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0.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유루시아 글·그림, 인디펍, 2020.4.5.



언제나 새롭게 배운다. 배우지 않은 날이란 없다.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던 때, 아직 태어나지 않고서 이 별을 가만히 떠돌며 누구를 어버이로 삼아서 태어나면 새롭고 재미나게 삶을 지을까 하고 그리던 때, 인천 골목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라며 뛰놀다가 으레 길을 잃고서 울던 때, 국민학교를 거치고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처음으로 집안 뜻을 거스르며 대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밝히며 집이 발칵 뒤집히던 때, 혼자서 온살림을 부여잡고 서울에서 살아가며 발버둥을 치던 때, 사전 편집장을 하다가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다가 서울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갔다가 전라도 시골자락으로 깃들며 두 아이를 돌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오늘에 이르도록, 언제나 배움걸음이지 싶다.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을 읽었다. 유루시아 샘님이 ‘그림으로 빚은 교사일기’를 독립출판으로 내신다는 얘기를 듣고 꽃등으로 손을 보태었다. 2003년 가을에 비로소 알았는데, 떠난 이오덕 어른은 ‘모든 교사가 아이한테만 글쓰기를 시키지 말고 어른인 교사 스스로 해마다 책 하나를 낼 만큼 써야 한다’고 밝혔더라. 교사도 스스로 쓰며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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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9.


《요정이 된 마녀 우파바루파》

 안나마리아 가티 글·라우라 코르티니 그림/안진원 옮김, 서광사, 1999.12.20.



바깥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오고 나면 으레 집안일을 하기가 만만하지 않구나 싶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면서 숱한 다른 기운 사이에서 맴도는 동안 내 기운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일까. 우리 보금자리에 없는 시끄러운 소리, 우리 풀밭에 없는 매캐한 바람, 우리 아이들하고 너무 다르게 거칠고 차가운 읍내(또는 큰고장) 아이들이나 어른들 ……. 그나마 요새는 돌림앓이가 퍼지면서 ‘알아서 떨어져 주’기에 그럭저럭 바깥일을 볼 만하지만, 전라남도에는 이 돌림앓이에 걸리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터라 좀 고단하다. 읍내 우체국을 거쳐 저잣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차리고는 자리에 쓰러져 《요정이 된 마녀 우파바루타》를 읽는다. 설마 판이 끊어졌나 싶어 살피니 고맙게도 판이 안 끊어졌다. 그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해가 넘도록 조용조용 읽히는구나. 읽는 동안 글자락을 군데군데 손질해 놓고서 큰아이한테 건넨다. 동생하고 어머니한테 소리내어 읽어 준다. 이 동화책은 소리내어 함께 읽으며 아름다운 책이라고 느낀다. 어쩜 이렇게 이야기를 잘 엮었을까. 사잇그림도 퍽 어울린다. ‘마녀’하고 ‘요정’ 사이를 오가는 우파바루파인데, 우파바루파는 마녀도 요정도 아닌 오롯이 ‘숲님’이로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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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8.


《고양이와 할아버지》

 네코마키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6.5.31.



큰아이하고 둘이서 ‘바람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야 셈틀을 켜서 꾸준히 남기지만 공책에 따로 쓴다. 내가 먼저 연필을 쥐어서 척척 쓰고, 뒤이어 큰아이가 쓴다. 처음에는 그날그날 쓰려 했더니 어느새 하루씩 밀리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하루하루 이야기를 나란히 남기려고 한다. 어느덧 전남 고흥이란 시골자락에서 열 해를 살아내고 보니, 그동안 지켜보면서 배우고 받아들인 숲바람결을 두 사람 눈길로 하루하루 남겨 보려는 뜻이다. 이렇게 한 해치를 쓰고 보면 ‘철·달·날’에 따라 흐르는 숨결을 새삼스레 엿볼 만하겠지. 《고양이와 할아버지》를 아이들하고 읽는다. 아이들하고 읽어도 될 만하다. 고양이 눈길이랑 할아버지 눈썰미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는데, 이 만화를 그린 분은 나이가 얼마쯤일까? 아, 나이가 어리거나 젊더라도, 또 가시내가 그렸더라도, 얼마든지 ‘할아버지 마음’을 읽어내어 따사로이 담을 만하겠지. 사내라서 ‘할머니 마음’을 못 그리지 않는다. 그리려는 마음을 먼저 세우고서 즐겁게 사랑으로 다가선다면, 가시내는 사내를 읽고 사내는 가시내를 읽으면서 온누리를 아름다이 가꾸는 빛을 새록새록 그려내겠지. 한국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은 아직 이 대목이 모자라다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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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빛나는 고을 빛나는 책터 (2018.3.7.)

― 전북 전주 〈조지 오웰의 혜안〉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25

063.288.8545.



