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 트리앤북 컬렉션 1
케이티 하네트 지음, 김경희 옮김 / 트리앤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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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69


《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

 케이티 하네트

 김경희 옮김

 트리앤북

 2017.4.14.



  고양이는 저 스스로 살 만한 곳에 깃듭니다. 그곳은 숲일 수 있고, 골목일 수 있으며, 풀밭이거나 종이꾸러미나 냇가나 다리 밑일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사람 없는 곳을 즐기기도 하면서, 사람 있는 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고양이 마음이지요. 사람도 사람 북적이는 데를 즐기기도 하면서, 사람 없는 데를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 날 문득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찾아갑니다. 이 할머니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또 후줄근하거나 꾀죄죄한 집이라며 둘레에서는 싫어하지만, 고양이는 이 모두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고양이)를 쳐다보면서 이따금 밥을 조금 나누는 곳이면 해바라기를 하면서 낮잠을 잡니다. 이때에 오래도록 입을 다물던 할머니가 입을 열지요. 오래오래 닫아 놓았던 마음을 열면서 말 한 마디를 터뜨려요. 《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에도 할머니가 나옵니다만, 이 할머니는 후줄근하거나 꾀죄죄한 집에 살지는 않아요. 다만 아무도 이 할머니를 알아보지 않고 말을 걸지 않으며 쳐다보지 않을 뿐입니다. 고양이는 어떨까요? 네, 고양이는 다른 사람이나 터전을 아랑곳하지 않아요. 고양이는 ‘마음을 열어 말을 터뜨릴 이’가 사람이건 나무이건 짐승이건 스스럼없이 찾아가서 마주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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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소년 아톰 14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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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파란하늘을 함께 먹는 이웃



《우주소년 아톰 14》

 테즈카 오사무

 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1.12.25.



아톰과 우란은 가끔씩 생각합니다. 인간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어른이란 게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요. (213쪽)



  아픈 몸이란 한켠으로는 괴롭거나 고달프지만, 아프기 때문에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길이 꽤 깊거나 넓구나 싶습니다. 아프면서 괴롭기에 곁에서 누가 아파하면 가만히 다가가서 달랠 줄 압니다. 아프면서 고달프기에 둘레에서 누가 아파 울면 넌지시 찾아가서 토닥일 줄 알아요. 아픈 터라 이 아픔을 털거나 씻는 길을 찾아나설 뿐 아니라, 이런 아픔을 이웃이 겪거나 치르지 않기를 바라는 길을 갈고닦기도 해요. 이런 아픔에 걸려 넘어지는 이웃을 마주하면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몸짓이 되기도 하지요.


  아픈 몸이기에 아프게 보낸 나날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를 글이나 말로 옮길 때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그냥 저 혼자 아픈 줄 알았다면, 이 아픔을 글이나 말로 나타낸 뒤에는 ‘우리 곁에는 아파도 말을 않거나 못하면서 끙끙거린 이웃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고 새삼스레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서로 길잡이가 되고, 서로 동무가 되고, 서로 이바지를 하고, 서로 말벗이 됩니다.



“아톰, 사실은 네가 부서졌을 대, 코발트와 우란의 부속품을 써서 널 고친 거란다.” “예?” “코발트도 우란도 널 위해서 기뻐하며 몸의 일부분을 내주었단다. 그 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라, 아톰.” (48쪽)



  사람은 처음에 아무 연장이 없었습니다. 어떤 연장도 없이 맨몸으로 모든 철이며 날씨이며 바람이며 숲을 두루 받아들였습니다. 두 손에 연장이 없던 날에는 손가락이며 발가락이 연장 구실이었어요. 아니, 따로 연장이란 이름이나 구실이 아니어도 숲에서 누구나 오붓하면서 아늑하게 어우러졌습니다. 뚝딱거리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만났고, 마음으로 사랑했으며, 마음으로 삶을 지었어요.


