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해걸음 (2019.10.8.)

―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02.333.1041.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30



  이틀이 멀다 하고 나들이하던 책집에 해걸음을 합니다. 해걸음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반가이 여길 노릇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전남 한켠에서 살림을 꾸리니 서울마실이 뜸하고, 뜸한 서울길에 해마다 하루쯤 걸음할 수 있다면, 더구나 해걸음을 하는 데에도 한 시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서 부랴부랴 돌아나와야 하더라도, 이렇게 찾아갈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살며 날마다 책숲마실을 다닐 적에 만난 ‘날걸음(날마다 걸음하는)’ 책손 할배는 으레 “하루에 한 번도 모자라! 아침 낮 저녁, 이렇게 세 걸음은 해야 단골 책집이라고 말할 만하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군데 책집을 하루에 세걸음을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서울에만 해도 아름책집이라 할 곳이 1990년대 끝무렵하고 2000년대 첫무렵 사이만 하더라도 삼백∼오백 곳쯤 되었다고 느끼거든요. 하루에 한 곳씩 들르면 해걸음이 되는 셈이니, 하루에 세걸음을 하는 엄청난 단골 책집까지 두지는 못했어요. 이틀이나 사흘마다 찾아가는 책집을 여럿 두었을 뿐입니다.


  어느덧 스무 해 책손이 된 〈숨어있는 책〉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숨어있는 책〉이 처음 문을 열던 무렵이 애틋하게 떠오르고, 그날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이 아련하게 생각나며, 충주로 인천으로 삶터를 옮기면서 차츰 발길이 뜸해야 했고, 전남으로 옮기며 그야말로 까마득하네 싶어, 이따금 사진을 넘기면서 ‘그때에는 이러했지’하고 되새기곤 합니다. 책집을 다닐 적마다 책집 삶자락을 바지런히 사진으로도 옮겨놓는데요, 그동안 찍은 사진이 누구보다 저 스스로한테 반가우면서 고맙구나 싶어요.


  글하고 사진이 어우러진 《look at us, etc, etc》(William Saroyan 글·Arthur Rothstein 사진, Cowles book, 1967)를 봅니다. 통통 튀는 글에 수수한 미국사람 살림살이가 묻어나는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펴낸해를 다시 들춥니다. 1967년. 우리한테 1967년은 이만 한 책은 어림조차 못하던 나날이었구나 싶으면서, 그 뒤 쉰 해 남짓 흐르는 사이 우리 글살림·사진살림은 얼마나 발돋움했으려나 궁금합니다.


  전남에 살기에 눈에 꽂히는 《한국 지명 총람 14 전남편 2》(한글학회, 1982)하고 《한국 지명 총람 15 전남편 3》(한글학회, 1983)을 만납니다. ‘전남편 2’은 예전에 장만했고, ‘전남편 1’가 아직 없습니다. 비록 ‘전남편 2’은 예전에 갖추었더라도 이 나라 땅이름을 하나로 그러모은 놀라운 꾸러미이기에 한 자락 더 갖추자고 생각합니다. 남녘을 골골샅샅 누비며 땅이름을 그러모은 이 꾸러미는 참 대단하지요. 오늘날처럼 셈틀을 놓고서 갈무리한 꾸러미가 아니라 맨손으로 일궈낸 열매이기까지 하거든요. 더구나 지난날에는 길그림만 보고서 골골샅샅 누볐으니, 또 길그림에 안 나온 데도 많았으니, 다리품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야 여밀 수 있던 꾸러미입니다.


  손바닥책으로 나온 《ブッダ 12》(手塚治蟲, 潮出版社, 1993)를 봅니다. 짝이 안 맞기에 하나만 고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붓다》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앙증맞게도 펴내었네요. 일본이 책살림이 남달리 앞선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은 뻥튀기가 너무해요. 단출하면서 가볍고 값싸게 널리 읽도록 책꼴을 여미는 일을 제대로 하는 ‘큰 출판사’는 아직 하나도 없거든요.


