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은빛 창비시선 64
홍희표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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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9


《금빛 은빛》

 홍희표

 창작과비평사

 1987.10.10.



  눈치를 보며 살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눈치인 터라,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길이란 없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얽매입니다. 사랑을 보며 살아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사랑인 터라,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길이 되어요. ‘내가 이곳에 온 뜻은 이렇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언제나 환하게 노래합니다. 《금빛 은빛》은 1970∼80년대를 아우르는, 때로는 1990년대까지 뻗는 먹물붙이 글결이로구나 싶습니다. 2010∼20년대 먹물붙이 글결하고 사뭇 다릅니다. 앞으로 2050∼60년대에 이르면 또 다른 먹물붙이 글결이 나타나겠지요. 삶자리가 아닌 눈썰미로 글을 옮긴다면, 뭔가 멋스러워 보이는 글을 꾸민다면, 무엇보다 스스로 지식인이라는 생각에 갇혀서 글을 여민다면, 이러한 글로는 무슨 노래가 태어날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느 풀벌레나 멧새도 눈치를 보며 노래하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풀벌레답게 노래하고, 멧새는 멧새다이 노래합니다. 다 다른 풀벌레하고 멧새는 노상 다른 숨결로 저희 하루를 노래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하루를 쓰지 않고서야 씻김굿이 안 될 테며, 삶을 짓는 길을 고스란히 밝히지 않고서야 시이건 문학이건 비평이건 안 되겠지요. ㅅㄴㄹ



제비꽃은 / 남쪽으로 고개 들고 / 진달래는 / 북쪽으로 깽깽 울고 (남쪽으로 북쪽으로-씻김굿 1/9쪽)


단군 할아버지의 단기력을 쓰던 호랑이 담배먹던 까까머리 시절. ‘평안남도 평양시 기림리……’로 시작하던 본적이 어느 때부터인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로 바뀌고, 바뀌는 평양의 햇빛과 서울의 햇빛 속에 우리의 까까머리들은 그대로 친척들이 다녀간 뒤에는 “내래 어카 갔시요?” “거럼 기리티 않구……” 해가며 동짓밤에 동치미국물로 냉면 먹듯 울다 낄낄대고. (본적-씻김굿 49/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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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의 새
문정희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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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34


《아우내의 새》

 문정희

 난다

 2019.11.20.



  요즈음 자가용을 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걷거나 버스를 탄다지만, 여느 어른 가운데 두 다리로 볼일을 보며 움직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러다 보니 이곳이건 저곳이건 자가용으로 오가는 길을 헤아릴 뿐, 두 다리로 다니는 사람은 처음부터 생각조차 안 하기 일쑤입니다. 고흥이란 고장에서 살며 군청이건 교육청이건 선거관리위원회이건 어디이건 가야 할 적마다 그야말로 한참 걷는데, 이 길마저 그리 걸을 만하지 않고 엉망입니다. 이곳은 얼마나 아름나라일까요. 숱한 사람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지키려던 터전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아우내의 새》를 엉망진창 거님길을 오가면서 읽습니다. 시골 군수이든 도시 시장·구청장이든, 또 숱한 국회의원이든 두 다리로 다닐 적은 선거철뿐이라고 느낍니다. 이들은 거님길이 얼마나 엉성한지 모르지 싶습니다. 그 길을 누가 언제 어떻게 걷는지 살피지도 못하겠지요. 아우내에서 아우성이던 숨결은 자가용나라를 바라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삽질나라를 바라지도, 돈나라를 바라지도, 입시지옥나라를 바라지도 않았겠지요. 아스라한 목소리를 가늠합니다. 아슴프레하게 떠오르는 옛넋을 돌아봅니다. 아직 멀지는 않았겠지요. ㅅㄴㄹ



풀꽃 하나가 / 쓰러지는 세상을 붙들 수 있다. // 조그만 솜털 손목으로 / 어둠에 잠기는 나라를 / 아주 잠시 / 아니, 아주 영원히 / 건져올릴 수 있다. (서시/24쪽)


깜장 치마 흰 저고리 / 보송한 눈을 하고 // 물집난 발, 알밴 종아리 / 타는 입술을 하고 // 누군가 / 가벼이 쓸어안아주어서 / 관순이는 훨훨 날아다닌다. (신의 비밀/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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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오천만년 그 때 아이에게 현암아동문고 27
신현득 지음 / 현암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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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3


《일억오천만년 그 때 아이에게》

 신현득 글

 송희정 그림

 현암사

 1994.7.30.



