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지? 그림책향 1
차은실 지음 / 향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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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64


《무슨 일이지?》

 차은실

 향

 2019.10.30.



  비는 하늘도 씻지만 땅을 두루 씻습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빗줄기가 사람들 마음을 함께 씻습니다. 비는 온누리를 고루 씻으면서 싱그러운 빛을 베풀고, 상큼한 냄새를 퍼뜨리며, 즐거운 놀이를 알려줍니다. 빗물을 먹으면서 잎이 벌어지는 나무를 봐요. 빗방울을 받으면서 함박웃음인 개구리를 볼까요. 우리가 가게를 차린 지는 얼마 안 돼요. 우리가 자동차를 몬 지도 얼마 안 되지요. 비구름이 몰려올 적에 하늘바라기를 하면 좋겠어요. 비바람이 찾아들 적에 숲바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무슨 일이지?》는 어느 날 어느 곳에 생긴 어느 일을 둘러싸고 숲짐승이 우르르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무슨 일일까요? 무슨 일이기에 모두 서둘러 달려갈까요? 아, 갓 깨어난 거북이가 모래구덩이에서 기어나오려고 용을 쓰는군요. 이제 막 새빛을 바라보는 거북이는 스스로 모래구덩이를 벗어나려고 애를 쓰네요. 자꾸자꾸 미끄러지는 새끼 거북이는 저한테 매우 깊을 모래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하늘은 새끼 거북이를 도울까요? 숲에 사는 동무랑 이웃이 베푸는 마음을 새끼 거북이는 어떻게 받을까요? 예부터 새로 태어나는 목숨 하나를 온별이 반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숨빛을 품고서 이 땅에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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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야, 과일 좀 먹어줘! 춤추는 카멜레온 9
미셸 로빈슨 글, 로렌 토비아 그림, 심보현 옮김 / 키즈엠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63


《박쥐야, 과일 좀 먹어 줘!》

 미셸 로빈슨 글

 로렌 토비야 그림

 심보현 옮김

 키즈엠

 2012.2.15.



  꽃이 피면 어느새 벌나비가 찾아듭니다. 한겨울이라면 벌나비가 없으나, 2월에 접어들어도 어디선가 깨어난 벌나비가 조그맣게 피어난 꽃에 사뿐히 찾아들어요. 대단하지요. 꽃송이에는 개미도 풀벌레도 하나둘 찾아듭니다. 날벌레도 잡고 작은 꽃송이도 누리고 싶은 멧새까지 성큼성큼 찾아들어요. 이 꽃을 즐겁게 마주하고픈 사람도 찾아듭니다. 흐드러진 꽃이 지고서 열매가 굵으면 새삼스레 벌나비에 개미에 풀벌레에 멧새에 사람까지, 또 거미랑 사마귀도 열매 곁에 찾아들더군요. 나무는 참으로 이웃을 많이 두는군요. 나무를 곁에 두고 살면 날마다 숱한 이웃이 찾아들 테니 심심할 틈이 없겠어요. 《박쥐야, 과일 좀 먹어 줘!》는 어쩐지 과일이 싫은 아이가 ‘과일 먹는 박쥐’를 찾아서 길을 나서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니, 과일이 싫은 아이가 있다고? 그렇지만 과일이 몸에 안 맞는 아이가 있을 테지요. 쌀로 지은 밥이나 밀로 구운 빵이 몸에 안 받는 아이가 있거든요. 내가 쉽게 먹거나 흔히 즐긴대서 누구나 먹거나 즐겨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입맛을 생각할 노릇이에요. 그리고 오늘 굳이 안 먹고 싶다면 이웃한테 돌려도 돼요. 오늘은 싫어도 머잖아 과일쟁이가 된다든지 밥돌이나 빵순이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ㅅㄴㄹ


#Howtofindafruitbat #laurentobia #michelle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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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싸던 종이 (2018.5.31.)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이곡1길 12

061.741.1069.



  1999년이 저물고 2000년으로 접어들 즈음 바뀐 살림이 꽤 많은데, 이 가운데 하나는 책싸개입니다. 지난날에는 책싸개라 하면 으레 신문종이나 달력종이를 썼고, 살림이 나은 집에서는 닥종이를 썼지요. 이러다가 비닐로 책을 쌌으며, 요새는 딱히 책을 종이로 싸지 않습니다.


  책도 종이입니다만, 굳이 이 종이꾸러미를 다른 종이로 한 겹 둘렀다면, 그만큼 ‘책이란 종이뭉치가 아닌, 종이라는 몸에 입힌 오래오래 살아숨쉴 이야기빛’이란 뜻이겠지요.