  어린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아낼 만한가를 멋지게 담아낸 《complete course in photographing children》(John Hedgecoe, Simon & Schuster, 1980)을 봅니다. 오늘 만난 이 사진책은 책싸개도 대단합니다.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나온 책인데, 도서관에서 쓴 싸개는 책을 그야말로 곱게 건사하는 구실을 합니다. 어쩜 이렇게 세 겹짜리 책싸개로 책을 돌보는 손길이었을까요. 한국에서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분이라면 ‘도서관 책싸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매무새를 미국 도서관에서 배워야겠다고 느낍니다. 미국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뿐 아니라 군대도서관도 책을 알뜰히 다룰 줄 안다고 느껴요. 미국 도서관을 둘러본 일은 아직 없습니다만, 미국 도서관에 있다가 한국 헌책집으로 흘러나온 책은 수두룩하게 보았어요.


  언제 되읽어도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는 《마지막 인디언》(디오도러 크로버/김문해 옮김, 동서문화사, 1982)을 새삼스레 봅니다. 푸름이가 읽을 문학을 꾸준히 내는 몇몇 출판사에 이 아름다운 문학을 되살리면 어떻겠느냐고, 헌책집에서 이 책을 찾아내어 보낸 적이 있습니다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되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래된 글이라 여길 수 있고, 그분들이 보기에 마음에 안 찰 수 있겠지요. 북미 텃겨레 가운데 미국 군홧발에 사라져야 했던 어느 겨레 마지막 살림살이 이야기를 눈물겨우면서도 아리땁게 담아낸 《마지막 인디언》이라고 느낍니다.


투시는 ‘푸른 동굴’에서 이시가 가져다 만들어 준 파란 꽃무늬 구슬을 단 조가비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머리카락을 묶은 밍크 힘줄에 딱다구리의 빨강 깃털을 꽂았다. 스커트에도 콩꼬투리와 조가비 장식이 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41쪽)


  이제 책을 그만 고르고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이튿날 한글날을 맞이해서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그러나 1분이라도 쪼개어 골마루를 더 거닐고 싶습니다. 1초라도 틈을 짜내어 사진을 몇 칸이라도 더 찍고 싶습니다. 이러다가 ‘新 自然 きらきら’란 꾸러미로 나온 어린이 사진책 몇 자락을 만납니다.


《新 自然 きらきら 5 あまやどり》(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7 あおむしくん》(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9 かくれんば》(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10 なつのよる》(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新 自然 きらきら 11 コスモス さいた》(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숲살림을 사진으로 곱게 여미어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어린이책이 숱하게 나왔습니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사진으로, 풀벌레부터 숲짐승에 바다벗까지 두루 담아내었지요.


  일본에서 선보인 어린이 ‘숲살림 사진책’을 들여다볼 때면, 한국에서는 왜 어린이한테 이바지하는 이러한 사진길을 걸은 어른이 없었나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한국에서 사진길을 걷는 이들치고 예술을 한다고 우쭐거리는 이는 많아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선보이는 이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아마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도 이 대목을 못 짚거나 안 건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강좌에서도 이 대목을 짚거나 다루는 일도 없겠지요. 여러 지자체는 목돈을 들여서 무슨무슨 ‘사진 비엔날레’를 그럴듯하게 일으키곤 하지만, 막상 알맹이가 튼튼하거나 빛나 보이는 자리는 여태 없었다고 느낍니다.


  예술이란 이름을 붙여야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이름을 드높여야 이름이 퍼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수사한 사랑을 스스로 길어올리는 길을 나아갈 적에 비로소 사진도 그림도 글도 환하게 빛나면서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면서 적시는 숨결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책집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책값을 셈합니다. 〈숨어있는 책〉 책집지기님하고 마지막말을 나눕니다. “이제 올해에 얼굴 봤으니 올해에는 얼굴을 더 못 보나?” “그러게요. 10월이 되어서야 처음 얼굴을 보았네요. 해가 넘어가기 앞서 얼굴을 더 보면 좋을 텐데요.” “못 보면 어때. 다음해에는 또 볼 수 있잖아?” “아, 아, 아쉽다. 그러나 아쉽다 말아야지. 이렇게 올해에도 얼굴을 뵙고 책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맙지요. 그러면, 아직 새해는 두 달 더 남았지만 미리 새해절을 할게요. 올해에도 새해에도 언제나 기쁘며 아름답게 이곳에서 하루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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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그림책을 빵처럼 신나게 (2019.11.28.)

