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만 알려 줄게 - 피터 레이놀즈가 전하는 행복의 비밀
피터 레이놀즈 지음, 서정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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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49


《너에게만 알려 줄게》

 피터 레이놀즈

 서정민 옮김

 문학동네

 2017.8.21.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혼자만 알고 싶지 않아요. 몇몇 사람한테만 알려주고 싶지 않을 뿐더러, 딱 한 사람한테만 속삭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신나게 살림하며 사랑하는 길을 혼자 움켜쥐고 싶지 않아요. 가까운 사람한테만 귀띔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꼭 한 사람한테만 속닥속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고 가는 이야기이면서, 흐르는 꿈입니다. 오며 가며 자라나는 말이면서, 환하게 퍼지는 사랑이에요. 《너에게만 알려 줄게》란 이름이 붙은 그림책을 읽다가 고개를 자꾸 갸웃갸웃합니다. 아무래도 책이름이 뚱딴지 같아요. 즐겁게 꿈꾸는 길을 노래하는데 왜 “너에게만 알려줄게”일까요? 책자취를 들추니 영어로 나온 그림책은 “Happy Dreamer”란 이름입니다. 아, “즐거운 꿈돌이”나 “신나는 꿈아이”쯤으로 옮겨도 될 텐데, 웬 난데없는 “너에게만 알려줄게”란 이름으로 바꾸어야 할까요? 놀 틈이 있어야 놀아요. 생각할 겨를이 있어야 생각해요. 사랑할 자리가 있어야 사랑하지요. 그러나 틈을 내어 놀고, 겨를을 마련해 생각하고, 자리를 지어 사랑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꿈을 그리기에 찬찬히 이뤄요. 반짝반짝 눈망울을 빛내며 춤추고 뛰고 달리고 날아오르기에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함께 피어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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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호젓하게 깃들어 베풀다 (2018.3.31.)


― 도쿄 진보초 〈アカシャ書店〉



  도쿄 진보초 책집골목은 큰길을 둘러싸고 헌책집이 잇달아 있기도 하지만, 띄엄띄엄 마을 한켠에 동그마니 깃들기도 합니다. 큰길은 오가는 사람이 많아 언제나 북적인다면, 마을 한켠에 고요히 깃든 곳은 호젓해요. 더 많이 눈길을 받고 손길을 타는 책이 있다면, 눈길이며 손길을 적게 받더라도 맞춤한 발걸음을 기다리는 책이 있어요.


  큰길가에 있는 책집을 벗어나 봅니다. 책집이 잔뜩 얼크러진 마을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어떤 보금자리를 누리려나 하고 생각하며 천천히 거닙니다. 마을 한켠 자전거집을 들여다보고, 찻집을 쳐다봅니다. 대학교 어귀를 지나가고, 골목꽃밭을 들여다보다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자전거를 바라봅니다. 마을가게에 들어가 보니 갖가지 튀김이 있습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저녁거리로 장만합니다. 나무그늘이 있는 조그마한 쉼터를 만납니다. 고무신을 벗습니다. 아침부터 쉬잖고 걸어 준 발한테 바람이랑 햇볕을 쏘여 줍니다.


  너덧 살쯤 된 아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제 모습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저도 똑같이 가만히 쳐다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보는 저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발가락을 하나하나 주물러 주고서 일어납니다. 어느 골목으로 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골목꽃을 보고서 걸음을 멈추는데, 이 골목꽃 건너켠에 책집이 한 곳 보입니다.


  큰길가 책집에서는 자동차 소리를 끊임없이 들었다면, 마을 한켠 책집에서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마저 드문드문합니다. 봄꽃내음을 맡으며 책집 곁에 섭니다. 바깥쪽에 놓은 ‘100엔 책’을 살피다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응? 이곳에 한글책이 왜 이렇게 많지?’