  이웃말을 모른다면 이웃이 들려주는 소리에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모를 테지요. 이웃말을 모른다면 이웃은 늘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소리에 담아서 들려줄 테지만 소릿결조차 못 알아챌 테고요. 마음을 기울여서 마주하지 않는다면 ‘아’라 말하는지 ‘어’라 말하는지 모를 뿐더러, ‘하’라 했는지 ‘다’라 했는지도 모를밖에 없습니다. 참새가 들려주는 말소리는 ‘짹’ 하나일 수 없으나 마음으로 참새를 사귀지 않는다면 갖가지 노래에 이야기를 제대로 맞아들이지 못할 테고요. 신현득 님은 《일억오천만년 그 때 아이에게》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쓴 동시를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이 동시책에도 실은 ‘참새네 말 참새네 글’은 이녁이 일군 노래를 잘 드러내지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귀엽습니다만, 곰곰이 보면 겉보기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예쁘장하게 보는 눈길에 갇힌 셈이랄까요. 어린이한테 들려줄 말을 비롯해 어린이가 누릴 삶터를 깊거나 넓게 아우르지 못하는 셈이랄까요. 오늘날 동시를 쓰는 젊은 글님은 이러한 울타리를 어느 만큼 넘어설는지 궁금합니다. 참새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듣나요? 어린이 마음소리를 얼마나 귀여겨듣나요? 마음빛을 얼마나 눈여겨보고, 마음길을 얼마나 돌보며 품을까요? ㅅㄴㄹ



참새네는 말이란 게 ‘짹 짹’뿐이야. / 참새네 글자는 / ‘짹’ 한 자뿐일 거야. // 참새네 아기는 / 말 배우기 쉽겠다. / ‘짹’ 소리만 할 줄 알면 되겠다. / 사투리도 하나 없고 / 참 쉽겠다. (참새네 말 참새네 글/16쪽)


들길에서 엄마가 / 찔레꽃을 따먹고, / 찔레꽃처럼 예쁜 아길 가졌대. // 좁다란 엄마 배 안에서 / 아기가 싹이 터 자라고 있대. // 엄마가 사탕을 먹으면 / 사탕을 받아 먹고, / 사과를 먹으면 / 사과를 받아 먹고, (아들일까 딸일까/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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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쓴 옷차림 (2018.6.28.)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인천 동구 금곡로 5-1

032.766.9523.



  책을 쓴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을 엮고 꾸미며 펴내는 사람은, 또 책을 다루는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이 되려면 종이하고 잉크가 있어야 하는데, 숲에서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본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나무를 다루어 종이로 바꾼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종이공장에서는 나무를 누가 돌보고 베었는가를 따질까요? 출판사에서는 종이를 누가 다루었는가를 알아볼까요?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인쇄·제본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살필까요? 책을 짐차에 실어서 책집으로 나르는 일꾼이 민소매인지 반소매인지를 들여다볼까요?


  점글을 읽는 사람은 점글을 볼 뿐, 점글을 새긴 이가 사내이거나 가시내이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점글을 새긴 이가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손말을 나누는 사람은 손짓을 읽을 뿐, 손말을 펴는 이가 어떤 목소리인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눈으로 글씨를 읽거나 귀로 말을 듣는다면 얼굴이나 차림새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우리 가슴을 적신 글을 쓴 사람이 할머니라서 섭섭한지요? 우리 눈물을 적시거나 웃음꽃을 지핀 글을 쓴 사람이 어린이라서 서운한지요? 가시내가 쓴 글만 읽어야 할까요? 사내가 쓴 글은 읽으면 안 될까요? 바지만 입는 가시내가 쓴 글은 외곬일까요? 치마를 두르는 사내가 쓴 글은 엉터리일까요?


