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자고 가요 - 2019년 광양동초등학교 1학년 1반 동시집
김영숙(씨앗샘) 엮음 / 심다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8 - 글쓰기보다는 놀이쓰기


《나랑 자고 가요》

 광양동초 1학년 1반 어린이·김영숙 엮음

 심다

 2020.2.1.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말을 하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을 옮기면 모두 글이에요. 말을 더듬는다면 글을 더듬더듬 옮기면 되어요. 시골말을 쓴다면 시골말을 고스란히 옮기면 됩니다.


  말하는 그대로 글을 옮길 적에는 멋이 안 난다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말결하고 달리 꾸미는 글결이 되면 글치레가 되고, 글치레란 겉치레로 잇닿습니다. 생각해 봐요. 그럴듯해 보이려고 ‘우리 말씨가 아닌 다른 말씨’를 쓸 적에 즐거운가요? 뭔가 번듯하거나 똑똑해 보이도록 말씨를 고치면, ‘우리 말씨 아닌 다른 말씨’로 꾸민 그런 말 한 마디가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피어나는가요? 남이 멋지게 하는 말씨를 흉내내지 말고, 우리 마음을 즐겁게 드러내는 말씨를 가꾸면 됩니다.


  밭을 가꾸듯 말글을 가꾸지요. 살림을 가꾸듯 말결이며 글결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꾸듯 생각을 가꾸어 말글도 나란히 가꾸고요.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할머니랑 엄마가

감나무 팔을 꺾어도

감나무가 살아남았다

나무는 대단해. (감나무-이준상/14쪽)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쓰면 됩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되어요.


  꾸미지 맙시다. 치레하지 맙시다. 똑똑해 보이거나 잘난척하지 맙시다. 자랑하지 말고, 우쭐대지 맙시다. 콧대를 높이지 말고, 멋을 부리지 말며, 남보다 나아 보이거나 좋아 보이도록 말이며 글을 치레하지 맙시다.



밤은 따가워.

밤은 맛있어.

밤은 왜

잠바를 두 개 입을까? (밤-서지현/33쪽)



  글은 삶으로 쓰면 됩니다. 우리 삶을 그대로 쓰면 되어요. 글은 살림으로 쓰면 됩니다.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고스란히 쓰면 됩니다. 글은 사랑으로 쓰면 되지요.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를 오롯이, 스스로 사랑하는 이웃이며 동무이며 집안이며 마을이며 숲이며 온누리이며 마음을 옹글게 쓰면 되지요.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글을 숲으로 쓸 만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며 구름이 되는 넋으로 글을 쓸 만해요. 제비가 되고 제비꽃이 되고, 소나무가 되고 잣나무가 되어서 글을 쓸 만합니다. 조약돌이 되고 모래가 되어 글을 쓸 만하고요.



진흙은 밟으면 신발이 더러워져.

비 오는 날은 진흙이 돼.

비가 안 오면 다시 흙이 돼. (진흙-박종호/90쪽)



  여덟 살 어린이가 손수 쓰고 그린 이야기를 갈무리한 《나랑 자고 가요》(광양동초 1학년 1반 어린이·김영숙 엮음, 심다 2020)를 읽으면서 여러 마음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바라본 아이 모습을 비롯해서, 아이를 둘러싼 어른이나 어버이나 마을이나 삶터 모습을 읽습니다.


  여덟 살 어린이는 수수하게 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른이나 삶터에서 바라는 대로 그대로 꾸미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학교라는 터에서는 교육과정이나 수업진도가 있다 보니까, 또 학교 안팎에서 점수라든지 ‘공부 잘하기’나 학원이라는 얼거리가 있으니, 또 텔레비전이며 유튜브이며 영상이며 갖가지 다른 모습이 있으니, 이 모두가 아이들 눈길을 거쳐서 마음으로 퍼졌다가 말로 터져나온 뒤에 글로도 나타납니다.



무지개야,

너는 해님이 좋아?

아니면 비가 좋아?

꼭 말해 줘야 돼.

나는 해님이 좋아. (무지개-조서현/99쪽)



  남을 아예 안 보기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을 가만히 보면 좋겠어요. 나하고 다르지만, 나하고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이웃을 보면 좋겠습니다. 나하고 생각이며 말씨이며 몸짓이며 모조리 다르지만, 나랑 똑같이 사랑스러운 넋인 동무를 보면 좋겠어요. 키에 힘에 덩치에, 이모저모 겉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나랑 똑같이 오늘 하루를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즐기는 어버이랑 어른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아기가 생긴다.