― 광주 〈책빵〉

광주 동구 필문대로 192번길 32-4

062.655.9250.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길손집에 들기 앞서 책집을 먼저 들렀고, 묵직한 짐꾸러미를 길손집에 차곡차곡 내려놓은 다음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수시장을 거닐려고 하는데, 저잣거리 어귀에 빵집처럼 보이는 책집이, 아니 책집처럼 보이는 빵집이 있습니다. 저잣길을 걷고서 들를는지, 먼저 이곳을 들를는지 한동안 망설이다가, 저녁이 깊으면 이곳이 먼저 문을 닫을 수 있으니 얼른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해가 떨어져 캄캄한 골목을 환하게 밝히는 〈책빵〉은 한켠에는 빵, 한켠에는 그림책이 가득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마실했다면 이런저런 빵을 골랐을 터이나, 혼마실인 터라 한두 조각만 먹을 만하니 한두 가지만 고르고서 그림책 놓인 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책빵지기’님 말씀을 들으니 이곳에 놓은 그림책은 ‘이곳에 와서 읽을 수만 있다’고 합니다. 빵집지기로 계신 분은 빵굽기도 즐기지만 그림책도 무척 즐긴다고 말씀하셔요. 빵집에는 어린이 손님이 자주 찾아오고, 빵을 기다리는 동안 폭신걸상에 앉아서 그림책을 누리면 좋으리라 여겨 이처럼 ‘책 + 빵’인 가게를 꾸린다고 합니다.


  그동안 읽은 그림책도 많이 보이지만,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은 그림책도 꽤 보입니다. 《즐거운 빵 만들기》(간자와 도시코 글·하야시 아키코 그림/김나은 옮김, 한림출판사, 2008)나 《고릴라 아저씨네 빵집》(시라이 미카코 글·와타나베 아키오 그림/남경희 옮김, 한림출판사, 2008) 같은 그림책은 처음 만납니다. 빵굽기에 그다지 마음을 안 기울인 터라 이런 그림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두 가지 그림책을 마을책집에서 장만해 보자고 생각하는데, 《손, 손, 내 손은》(테드 랜드 그림+빌 마틴 주니어·존 아캠볼트 글/이상희 옮김, 열린어린이, 2005)이 보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그동안 읽고 누리며 아이하고 함께 읽은 숱한 그림책 가운데 더없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손, 손, 내 손은》인걸요. 큰아이가 이 그림책을 낡고 닳고 해지도록 읽어 주었기에 새로 한 자락 더 장만하기도 했고, 영어 그림책을 여러 자락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빵을 굽는다면 이곳 빵에는 상냥한 기운이 감돌겠지요. 빵을 사랑하는 손길로 그림책을 편다면 이곳에서 읽는 그림책에는 고운 마음이 어우러지겠지요.


  글을 쓰는 분들이 ‘글쓰는 손’을 ‘살림하는 손’으로도 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그림그리는 손’을 ‘살림을 사랑하는 손’으로도 이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이 ‘사진찍는 손’을 ‘살림을 꿈으로 짓는 손’으로도 엮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 골골샅샅에서 이 일 저 일 하는 뭇어른이 ‘일하는 손’을 ‘놀이하는 손’으로 잇고 ‘사랑스레 살림하는 손’으로 여미며 ‘숲을 고이 품는 손’으로 가만가만 풀어낸다면 가없이 아름답겠네 하고도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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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 모든 이야기는 수수께끼
최종규 지음, 사름벼리 그림, 숲노래 기획 / 스토리닷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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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아플수록 하늘 보며 수수께끼 놀이

― 사전지음이가 여민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동시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20.3.10.



  동시책이자, 수수께끼책이자, 우리말 이야기책이자, 사전이자, 시골이며 서울에서도 언제나 숲을 노래하기를 바라는 숲책이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마음을 읽으며 삶을 되새기기를 꿈꾸는 마음책인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 2020)를 여미었습니다. 혼자서 여미지 않았습니다. 앞장서서 글을 쓴 사람은 ‘최종규’란 이름이지만, 곁님 ‘라온눈’하고 열세 살 어린이 ‘사름벼리’하고 열 살 어린이 ‘산들보라’가 함께 이야기를 펴면서 가다듬었고, 사름벼리 어린이가 그림을 맡았습니다. 네 사람은 전남 고흥이란 시골자락에서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란 서재도서관을 꾸립니다. 그래서 ‘숲노래’ 기획이란 이름이 붙어요.