  책집 이름을 다시 보고, 안쪽도 흘깃하다가 다시 100엔 책을 보노라니, 《李東安 ‘太平舞’의 연구》(김명수, 나래, 1983)를 비롯해서 《인형극 교실, 만들기에서 상연까지》(오자와 아끼라/김선익 옮김, 예니, 1988)에 《꼭두각시 놀음》(한국 민속극 연구소 엮음, 우리마당, 1986)까지 봅니다. 한국에서도 보기가 쉽잖은 책을 일본 도쿄에서 보네요. 어쩐 일인가 하고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펼치니, 안쪽에 ‘글쓴이 드림’ 글씨가 또렷합니다. 심우성 님이 일본으로 인형극 일로 나들이를 온 길에 ‘오카자키 마치오(岡崎柾男)’라는 분한테 드린 책이로군요. 심우성 님은 1934년에, 오카자치 마치오 님은 1932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두 나라에서 저마다 옛살림·옛노래·옛이야기에 깊이 마음을 썼지 싶고, 이러면서 가까운 사이였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100엔 책 틈에 이런 책이 다 있네 싶어 더 돌아봅니다. 《國民の日本史 第八編 安士桃山 時代》(西村眞次, 早稻田大學出版部, 1931) 같은 책이 함께 있고, 《ペスタロツチ》(福島政雄, 福村書店, 1947) 같은 책이 나란히 있군요. 페스탈로치를 놓고는 일본이 내로라할 만큼 찬찬히 살폈습니다. 페스탈로치를 깊이 알려면 일본책을 읽어야 해요. 《鳥の歲時記》(內田淸之助, 創元社, 1957) 같은 책이 나란히 있어, 이 책집은 어떤 곳인데 이런 책을 이렇게 다루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이 책 곁에는 《奈良の石佛》(西村貞, 全國書房, 1942)까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이 한 집에서 나왔을는지 몰라요. 《多賀城》(岡田茂弘, 中央公論美術出版, 1977)을 보다가 《日本の獨占 第二次世界戰爭中 上卷》(ルキヤノウア/新田禮二 옮김, 大月書店, 1954?)을 펼치며 재미있네 싶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책을 어렵잖이 만나듯 일본에서 한국책을 어렵잖이 만날 만해요. 두 나라는 먼 듯하면서 가깝고, 가까이 오가는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 갖가지 책이 넘실넘실 흘러요.


  이제 안쪽이 궁금합니다. 바깥에서 고른 책꾸러미를 가슴에 가득 안고서 들어갑니다. 책집지기님한테 “이 예쁜 책집에서 책을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한국에서 왔고, 아름다운 책집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합니다.” 하고 여쭙니다. 서글서글하게 “아, 그렇다면 얼마든지 찍으세요. 백 장도 천 장도 좋습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헌책집 〈アカシャ書店〉 안쪽으로 들어와서 골마루를 돌아보니, 이곳은 ‘바둑’책을 복판에 놓고서 ‘장기·체스·놀이’하고 얽힌 책만 다루는 곳입니다. 바둑하고 장기를 다루는 책만으로도 책집을 꾸리는군요. 책집지기는 텔레비전을 켜 놓는데, 텔레비전에는 바둑이나 장기 이야기만 흐릅니다. 얼핏설핏 바둑책하고 장기책을 들여다보니 책값에 붙는 0이 제법 많습니다. 줄줄이 붙는 0을 보고는 손을 댈 엄두를 못 내지만, 꽤 예전부터 바둑책이며 장기책을 펴낸 일본이네 싶어요.


  어느 갈래이든 오래오래 파헤치면서 누린다면, 처음에는 풋내기였다 하더라도 시나브로 솜씨님으로 거듭나겠지요. 깊은 눈길도, 너른 손길도, 고운 마음길도, 갓 태어날 적부터 품을 수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책값을 셈하고서 나오다가 생각합니다. 이곳 책집지기는 바둑책이나 장기책을 그러모으면서 꾸릴 텐데, ‘바둑을 다룬 책이 아니어도 한꺼번에 사들인’ 다음에, 바둑 쪽이 아닌 책은 길가에 값싸게 내놓지 싶어요. 제가 일본 도쿄에서 산다면, 이 헌책집에 며칠마다 찾아와서 ‘오늘은 또 어떤 책을 100엔짜리로 내놓아 주었으려나’ 하고 들여다보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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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 책을 몽땅 살 수 없어도 (2018.4.1.)