아직 이름을 못 지었어.

난 그냥 남봄이라 지었어.

봄에 낳으면

더 예쁜 이름을 지어 줘야지. (아기 2-남희원/116쪽)



  어린이한테 섣불리 글쓰기를 시키면 쪽종이 몇 줄을 채우기도 버겁기 마련입니다. 적잖은 어른도 쪽종이에 이녁 이야기를 몇 줄로 못 채우곤 합니다.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버거운 글쓰기가 되곤 해요.


  어린이라면 글쓰기보다 놀이쓰기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그저 글을 쓰지 말고, 하루를 신나게 놀고 나서, ‘오늘 무엇을 하며 놀았나’를 쓸 노릇입니다. 어른이라면 글쓰기보다 살림쓰기나 사랑쓰기가 되어야지 싶어요. 그냥그냥 글을 쓰려고 달려들지 말고, 스스로 짓는 살림이나 사랑을 쓰면 됩니다. 또는 스스로 짓고 싶은 살림이나 사랑을 쓰면 되어요.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어.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새-배찬웅/168쪽)



  놀지 못하거나 않는 아이는 꿈꾸지 못합니다. 꿈꾸지 못하는 아이는 사랑을 마음으로 키우지 못합니다. 사랑을 마음으로 키우지 못하는 아이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삶길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린이 글쓰기는 언제나 놀이에서 비롯합니다. 먼저 놀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놀아야 합니다. 이러고서 거듭 놀아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놀아도 되고, 아침부터 저녁 내내 놀 만합니다. 아이한테 놀이 아닌 수업이나 책을 섣불리 어깨에 얹으면, 아이들이 뽑아내는 글은, 참말로 ‘공장에서 뽑아내는 똑같은 틀’에 갇힌 모습이 됩니다.


  아이한테 시키지 말고, 아이한테 맡기기를 바랍니다. 아이한테 공부나 수업이나 학교교육을 시키지 말고, 아이한테 하루를 스스로 지어 사랑으로 하루를 짓는 즐거운 배움길을 누려 보라고 맡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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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돼지 - 이쪽 돼지 저쪽 돼지 / 여윈 새끼 돼지의 하루 사노 요코 판타스틱 이야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21 - ‘집’에 사는가 ‘우리’에 갇혔는가


《사노 요코 돼지》

 사노 요쿄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2.25.



어느 날 트럭이 왔습니다. 많은 동물이 돼지에게 낯선 기계를 들고 와서 숲속의 나무를 베어 넘겼습니다. 동물들은 그곳에 붉은 지붕과 녹색 지붕을 가진 예쁜 집을 수십 채나 지었습니다. 돼지는 돼지우리에서 집이 지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쿨쿨 잤습니다. (17쪽)


“여긴 누구 땅입니까?” 여우 신사가 물었습니다. 돼지는 멀뚱히 있었습니다. “난 내내 여기서 살았는데요.” 돼지가 대답했습니다. “누구 땅에서요?” “누구라니 …….” 돼지는 열심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27쪽)


돼지는 버스에서 내리자 빌딩을 올려다보며 “허어” 하고 놀란 뒤 “에취” 재채기를 했습니다. 거리에서는 숲과 다른 냄새가 났습니다. (39쪽)


돼지는 돼지우리 앞에 벌렁 드러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는 별이 한가득 빛나고 있습니다. 돼지는 별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93쪽)


여윈 새끼 돼지는 하루 종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39쪽)



  오늘 우리는 발전소를 세워서 전기를 얻습니다. 발전소는 석탄이나 석유나 우라늄을 때어 전기를 일으키고, 이 전기는 송전탑을 거쳐서 도시로 가며, 도시에서는 전봇대를 거쳐서 집집으로 갑니다. 발전소는 백 해나 이백 해를 가지 않습니다. 아니, 쉰 해쯤 되면 낡아서 아슬하다 하지요. 더구나 석탄·석유·우라늄을 때면서 쓰레기가 나오고, 이 쓰레기를 건사할 쓰레기터를 마련해야 하며, 이 쓰레기를 다스려서 걸러내기까지 오래디오랜 나날이 흘러야 합니다.