  둘레를 봐요. 온누리 어떤 풀벌레도 연장을 거머쥐지 않습니다. 온누리 어떤 바다벗도 연장을 쥐려 하지 않아요. 온누리 어떤 벌나비에 새에 숲짐승도 굳이 연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숨결은 연장 하나 없이 하루를 누리고, 하루를 살아가며, 하루를 넉넉히 나누어요.


  연장을 쥐지 않은 숨결은 다른 숨결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연장을 움켜쥐지 않기에 빼앗거나 혼자 차지할 마음이 없습니다. 연장이 없는 푸나무에 풀벌레에 새에 숲짐승에 바다벗은 이 별에서 다같이 얼크러지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언제나 정갈하고 푸르며 아름다운 터전으로 나아가요.


  그러나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연장을 손에 쥐면서 눈빛이 바뀝니다. 돌맹이를 연장으로 삼고, 작대기를 연장으로 놀리면서, 그만 이웃 숨결을 건드리고 죽이고 거느리지요. 이뿐 아니라 이웃마을 사람까지 괴롭히거나 짓밟는 일마저 서슴지 않아요.



“왜 도망을 친 거야?” “응. 나를 이용해서 큰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녀석이 있어서. 사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는 폭탄이야.” “뭐라고?” “나는 별 하나를 산산조각 낼 정도의 폭탄이거든. 내 얘기를 들어줘. 나, 폭탄으로서 사용되는 게, 너무나 싫어서 참을 수 없었어.” (72쪽)


“다들 대피해서 사람은 한 명도 없구나. 어디로 도망쳐 봤자 다 똑같은데, 인간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117쪽)



  연장맛을 본 사람은 도끼나 호미로 그치지 않습니다. 삽이나 낫으로 그치지 않아요. 칼을 부엌에서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까지 휘두르면서 그만 싸울아비가 태어납니다. 칼잡이가 춤추지요. 이윽고 총잡이가 생기고, 마구잡이로 싸움질을 일삼는 사람살이가 되고 맙니다. 크나큰 싸움판을 일으키면서 서로 죽이고 죽더니, 어느새 이 연장꾸러미를 앞세워 누가 잘나거나 못나느냐를 가릴 뿐 아니라, 그만 이 연장꾸러미 없이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에까지 사로잡힙니다.


  바야흐로 전쟁무기하고 군대라는 연장을 붙잡은 사람터가 된 셈이랄까요. 이제 사람은 더 치달리면서 로봇을 지으려 하고, 이 로봇을 내세워 새로운 싸움판을 벌이고, 새로운 돈판이며 장사판까지 꾀합니다. 《우주소년 아톰 14》(테즈카 오사무/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1)은 이런 사람터 한복판에서 아톰이라고 하는 작은아이가 사람들한테 온몸으로 외치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이 만화를 빚은 테즈카 오사무 님은 조그마한 아이 아톰 목소리로 묻습니다. “왜 싸우나요?” “왜 거짓말을 하나요?” “왜 사랑하지 않나요?” “왜 나누지 않나요?” “왜 꿈을 글로 쓰지 않나요?” “왜 오늘 이곳에서 어깨동무하면서 기쁜 놀이를 그림이며 사진으로 담아내지 않나요?” “왜 아이를 낳고서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싱그러운 마음을 물려주지 않나요?” “왜 다들 틀에 박힌 길을 가나요?” “왜 스스로 짓고 스스로 나누는 기쁜 꿈길을 가지 않나요?”



“하다못해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손녀로 있고 싶기도 했고.” “벰, 넌 정말 마음이 따뜻한 애로구나.” “나, 갈게. 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거니까.” “어디로 간다는 거야?” “저 별로 뛰어들어서 저 별을 파괴하는 거지. 아직은 늦지 않았어.” “뭐라고? 너 자폭하려는 거니?” “응, 난 폭탄이니까. 아톰, 안녕. 나 행복해.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에서 얼마 동안이라도 살 수 있었으니까. 아톰, 안녕. 널 만나서 다행이었어. 언제까지나 지구를 지켜 줘.” “벰!” (137∼138쪽)



  로봇이란 몸을 입었으나 틀림없이 마음이 흐르는 아톰입니다. 비록 원자력 기운으로 몸을 움직이는 아톰이지만,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는 사람들 못지않게, 아니 바로 사람들이 잃거나 잊어버린 사랑이라는 마음빛을 환하게 비추는 아톰입니다.