  그런데 네 사람 힘으로만 여밀 수 없는 책이자 사전이자 동시꾸러미입니다. 왜냐하면 네 사람은 마음으로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 풀벌레랑 바람이랑 해랑 구름이랑 냇물이랑 숲이랑 바다랑 돌이랑 모래랑 세간이랑 붓이랑 종이랑 …… 우리를 둘러싼 숱한 숨결하고 말을 섞었기에, 이 모든 둘레 숨결도 이 책을 같이 여미었다고 여겨야 옳아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 말썽울 풀려면 먼저 ‘뉘우칠’ 노릇이다

→ 이를 풀자면 ‘돌아보기’부터 할 일이다


  수수께끼를 열여섯 줄 동시로 여미자는, 더구나 한자말이나 영어가 한 톨조차 깃들지 않도록 가다듬는 옹근 우리말 이야기로 엮자는, 이러면서 수수께끼 이야기가 저절로 ‘낱말풀이’가 될 뿐 아니라, 열여섯 줄 동시가 고스란히 ‘보기글’이 되도록 하는 사전이 되게끔 하자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품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알쏭달쏭한 ‘인문지식인 말버릇’을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 싶어요.


  이를테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같은 글월은 겉보기로는 한글이되, 속은 하나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그저 토씨일 뿐이지요. 적잖은 먹물글님은 1980년대 첫무렵까지만 해도 “問題를 解決하기 爲해서는 ‘反省’이 出發이다”처럼 글을 썼어요. 일제강점기나 개화기라 할 1900년대 첫무렵부터 1980년대 첫무렵까지, 여든 해를 웃도는 나날을 시커먼 먹물로 글을 썼다가, 겉보기로는 한글로 쓰는 오늘날인데, 도무지 달라질 낌새가 안 보여서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알쏭달쏭한 일본 말씨나 번역 말씨를 ‘어린이 말씨’나 ‘시골 할매 말씨’로 추스르려고 하면서 동시로 이야기하자는 생각이 피어났습니다.



수수께끼 004


우리 몸에서 아픈 데를 쳐

세게 들이치기도 하고

부드러이 적시기도 하고

확 퍼붓기도 하지


멧골에서 고이 잠들었다가

해님 보고 퐁퐁 깨어나고

숲을 한껏 돌아보는데

여러 마을도 두루 거치지


바다가 될 수 있어

아지랑이나 이슬이 되고

구름이나 안개가 되는데

우리 눈에도 있어


모두 다르지만 모두 나야

모두 나를 마시지만

마음에 품은 씨앗에 따라서

다들 다른 네가 되더라




  예부터 어른·어버이는 아이한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내었지요. 왜 수수께끼를 냈느냐 하면, 아이는 아직 모르는 말이 많아요. 돌이 왜 ‘돌’인지, 돌이란 어떤 숨결인지를 잘 모르니, 마음으로 하나씩 헤아리고 짚으면서 스스로 알아내도록 수수께끼를 냅니다.


  낫이 왜 ‘낫’이고, 키는 왜 ‘키’이며, 절구는 왜 ‘절구’인지, 또 노래는 왜 ‘노래’이고, 마당은 왜 ‘마당’인지를 아이가 스스로 알아차리라고, 어느새 깨달을 줄 알면 아이가 철이 들어 어른이 된다고 넌지시 가르치는 길에 수수께끼를 썼어요.



수수께끼 055


바람을 마시며 가볍고

해를 먹으며 튼튼하고

물을 머금으며 부드럽고

빛을 맞이하며 아름답지


겉과 속을 잇는 길

안과 밖을 맺는 터

넓게 퍼져 춤추고

곱게 엮어 노래해


서로 맞닿으며 따뜻하네

한쪽이라도 다치면 힘들어

같이 뒹굴면서 빙그르르

구석구석 아끼면서 기운나지


쓰다듬으니 좋아

주물주물 풀면서

토닥토닥 반가워

넋이 입은 빛살옷



  수수께끼는 놀이로 아이한테 건네는 말이면서, 고스란히 말놀이입니다. 또 ‘말 가르침’이자 ‘말 배움’이에요. 이러면서 저절로 글꽃(문학)이 됩니다. 일본에는 하이쿠라고 하는 짧은 글자락이 있는데, 한국에는 ‘수수께끼’가 한 줄짜리 노래(시) 구실을 했어요. “길고 긴데 기면서 땅밑에 있으면?”처럼 한 줄짜리 수수께끼요 문학입니다.