  백 해는커녕 쉰 해쯤 잘 굴러가는 자동차는 없다시피 합니다. 자동차 바퀴뿐 아니라 자동차를 이룬 이 몸통이나 저 톱니를 꾸준히 갈아야 합니다. 낡은 자동차는 어디로 갈까요. 자동차 몸통을 이룬 플라스틱은 어떻게 될까요. 낡은 바퀴는 어디로 가나요.


  마치 북중미 텃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줄거리가 흐르는 《사노 요코 돼지》(사노 요쿄/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입니다. 돼지는 처음에 그냥 돼지였다지만, 숲에서 조용히 살던, 내 땅도 네 땅도 아닌 저마다 알맞게 보금자리를 누리고 하루를 지으며 삶을 사랑하던 돼지는, 이 숲을 갈아엎어 도시 물질문명으로 바꾼 이들한테 밀려나야 합니다. 이러다가 도시 한켠에서 회사원 노릇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삶일까요? 무엇이 사랑일까요? 무엇이 사람 또는 목숨 또는 숨결일까요?


  중국 우한에서 비롯했다는 돌림앓이가 지구를 뒤덮습니다. 그런데 여태 지구를 뒤덮은 돌림앓이는 하나같이 ‘사람들이 좁은 곳에 잔뜩 모여서 물질문명을 이룬 큰고장’에서 비롯하기 일쑤였습니다. 또는 물질문명을 이루도록 공장이나 발전소를 크게 올린 곳에서 비롯했습니다.


  앞으로 이 별을 어떻게 바꾸어야 서로 아늑하면서 튼튼히 지낼 만할까요. 아스팔트하고 시멘트를 덮은 땅에는 씨앗 한 톨 못 묻을 뿐 아니라, 감자 한 알도 못 캡니다. 손전화를 누르기만 해도 된다는 ‘스마트폰 수경재배 온실(스마트팜)’이라지만, 이런 길로 자꾸 치닫는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별을 바라보지 않는 길 끝자락에는, 들꽃이 나누어 주는 숨결이 없는 길 끄트머리에는 무엇이 있나요.


  사노 요코 할머니는 ‘돼지’가 돼지답도록 살아가는 길이, 사람이 사람답도록 살림하는 길이며, 서로서로 사랑이 되는 길이라고 넌저시 노래했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책 《사노 요코 돼지》에서 바로잡을 곳이 있습니다. 숲에서 돼지가 깃드는 집을 ‘돼지우리’로 옮겼는데, ‘우리’는 가두어서 고기로 삼으려는 짐승을 둔 데입니다. 돼지가 사는 숲집은 ‘돼지집’이라 해야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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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어른책은 : 어른책은 어린이로 기쁘게 뛰놀았거나 조금도 뛰놀지 못한 나날을 보내며 자란 어른으로서, 오늘 이곳에서 기쁜 놀이를 북돋우거나 아팠던 멍울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느낀다. 어린이책은 언제까지나 어린이라는 눈빛으로 기쁘게 뛰노는 길을, 그리고 조금도 뛰놀지 못하도록 갑갑하게 막힌 터전에서 기운을 내면서 사랑으로 녹여내는 길을 새롭게 밝혀서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다시 한 줄로 말하자면, 어른책은 우리가 어제에 이은 오늘을 사랑할 길을 새삼스레 밝혀서 보여주는 책이요, 어린이책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길을 새롭게 밝혀서 보여주는 따스한 책이라고 할까. 1998.3.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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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41. 봄샘



  봄을 앞둔 겨울은 추위가 모집니다. 봄이 다가오니 봄을 시샘한다고도 하지만, 아직 겨울이니 겨울답게 바람이 매섭고 날은 싸늘하겠지요. 봄을 시샘한다는 추위를 놓고 옛사람은 재미나게 말을 엮었습니다.


 꽃샘추위·잎샘추위


  봄을 시샘하는 날씨라면 ‘봄샘’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꽃샘’하고 ‘잎샘’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이 대목을 도두보면 좋겠어요. 그만큼 이 나라 흙지기는 언제나 꽃을 바라보고 잎을 살펴보았다는 뜻이 흘러요. 언제나 꽃이며 잎을 돌보고 곁에 두면서 마음으로 품었구나 싶은 숨결을 느낄 만해요.


 꽃샘나이·봄샘나이


  꽃이며 잎을 샘내는 추위를 나타내는 낱말을 헤아리다가 문득 새말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리하여 ‘꽃샘나이·봄샘나이’를 엮었어요. 이 낱말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제 봄처럼 피어나면서 무럭무럭 철이 들 즈음인 나이를 놓고 숱한 어른들은 아이들이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차갑다고들 말해요.