  고흥에 있는 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민소매·반바지’ 차림으로 갔다고 해서, 이다음에 보성군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그곳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펼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교사·교장·학부모가 ‘민소매·반바지’ 차림인 ‘불량’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했다더군요. 한여름에 긴소매·긴바지를 입어야 ‘불량하지 않은 강사 차림새’라고 하더군요.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일이 있어서 왔다가 손전화 쪽글로 이런 말을 받았습니다. 배다리에 있는 헌책집 〈아벨서점〉에서 이 책 저 책 고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저는 헌책집 일꾼이 잘생기거나 잘 차려입은 곳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으리으리하거나 번듯하게 꾸민 책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새책을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겉이 긁혔대서 속을 못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비오는 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읽고 걷다가 그만 책이 미끄덩 바닥에 떨어져 옴팡 젖었어도 얼른 손천으로 닦아서 말린 다음에 읽습니다. 빗물에 책이 불어도 줄거리나 알맹이는 하나도 안 다칩니다.


  아이들하고 누릴 그림책 《파우스트와 필로우》(까롤린느 그레고와르/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2000), 《모그와 고양이 대회》(주디스 커/장미란 옮김, 한국몬테소리, 2003), 《사과씨 공주》(제인 레이/고혜경 옮김, 웅진주니어, 2007)를 고릅니다. 아름다이 태어났어도 새책집에서 사라진 그림책이 많습니다. 《I'm a big sister》(Joanna Cole(글)·Maxie Chambliss(그림), morrow, 1997)하고 《the new land, a first year on the Prairie》(Marilynn Reynolds(글)·Stephen McCallum(그림), orca book, 1997)도 고릅니다. 모두 새롭게 숨결을 북돋우는 꽃다운 책이라고 여깁니다.


  널리 팔리거나 읽히면서 아름다운 책이 있다면, 널리 팔리거나 읽히지만 안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 어느 모습을 볼 적에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즐거운 길이 될까요. 겉모습일까요, 속차림일까요. 《ちびまる子ちゃん》(さくらももこ, 集英社, 1990)하고 《おぼあちゃん, だいすき》(olympus, ?)를 손에 쥐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여태 숱한 책집에서 온갖 책을 만나서 장만하고 읽는 동안 다른 사람 눈치를 본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기에 구태여 저까지 사서 읽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길에 징검다리가 되는 책이라고 스스로 느껴야 비로소 쳐다보고, 집어들고, 펼치고, 서서 다 읽은 다음에 기쁘게 장만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책집에서 다 읽어 보고서 삽니다.


  이렇게 책을 사서 읽으니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아니, 책집에서 다 읽었다면서요? 다 읽은 책을 왜 사요?” 저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 책을 안 읽어 보고 사나요?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함께 사나요? 저는 한 판 읽은 다음에 다시 쳐다볼 일이 없는 책은 살 마음이 없어요. 되읽으면서 가슴을 적실 아름다운 책이라고 여기기에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합니다. 이 몸으로 살아가며 적어도 열 판은 읽을 만한 책이어야 사지요. 때로는 열 판은커녕 한 판 읽기도 지겨운 책을 잘못 고르기도 합니다만, 두고두고 건사해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아이하고 함께 읽고픈 책을 사려면 미리 다 읽어 봐야 해요. 안 읽어 보고서 책을 살 수 있다면 하느님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을 고릅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문학과지성사, 2009), 《흰 책》(정끝별, 민음사, 2000),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임경자, 문학의전당, 2014)를 살피는데, 썩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시집을 사기는 사면서 푸념을 합니다. 시를 쓰는 분은 너무 글멋을 부립니다. 삶을 고스란히 노래하듯 그리는 길하고 꽤 동떨어집니다.


  비매품으로 나온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작 의궤》(국립중앙박물관, 2011)를 구경한 다음 《경상도 우리 탯말》(윤명희·이대희·이성배·심인자·하루비, 소금나무, 2006)을 손에 쥡니다.


우리 경상도 말은 존칭어가 발달되지 못한 것이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서울말에서 볼 수 있는 층층의 존칭어와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도 발달돼 있지 않다. 세련된 수사나 말을 아름답게 꾸며서 하려는 언어적 매카니즘이 적은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때로 마음을 숨기는 반어적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료 표현이 직설적이다. 모음의 수도 전국의 탯말 가운데 가장 적고 다혈질적인 성격과 맞물려 말도 무척 빠르다. 제한된 시간에 많은 정보를 표현하려다 보니 음절이 생략되는 축약현상도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가장 두드러진다. (22쪽)