  곰곰이 보면 수수께끼 놀이란, 수수께끼 동시를 우리가 함께 쓰면서 아이하고 나누는 말살림이란, 생각짓기(철학)라고 할 만합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 나가는 말짓기 놀이입니다. 말을 어렵게 짓지 않았다는, 말을 늘 사랑으로 즐겁게 지었다는, 말 한 마디에 생각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씨앗을 담았다는, 여러 이야기를 수수께끼로 엮어서 들려줍니다.








수수께끼 141


멀리서만 찾더라

늘 여기에 있는데

딴곳에서만 보더라

바로 이곳에 사는데


상냥하게 웃어 주겠니

그만 미워하겠니

따스하게 안아 주겠니

이제 싫은 티 그치겠니


아직 모르나 보던데 바람이야

여태 잊었나 보던데 눈물이야

군더더기 안 붙여도 돼

껍데기 안 씌워도 돼


있는 그대로 사랑이야

고이 바라보아 주렴

사는 그대로 기쁨이야

새로 걷는 꿈을 지으렴



  아버지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보금자리를 찾아 숲이 그윽한 작은 시골자락 집을 마련합니다. 두 아이는 하루를 스스로 지으면서 마음껏 뛰놀고 꿈꾸면서 풀꽃나무하고 동무가 되며,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자랍니다. 곁에서 바람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구름은 폭신한 잠자리가 되며, 골짝물은 시원한 숨결로 온몸을 적십니다.


  이름을 알고 싶은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묻습니다. 이름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이름에 깃든 뜻을 알고 싶어 “그건 뭐야?” 하고 “이건 뭐야?” 하며 끝없이 묻고 거듭 묻고 새로 묻고 또 묻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수수께끼를 내기로 합니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열여섯고개로 간추린 수수께끼입니다.


  열여섯고개를 넉고개로 가르고, 넉고개는 봄여름가을겨울로 꾸며서, 겉보기로는 넉 줄을 넉 자락 이은 “열여섯 줄 동시”가 됩니다. 겉은 동시이면서 속으로는 수수께끼요 이야기밭입니다. 이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 동시’는 어린이한테 ‘이야기가 늘 새롭게 흐르는 상냥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씨앗을 생각으로 심는 말’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말배움길입니다.


  가장 수수하고 흔한 말로 수수께끼를 짓습니다. 때로는 아이한테 아직 낯설 테지만, 앞으로 마주할 여러 살림살이나 숲이나 숨결하고 얽힌 낱말을 슬그머니 섞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시나브로 알아차릴 만한 ‘살림을 그리는 오래되면서 새로운 말’을 곁들이는 셈입니다.


  그나저나 앞자락에서 세 가지 수수께끼 동시를 옮겼는데, 풀어내셨을까요? 세 가지 수수께끼 풀이를 뒷자락에 옮기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맺겠습니다.





수수께끼 004 → 비(빗물)

: 비는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면서 새로운 기운을 퍼뜨려요. 풀 꽃 나무는 비를 먹으면서 무럭무럭 커요. 어디에든 고르게 뿌립니다. 지저분한 것을 말끔히 씻으니, 비가 지나간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지요. 먼 옛날부터 어린이는 비오는 날을 새삼스레 반기며 놀았고, 어른은 고마운 비님이라며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바라는 몸짓)을 드리곤 했어요.


수수께끼 055 → 살갗(살)

: 우리 ‘살갗’뿐 아니라 짐승도 살갗은 어느 곳이든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마치 끝없는 들판 같습니다. 살갗으로 해·바람·비를 누리면 튼튼해요. 까무잡잡한 살빛은 기름진 흙빛처럼 싱그럽게 살아숨쉬지요. 이 살갗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사랑이란 기운이 퍼집니다. 모든 숨결이 입는 옷이요, 풀이랑 나무도 반짝반짝 입어요.


