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4.20. 흙책


타고난 몸이 여려 으레 시름시름인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여린 몸을 튼튼히 다스리고 싶어 용을 썼어도 시름질은 좀처럼 안 걷혔는지 모릅니다. 겉보기로는 멀쩡할는지 몰라도, 속으로는 곯으니 시름시름하겠지요. 시골에서 살며 곧잘 ‘흙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동안 익힌 즐거운 살림길을 이웃님은 어떻게 담아냈는지 궁금하거든요. 온갖 흙책을 읽다 보면 어슷비슷해요. 따로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저 흙을 우리 몸처럼 여기면서 언제나 지켜보고 따사로이 어루만질 줄 알면 다 되어요. 밥살림을 북돋우려고 ‘밥책’을 장만해서 읽기도 했는데, 사람마다 다른 손맛에 집집마다 다른 집맛이 있어서,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내림맛을 살려 보자 싶더군요. 이리하여 ‘살림책’을 스스로 쓰기로 합니다. 어버이로 지켜보고 돌보는 살림을 손수 쓰고, 아이들도 저마다 하루를 어떻게 짓는가를 손수 쓰도록 합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책을 함께 쓴달까요. 살림을 가꾸며 살림책을 쓴다면, 우리 앞길은 나이가 들어 죽는 주검길이 아닌, 참말로 반짝이는 살림길이 되어 넉넉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시름시름 ← 병들다, 신음, 고통, 편찮다, 병약, 쇠약, 허약, 나약, 약하다

흙책 ← 농서(農書), 농업 지도서, 농업 교과서

밥책 ← 요리책, 요리 지도서, 쿠킹북, 레시피북

살림책·온살림책 ← 가정백과, 생활백과, 박물지, 백과사전, 백과전서

주검길 ← 사지(死地), 황천길, 열명길, 사망, 별세, 고난, 위험, 역경, 운구(運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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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4.19. 비틀비틀


푹 빠져들 적에는 배고픈 줄 몰라요. 신나게 할 적에는 굳이 안 먹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웃음이 넘치는 기쁜 일에 빠져들든 눈물이 가득한 슬픈 일에 젖어들든, 어느 한 가지에 깊이 들어서면 밥을 잊는구나 싶어요. 때로는 입조차 못 대는 셈일 테고요. 안 먹기 때문에 다 죽어가는 꼴이 될 수 있어요. 아무것도 못 먹지만 거의 죽는 모습이 아닌, 외려 말짱한 모습이기도 해요. 기운을 다 쏟으니 비틀대기도 하지만, 난데없이 등지거나 등치는 이웃이 있어서 그만 넋을 잃고 비틀비틀이기도 해요. 튼튼한 몸이 아니라서 비틀거리기도 할 테고, 일이며 놀이에 아주 사로잡혀서 하루 내내, 아니 여러 날 옴팡 몰아치고 난 뒤에 기운이 쪽 빠져서 비틀돌이나 비틀순이가 되기도 할 테지요. 오늘 비틀이처럼 살 수 있습니다. 어제도 모레도 비틀비틀일 수 있습니다. 한동안 비틀질에서 못 헤어날 수 있어요. 궂은 일은 같이 온다잖아요. 힘든 일은 겹으로 온다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일도, 신명나는 일도, 사랑스러운 놀이도, 꿈같은 빛줄기도 언제나 나란히 찾아오지 싶어요. 물결치듯 솟구치다가 잠깁니다. 겹겹이 쌓이는 이야기에 따스한 숨결이 서리기를 빕니다. ㅅㄴㄹ


끼니를 잊다·밥을 잊다·밥을 멀리하다·아무것도 못 먹다·입조차 못 대다 ← 식음전폐

거의 죽다·다 죽어가다·비틀비틀 ← 빈사

비틀비틀·비틀거리다·비틀대다 ← 기진맥진, 의기소침, 빈약, 빈사, 무능, 무력(無力), 무기력, 맥빠지다, 맥없다, 무능력, 약한 신체, 저질 체력, 약골, 약해지다, 약화, 약소화, 소극(消極), 소극적, 노곤, 피로, 피곤, 탈진, 방전(放電), 녹다운, 실의(失意), 기함(氣陷), 쇠약, 나약, 연약, 심약, 병약, 허약

같이·나란히·함께·둘·겹 ← 쌍(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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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토록 사랑스런 마을책집을 (2018.1.7.)

