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초밥왕 2 - 1 - World Stage
다이스케 테라사와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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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276


《미스터 초밥왕 world stage 1》

 테라사와 다이스케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4.8.25.



  햇볕 한 줌이 내려앉아 꽃송이가 벌어집니다. 햇볕 두 줌이 퍼지며 꽃밭이 흐드러집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열매는 꽃이었다가, 진 꽃이었습니다. 망울이었다가 작은 눈이었다가, 씨앗이었어요. 씨앗은 촉촉히 품는 흙이 있기에 뿌리를 처음 뻗고, 따스히 어루만지는 해가 있기에 줄기를 처음 올립니다. 하늘하고 땅을 고루 맞아들이기에 씨앗은 싹이 터서 풀포기나 나무가 됩니다. 사람은 어떤 기운을 고루 맞아들이면서 자랄까요? 《미스터 초밥왕 world stage 1》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손님이 참맛을 잃어버린 판에 초밥을 빚는 일꾼이 이제는 자잘한 데를 쳐다볼 일이 없다고 읊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겉치레가 가득한 글을 얼마나 알아차릴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속살이 야무진 글을 얼마나 눈여겨볼까요? 겉모습에 매달리거나 내세우면서 우쭐대는 길은 아닐까요? 마음을 착하고 참하게 다스리는 이웃을 업신여기거나 따돌리지 않을까요?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은 만화책 ‘쇼타네 초밥(미스터 초밥왕)’인데, 처음 나온 책부터 되읽어 보니, 스스로 일본을 호되게 꾸짖으면서 곱게 사랑하는 마음이 나란히 흐르는구나 싶더군요. 이 나라는 어떤 눈빛이며 손빛이 흐르는 터전일까요. ㅅㄴㄹ



“진짜 소금 한 줌 차이가 뭐 그리 대수라고 야단이람. 어차피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런 미묘한 차이 같은 거 알지도 못해.” “대부분의 사람이 모른다 해도 맛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요! 우리는 그걸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정진하는 거잖아요!” (29쪽)


“‘SUSHI’를 먹는 사람들 중 일본인은 오히려 일부에 지나지 않아. 소수의 일본인이 제아무리 전통이니 문화를 내세워도 ‘SUSHI’의 진화를 막을 수는 없어!” (52쪽)


“일본인은 결코 자기들이 정한 틀 밖에 있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그런 식으로 커다란 외압이 닥쳐야 비로소 자기들이 틀렸음을 깨닫지.”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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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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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26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김재경 옮김

 추수밭

 2020.4.22.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2016년 파리기후)협약의 요구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 산업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2도 상승이라는 기준은 놀랍게도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워 보이며, 2도 상승을 넘어서는 끔찍한 미래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런 전망은 대중의 시야에서 교묘히 숨겨지고 있다. (25쪽)


지난 10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도시 생활을 나아가야 할 미래상이라고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대도시의 규모는 인구 500만 명 이상, 1000만 명 이상, 2000만 명 이상으로 계속 늘어났다. (81쪽)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물로 뒤덮여 있다는 점에서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우세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수많은 역할에 더해 바다는 일단 우리를 먹여살린다. (147쪽)


오대호에서는 조사한 어류 중 과반수가, 북서대서양에서는 조사한 어류 중 73퍼센트가 미세플라스틱을 함유하고 있었다. (161쪽)


컴퓨터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때문에 기술 혁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거나 완전히 상쇄돼서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을 수 있다. (183쪽)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 연구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이 암울해질수록 전문가의 조심성은 점점 더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235쪽)


지난 몇백 년 동안 수많은 서양사람이 진보와 번영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요소가 사실 거대한 기후재난의 전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301쪽)



  1997년에 교토의정서가 나왔다 하고, 2016년에 파리기후협약이 나왔다 합니다. 하나는 스무 해가 지났고, 다른 하나는 다섯 해쯤 되었는데, 막상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지킨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이끄는 벼슬아치만 안 지켰을까요? 우리가 함께 안 지킨 셈 아닐까요?


  시골 군청은 어디를 가도 으리으리합니다. 아직 으리으리하지 않은 군청이 남았다면 머잖아 으리으리하게 올리려고들 합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시골 지자체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하고 젊은이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사람도 줄고, 남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더 늙습니다. 그러나 시골 지자체 벼슬아치는 외려 나날이 늘어납니다.