― 도쿄 진보초 〈がらんどう〉



  한 사람이 모든 책을 쓰지 않고, 한 사람이 모든 책을 사지 않습니다. 다 다른 숱한 사람이 저마다 일군 삶을 저마다 다른 책으로 여미고, 다 다른 숱한 사람이 저마다 달리 바라보고 살아온 길에 따라 저마다 다른 손길로 책을 삽니다. 이리저리 물결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을 보다가 저 책을 살핍니다. 책집이 늘어선 거리에서 내놓은 모든 책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더라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겉그림이랑 이름은 훑고 싶습니다. 이러다 문득 ‘사자에 상’이 혀를 낼름하면서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하얗게 드러낸 어여쁜 만화책이 눈에 꽂힙니다. 한국에서 ‘사자에 상’ 만화책을 사려면 제법 비싸게 치러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エプロン おぼさん 1》(長谷川町子, 姉妹社, 1972)를 봅니다. ‘사자에 상’은 더러 보았으나 이 만화책은 아직 못 봤습니다. 1972년에 나온 만화책이어도 250엔이라고 합니다. 거저로 팔아 주는 셈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집습니다. 눈길을 끄는 동화책하고 그림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뒤에서 밀치면서 책을 구경하거나 사려는 사람도 워낙 많습니다. 만화책 하나 겨우 장만하고서, 또 손으로 쓰는 영수증을 받고서 척척척 밀려납니다.


  사람물결에 밀려 책집이랑 책수레 앞에서 밀려나야 하는 일은 오랜만입니다. 1988∼90년 무렵, 인천에서 살며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찾아가서 교과서하고 참고서를 장만하던 1월에 엄청난 사람물결을 치른 적 있습니다. 그때에는 학교 이름하고 학년하고 과목 이름을 헌책집지기한테 외치면 비닐자루에 담아서 휙 던져 주고, 저도 돈을 잘 뭉쳐서 휙 던져 주었습니다. 와글와글하는 물결이라 서로 손이 안 닿을 만큼 떨어진 채 외침질로 시켜서 샀거든요.


  이날은 딱히 크게 펴는 ‘진보초 책잔치’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벚꽃이랑 책’이 어우러지는 조그마한 책마당이라는데 사람물결이 놀랍습니다. 일본사람도 책을 적게 읽는 흐름으로 바뀐다지만, 줄어든 물결이 이만큼이라면 예전에는 얼마나 밀물결이었을까요. 손에 쥐고 책꽂이에 건사하기만 하는 책이 아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헤아리는 책이 된다면, 마을부터 나라까지 확 달라지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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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2020년 5월치에 실은 글입니다.


..


숲에서 짓는 글살림

44. 돌봄칸


  아픈 사람이 퍼집니다. 불길처럼 번집니다. 곳곳에서 앓기에 ‘돌림앓이’라고 합니다. 돌고 도는 아픈 눈물은 무엇으로 달랠까요. 비가 주룩주룩 내려 씻어 줄까요. 바람이 싱싱 불어서 보듬어 줄까요.


  비가 뿌리고 바람이 스친 하늘은 파랗습니다. 비바람이 훑은 뒤에는 한결 상큼하면서 맑은 날씨가 됩니다. 그 무엇으로도 비바람처럼 맑으면서 싱그러우면서 고우면서 파랗고 푸르게 달래듯 씻어 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삶터에 아픈 사람이 사라지고 앓는 사람도 기운내어 일어나도록 하자면, 틈틈이 비바람이 찾아들어 온누리를 어루만져 줄 노릇이지 싶습니다.


 돌림앓이


  요사이는 ‘병(病)’이란 말을 흔히 쓰고,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며, 이곳에는 ‘병실’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서 ‘병’이란 한자를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이 땅에서 쓰던 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아프다’요, 둘은 ‘앓다’입니다.


  몸이 다칠 적에 ‘아프다’라면, 몸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움직이기 어려울 적에 ‘앓다’예요. 참거나 견디기에 힘이 들어 ‘아프다’라면, 참거나 견딜 만해도 몸을 움직이기 힘이 들거나 눕거나 누울 판이기에 ‘앓다’입니다.