― 경북 구미 〈삼일문고〉 

054.453.0031.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시장로 6

https://www.instagram.com/samilbooks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겨서 전라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고흥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전라도를 통틀어 아는 이웃조차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와 달리 경상도에는 아는 사람이 여럿 있고, 경상도 이웃님을 만나러 곧잘 나들이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청도에서 나고 자란 다음 대구에서 길잡님으로 일하는 분이 있어 이분을 만나러 대구마실을 하는 김에 구미마실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구미에 〈삼일문고〉라고 하는 아름다운 마을책집이 새롭게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꼭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얘기를 대구 이웃님한테 들려주었더니 “그럼 같이 가 보시게요.” 하셔서 대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기차를 탔습니다. “대구서 구미는 기차로 코 닿을 길 아입니까. 뭐, 기차에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곧 내린달까요.” 이내 기차에서 내리고, 기차나루부터 책집까지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는 옷집이 가득하고, 옷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엄청납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진다 싶으니 조용한 마을길입니다. 어쩐지 책집이라면 북새통 옷집거리보다는 조용한 마을자리가 어울리지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들락거릴 복닥판보다는 더 느긋이 깃들면서 마음을 헤아릴 이야기를 누릴 쉼터가 어울리지 싶어요.


  그동안 이웃님 누리집에서 사진으로 보던 〈삼일문고〉 알림판을 눈앞에서 마주합니다. 붉은돌을 촘촘히 올린 바깥이며, 밀며 들어가는 커다란 유리 미닫이가 남다릅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알맞게 어둡습니다. 책꽂이 높이는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알맞춤합니다. 책을 빼곡하게 꽂지 않았으며, 똑같은 책을 수북하게 쌓는 갖춤새가 없습니다. 구미사람이 쓴 책을 잘 보이는 자리에 곱게 건사해 놓고, 갈래마다 알뜰살뜰 알차게 책꽂이를 꾸며 놓습니다. 곳곳에 걸상이 있기도 하지만, 골마루가 워낙 정갈해서 맨바닥에 앉아서 책을 살펴도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래칸으로 내려가는 디딤판도 좋고, 어린이책을 놓은 자리는 아이들이 마음껏 바닥에 앉아서 눈을 끄는 책을 살피도록 헤아렸구나 싶습니다. 만화책을 놓은 자리 옆에는 크고 야무진 나무책상에 나무걸상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멋진 나무책걸상이라니, 오랜만에 만납니다. 따로 팔지는 않으나 〈삼일문고〉로 오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새책집에 깃든 만화 도서관’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삼일문고 만화 도서관’은 부피로만 채우지 않았습니다. 책집지기 스스로 만화라는 책을 사랑하는 손길로 꼼꼼히 가린 자취를 물씬 느낄 만합니다.


  아마 예닐곱 살에 처음 마을책집에 형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러 다녀왔을 텐데, 마흔 해 즈음 얼추 즈믄 곳이 될 이 나라 마을책집을 돌아본 나날을 돌아보니, 〈삼일문고〉는 여태 다닌 마을책집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만합니다. 어느 마을책집이 책을 사랑으로 읽고 건사하지 않겠느냐만, 책꽂이에 골마루에 불빛에 책걸상에 책집일꾼에 미닫이에 알림글에 …… 자잘한 구석까지 아낌없이 가꾼 매무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합니다.


  그림책 《노랑나비랑 나랑》(백지혜, 보림, 2017)을 구경합니다. 《신기한 우산가게》(미야니시 다쓰야/김수희 옮김, 미래아이, 2017)도 구경합니다. 두 가지 그림책은 고흥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아이들한테 건넬 생각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 4》(이와오카 히사에/ 옮김, 미우, 2017)은 오늘 이곳에서 장만하자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김옥수 옮김, 비꽃, 2017)도 찬찬히 읽자고 생각하면서 고릅니다. 이 소설책을 건사한 마을책집이라니, 참말로 눈썰미가 훌륭합니다. 〈삼일문고〉에 온 김에 만화책을 하나 더 고르자고 생각하며 《오늘도 핸드메이드! 1》(소영, 비아북, 2017)를 집습니다. 줄거리를 ‘좋아하는 짝꿍 찾기’에 너무 맞추려고 하는 대목하고, 부러 영어를 더 쓰며 멋부리는 대목이 아쉽습니다만, 요즘 한국 만화치고 볼 만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같이 보낸 대구 이웃님이 한 마디 합니다. “이야, 대구에 이런 책집이 있으면 날마다 올 텐데 말입니다. 아, 구미사람 좋겠네.” “이곳은 구미사람한테 가장 좋겠지만, 아마 나라 곳곳에서 이 마을책집 때문에 구미로 찾아오지 않을까요? 구미시장 되시는 분은 〈삼일문고〉한테 고마워해야 해요. 이토록 사랑스레 가꾸어 연 마을책집이 있으니 머잖아 대구에 새롭게 아름다운 마을책집이 태어날 테고, 이 나라 곳곳에도 새롭게 사랑스러운 마을책집이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참으로 숱한 마을책집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들 즈음에는 그야말로 떼죽음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거의 스무 해란 나날을 이 나라 마을책집은 죽음길 같은 나날을 보낸 셈일 텐데, 오히려 그 죽음길을 거쳐야 했기에 아주 새롭게 태어나자는 꿈을 곳곳에서 조용히 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더 작은 마을책집이 깨어납니다. 더 수수한 마을책집이 기지개를 켭니다. 더 빛나는 마을책집이 눈을 뜹니다. 더 사랑스러운, 아니 그저 사랑스럽고 상냥하면서 참한 마을책집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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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 1인 출판사 5년 동안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알게 된 것들 스토리닷 글쓰기 공작소 시리즈 3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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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푸른 나날·꿈·사랑을 고스란히 책으로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슬리퍼 사진