  퍽 옛날에 나온 책을 되살렸다고 하는 《조선의 귀신》(村山智順/김희경 옮김, 동문선, 1990)을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아직 갈무리하지 못했을 무렵 일본 지식인하고 학자가 이 나라 이야기를 꽤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아니, 말을 제대로 해야겠지요. 이 나라 지식인하고 학자는 이 나라 수수한 살림살이를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이 나라 먹물붙이는 언제나 임금 둘레에 붙어서 떡고물을 받아먹는 짓을 했습니다. 비록 일본사람이 갈무리한 책이라 하지만, 일본사람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뜻이었든 이웃으로 마주하는 몸짓이었든 임금 둘레 떡고물을 책으로 엮기보다는 수수한 시골사람 살림을 여미는 책을 참 많이 내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조선의 생활·문화·사상의 제현상은 이 비유에 있어서의 이파리이고 꽃이다. 이 이파리나 꽃의 성정을 이해하고, 이것을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저급한 사상, 민간신앙의 연구부터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13쪽)


  그나저나 책에 나오는 ‘저급한 사상’이란 대목이 걸립니다. ‘낮은자리 넋’으로 보자면 볼 수야 있겠지만, ‘삶을 바탕으로 이루는 넋(생각)’이라고 해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만화책 《장백산의 비밀》(차성진, 고려원미디어, 1990)하고 《외뿔이》(오세영, 게나소나, 2001)까지 고르기로 합니다. 차성진 님 만화를 어릴 적에 만화잡지에서 빠짐없이 찾아 읽던 일이 새삼 떠오릅니다. 오세영 님 만화책은 어느덧 판이 끊어졌습니다. 우리 책숲에 있는 책이지만 하나 더 건사할 생각입니다.


  꽃차림을 하고서 책집을 꾸며도 좋습니다. 좀 허름해 보이는 책집을 돌보아도 좋습니다. 책낯도 곱게 가꾸면 더 좋을 테지만, 속빛이 없이 겉낯만 매끈한 책은 굳이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눈을 감고서 마음으로 마주하면 좋겠어요. 종이에 찍힌 글씨에 도사리는 숨결을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어요. 겉읽기 아닌 속읽기를, 겉차림이 아닌 속사랑을, 온삶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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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숲사람으로 살려는 길 (2018.1.21.)

― 경기 양평 〈산책하는 고래〉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340-20

070.8870.7863.

http://blog.naver.com/whalestory3



  저는 자가용을 몰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부터 없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에 학교에서는 운전면허를 따라고들 북돋았습니다. 이때에 운전면허를 참 많이들 따더군요. 대입시험이 끝나고 졸업식을 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고작 운전면허를 따라고 시키더군요. 앞으로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찾으려 할 적에 면허가 있고 없고는 크게 다르다고 했습니다. 저는 따졌지요. “모든 사람이 다 차를 몰 줄 알아야 하나요? 자동차를 안 타고 다니면 안 됩니까? 저는 기름 안 먹고 물하고 바람을 먹는 자동차가 나오면 면허를 딸 생각이 있지만, 그때에도 면허는 따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 몰지 않고도 다니는 자동차가 있다면, 그때에는 장만해서 몰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해요.”


  춘천에 있는 마을책집으로 마실을 하고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이튿날 춘천 마을책집 지기님이 수원까지 갈 일이 있다고 하셔서 같이 타고 말동무가 되기로 합니다. 춘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에 경기 양평을 거칩니다. “그럼 우리, 양평에 있는 마을책집에 들러 보면 어떨까요?”


  한갓진 길을 달립니다. 서울을 벗어나려는 건너쪽 찻길은 자동차가 가득하지만, 서울 언저리로 달리는 찻길은 한갓집니다. 이러다가 갑자기 길이 막힙니다. 무슨 일일까요? 길그림을 보던 춘천 책집지기님이 “우리가 스키장 옆을 지나가는가 봐요. 아, 몰랐네.”


  자가용도 없지만 스키터란 데를 간 일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키터 옆을 지나가 봅니다. 스키를 타려고 구름처럼 몰린 자동차물결에 끼여 5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한 시간 넘게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스키터 언저리에는 스키 살림을 다루는 가게가 엄청나게 많고, 스키터를 드나들려는 사람이 묵는 집도 매우 커다랗게 잔뜩 있습니다. ‘한국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이다지도 많네!’ 하고 놀랍니다. ‘어쩌면 나는 한국사람이 아닌지 몰라. 이렇게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하나도 모르잖아?’