  아픈 몸이지만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입니다. 앓는 몸이니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이면 비틀거리고, 이내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며 별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만 돌림앓이로 고단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어느덧 사람한테도 돌림앓이가 퍼졌을 뿐,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하늘이며 아프다 못해 앓아누울 판이라고 느낍니다.


 아프다·앓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아픈 몸을 달래고, 앓는 몸을 고칠까요. 살림을 어떻게 가누어야 아픔을 싹 씻을까요. 삶을 어떻게 추슬러야 앓던 몸을 일으킬 기운이 새롭게 솟을까요.


  사람들이 흙이랑 사귀고 풀이랑 동무하며 나무랑 이웃하던 무렵에는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 풀을 짓밟으며 나무를 밀어없애어 큰고장으로 갈아엎는 동안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앓아눕습니다.


  밭자락에 덮는 비닐 때문에 땅이 앓습니다. 논밭에 뿌리는 화학약품 때문에 땅이 앓아요. 끝없이 뻗는 아스팔트 찻길에 비행기에 자동차물결에 숱한 공장에 발전소 탓에 땅이 앓습니다. 평화를 지킨다면서 나라마다 거느리는 전쟁무기 탓에 이 별은 구석구석 아픕니다. 새로 뚝딱거린 무기가 얼마나 센지를 알아본다며 미사일을 쏘고 핵폭탄을 터뜨리며 잠수함이며 항공모함이 갖은 쓰레기를 남기니 이 별은 결리고 쑤시고 저릴 뿐 아니라 눈물을 흘립니다.


  아파서 죽을 판이 별인 터라, 이 별이 흘린 눈물이 돌림앓이로 온누리에 퍼지지 않을까요. 앓아눕고 만 별이기에, 이 별이 앓으며 뱉는 끙끙 소리가 온누리에 번지지 않을까요.


 고치다·다스리다·달래다·낫다


  아픈 아이를 살살 달래던 포근한 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앓아누운 아이를 따사롭게 어루만지던 손길은 어디에 있는가요. 거칠거나 사나운 손으로는 아픈 아이가 낫지 않습니다. 마구잡이나 억지스러운 손길로는 앓는 아이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땜질을 해서는 아픈 데가 낫지 않아요.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면 앓는 몸을 못 일으키지요. 바야흐로 밑자리부터 샅샅이 훑으면서 푸르게 가꿀 오늘이라고 생각해요. 이 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하늘길을 멈추고 바닷길까지 막고 보니 하늘빛이며 바다빛이 그토록 맑게 열린다지요.


  중국이며 인도에 때려지은 공장을 한동안 멈추니 먼지구름이 사라집니다. 한국에서도 공장을 멈추면 먼지구름뿐 아니라 지저분한 구정물도 말끔히 사라지겠지요. 이제 생각해 봐야지요. 왜 매캐한 먼지하고 지저분한 구정물이 쏟아져나오는 공장이나 발전소를 돌려야 할까요? 돌리고 돌리더라도 돌림앓이가 되지 않는, 맑고 밝은 터전을 돌보도록 이바지하는 공장이 되도록 마음하고 머리를 쓰기가 어려울까요. 전쟁무기를 새로 뚝딱거리는 데에 돈을 쏟아붓지 말 노릇이면서, 이 땅을 푸르게 가꾸는 길에 힘을 기울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돌봄칸


  아프거나 앓는 이를 다스리는 곳이라면 ‘돌봄집’이로구나 싶습니다. 돌보아서 낫게 하는 집이요, 돌보는 손길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집이에요. 돌봄집은 칸을 알맞게 나눕니다.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마음을 푸근히 다독이면서 몸을 튼튼하게 가꾸도록 바라지하려는 칸을 두어요. 이러한 칸은 ‘돌봄칸’이 됩니다.


  돌보는 사람이기에 ‘돌봄이’예요. 어버이는 아이를 돌봅니다. 배우는 곳이라면 어린이·푸름이를 배움으로 돌볼 테고,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낫도록 하려는 터에서는 포근손이며 사랑손으로 돌볼 테지요.