  헌책집 〈형설서점〉에서 ‘책터 그날이오면’ 책싸개를 만납니다. 어느 집에서 한꺼번에 나온 책에 이 책싸개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나온 책에는 마음이나 손길이 하나도 안 갔지만, ‘책터 그날이오면’ 책싸개를 ‘책에 싼 모습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어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윤소영, 한울, 1987)하고 《농민층분해와 농민운동》(서울대 사회학과 사회발전연구회, 미래사, 1988)을 골랐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묻습니다. “허허, 책싸개 땀시롱 책을 사남? 책싸개라면 그냥 주지. 난 그냥 다 뜯어서 버리는데. 뭔 책인지 안 보이잖아. 근디, 뭘 안 읽을 책을 다 사남?” “책싸개도 책이 살아온 자취인걸요. 안 쓴 책싸개보다도 이렇게 책에 싼 책싸개가 ‘책이 살아온 자취’를 더 잘 말해 줘요. 책에 싼 책싸개를 보면서 이 책싸개를 어느 해에 썼는가를 읽을 수 있기도 하고요.”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책싸게도 되게 중한가 보이. 그럼 나도 하나 건사해야겠구만.”


  동화책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로알드 달·퀸틴 블레이크/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0)를 집고서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이오덕, 보리, 1993)를 집습니다. 우리 책숲에 이 책이 딱 하나만 있지 싶어, 하나 더 갖추자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징그럽기만 했을 것이다. 불쌍했다는 말은 말에 그치고 있다. 이것이 도시의 아이들이다. 자연을 멀리하고 자연과 아주 떨어져 있는 세상, 자연이 없고 있어도 병든 자연만 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으니 자연을 알 리가 없고 자연에 정을 느낄 리가 없다. (이오덕/175쪽)


  순천시에서 낸 《순천 문화재 이야기》(순천시, 심미안, 2015)를 집습니다. “그 책이라면 잔뜩 쌓였네. 하나 그냥 가져가소.” “이 책이 잔뜩 들어왔다고요? 순천시에서는 이런 책을 잘 펴냈으면서 왜 둘레에 안 돌리고 그냥 버렸을까요?” “그러게 말여, 책은 존 책이고 잘 만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예산을 써서 책을 좋게 만들었으면 전국 도서관이나 학교에라도 뿌리면 좋지 않을까? 사후관리를 안 해. 그렇게들 생각이 없을까?” 뭉텅이로 쌓인 책 곁에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활동자료집 2008.2.25∼2013.2.24.》(대통령실, 2013)이 있습니다. ‘대통령 여사님 책’까지 나라에서 돈을 대어 찍었군요.


‘대기업 사모님’답지 않게 소탈하고 진솔한 면모를 보여온 김윤옥 여사는 자신의 블로그 ‘가회동 이야기’에 ‘신혼 첫날 밤’, ‘못생긴 남편 얼굴’, ‘작은 눈이 매력적’ 등을 주제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소소한 일상을 전해 네티즌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특히 김 여사가 ‘가회동 이야기’에 남긴 글귀 “어느 누구보다 힘든 길을 가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적절한 조언과 위안’이었다”는 영부인의 내조 스타일을 반영한다. (11쪽)


  우리는 2010년대를 훌쩍 넘은 때까지 ‘내조 스타일’을 따져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자인하우스, 2005)라는 사진책을 봅니다. 영화감독이 찍은 사진을 넘기면서, 이분은 이런 사진을 ‘흐르는 모습’으로 담으려 했네 하고 깨닫습니다.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성민엽, 한마당, 1986)를 고르고, 《승무》(조지훈, 정음문화사, 1984)를 고릅니다. 조지훈 님이 쓴 시 가운데 ‘어린이에게’가 눈에 띕니다.


너희들도 보았을 것이다. / 오랜 가뭄 끝에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 쓰레기도 구더기도 걸레쪽도 쇠똥조박도 / 더러운 것이라 모두다 떠내려가는 그 검은 흙탕물을 / 그게 바루 혁명이란 게다. / 혁명은 홍수 혁명은 씻어 버리는 것 / 어린이들아 즐겁지 않으냐 / 말라서 터진 이랑마다 흠뻑 스미고 / 남아서 철철 논고마다 넘치는 물 / 잎새는 더 푸르고 꽃은 더욱 붉고 / 싱싱히 너울대는 그늘에 / 너도 매미처럼 노래하며 자라거라. (어린이에게, 조지훈/246쪽)


  묵은 시집 《붉은 강》(강은교, 풀빛, 1984)하고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강은교, 실천문학사, 1989)를 봅니다. 《한국어의 입말과 글말》(노대규, 국학자료원, 1996)이며 《채광석전집 4 평론 1 민중적 민족문학론》(채광석, 풀빛, 1989)에다가 《채광석전집 5 평론 2 찢김의 문화 만남의 문화》(채광석, 풀빛, 1989)도 돌아봅니다.