  여러모로 보면 ‘사춘기’라는 한자말 이름에는 푸르게 꽃피려는 숨결을 썩 안 좋게 보는 기운이 깃들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라는 한자말 이름이 이 땅에 깃든 지 얼마 안 됩니다. 예전에는 ‘사춘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푸른 나이에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는 판이 되고부터 바야흐로 사춘기가 불거지지요.


 꽃나이·봄나이


  한창 철이 들면서 푸르게 빛나려 하는 나이에 일어나는 차가운 바람을 ‘꽃샘나이’로 나타낸다면, ‘샘’을 덜고 ‘꽃나이’라 해보아도 어울립니다. 굳이 어린이·푸름이한테 ‘시샘’ 같은 말을 안 써도 되어요. 그저 꽃으로 피어나려고,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고, 망울을 맺는 푸나무처럼 마음망울을 맺는 모습을 그리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꽃샘철·잎샘철


  여기서 한 가지 말을 더 지어 봅니다. ‘꽃샘철·잎샘철’인데요, 이 새말로는 어떤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만할까요? 고즈넉히 눈을 감고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꽃을 샘하는 철에 이른 나이란, 잎을 시샘하듯 거칠게 구는 나이란, 바로 ‘반항기’입니다.


  ‘반항기’란 한자말 이름도 이 땅에 스며든 지 얼마 안 됩니다. 더구나 아이가 어른한테 대든다는 느낌이 너무 짙어요. 이런 말을 쓰면 막상 이무렵에 이른 어린이나 푸름이로서도, 또 이런 말을 읊을 어른으로서도, 서로 기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말씨부터 가다듬어서 생각도 추슬러야지 싶어요.


 사광이풀·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배꼽’이나 ‘며느리밑씻개’란 풀이름은 일본에서 스며들었습니다. 이 나라 흙지기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쓰던 이름을 한국 식물학자가 엉뚱하게 끼워맞춘 이름이지요. 며느리 살림하고 동떨어진 채 함부로 붙여서 퍼진 이런 풀이름을 이제는 바로잡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뜬금없는 이름으로 이 땅 풀꽃을 깎아내리고, 며느리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마저 업신여기는 길을 가야 할까요?


  ‘개불알풀꽃’이란 이름도 일본에서 쓰는 말을 억지로 꿰맞춘 풀이름입니다. 말느낌이 안 좋아서 안 쓸 풀이름이 아니라, 이 땅 흙지기 흙살림하고는 안 어울리기에 쓸 까닭이 없는 풀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름이 있느냐 하면 ‘봄까지꽃’입니다. ‘-까지’란 이름을 붙여서 재미있습니다. 한겨울이 이울며 낮이 차츰 길어질 즈음 비로소 새싹을 내미는 봄까지꽃은 한봄에 무르익다가 늦봄에 가뭇없이 사라져요. 5월로 접어들면 시들시들하고, 5월이 깊을 무렵 모조리 녹더군요. 그야말로 봄까지 피는 앙증맞은 쪽빛 풀꽃인 봄까지꽃이에요. ‘-까치’가 아닌 ‘-까지’를 붙이는 풀이름입니다.


 알갱이


  요즈음은 다들 ‘곡식’이라 하지만, 이 한자말이 들어오기 앞서는 ‘나락·낟알’이라든지 ‘알·씨알’이나 ‘씨앗·알맹이’란 낱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알갱이’를 썼어요. ‘-갱이’가 붙는 낱말로 ‘고갱이’가 있어요.


  ‘고갱이’는 줄줄기나 나무줄기에서 한복판을 자리하는 곳을 가리킵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중심, 핵심, 근원, 본질, 중요, 골자’라 하겠지요. 그렇다면 ‘알갱이’란 낱말은 얼마나 더 깊으면서 너른 낱말일까요?


  ‘알 + 갱이’인 ‘알갱이’예요. ‘알맹이·알짜·알속·알차다’가 갈리고 ‘알뜰하다’가 갈리며, 이윽고 ‘알다·알리다’하고 ‘아름답다·아름드리’가 갈립니다.


  ‘알갱이’란 낱말은 쓰임새가 매우 넓습니다. ‘곡식, 물질, 입자, 정수, 결정, 과립’부터 ‘실속, 내실, 요지, 함량, 용적, 필요, 필수, 환, 실질’을 아우르는 낱말이에요. 그렇지만 이러한 오랜 텃말이 어떤 살림을 나타내고 어떻게 가지를 뻗으며 얼마나 우리 삶자락에 두루 깃드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가 아직 얕아요. 학교에 국어 수업은 있으나 말을 말답게 나누는 자리는 거의 없어요.