 스토리닷

 2020.1.23.



  담을 마주하는 이웃집으로 우리 집 나무가 곧잘 가지를 뻗습니다. 나무야 해바라기를 하면서 하늘로 뻗으니 담벼락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나뭇가지가 뻗으면 싫어하기에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서 속삭입니다. “얘야, 네가 잘 자라니 반갑고 고마워. 그런데 이웃집으로 넘어가면 이웃집에서 싫어하네. 우리 집에서는 마음껏 자라면 되니까, 담 너머로 가지는 말아 주렴. 담을 넘어간 가지는 톱으로 자를게.”


  무화과나무 가지를 치고서 며칠 뒤에는 뽕나무 가지를 칩니다. 뽕나무 가지에는 싹이 텄습니다. 뽕싹을 가만히 보니 꽃하고 잎이 나란히 돋아요. 뽕꽃은 풀빛으로 조그마니 내밀고는 조금씩 굵습니다. 조금씩 굵는 동안에도 풀빛이요, 어느 만큼 굵으면 이제부터 바알갛게 거듭나고, 어느덧 까맣게 익습니다.



나는 출판을 취미로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딸인 이 복잡한 역할 중에서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계속 손에서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229쪽)



  여린 뽕싹을 보다가 하나 톡 훑어서 손바닥에 얹습니다. 이토록 보드랍고 작은 싹이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무가 되네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고는 입에 넣습니다. 뽕싹에서는 오디 냄새가 납니다. 아무렴, 오디라는 열매도 뽕꽃도 뽕잎도 모두 하나인걸요. 잘린 뽕나무 가지에서 나오는 하얀물도 오디 내음이 돌아요. 가지를 토막으로 내어 잘 말린 뒤에 달이면, 이 뽕물에서도 오디 내음이 퍼지겠지요.


  아이들하고 뽕싹을 누리면서 올여름 오디잼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올여름에도 오디를 잔뜩 줍거나 훑어서 오디잼을 실컷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월을 마무르면서 오월을 바라보다가 생각합니다. 오늘 이처럼 누린 하루는 어버이인 제 몸이며 마음에 스미고, 아이들 몸이며 마음으로 번지겠지요.



우리 출판사 첫 책 《카메라 들고 느릿느릿》이란 책이 있는데, 정말 느릿느릿 팔린다. 그러니 책 제목을 지을 때 이 또한 꼭 기억할 일이다. 부정적인 단어나 부정적인 이미지는 금물이다. (188쪽)



  2020년은 삼월에도 사월에도 학교를 열지 않습니다. 오월에는 열까요? 학교를 열지 않도록 온누리에 돌림앓이가 뻗는데, 돌림앓이가 뻗는 사이에 하늘길도 바닷길도 멈추고, 하늘도 바다도 조용하니 하늘빛이며 바다빛은 더없이 상큼한 파랑이 됩니다. 이러면서 기름값이 뚝 떨어져요.


  매캐했던 하늘이란 지나치도록 하늘하고 바다를 더럽힌 빛깔이었겠지요. 새파란 하늘이며 바다란 우리 삶을 싱그러우면서 튼튼하게 보듬는 사랑어린 빛깔일 테지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퍽 오래 집에 머무는 이러한 삶을 저마다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바라볼까요? 이동안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하루하루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여미어 보려나요?