교수님과 학생 모두에게 있어 사회의 현실을 바르게 분석한다는 것은 곧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물을 맹목적, 순응적으로 인식할 때 그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집 5권 226쪽)


  저는 사전이란 책을 짓기에 곁책으로 삼으려고 《한민족역사문화도감 : 식생활》(최호식 사진, 김혜경·이건욱 글, 국립민속박물관, 2007) 같은 두툼한 책도 장만합니다만, 구태여 이렇게 책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겨레’란 이름이 있는데 ‘한민족’이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밥살림’이라 하면 될 텐데 ‘식생활’처럼 일본 한자말을 써야 학문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밥살림이건 옷살림이건 집살림이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수하게 지은 발자취는 제대로 안 남곤 합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는 이라면 다 낡고 닳은 살림은 불쏘시개로 삼거나 흙한테 돌려주지요. 쓰레기 없는 살림이라 늘 돌고 돌아요. 언제라도 스스로 새로 짓기에 말끔하면서 정갈합니다. ‘투박하다’고 하는 들사람 살림일 텐데, 이 투박한 살림이란 ‘튼튼하면서 밝은 길’이라고 느낍니다. 역사나 문화나 학문이 아닌, 살림살이로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다가설 적에 비로소 어떤 밥을 어떻게 누렸나 하는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시큰둥하게 지나친 《천년의 울음이여 사랑이여》(고은 글·리천록 사진, 한샘출판사, 1990)란 사진책을 봅니다. 마침 그 늙은 고은 글이 깃든 사진책입니다. 겉속 다른 늙은네 글이 깃든 책은 앞으로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겠지요.


  사진책 《PEOPLE OF THE WORLD》(national geographic, 2001)를 마지막으로 고릅니다. 푸른별 뭇나라 뭇겨레를 찬찬히 담아내려 애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푸른별 온나라를 책 하나로 담아내려 하노라면 ‘한 나라 이야기를 몇 줄’로 담아도 넘치기 마련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떠한 숨결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어떤 몇 줄’로 담을 적에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눌 만할까요? 우리는 스스로 이 나라를 ‘어떤 몇 줄’로 그릴 만하고, 이웃 여러 나라를 ‘어떤 몇 줄’로 그릴 만할까요?


  해가 높이 솟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때때로 비가 내립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새가 날갯짓을 하면서 날벌레를 홱 잡아챕니다. 개구리가 풀밭에서 푸스럭 뛰고, 오디가 검붉게 익습니다. 얇은종이 한 자락이 책을 고이 감싸면서 두고두고 여러 손길을 탑니다. 자그맣다 싶은 사랑을 아이들한테 남긴다면 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이 땅이 앞으로 환하게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책이라면, 종이뭉치를 넘어선 책이라면, 숲빛을 살뜰히 담아 마음으로 빛날 책이라면, 따사로이 살림을 쓰다듬는 자리에 깃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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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건사하는 책 (2018.4.18.)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이곡1길 12

061.741.1069.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문득 글·그림·사진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한 꼭지였다면 어느새 둘셋넷이 되고, 열을 지나 쉰을 거쳐 차곡차곡 쌓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여태 건사한 이야기가 제법 두툼해서 하나씩 되새기면서 솎고 가리고 추려서 꾸러미를 하나 짓습니다. 이 꾸러미를 새롭게 여미니 책으로 태어납니다.


  책 하나란 ‘이 푸른별에서 살아온 사람이 건사한 이야기 꾸러미’입니다. 책집에 책 하나만 동그마니 놓을 수 있습니다. 책집에 숱한 책을 빼곡하게 갖출 수 있습니다. 요즈막에 ‘셀렉트숍’이란 이름을 쓰는 책집이 꽤 늘어나는데, 이 일본스러운 영어가 아니어도 모든 책집은 책집지기 눈썰미로 고른 책을 갖춥니다. ‘골라서 갖추지 않은 책집’이란 한 곳도 없습니다.