  돌봄집에서도, 보금자리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저마다 돌봄이라는 눈빛이 되어 환하며 즐거운 기운을 나눕니다. 돌봄일꾼이 되고, 돌봄지기가 됩니다. 돌봄빛이 되고 돌봄님이 됩니다.


 누리맞이


  나라 곳곳에 돌림앓이가 퍼지면서 멈추는 곳이 많습니다. 배움터도 멈추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올해에도 슬기롭게 배우기를 바라는 뜻으로 저마다 집에서 조용히 배우도록 하는 틀을 마련합니다. 셈틀을 켜서 이야기를 듣고 살피도록 하는 이러한 틀은 ‘누리맞이’라고 할 만합니다.


  누리집이 있어요. 누리글월을 주고받아요. 누리판에서 나누는 누리글이며 누리그림입니다. 누리판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은 서로 누리님이자 누리벗입니다. 누리판에서 한결 홀가분하게 만나는 누리날개를 펴고, 누리가게에서 이것저것 사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리책집에서 책을 만날 수 있으며, 손전화를 켜고 누리마실을 즐기기도 합니다.


  누릴 수 있는 곳은 마을입니다.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보듬는 풀꽃나무가 자라는 마을이기에 다같이 짙푸른 바람을 누리고, 새파란 하늘을 누립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다함께 누릴 수 있다면, 굳이 플라스틱에 물을 안 담아도 될 테며, 시멘트를 땅에 파묻거나 커다란 시멘트담을 세우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셈틀을 켜서 배우는 ‘누리배움’을 한다면, 어른은 무엇을 하면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온누리를 어떤 새누리가 되도록 가꿀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살림길을 열 만할까요?


  예전 그대로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예전대로 살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새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억지스러운 새나라나 새마을이 아닌, 슬기롭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새터에 새빛에 새말에 새싹이 될 새삶을 생각하기를 바라요.


  새마음이 되는 새사람입니다. 새봄에 마주하는 새꽃입니다.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같이 들을까요?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함께 누릴까요? 바야흐로 제비가 둥지를 새로 짓거나 고칩니다. 제주부터 백두까지, 전라남도 고흥부터 서울을 거쳐 중간진까지, 새바람이 싱그러이 불면서 곱다시 피어나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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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5.8. 내림멋


아슬아슬하게 앞서다가, 엇비슷하게 뒤섭니다. 살얼음판처럼 나아가다가 이길 때가 있고 질 때가 있어요. 비슷비슷하게 맞붙으니 불꽃이 튀는구나 싶습니다. 불꽃튀듯 겨룰 적에는 손에 땀이 난다지요. 아마 손뿐 아니라 발에도 이마에도 땀이 날 테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해요. 온힘을 내지만 얼추 비슷하게 흐르는 판이라 한다면, 더욱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잔손길 하나에도 온마음을 기울여요. 여태까지 선보인 솜씨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기도 하고요. 그냥그냥 흐르는 곳이라면 솜씨를 키울 일이 없기 마련이라, 손맛도 제대로 안 날 수 있어요. 진땀을 내며 애쓰는 자리이기에 더욱 손맛을 키우고, 이 손맛은 어느새 아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물려주는 내림맛이 되곤 합니다. 집집마다 다른 손맛인 집맛이라면, 집집마다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건사하는 땀흘린 사랑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불꽃이 튀듯 솟아나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있기에 맛이며 멋이 태어난달까요. 저는 어제 저를 낳아 돌본 어버이 손끝에서 피어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이러면서 오늘 제가 낳아 보살피는 아이 손끝에 새롭게 자랄 사랑을 물려줍니다. ㅅㄴㄹ


살얼음·살얼음판·비슷비슷·엇비슷·아슬아슬·불꽃튀다 ← 박빙, 근소(僅少)

손맛 ← 정성, 개성, 개성적, 감각, 감촉, 수기(手技), 수재(手才), 손재간, 재간, 수완

집맛 ← 정성, 개성, 개성적, 전통 기법, 전통 비법, 전래 기법, 전래 비법, 전승 비법, 전승 기법

내림맛·내림멋 ← 전통 기법, 전통 비법, 전래 기법, 전래 비법, 전승 비법, 전승 기법, 전통문화, 전통방식, 전통, 전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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