  혼자서 책을 엮고 짓고 내놓고 알리고 파는 작은 출판사 책지기님이 빚은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이정하, 스토리닷, 2020)를 읽었습니다. 요즈막에 이 책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이른바 집콕을 하는 어린이·푸름이하고 어버이가 이 책을, ‘손수 책을 엮어서 펴내어 알리고 파는 길’을 다룬 이런 책을 읽으면 꽤 뜻있고 재미있겠구나 싶습니다. 신문이며 방송에 가득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들여다보면서, 오늘날 같은 돌림앓이 이야기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달라진 삶을 글로 써 보고, 이렇게 스스로 쓴 글을 스스로 엮어서, 마침내 스스로 책 하나로 꾸려 보면 좋겠다고 봅니다.



내가 만들 책은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기 위해서 만드는 첵이 아니다. 어렸을 적 출판사를 해보고 싶었던 로망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요즘처럼 차고 넘치는 정보 속에서 단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올 이유, 그 앞에 당당할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90쪽)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어버이랑 함께 책을 짓는다면 바로 ‘온누리에 딱 하나 있는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남이 살아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삶터를 우리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앞으로 이 삶터를 어떻게 일구면 아름답고 즐거울까 하는 꿈을 우리 손으로 옮기는 책이 태어날 만합니다.


  3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날마다 이야기를 써 보았다면, 또는 아직 써 보지 않았다면, 여기에 올해가 저무는 12월 31일까지 이야기를 꾸준히 써 본다면, 또는 한 해치로는 아쉽구나 싶으면 두 해나 세 해치를 잇달아 꾸준히 써 본다면, 우리는 저마다 글쓴님이 되고 지음님이 됩니다. 이 이야기꾸러미를 손수 엮어서 책으로 선보인다면, 우리는 저마다 ‘1인 출판’을 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책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첫 번째,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물어보고 답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87쪽)



  하루를 쓰는 일기란 오직 우리 한 사람 삶이자 이야기입니다. 오직 한 사람 삶이자 이야기는 그저 어느 고장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 겪거나 바라본 이야기일 텐데, 작은 발자취가 되지요. 굵직한 물결은 아니더라도 자그맣게 퍼지는 물결이 됩니다. 이름나거나 힘있거나 돈있어야만 글을 쓰거나 책을 내지 않아요. 오늘 하루를 스스로 즐겁거나 씩씩하거나 알차게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웃음이나 눈물로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홀가분하거나 아프게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꿈꾸거나 꿈없이 쳇바퀴질로 보내었다면, 이런 다 다른 한 사람 삶이 책 하나로 다 다르게 태어날 만합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일을 혼자서 다 해내야 하는 1인 출판일 텐데, 서둘러서 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마감을 세우되 마감에 얽매일 까닭도 없습니다. 이 나라에 오천만 사람이 살아간다면, 오천만 눈길로 오천만 가지 다 다른 꿈하고 사랑으로 오늘날 돌림앓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가꿀 앞날을 그리는 책을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을 스스로 펴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 사기를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하지만 다 읽지 않는 남편과 어느 날 저녁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론은 책이란 그 사람 삶이라는 것이었다. (68쪽)


1인 출판사와 같은 작은 출판사라 해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대형 출판사와 비교해서 자본력과 조직력에서 밀리지만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끌고 가는 힘은 1인 출판사가 훨씬 더 낫다고 본다. (33쪽)



  푸른 나날·꿈·사랑을 고스란히 책으로 여미면서 푸른 나날이 그야말로 짙푸르도록 가꿀 수 있습니다. 푸르지 못하고 시든 나날이어도, 또 아픈 꿈이어도, 또 서러운 사랑이어도, 이 시든 빛이며 아픈 꿈이며 서러운 사랑도 차곡차곡 여미어 멍울을 스스로 달래어 천천히 일어서거나 기지개를 켜는 밑거름으로 삼을 만합니다.


  아름다운 하루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아름답게 책으로 태어납니다. 슬프거나 아픈 하루는 슬프거나 아픈 이야기가 되어 새삼스레 아름다이 책으로 태어납니다. 아름다워도 아름다운 책이고, 아프거나 슬퍼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판매를 떠나서 작가의 태도를 보는 것도 중요해요. 그만큼 한 권의 책을 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다 보니 그 작가와 일을 하는데 몸과 마음이 황량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그 작가 원고를 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270쪽)



  작은 출판사를 꾸리는 글쓴님은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에 앞서 두 가지 책을 선보였습니다. 하나는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이고, 둘은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입니다. 2016년에, 2018년에, 2020년에, 천천걸음으로 한 자락씩 책으로 여미었습니다. 출판사 대표이자, 곁님이자, 아이 어머니이자, 아줌마이자, 무엇보다 스스로 하루를 이야기로 갈무리하는 글님으로서 세 가지 책을 차근차근 쓰고 엮고 짓고 펴낸 셈입니다.