  다만 다르게 볼 대목은 있어요. 그냥저냥 팔림새에 맞추어 고를 수 있습니다. 팔림새보다는 읽음새를 헤아려 고를 수 있습니다. 잘 팔릴 만하다 싶어서 잔뜩 들일 수 있지만, 잘 읽힐 만하다 싶어서 알맞게 들일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책이니 누구라도 집어들리라 여겨 갖추는 책집이 있고, 아예 안 알려지다시피 한 책이지만 책집지기가 알아채고서 ‘어느 책나그네가 이 책을 기쁘게 알아보아 줄까?’ 하고 설레면서 갖추는 책집이 있습니다.


  봄빛 봄바람을 누리면서 순천마실을 합니다. 아이들이 따라나섭니다. 시외버스에서 노래노래 부르며 찾아갔고, 거님길을 뚜벅뚜벅 걷습니다. 큰아이는 성큼성큼 걷는다면, 작은아이는 폴짝폴짝 뜁니다. 〈형설서점〉에 닿습니다. 두 어린이는 저마다 스스로 마음에 닿는 책에 손을 뻗습니다. “어, 이 책 우리 집에도 있는데?” 하면서 낯익은 책부터 집어서 폅니다. 재미나지요. 어린이는 으레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끄집어서 읽어요. 아직 안 읽은 책보다는 ‘예전에 즐겁게 읽은 책’을 새롭게 읽을 뿐 아니라 ‘예전하고 다른 눈빛’으로 읽어내곤 합니다.


  어른도 비슷합니다. 새롭게 책집마실을 할 적에 “그래, 이 책 읽어 봤지.” 하면서 ‘스스로 읽은 책’부터 알아보곤 해요. 읽었기 때문에 눈에 바로 뜨인달 수 있어요.


  처음에는 이와 같지 싶어요. 처음에는 눈에 익은 대로 바라보고, 어느새 ‘처음 마주하는 책’에 눈이 가며, 손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머나먼 길에 이르기까지 숱한 걸음을 옮기듯, 저 너머로 나아갈 새로운 살림길을 다스리도록 곁벗으로 삼을 책 하나를 고를 적에 찬찬히 온 숨결을 뻗습니다.


  아이들하고 읽으려고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로이드 알렉산더/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1999)를 고릅니다. ‘삼천포시립도서관 장서’ 자국이 남은 《전후 신춘문예 당선시집 下》(조태일·김흥규 엮음, 실천문학사, 1982)를 봅니다. 묵은 책이어서 공공도서관에서 버렸구나 싶어요. 《광양 방언 사전》(기세관, 한국문화사, 2015)이 보입니다. 지자체에서 그 고장 이야기하고 살림을 담아내는 책을 펴내는 일에 거의 이바지를 안 해요. 어느 고장이나 비슷합니다. 지역문화를 북돋우려 한다면, 오늘 이곳에서 일구는 밑살림을 아로새겨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우리 고장 책하고 사전’에 밑돈을 넉넉히 들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광양 방언 사전》의 자료는 대부분 10여 년 전에 이미 모은 것이다. 당시 나는 2∼3년 간격으로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광양시에 그 출판비 일부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두어 차례 낸 바 있으나 거듭 거절당하였다. 그 뒤 나는, 이 책의 편찬이 두고두고 역사·문화적 업적으로 남을 것임을 몰라주는 야속한 광양시 당국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내 나름으로는 실의에 빠져 가슴아파하며 버텨온 지 10여 년이 흘렀다. (5쪽)


  얼결에 집은 《작가는 왜 쓰는가》(제임스 A.미치너/이종인 옮김, 미세기, 1995)는 ‘순천공업고등학교 도서실 장서’ 자국이 있습니다. 오늘 따라 도서관 자국이 새삼스럽습니다. ‘전라남도의회 자료실’ 자국이 있는 책도 봅니다. 


나는 그들이 왜 “난 포크너처럼 쓰고 싶지는 않아”라고, 혹은 피츠제럴드, 울프, 사르트르, 카뮈처럼 쓰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그 많은 작가들이 속으로는 헤밍웨이 흉내를 내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150쪽)


“민주주의 국가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전쟁에 끼어든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늙은이들은 후방에 앉아서 전쟁세도 내지 않고 생명의 위협도 느끼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데 젊은이들은 사지에서 허덕인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특히나 어떤 젊은이는 고향에서 편하게 있는데 어떤 젊은이는 재수없어 전투에 차출되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156쪽)