수수께끼 141 → 나

: 우리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자꾸 바깥에서 찾으려 하고, 거울로 들여다보려 하곤 해요. 그렇지만 ‘나’는 늘 여기에 있답니다. 남하고 견주며 고운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 고우니, 바로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나’예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20년까지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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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3.18. 꽃매듭


짐을 묶을 적에 매듭을 짓습니다. 이 매듭을 놓고서, 일을 마무리하는 자리에도 빗대지요. 그런데 매듭을 가만히 보니 꼭 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꽃을 지켜보다가 꽃을 따라해 보고 싶어서 끈으로 이모저모 엮으며 매듭을 찾아내지 않았을까요. 모든 매듭은 꽃을 닮았지만 굳이 ‘꽃매듭’이란 말을 새로 혀에 얹어 봅니다. 잘 되는 일을 가리키고 싶어서, 즐겁게 끝내는 자리라든지, 이제까지 땀흘리고서 뒷사람한테 물려주는 때에 ‘꽃매듭’이란 말을 쓸 만하지 싶습니다. 등짐에 꽃매듭을 달고 걸어 봐요. 꽃걸음이 되겠지요. 우리 스스로 꽃매듭이나 꽃걸음이나 꽃살림이 되지 않는다면 그만 끔찍누리로 흐르고 만다고 느껴요. 꽃이 아니면 끔찍한 셈이랄까요.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면 죽음판이 된달까요. 골을 부리거나 불같이 타오르는 짜증이 바로 어둠터이거든요. 같은 불이어도 불구덩이가 될 때가 있고, 온누리를 살리는 해님이 될 때가 있어요. 활활거리던 마음을 다독여 봅니다. 이글거리던 눈빛을 타일러 봅니다. 이제는 곱게, 곱살하게, 곱다시, 꽃으로 가는 길을 그립니다. 꽃으로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얌전둥이가 되어 들꽃을 바라봅니다. ㅅㄴㄹ


꽃매듭 ← 리본, 해피엔딩, 해피엔드, 행복한 결말, 정년퇴직, 성료(盛了), 성공리, 명퇴, 명예퇴직

등짐 ← 가방, 배낭, 백팩

끔찍누리·끔찍나라·끔찍터·끔찍판·죽음나라·죽음누리·죽음터·죽음판·불구덩이·불가싯길·불바다·어둠터·어둠누리·어둠나라·어둠판 ← 디스토피아, 지옥, 나락(那落)

얌전이·얌전님·얌전둥이 ← 모범생, 요조숙녀, 숙녀, 신사(紳士), 신사적, 초식계, 충견, 충성, 순둥이(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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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3.17. 덤종이


나누고 싶으니 손을 뻗습니다. 반가우니 더 나누고 싶을 뿐 아니라, 더욱 주고 싶어요. 밑질 수 있다면 기꺼이 덤을 내밉니다. 우리 몫이 줄거나 모자라거나 없기도 하지만, 활짝 웃으면서 더 건네는 마음이기에 새삼스레 넉넉하면서 즐거워요. 이 종이는 덤종이입니다. 저 종이는 쪽종이입니다. 조그마한 종잇조각일 텐데 더 나누려는 마음이 흐르고, 자그마한 종잇자락이어도 단출히 여민 이야기가 감돕니다. 마치 잇꽃 같습니다. 갓 돋을 무렵부터 흐드러지는 때까지 빛깔이 시나브로 달라지는 잇꽃이에요. 이 잇꽃으로 천이나 종이를 물들이면 그때그때 달라요. 보드랍다가 짙붉게 물드는 잇꽃빛마냥, 잇물이란 깊으며 넓게 번지는 숨결이지 싶습니다. 잇빛은 때로는 꼭두서니빛이요, 감알빛이면서, 단감빛입니다. 가만 보면 감빛도 언제나 다르군요. 갓 익을 무렵 감빛하고 깊이 익을 즈음 감빛은 다르거든요. 말랑말랑한 감알이랑 단단한 감알도 빛깔이 다르고요. 깨알도 그래요. 여느 참깨나 들깨하고 빛깔이 다른 새까만 깨알이 있어요. 그래서 따로 검은깨나 까만깨가 됩니다. 고니란 새는 으레 하얗다고 여기기에 따로 까만고니가 있는 모습하고 마찬가지예요. ㅅㄴㄹ


덤종이 ← 쿠폰

쪽종이 ← 메모지, 쪽지, 종잇장, 쿠폰

잇꽃 ← 홍화

잇빛(잇꽃빛) ← 주홍, 다홍

꼭두서니빛·감알빛·단감빛 ← 주황, 주황색, 주황빛

검은깨·까만깨 ← 흑임자(黑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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