  서울은 나날이 더 뚱뚱해집니다. 서울 곁에 있는 큰고장도 뚱뚱해집니다. 나즈막한 아파트는 빠르게 사라지면서 높다란 아파트로 바뀝니다. 이제 시골 읍내에까지 높다란 아파트가 올라섭니다.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 적에 나오는 시멘트랑 플라스틱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갈까요? 찻길을 새로 깔면서 나오는 낡은 아스팔트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갈까요? 핵발전소를 돌리면 핵쓰레기가 나오는데, 핵방사능 쓰레기는 몽땅 어디에 있을까요? 화력발전소를 돌리면 석탄쓰레기가 나오는데, 석탄쓰레기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전남 고흥은 2020년에 ‘스마트팜’을 나라돈을 받아서 짓는다고 합니다. 널따란 ‘고흥 스마트팜’을 짓는 자리에 석탄쓰레기가 엄청나게 파묻혔습니다. 석탄쓰레기더미에 시멘트를 잔뜩 들이붓고, 여기에 유리온실을 세워서 스마트팜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이 스마트팜에서 거둔 남새는 모조리 큰고장으로 보내겠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시멘트 바닥 밑에 석탄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파묻은 유리온실에서 거둔 ‘수경재배 남새’를 먹으면서 즐거울 만할는지요? 튼튼한 몸이 되고 아름다운 마음이 될 만한지요?


  미국에서 뉴욕 한복판에 사는 어느 분이 《2050 거주불능 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김재경 옮김, 추수밭, 2020)라는 책을 써냈다고 합니다.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이 별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목숨붙이도 살아남을 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서른 해쯤 뒤에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서른 해가 아닌 2020년 오늘을 돌아볼 적에 이 별이 얼마나 살 만한지부터 생각해야지 싶어요.


  돌림앓이가 크게 퍼지는 요즈음 이 별은 얼마나 살 만할까요? 돌림앓이가 크게 퍼지면서 거의 모든 하늘길이 멈춥니다. 하늘길이 멈추고 공장도 꽤 많이 멈추고 자동차물결도 이럭저럭 줄어드니, 하늘빛이 파랗게 바뀝니다.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되어요. 오늘 여기를 보면 되어요.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 정년퇴직을 맞이할 때까지 회사원이 되어 톱니바퀴로 굴러야 한다는 생각,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의무교육을 차근차근 밟고서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생각, 목돈이 좀 생기면 여러 나라를 비행기 타고 휘휘 돌며 사진을 찍어서 누리집에 올려야 한다는 생각, 조금 더 크고 시커먼 자가용을 굴려야 한다는 생각, 마당 한 뼘도 없는 시멘트 아파트를 몇 억이든 십 억이든 이십 억이든 들여서 장만해야 비로소 숨을 돌릴 만하다는 생각, …… 갖은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삽니다. 하늘빛을 볼 겨를도 못 내지만, 하늘빛을 보자는 생각도 안 합니다. 하늘빛을 안 보니 흙빛도 풀빛도 나무빛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미국만 아니라 한국도 ‘조개 플라스틱’이나 ‘물고기 플라스틱’을 알아보면, 또 ‘돼지고기 플라스틱’이나 ‘소고기 플라스틱’을 따진다면 엄청 무시무시할 만하리라 봅니다. 가게에서 비닐자루를 쓰지 않도록 법을 마련한다지만, 정작 ‘비닐바구니 아닌 천바구니’를 쓰더라도 웬만한 먹을거리는 진작에 비닐로 겹겹이 싸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조차 겉종이를 비닐로 씌웠어요.


  사람들이 먹는 거의 모든 남새는 비닐밭에서 거둡니다. 고추밭도 비닐밭이지만, 배추밭도 비닐밭입니다. 여름에 나와야 알맞을 딸기가 겨울 한복판부터 가게에 나돌아요. 딸기는 겹겹이 비닐로 두른 집에서 석유난로를 때어서 거둡니다. 그러니까, 겉모습은 딸기이지만, 속알은 비닐하고 석유로 둘러친 것을 먹는 셈이에요.


  한겨울에도 딸기를 사다 먹을 만하니 살기 좋은 나라인가요, 아니면 무늬만 딸기인 비닐하고 석유를 목돈 들여 사다 먹으니 살기 나쁜 나라인가요?