  이 나라에서 도서관은 책을 건사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나라는 도서관이란 집을 뚝딱 올린 뒤에 ‘새로 받아들일 책을 건사할 새로운 집’은 좀처럼 더 안 짓거든요. 날마다 새책이 꾸준히 나오는데, 이 새로운 책을 건사할 넓은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까요?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세이머스 히니/최유경 옮김, 시학사, 1995)을 고르다가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도서관이 좁고 작아서 어쩔 길 없이 책을 버려야 합니다. 버림책이 해마다 잔뜩 나오는데요, 버림책이 나오기에 뜻밖에 책이 더 돌고 돌는지 몰라요. 다만 종이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면, 헌책집에 맡긴다면, 마을 한켠에서 새롭게 책터를 가꾸도록 내놓아 준다면, 도서관에서 버려야 하는 책이 새롭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책숲에 《우리글 바로쓰기》(이오덕, 한길사, 1989) 예전판이 없는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오늘의 사상신서 121’로 나온 묵은 판이 마침 〈형설서점〉에 있어요.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기면서 집어듭니다. 서른 해쯤 지난 묵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되읽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글을 제대로 큰 잘못 없이 번역해 놓은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본글을 우리 글로 올바르게 번역하는 일은 일본글의 뜻을 틀리지 않게 우리 말로 나타내고, 그리고 그렇게 옮겨 놓은 글이 우리 말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번역 문장이 뜻도 틀리고, 우리 말은 아주 엉망인 경우가 많다. 지난날 36년 동안 온 나라 사람들이 일본말을 배우고 쓰다시피 했는데, 이건 어찌된 셈인가? 그 가장 큰 까닭은 일본의 말법과 우리 말법이 비슷해서 글을 따라 차례로 낱말만 우리 말로 바꿔 놓으면 뜻이 통한다고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그 한자말을 그대로 적어 놓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아무리 말법이 비슷하다고 해도 일본말은 일본말이지 우리 말은 아니다. (85∼86쪽)


  말짜임이 비슷하더라도 한국하고 일본 두 나라는 말이 달라요. 때로는 똑같이 생겼구나 싶은 한자말이 있더라도 한국하고 일본 두 나라에서 그 한자말을 쓰는 자리가 달라요.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한자말이 들어오기 앞서 사람들이 널리 쓰던 삶말이 있습니다. 일본도 이 대목에서는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 모두 ‘한자말이 없던 무렵 오래오래 마을에서 사랑으로 삶을 슬기롭게 가꾸면서 지어내어 쓴 수수하고 상냥한 텃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길을 헤아리지 않는 번역이라면 모조리 엉터리가 될 텐데, 엉터리 아닌 번역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니, 번역에 앞서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쓴 글’이 한국글다운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쓰는 미국말(영어)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쓰는 미국말(영어)은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서로 삶이 다르고, 삶을 바라보는 넋이 다르거든요.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사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면서 스스로 마음이랑 몸을 가다듬는 넋’부터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겁게 가다듬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건사할 마음이 무엇인지를 잊기에, 건사할 생각이 무엇인가를 놓치기에, 아직 한국은 한국말이라고 하는 숨길을 틔우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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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1.


《키테레츠대백과 3》

 후지코 F. 후지오/오경화 옮김, 미우, 2018.6.30.



작은아이 손길을 받아 ‘책숲 얘기종이’를 글월자루에 담아서 척척 여민다. 읍내를 다녀오려 하는데 버스가 안 들어온다. 가늘게 한숨. 낮에는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손님이 없다시피 하다면서 버스가 안 오기 일쑤인데, 오늘도 그날이네. 이웃마을로 걸어간다. 좋아, 좋아, 우리한테는 씩씩하게 두 다리가 있거든. 이 두 다리로 들길을 가로질러 주지. 새달을 맞이해 새롭게 하루를 돌아보고, 새걸음으로 나아갈 배움살림을 그린다. 올해 4월부터 큰아이하고 ‘둘이 함께 날마다 풀꽃나무 이야기 쓰기’를 하는데, 작은아이하고는 ‘둘이 함께 날마다 다섯 줄 쓰기’를 하자고 생각한다. 《키테레츠대백과》는 모두 세걸음이다. 한국말로 옮겨 주어 고맙지만 책값이 비싸다. 일본책이 외려 싸다. 덜 팔리거나 안 팔린다고 여겨 비싸게 매겼을까. 곁님 잔소리를, ‘누가 한국말로 옮겨 주면 고마운 노릇이지만, 남이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바깥말을 배워서 바깥책으로 장만해서 읽으라’고 하는 말을 떠올린다. 척 보아도 한국말로 안 나올 듯한 아름다운 만화책이며 그림책은 이제 영어책이나 일본책으로 장만하자. ‘키테레츠’가 마지막에 의젓하게 외치듯, ‘스스로 배워 스스로 힘을 내어’ 하면 될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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