마을이라면 들숲을, 큰고장이라면 골목골목을, 오롯이 풀꽃나무가 춤추면서 벌나비랑 새가 노래하는 터전으로 가꿀 적에, 자동차부터 버릴 적에, 하나씩 거듭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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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걷는 사람 : 운전면허시험을 본 적조차 없으니 자동차를 몰 줄 모르기도 하거니와 TV수신료를 낸 적이 없으니 방송을 보지도 않는데다가, 웬만한 길은 두 다리나 자전거로 다니고 버스로 마을길을 훑듯이 다니며 살아간다. 여수문화방송에서 책을 말하는 자리에 나가기로 해서 고흥에서 여수로 가는 길에도 이처럼 두 다리하고 버스로 움직인다. 여수 시외버스나루에서 내린 뒤에 등짐하고 끌짐을 이끌고 천천히 걷는다. 여수는 여러모로 관광도시라 할 텐데 거님길이 참 엉망이다. 거님길 한복판에 버젓이 자동차가 버티고 서기도 하지만, 길바닥이 깨지고 울퉁불퉁한 채로 나뒹군 지 한참 된 티가 난다. 관광이란 길손집에서 관광지 사이를 자동차를 빌려서 싱싱 움직이고는 사진만 찍으면 끝인가? 그렇다면 제주 올레길을 흉내낸 거님길은 다 뭘까? 두 다리로 걷는 길이 엉터리라면 그 고장은 그냥 엉터리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어린이한테 자가용이 있는가? 열다섯 살이나 열일곱 살 푸름이가 자가용을 모는가? 아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걸어다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자가용을 몰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걸어다닌다. 거님길을 똑바로 다스리는 길은 문화나 복지도 아닌 ‘기본 인권’이자 ‘기본 생활권’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디를 가도 거님길을 제대로 돌보는 고장을 못 보았으니, 한국은 모든 고장이 그저 엉터리이지 싶다. 걷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중국에 줘 버리자. 걷지 않는 시장이나 군수라면 일본에 보내 버리자. 걷지 않는 공무원이라면 모든 공무원을 없애 버리자. 마을을 걷지 않는 공무원이 마을을 알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지역구를 언제나 샅샅이 걸어서 다니지 않는 정치꾼이 마을사랑이라는 길을 펼 수 있을까? 나라 곳곳을 두 다리로 걷지 않는 대통령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까? 이 나라를 두루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지 않으면서 글을 쓰는 이들이 무슨 문학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정치나 사상이나 종교를 할까? 시인이나 소설가나 교사나 교수나 과학자나 스님이나 목사한테서 운전면허를 모두 거둬들여라. 자가용을 몰면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거나 아이를 가르치거나 깨달음을 말하거나 과학을 밝히려 한다면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라고 느낀다. 그대한테 다리가 없다면 자가용을 타라. 그대한테 다리가 있다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라. 여수문화방송 편성국장님이 “터미널에서 방송국까지 걸어온 사람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하고 말씀하더라.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언덕받이에 있는 방송국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이 대단히 즐거웠어요. 노랑턱멧새 같았는데, 열다섯 마리 남짓 저하고 1미터쯤 떨어진 채 길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같이 올라왔어요. 우거진 나무에 얼마나 많은 새가 깃들어 사는가 하고 놀랐어요. 여수에 이런 곳이 있고, 방송국이 이런 길이라니, 참 아름답더군요.” 2020.3.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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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꽃

숲집놀이터 241. 쀼루퉁



해마다 삼월이면 우리한테 그날이 돌아온다. 바로 ‘의무교육 입학유예 신청서’를 쓰는 그날. 이날은 두 아이가 싫어도 학교에 가서 서류를 읽어야 하고, 서류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작은아이는 “난 학교 싫어. 그렇지만 아버지랑 같이 가면 좋아.” 하고 조잘조잘 노래를 부르고, 큰아이는 암말 없이 쀼류퉁한 얼굴이다. 누가 보아도 얼마나 싫고 못마땅하고 짜증나고 성나고 골나고 부아나고 …… 온갖 말을 다 갖다붙일 수 있을 만큼 식식거리는 낯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샘님은 웃는 낯으로 큰아이한테 말을 걸지만, 큰아이는 한마디 대꾸조차 없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얘야, 아버지가 학교에 너희를 데려오기 앞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아버지가 잘못했네. “사름벼리 어린이, 온누리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단다. 모두 우리가 겪으면서 배우는 일이야. 쀼루퉁한 마음이 되어 그 기운이 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 둘레에 다른 사람은 다 아무렇지 않아. 뿌루퉁낯인 사름벼리 어린이 너 혼자만 속이 불타면서 까맣게 타버린단다. 자, 종이 하나를 줄게. 여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네 마음을 글로 옮기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우리가 마음으로 바꾸면 돼. 우리 보금자리만 꽃터로 가꿀 수 없어. 우리가 발을 디디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꽃터요 숲터가 되도록 가만히 바라보면서 우리 꿈을 바라보면 어떻겠니?” 사름벼리 어린이는 20분쯤 지나고서야 얼굴을 천천히 풀면서 종이두루미 하나를 접는다. 고마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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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꽃

숲집놀이터 240. 네가 해봐



어제 낮 무렵 우리 집 가스가 떨어진 듯하다. 그때에 나는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웠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버너를 꺼내어 국을 데워 놓았다. 마침 일요일이었기에 면소재지 가게로 자전거를 달려서 버너 하나를 얻었다. 면소재지 가게에서 이모저모 사면 덤종이를 주는데, 덤종이 예순 자락을 모으면 버너 하나를 준다. 집가스가 떨어지고서야 버너를 하나 바꾸어서 들인다. 이러고서 맞이한 아침에 가스집에 전화를 넣었고, 나는 아침 일찍 바깥일을 하러 나서야 하느라 이래저래 짐을 꾸리는데, 가스집 일꾼이 오셨네. 작은아이가 “아버지, 가스 왔어!” 하고 외친다. “응, 그래. 그런데 아버지는 짐 챙겨야 해서 못 움직이네. 네가 해봐.” “네!” 열 살 어린이는 가스집 일꾼이 새 가스통을 놓는 모습을 지켜보고 가스값을 건네고 “고맙습니다!” 하고 절까지 마친다. 훌륭하지. 너희도 다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아니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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