  전북 전주에 그림책을 살뜰히 다루는 〈책방 같이:가치〉가 태어났을 적에 ‘전주는 참 대단하지. 그림책을 오롯이 다루는 마을책집이 문을 여는구나!’ 싶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이윽고 인문책을 오롯이 다루는 〈조지 오웰의 혜안〉이 태어난 이야기를 듣고는 ‘어쩜 전주는 엄청나지. 그림책집 곁에 인문책집이 있네. 마을책집이 하나둘 움을 트고 이야기를 지피는 고장이라면 두고두고 아름터로 흐르겠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주마실을 할 적에 〈조지 오웰의 혜안〉을 들르려고 해보지만 좀처럼 때가 안 맞습니다. 따로 하루를 전주에서 묵지 않고서야 들를 길이 없습니다. 전주사람이라면 가뿐하게 마실하겠지요. 저녁나절에 여는 때를 맞추어 시골에서 찾아가자니 여러모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 닿기 마련. 드디어 저녁나절에 전주에 찾아가서 하루를 묵을 일을 마련했고 가벼이 거닐어 마을책집에 닿습니다.


  조지 오웰 님이 쓴 책 가운데 미처 챙기지 못한 《조지 오웰, 영국식 살인의 쇠퇴》(조지 오웰/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2014)가 보여서 집어듭니다. ‘조지 오웰’에 왔으니 ‘조지 오웰’도 만나야지요.


  어린 날 푼푼이 소꿉돈을 모아서 애거서 크리스티 님 책을 장만해서 읽으려 했습니다. 1980∼90년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추리소설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추리소설뿐 아니라 만화책을 갖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없다시피 했어요. 오늘날에도 만화책을 제대로 갖춘 도서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학습만화라든지 ‘그래픽노블’쯤은 조금 두지만, 만화답게 이야기를 엮는 책은 눈여겨보려 하지 않기 일쑤예요.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2014)을 어루만집니다. 추리소설이란 길을 걸어온 이녁 삶을 스스로 풀어낼 만하겠지요.


  시조로 삶을 노래하는 《쓸 만한 잡담》(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을 넘기다가 《너의 섹시한 뇌에 반했어》(조정란, 런더너, 2018)를 들춥니다. 책집지기가 손수 갈무리한 이야기를 묶은 책입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면서 책집지기 스스로 삶을 풀어놓는 책이 둘씩 셋씩 늘어납니다.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 삶부터 바라볼 노릇이고, 우리 살림부터 가꿀 일이에요. 마을에서 책집이라는 터전을 추스르는 마음부터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지필 만하지요.


  마을책집마다 책집지기가 이 터를 가꾸는 이야기를 꾸준히 선보이면 참으로 재미있고 뜻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빛으로 태어나서 퍼지는 아름다운 빛살을 담은 책이란 더없이 싱그럽겠지요.


  빛나는 고을에 빛나는 책터입니다. 빛나는 눈망울로 빛나는 이야기를 누립니다. 빛나는 손에 빛나는 풀 한 포기를 놓습니다. 빛나는 걸음으로 빛나는 풀밭을 걷습니다. 봄에 걷는 풀밭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거니는 풀밭은 다릅니다. 봄에 만나는 마을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만나는 마을도 다르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품은 마을에 움트는 마을책집에는 철마다 어떤 바람이 새삼스레 흐를까요. 이다음에 전주에서 저녁마실을 할 때가 또 언제이려나 하고 곱씹으면서 길손집으로 걸어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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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4.6. 거룩아씨


아이가 카레를 노래하면, “그래, 그러면 뭘 챙길까?”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대로 함께 챙기고, 가루를 녹이면서 살살 끓이는데, “카레를 맛나게 하려면 찬찬히 오래 저어야 한단다” 하고 덧붙입니다. 한켠에 덩이가 지지 않도록, 고르게 녹으면서 퍼지도록 합니다. 아이 밥그릇하고 어른 밥그릇이 비슷합니다. 크기도 비슷하고 담은 부피도 어슷비슷하지요. 아이라고 적게 주지 않아요. 아이라고 적게 먹지 않거든요. 두 아이가 열 몇 살을 넘어가면서 어른이 적게 먹습니다. 언젠가 성당 수녀님이 ‘성물방’이란 곳을 쉬운 이름으로 어떻게 고쳐야 좋을는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신 적 있습니다. 절집에서 흔히 쓰는 ‘거룩하다’란 말 그대로, ‘거룩노래(← 성가)·거룩님(← 성인·성자)’이라 하면 되듯 ‘거룩가게’라 하면 되겠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거룩한 사내라면 ‘거룩돌이’요, 거룩한 가시내라면 ‘거룩순이’일 테지요. 마실을 다니면 으레 쪽칼을 챙깁니다. 마실길에 능금을 썰어서 아이한테 나누어 주려고요. 서울길을 걷다 보면 툭툭 치거나 밟고도 그냥 지나가는 고약한 사람이 많았는데 요새는 알아서 떨어져 주니 홀가분합니다. ㅅㄴㄹ


같다·똑같다·고르다·가지런하다·닮다·비슷하다·어슷비슷하다·하나·고루·고만고만·매한가지·마찬가지·맞추다 ← 균일, 균일화

거룩님·거룩이 ← 성인(聖人), 성자(聖者), 성녀

거룩아씨·거룩순이 ← 성녀

주머니칼·쪽칼·토막칼 ← 잭나이프, 낭도, 단도(短刀)

거짓·얄궂다·궂다·나쁘다·못되다·몹쓸·고약하다·흉·얼룩 ← 부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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