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물들다 : 어린이는 물드는 사람일까. 어른은 물들이는 사람일까. 거꾸로 어린이가 물들이는 사람이고, 어른이 물드는 사람이지는 않을까. 바람은 늘 바람빛이지만, 바다를 안으면 파랑이 된다. 바다는 언제나 바닷빛인데, 바람을 안으면 또 파랑이 된다. 풀은 왜 풀빛일까. 어떻게 푸르게 물들까. 들이며 숲에서 풀을 훑으면 손이며 몸은 푸르게 물들어 싱그러이 거듭난다. 온몸에서 풀내가 나겠지. 화장품을 바르고 소독제를 쓰며 자가용으로 다니면 온몸에 화학약품이나 플라스틱 냄새가 물든다. 즐겁게 노래하면 즐겁게 물들지만, 이마에 이랑고랑을 내며 짜증을 부리면 바로 짜증에 물든다. 어른이란 자리라면 섣불리 물드는 길이 아니라, 바람처럼 바다처럼 물드는 몸을 보여주는 길이리라. 어른이란 숨결이라면 함부로 물들이는 길이 아니라, 바다처럼 바람처럼 물들이는 살림을 밝히는 길이리라. 새롭게 바라보기에 물든다. 새롭게 사랑하며 배우기에 물들인다. 바람물이 들고, 꽃물을 들인다. 하늘물이 들고, 사랑물을 들인다. 2003.4.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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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놀아요 - 텃밭 살림과 텃밭 작물 어린이 들살림 8
느림 그림, 보리 편집부 글 / 보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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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07


《텃밭에서 놀아요》

 보리 편집부 글

 느림 그림

 보리

 2019.2.14.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이 늘어납니다. 한결 깨끗하거나 정갈한 먹을거리를 바라는 목소리나 뜻을 담아내는구나 싶고, 자꾸자꾸 늘어나기만 하는 서울을 이제는 줄여야 하는 줄 조금은 바라보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웬만한 ‘텃밭 그림책’은 어쩐지 어슷비슷합니다. 다들 ‘할머니’가 나오고, 모든 들풀을 샅샅이 뽑아내야 하는 듯 다루며, 몇 가지 남새를 바탕으로 꾸미기 일쑤입니다. 마치 새마을운동을 하듯, 교련 수업이나 군대 줄세우기를 하듯, 가지런하게 맞추어야 보기가 좋은 듯 엮더군요. 《텃밭에서 놀아요》를 보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놀아요’ 하고 이름을 붙입니다만, ‘놀이’가 맞을까요? 고된 짐은 아닌지요? 텃밭에서 놀자고 하지만 막상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 빈터가 없다시피 합니다. 너무 촘촘히 심어 걸어다니기조차 버겁지요. 엉금엉금 기어야 한달까요. 우리가 씨앗을 묻는 땅은 ‘발 디딜 틈마저 내주지 않는 텃밭’을 좋아할까요? 모든 들풀이 저마다 쓰임새가 있을 뿐 아니라, 보송보송한 풀밭에 앉거나 눕는 재미를 들려주지 못하면서 ‘놀아요’ 같은 말을 덧달아도 될까요? 4월이 무르익으니 담쟁이잎이 새로 돋습니다. 울긋불긋 담쟁이 새잎은 싱그러우면서 맛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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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5
버지니아 리 버튼 글, 그림 | 임종태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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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10


《생명의 역사》

 버지니아 리 버튼

 임종태 옮김

 시공주니어

 1997.2.26.



  2001년 1월 어느 날, 어린이가 읽을 한국말사전을 새로 짓기로 하며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틀거리를 이야기하는데, 두 분이 그림책 《생명의 역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그 그림책부터 같이 읽고서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고 여기면서 이 그림책을 훑으며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참 오래된 그림이며 엮음새라 하지만 단출하며 짜임새 있구나 싶어요. 둘째, 어쩐지 종교 경전처럼 딱딱하게 틀에 매인 지식·정보를 되풀이하는구나 싶어요. ‘숨결이 살아온 길’을 너무 ‘사람만 바탕으로 삼았다’고 할까요. 그 뒤 스무 해쯤 지나서 다시 들추다가 이 책이 미국에서 “Life Story”란 이름이 붙어서 나온 줄 알아챕니다. 그래요. ‘역사’라고 하니까, 또 ‘생명’이라 하니까, 딱딱한 틀이 되겠지요. 미국 어린이한테는 그토록 쉽고 수수한 이름을 붙인 그림책인데, 한국 어린이한테는 왜 뜬금없이 “생명의 역사”라 했을까요. 그저 “살아온 이야기”인걸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눈’으로 어제를 섣불리 재거나 따지면 그르치기 쉬워요. 어제를 읽으려면 ‘어제 눈’이 되어야 합니다. 먼먼 앞날도 ‘앞날 눈’으로 보아야지요. 무엇보다 온숨결 눈으로 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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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그림책은 내 친구 29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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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09


《학교 가는 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이지원 옮김

 논장

 2011.6.10.