  아톰은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아톰이라는 몸은 ‘작은 싸울아비’입니다. 아톰은 꽃을 좋아하고 나비하고 놀기를 바라지만, 아톰 몸을 지은 과학자는 아톰한테 무시무시한 무기를 잔뜩 집어넣었습니다. 아톰은 제 몸에 있는 모든 무기를 떨쳐내고서 아주 가볍게 바람을 가르고 땅을 거닐면서 즐거이 삶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어른들은 아톰한테 ‘망가진 저 로봇을 막아내라’든지 ‘엄청난 전쟁무기인 저 로봇을 무찔러라’ 같은 말을 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도록’ 아톰을 지었으면서, 마치 아톰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거짓말쟁이 로봇을 만든 것은 내 잘못이지.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만이야.” “그랬군요. 하지만 역시 거짓말은 나쁜 건데.” (156쪽)



 과학꾼은 왜 자꾸 더 무시무시하다 싶은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어 낼까요? 정치꾼은 왜 자꾸 더 끔찍하다 싶은 벼랑길로 나라를 내몰까요? 벼슬꾼은 왜 자꾸 더 외곬로 치닫는 행정을 꾀할까요? 글꾼은 왜 참다운 사랑으로 온누리를 넉넉하고 따사롭게 품는 이야기를 지을 생각하고 멀어질까요?


  작은 아이가 묻습니다. 작은 아이 아톰이 묻고 또 묻습니다. 한글판 이름은 《우주소년 아톰》인데, 일본판 이름은 “쇠주먹 아톰”입니다. 한글판을 낸 분들 마음이 갸륵합니다. 그래요, 아톰은 비록 쇠주먹으로 태어나야 한 몸이었어도 ‘우주를 품는 아이’로 살아갈 마음이에요. 온누리가 하나라는 뜻을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몫으로 빛 한 줄기를 얻어서 태어난 작은 아이가 바로 아톰이지 싶어요. 그러고 보니 테즈카 오사무 님이 아톰 이야기를 처음 그릴 적에 붙인 이름은 “아톰 대사(大使)”입니다. 사랑도 꿈도 평화도 나눔도 모두 잊거나 잃은 사람들한테 바로 이 사랑과 꿈과 평화와 나눔이 무엇인가를 온몸이며 온마음으로 보여주고 알리는 몫을 맡은 작은 아이가 아톰입니다.


  이 별에 사랑이 흐르기를, 이 별에 어리석은 싸움질이 끝장나기를, 이 별을 비롯해 온누리 모든 별에 어깨동무하는 착한 마음으로 참하게 노래하는 꿈이 퍼지기를,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눈뜨며서 기쁘게 별빛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뛰어놀기를 바라는 작은 목소리인 《우주소년 아톰》이라고 느낍니다.



“이번에는 단숨에 2001년으로 날아가 보자. 2001년의 고속도로네. 앗, 토비오다. 텐마 박사님의 외아들인데 트럭에 받혀 죽었다고 했었지. 박사님, 저는 지금 그 애를 꼭 구하고 싶어요.” “안 돼! 그러면 안 된다! 아톰! 그런 짓은 그만둬! 그런 짓을 했다간 역사가 바뀌게 된다.” “그럼 두 눈 똑바로 뜬 채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요?” “그만둬! 가면 안 돼! 아톰!” “그럴 순 없어요!” (170쪽)



  이 나라 어른이며 어버이는 어린이한테 어떤 책을 읽히는지 궁금합니다. 지식하고 정보를 내세운 책을 읽히나요? 나중에 대학입시에 이바지를 할 만한 수험서나 교재나 학습만화를 읽히나요? 어린이한테 ‘생태환경 그림책·동화책’을 읽히지만 막상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 1초조차도 흙을 못 만지거나 못 밟는 데에서 아이들은 하루 1분조차 볕바람을 못 쐴 뿐 아니라 구슬땀으로 뛰어놀 틈조차 없는 나날은 아닌가요?