 하늘로


  하늘로 치솟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하늘을 뚫으려 합니다. 하늘을 찌르려 하지요. 이러한 자리에 ‘천정부지’란 한자말을 쓰는 분이 꽤 있더군요. 그런데요, ‘하늘로’ 한 마디여도 좋아요. 하늘을 둘러싼 여러 수수한 말을 쓰면 되어요. 그리고 ‘껑충’이나 ‘거침없이’나 ‘끝없이’나 ‘마구’나 ‘엄청나게’나 ‘무섭게’나 ‘어마어마하게’ 같은 말을 알맞게 쓸 만합니다.


  얼마 앞서 읍내 문방구에 가서 볼펜 ‘속’을 장만하는데요, ‘심(心)’이라는 말이 어쩐지 껄끄러워 “볼펜 ‘속’이 있을까요?” 하고 여쭈어서 ‘속’만 산 적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제가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 가운데 ‘연필 심’이라 안 하고 ‘연필 속’이라 말씀한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한자말이야 ‘심지(心地)’일 텐데, 이런 말을 안 쓰고 ‘속·속대’라고들 하셨는데, 속이나 속대라 말씀한 분은 어릴 적부터 흙을 가까이하고 푸나무를 돌본 손길을 온몸에 새긴 어른이더군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면서 ‘속’이라는 낱말로 골라서 씁니다. 마음을 이야기할 적에도 ‘속’이라는 낱말을 즐겁게 씁니다. 속을 가꾸고 속을 돌보며 속을 바라봅니다. 껍데기 아닌 속알을 가다듬어 곱게 빛나는 길을 가자고 이야기해요.


  봄을 앞두면 봄샘바람이 불 만한데, ‘샘’이란 시샘하는 샘도 있지만, 맑고 알뜰히 흐르는 물줄기인 샘도 있어요. 봄날 봄꽃이 흐드러지는 봄골에 흐를 봄샘물을 두 손에 담아서 나누고 싶습니다. 철철철 흐르는 봄샘물로 봄빛을 흐벅지게 누릴 하루가 다가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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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3.3. 거품철


잔치를 벌이면서 나누는 잔칫밥이에요. 태어난 잔치가 있고, 짝을 맺어 기리는 잔치가 있어요. 첫돌뿐 아니라 예순돌이며 여든돌을 기리는 잔치가 있으며, 새로 맞이하는 잔치가 있습니다. 떠나는 잔치가 있고, 그저 기쁘거나 반가운 잔치가 있어요. 푸짐하게 차려서 나눕니다. 활짝활짝 웃음꽃이 피어나는 잔치입니다. 푸짐밥이면서 꽃밥입니다. 한껏 누려요. 밥도 이야기도 웃음도 크게 누립니다. 왕창 먹어도 좋아요. 배불리 먹을 만하지요. 솔찮게 마련해서 잔뜩 펴는 잔치마당입니다. 장사솜씨를 뽐내어 한몫 단단히 법니다. 장삿속은 내키지 않아 조촐하게 짓는 길을 나아갑니다. 지나치게 노리다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긴값을 물어요. 때로는 서둘러야 하기에 빠른길을 갑니다. 자전거도 타고 말도 타고 비행기나 버스도 타요. 탈거리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터는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뿐 아니라 시골까지 매캐하기 일쑤인데요, 자동차나 겹집이 너무 거품처럼 늘어난 탓이지 싶습니다. 거품판이기에 돌림앓이가 불거지지 않을까요. 이 거품철을 가라앉혀서 차분하게 느긋하게 나누면서 짓는 새로운 길을 찾을 때이지 않을까요. ㅅㄴㄹ


잔칫밥·푸짐밥·꽃밥 ← 진수성찬

잔뜩·실컷·한껏·왕창·마구·크게·솔찮게·우람히·우거지다·대단히·푸지다·배불리 ← 거하다(巨-)

장삿속·장사솜씨 ← 상술, 비즈니스, 비즈니스 모델, 상품화, 상업화, 상업주의, 상업적

어긴값 ← 벌금

빠른길 ← 고속도로, 하이패스

말타기 ← 승마

거품살림 ← 버블경제

거품철·거품판 ← 버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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