  이제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우두머리를 맡는 분한테도, 새로 국회의원으로 뽑힌 이한테도, 시장·군수뿐 아니라 여느 공무원 모두한테도, 또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맨발로 디딜 풀밭이나 맨흙이 싱그러운 마당 한 뼘조차 누리지 못하면서 자가용하고 시멘트집을 오가며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 삶은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운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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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달거리천 : 2007년부터 달거리천 빨래를 한다. 2008년부터는 똥오줌기저귀천을 빨래했다. 둘레에서 소창으로 달거리천이나 똥오줌기저귀를 삼는 분을 거의 못 본다. 다들 가게에서 종이생리대하고 종이기저귀를 사다가 쓰고 버린다. 종이생리대하고 종이기저귀를 쓴대서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 사면 들어가는 돈이 끝이 없을 뿐 아니라, 나오는 쓰레기도 끝이 없다. 삶는빨래를 하고 햇볕에 말리면, 달거리천이나 똥오줌기저귀에 드는 돈도 더는 없지만 쓰레기도 더는 없다. 몇 해 앞서 ‘종이생리대 살 돈’이 없다며 ‘신발 깔창을 종이생리대처럼 쓴’ 가난한 아이 이야기가 불거진 적이 있다. 이 아이 둘레에 소창으로 달거리천을 삼으면 돈이 안 들고 쓰레기가 없을 뿐 아니라, 아이 몸에 좋다는 대목을 짚어 주는 어른이 하나도 없었구나 싶더라. 달거리천이나 똥오줌기저귀는 소창으로 쓰도록 찬찬히 알려주면 된다. 삶는빨래는 손도 적게 갈 뿐 아니라 쉽다. 달거리를 하는 푸름이라면 삶는빨래하고 손빨래쯤은 익힐 노릇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한테 ‘종이생리대 값’만큼 살림돈으로 주면 좋겠다. 그 돈으로 책도 사고 주전부리도 사고, 때로는 푼푼이 목돈으로 모아 자전거를 사든 앞으로 다른 데에 쓰도록 이끌면 좋겠다. 무엇이든 돈으로 보면 오로지 돈으로 풀어내야 하니 서로 고단하다. 무엇이든 ‘살림을 짓는 사랑스러운 삶’으로 바라보면 돈이 없어도 풀어낼 길이 넉넉할 뿐 아니라, 외려 새롭게 아름다이 돈을 지어내는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2020.4.1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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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생일 : 한 해가 삼백예순닷새라면, 삼백예순닷새는 모두 새롭게 태어난 날. 이 가운데 하루를 골라서 처음 눈을 뜨지만, 첫눈을 뜨던 날부터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눈을 뜨지. 첫눈을 뜬 날도 새로 태어난 날이고, 다음부터 잠들어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일어나는 모든 나날도 새삼스레 생일. 언제나 새로 깨어난다. 늘 새삼스레 태어난다. 한결같이 아름답게 맞이하는 하루이다. 2012.4.17. ㅅㄴㄹ



誕生日 : 一年が三百六十五日なら、三百六十五日はすべて新しく生まれた日。 この中で一日を選んで初めて目を開くけど、初目から一日一日改めて目を開く。 初めて目覺めた日も新しく生まれた日で、次から眠って夢を見て眠り夢を見て目覺めて起きるすべての日も、今更のお誕生日。 いつも目を角ます。 いつも今更のように生まれる。一樣に美しく迎える一日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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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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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98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4.6.30.



  자전거는 어른한테도 새삼스레 씽씽다리가 되지만, 어린이한테는 더더욱 씽씽다리가 됩니다. 어른처럼 자동차를 달릴 수 있지 않은 어린이로서는 두 다리로 발판을 구르면서 바람을 맛보고 멀리멀리 오가도록 북돋우는 자전거가 어마어마한 빛줄기가 되곤 합니다. 마을을 돌보거나 나라를 가꿀 적에 반드시 자전거길이 아늑하면서 널찍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어린이가 신나게 달릴 만한 터가 있어야 하거든요. 두 다리로 걷든, 두 다리로 자전거를 달리든, 자동차 때문에 거추장스럽거나 걸리적거리는 일이 사라질 노릇이에요. 어린이가 자전거를 달리며 집이며 마을을 두루 누빌 만하다면, 이곳은 어른도 일하며 살림하기에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가 자전거를 달리기 힘들거나 가로막히는 데라면 어른으로서도 보금자리를 꾸미기에 나쁜 데일 테지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에 나오는 로타 어린이는 어른 못지않게 빠르면서 눈부신 다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언니랑 오빠만 커다란 자전거를 씽씽 달리니 못마땅합니다. 스스로 해내고 싶어요. 혼자서도 잘하고 싶습니다. 네바퀴 아닌 두바퀴로 사뿐히 봄꽃을 누리면서 신바람으로 피어오르고 싶어요. 그네도 인형도 좋지만 자전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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