  이제는 빠른길을 더 내지 않기를 바라요. 이제는 빠른길을 줄이고 숲터를 가꾸기를 바라요. 이제는 아름다운 시골터에 커다란 발전소나 공장이나 공항이나 관광단지나 폐기물처리장이나 댐이나 군부대를 들이려 하지 말고, 서울에서도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지어서 쓸 수 있는 작은 살림길로 가면 좋겠습니다. 시골 커다란 발전소부터 송전탑하고 전깃줄로 이어서 큰고장에서 쓰는 전기가 아닌, 집집마다 알맞게 전기를 지어서 쓰는 틀로, 또 아파트를 짓더라도 아파트 너비 열 곱은 될 만한 숲을 둘레에 품을 줄 아는 마을로, 또 빠른길을 내야 하더라도 아름드리 숲은 건드리지 않도록 헤아리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아톰은 전자 두뇌를 가졌으니까 잘하는 게 당연해요.” “아니에요. 나도 인간하고 똑같아요.” “공부 안 해도 기억을 잘할 수 있잖아?” (161쪽)



  온누리에 돌림앓이가 퍼지니 학교를 비롯해 모두 닫아걸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졸업장보다 우리 튼튼한 몸이 대수롭기 때문일 테지요. 첫째로 살필 대목이란 졸업장이 아닌 우리 몸을 튼튼히 가꿀 숲터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눈부신 살림살이가 퍼지더라도 물이며 바람이 맑지 않다면 떼죽음뿐이에요. 첫째로 생각하면서 돌볼 곳이란 숲입니다. 자동차를 세울 곳을 늘리기보다 나무가 자라고 풀벌레가 깃들 숲을 늘릴 노릇입니다. 올림픽이며 운동경기를 끌어들이기 앞서 숲이며 멧골이며 냇물을 맑게 건사할 노릇입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부대에는 더는 돈을 쓰지 않을 노릇이며, 젊은이가 전쟁무기하고 군부대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하고 행정이 될 노릇이에요. 바로 오늘 이곳부터 해야지요. 옆나라에서 먼저 안 한다고 우리마저 안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입가리개를 하지 않고도, 방역을 하지 않고도, 병원을 가지 않고도, 큰가게에 먹을거리를 사러 다니지 않고도, 누구나 넉넉히 살림을 지으며 하루를 빛낼 새로운 숲터로 온누리를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오늘이 되기를 바라요. 오늘부터, 우리부터, 이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아톰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첫걸음을 떼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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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0.


《the Witch's Vacation》

 Norman Bridwell 글·그림, scholastic, 1973



오늘 우리는 아주 놀라운 터전에서 산다. 지난 열 해를 돌아보면 엄청나게 뒤바뀌었고, 스무 해를 훑으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으며, 서른 해를 되새기면 확 뒤집혔구나 싶다. 마흔 해나 쉰 해를 어림하면 아주 새로운 겨레가 되어 하루를 맞이하지 싶기까지 하다. 외국말로 적힌 책 하나를 구경하기도 힘든 때가 엊그제 같으나, 이제는 아주 손쉽게 만날 뿐 아니라, 값싸게 바로바로 살 수 있기도 하다. 더구나 나라밖에 있는 책마저 며칠쯤 기다리면 비행기가 실어다 나르지. 노먼 브리드웰 님 그림책은 여태 하나도 한국말로 안 나왔으나, 영어 쓰는 나라에서는 매우 사랑받는다. 다만 서울 강아랫마을에서는 ‘어린이 영어 첫걸음책’으로 두루 읽히는 줄 안다. 《the Witch's Vacation》은 아주 쉬운 낱말이며 짜임새로 글을 담았고, 그림이며 줄거리도 상냥하면서 아름답다. 이 그림책뿐 아니라, 노먼 브리드웰 님 다른 그림책도 매한가지라, 이분 그림책은 보이는 대로 장만하고, 요새는 아마존 누리집을 뒤적이면서 ‘언제쯤 이 시골자락으로 날아오려나’ 하면서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린다. 돌림앓이 바람이 무시무시하다지만, 이 모진 바람을 고우며 맑은 바람으로 돌려세우는 손빛은 바로 우리 마음에 있겠지. 우리가 오늘 눈을 뜬다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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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19.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글/최로미 옮김, 글항아리, 2017.6.16.