  어릴 적부터 ‘학교 가는 길’이 신나거나 재미있던 적은 하루조차 없었다고 느낍니다.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고, 학교를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따질 곳이 없었습니다. 학교 안팎이건 마을이건 집이건 “왜 학교를 가야 하나요?” 하고 물었다가는 꾸중에 호통에 핀잔에 꿀밤에 손찌검에 고단하기만 했습니다. 오늘날은 좀 달라졌을까요? 지난 마흔 해 남짓에 걸쳐 이 나라 학교란 데가 얼마나 나아졌을까 아리송합니다. 요새는 학급이 줄고 쉬는때도 늘리며,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를 펴기도 한다지만 으레 학교란 틀일 뿐이에요. 졸업장이나 상장은 그대로 있고, 바로 이 졸업장하고 상장을 바탕으로 모든 돈벌이·이름팔이가 불거져요. 거짓 상장이 넘치고, 거짓인 줄 알아도 슬그머니 넘어가기 일쑤예요. 《학교 가는 길》은 학교 가는 길을 신나는 놀이로 바꾸어내는구나 싶어 놀랍지만, ‘그래도 학교 가는 길’입니다. 차라리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리면 어땠을까요? ‘놀러가는 길’이나 ‘바다로 가는 길’이나 ‘숲으로 가는 길’을 그리면 얼마나 재미날까요? 지겹다 못해 질리는 이야기란, 이 나라 아이들한테 지나치게 ‘학교에 꼭 다녀야 한다’고 붙들어 매면서 이런 그림책까지 그리는 어른들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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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력으로 민음의 시 38
조은 지음 / 민음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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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30


《사랑의 위력으로》

 조은

 민음사

 1991.10.20.



  멀구슬나무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무를 고흥이란 고장에 뿌리를 내리면서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처음 만난 멀구슬나무는 읍내 한복판에서 우람하게 자랐습니다. 얼마나 키가 크고 그늘이 아름다운지, 또 꽃은 얼마나 곱고 향긋한데다가 열매는 동글동글 앙증맞고 뭇새를 불러 겨우내 먹이가 되는지, 참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군청에서는 나무를 베어내고 이곳에 시멘트를 덮어 꽃밭하고 차댐터를 꾸미더군요. 아름드리라 해도 하루아침에 시멘트랑 자가용한테 밀립디다. 삶은 어디 있을까요. 사랑은 어디 있나요. 《사랑의 위력으로》에 ‘田園一期’라는 이야기꾸러미가 돋보입니다. 다만 이런 말치레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를 딴 말치레를, 요새는 영어를 딴 말치레를 다들 하더군요. 시쓴님이 말치레 아닌 말살림을 헤아리면서 ‘시골쓰기’나 ‘시골살이’를 적바림하는 손길이었다면,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멀구슬나무마냥 들이며 마을이며 숲에 고요하면서 풋풋한 이야기잔치를 이끄는 글빛이 될 만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먼발치에서 구경하듯 쓰는 이야기도 노래라면 노래이겠지만, 발치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아끼고 곁에서 돋아나는 잎사귀를 어루만지는 글쓰기가 된다면, 참말로 엄청난 사랑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그곳으로 옮기는 이삿짐을 꾸리며 가족들은 평화로운 날들이 주렁주렁 열리리라 믿었다. 즐비한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도 신비롭던 그 봄 잡목숲을 일궈 과실나무를 심었다. 어린 과실나무가 빗물을 걸러 먹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田園一期 1/16쪽)


어른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 명동지하도 계단에 앉아 잘린 대퇴부를 / 낡은 뼈를 내보이며 / 동전 몇 개를 육신 앞에 내세우며 / 오, 우리들 발길마다 채이는 먼지를 밥술에 얹어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를 멈추게 하며/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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