  스키터 둘레를 빠져나오니 비로소 한갓집니다. 마을책집을 찾으려고 마을 분한테 길을 여쭙고 다시 여쭈어 드디어 양평 〈산책하는 고래〉에 닿습니다. 멀면서도 가까운, 가까우면서도 먼 길이었습니다.


  마을책집 〈산책하는 고래〉는 어린이책하고 그림책을 꾸준히 펴내는 ‘고래이야기’에서 꾸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책집에서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지요. 그림책하고 노닐듯 시골바람을 쐬면서 하룻밤을 누릴 분은 그윽하면서 즐겁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자락에서 살며 늘 숲바람을 쐬고 미리내를 바라보는 터라, 우리 보금자리에서 지내기만 해도 늘 ‘책밤’을 누려요.


  그동안 미처 못 살핀 그림책을 눈여겨보려 합니다.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코키루니카 글·그림/김은진 옮김, 고래이야기, 2007)를 고르고,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토드 파 글·그림/장미정 옮김, 고래이야기, 2010)을 고르며,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메네타 코틴 글·로사나 파리아 그림/유 아가다 옮김, 고래이야기, 2008)을 고릅니다. 《세상이 자동차로 가득 찬다면》(앨런 드러먼드 글·그림/유지연 옮김, 고래이야기, 2010)을 고르고, 《두고 보라지!》(클레르 클레망 글·오렐라 귀으리그림/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 2017)를 고르며, 《쿠베가 박물관을 만들었어요!》(오실드 칸스터드 욘센 글·그림/황덕령 옮김, 고래이야기, 20014)를 고릅니다.


  마을책집 〈산책하는 고래〉를 둘러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책을 한 자락 사야 합니다. 저는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갈 적에 ‘책을 살 뜻’이니 기꺼이 신나게 온갖 책을 돌아보면서 장만합니다.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품에 안겨 줄 그림책을 헤아립니다.


  어린이 아닌 어른이 읽을 책은 따로 한켠에 건사해 놓습니다. 《시민에게 권력을》(하승우, 한티재, 2017)을 읽다가 《산골에서 팔자가 활짝 피셨습니다》(김윤아·김병철, 나는북, 2017)를 읽습니다. 그러게요. 멧골에서 살며 삶길이 활짝 펼 만하지요. 숲이라는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며 살림도 펴리라 봅니다. 《노르웨이의 나무》(라르스 뮈팅/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2017)는 노르웨이가 얼마나 도끼질을 잘할 뿐 아니라 도끼도 잘 벼리는가를 낱낱이 다룹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 노르웨이란 나라에서 지은 난로를 장만하고 싶구나. 노르웨이 난로라면 얼마나 놀랍도록 훌륭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한국 여권이 있습니다. 이웃나라로 가자면 ‘한국사람’이라는 대목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틀에 매일 뜻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사는 지구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숲사람으로 살림을 지으려 합니다. 지구를 품은 온누리를 헤아려 별사람으로 사랑을 가꾸려 합니다.


  시골집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는 언제나 버스나 전철이나 길에서 노래꽃을 적습니다. 동시를 써요. 그날그날 만날 이웃님을 헤아려서 열여섯 줄짜리 노래꽃을 갈무리합니다. 저는 노래꽃을 지어 이웃님하고 나누고 싶기에 자가용 손잡이를 쥘 겨를이 없습니다.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아름책을 만나고 싶으니 자가용 손잡이를 잡을 마음이 없습니다. 읽고 쓸 뿐 아니라, 언제나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기에, 길을 걷다가 쪼그려앉아서 들꽃을 쓰다듬고 싶기에, 운전면허도 자가용도 저한테는 덧없다고 여겨요.


  굳이 곁에 두어야 한다면 ‘자동차를 즐겁게 모는 멋진 이웃님’을 사귀면 되겠지요. 바다를 품은 고래가 이야기하는 책이 상큼하게 물결치는 마을책집에는 다음에 언제 마실을 할 만할까 하고 어림합니다. 다음에도 멋진 이웃님 곁에 앉아서 나들이를 할 날을 손꼽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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