지난해 4월에 광주마실을 하며 장만한 《문어의 영혼》을 한참 묵혀 놓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문어를 다룬 책이라 반갑게 장만했으나, 옮김말이 얼토당토않아서 한 해 가까이 안 들여다보았다. 문어는 문어일 뿐이다. 문어는 ‘그녀’가 아니다. 예전에 어느 책은 뱀장어를 뱀장어가 아닌 ‘그녀’로 옮겨서 도무지 읽어내 주기 어려웠다. 영어라면 ‘she’일 테지만, 한국말은 아닌 줄 언제쯤 알아채려나. 그런데 《문어의 영혼》은 옮김말도 얄궂지만, 글쓴이가 문어를 마음으로 읽는 대목이 너무 얕다. 문어 이야기가 아닌 곁다리로 자꾸 샌다. 문어라는 숨결을 ‘넋’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라면 문어를 마음으로 마주하고 벗으로 삼으면서 풀어내면 될 텐데, 왜 자꾸 딴길로 빠지고 말까. 아무래도 문어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덜 했거나 제대로 안 했거나, ‘설마 문어가 이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못미더워서 샛길놀이를 해대었지 싶다. 사람이란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문어를 알지도 읽지도 사귀지도 못한다. 이 책을 다시 훑으니, 글쓴이 목소리는 영 심심하지만, ‘수족관 사육사’ 목소리는 돋보인다. 차라리 ‘수족관 사육사’가 문어하고 붙어살면서 겪고 본 삶하고 주고받은 말로만 책을 엮었다면 좋았겠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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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18.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매튜 코델 글·그림, 비룡소, 2018.6.10.



저자마실을 하려고 읍내에 갈 적에 큰아이는 으레 “아, 버스 냄새 때문에 힘들었어!” 하고 말한다. 난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 인천에서 시내버스를 탈 적에도 멀미를 했고, 어버이 시골집인 당진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할 적에도 멀미를 했으며, 작은아버지 사는 서울에 가려고 신도림에서 지하철로 갈아탈 때에도 멀미를 했다. 그때에는 둘레에서 말해 주거나 돕는 어른이 없어서 몰랐으나, 버스나 지하철이나 택시 모두 화학약품덩이라서 냄새가 모질었으니 멀미를 할밖에. 어느덧 화학약품덩이에 익숙하다기보다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배웠기에 큰아이한테 “그렇지? 그런데 네가 즐기는 데에 온마음을 쓰면 아무 냄새도 못 느낀단다. 보렴, 너희 아버지는 그 흔들리고 고약한 냄새투성이 버스에서 흔들리지도 않고 책을 읽고 종이에 동시도 쓰잖니?”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은 ‘소녀’ 아닌 ‘늑대’ 이야기를 다루는데, 책이름 때문에 엉뚱하게 읽는 분이 많다. 왜 《wolf in the snow》라는 책을 이렇게 뒤엎어 버릴까? 그러나 그림책뿐이랴. 신문·방송에 흐르는 숱한 이야기는 ‘거짓말·눈속임’이기 일쑤인데, 우리는 쉽게 속거나 엉뚱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하는걸. 늑대는 슬기롭고 착한 벗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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