  요즈음은 굳이 책이 아니어도 볼거리나 할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책을, 더구나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아서 하는 책을, 더군다나 요즈음 돌림앓이를 둘러싸고서 달라진 우리 삶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는 책을, 저마다 하나씩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종이란 바로 숲에서 온 나무로구나 하는 숨결을 느껴 보자는 뜻입니다. 그냥 사서 쓰는 종이가 아닌, 여태까지 이 별을 푸르게 어루만진 숲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라는 몸으로 달라져서 우리 곁에 있는 줄 느껴 보자는 뜻이에요.


  바로 오늘부터 앞길을 푸르게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도 좋을는지, 앞으로는 모든 살림을 갈아엎듯 처음부터 새로 생각해서 짓는 길로 가야 좋을는지, 돌림앓이하고 보금자리하고 숲하고 사람을 사랑어린 슬기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글로 여미어 보자고 여쭙고 싶습니다. 같이 책을 지어 봐요. 아름다운 꿈을 그리면서.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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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허수아비의 모험 비룡소 걸작선 52
필립 풀먼 지음, 피터 베일리 지음, 양원경 옮김 / 비룡소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01


《겁없는 허수아비의 모험》

 필립 풀먼 글

 피터 베일리 그림

 양원경 옮김

 비룡소

 2009.2.10.



안으로 들어간 잭은 고무래, 괭이, 빗자루, 삽, 갈퀴 등에 둘러싸인 채 짚단 위에 앉아 있는 허수아비를 발견했다. 잭이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벽에 기대어 서서 허수아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적어도 잭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잭이 헛간에 있다는 걸 농기구들이 알아챘다고 여겨진 순간, 그 물건들은 다시 평범한 고무래와 괭이 등의 농기구로 보였다. (83쪽)


“늘 이런 식으로 식료품을 구하나요? 농부들에게서 그냥 가져오냐고요.” 요리사가 설명했다. “군대를 유지하라고 농부들이 기증하는 거야. 봐라, 우리가 여기서 농부들을 지켜 주지 않으면 브룬즈윅 공작이 와서 몽땅 가져가 버릴걸.” “그러니까 군인들이 농부들의 식료품을 가져가지 않으면 공작이 그럴 거라고요?” (141쪽)


“말도 안 돼요. 죽어 가는 사람들이 그런 슬픈 노래를 듣고 퍽이나 고마워하겠네요. 어쨌거나 허수아비들은 달라요. 노래와 춤, 농담, 옛날이야기 같은 것들이 필요해요. 안 해 주실 거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266쪽)



  우리가 먹는 밥알이 모두 목숨이요, 우리랑 똑같이 말하는 줄 안다면, 우리는 밥상맡에서 어떻게 보낼까요? ‘말하는 밥알’이라니 끔찍하거나 무서워서 그만 밥을 못 먹을까요, 아니면 밥알하고 늘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다가 “반가워! 아름답게 내 몸이 되렴!” 하고 외치면서 먹을까요?


  우리가 손에 쥔 연필한테 마음이 있어, 우리가 연필을 써서 닳고 닳을 적마다 연필이 “아, 이제 내 몸이 거의 사라지네.” 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깜짝 놀라서 연필을 집어던질까요, 아니면 연필한테 “응, 여태 온갖 이야기를 적도록 몸을 내주어 고마워. 몽당연필이 되더라도 널 잊지 않아.” 하고 속삭일까요?


  허수아비가 먼먼 마실길을 나서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겁없는 허수아비의 모험》(필립 풀먼/양원경 옮김, 비룡소, 2009)입니다. 허수아비한테는 두렵거나 꺼리는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하루가 새롭고, 새로운 하루에 맞닥뜨리는 모든 일이 즐거우며, 언제나 둘레 모든 이웃이며 동무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한다지요.


  시골자락 들판에 서던 허수아비는 시골집 테두리만 보고 듣고 알았습니다. 바야흐로 시골마을을 떠나 큰고장을 이리저리 돌면서, 또 숲을 가로지르면서, 날마다 마주하는 모든 살림이며 숨결이 재미나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아리송하면서 궁금하다지요. 이 아름다운 터전에서 이 아름다운 나날을 왜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 보내는지 알 길이 없다지요.


  허수아비는 길을 가며 노래합니다. 허수아비는 길고긴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웃습니다. 허수아비는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삶길을 싱그럽게 꿈꿉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을 가꾸며 스스로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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