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4


《記者協會報》 342호

 김병익 엮음

 한국기자협회

 1974.12.27.



  2008년에 낳은 큰아이도, 2011년에 낳은 작은아이도, 졸업장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 둘 다음에 찾아왔다가 무화과나무하고 석류나무 곁으로 돌아간 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들이 몸을 입고 아이로 자랐어도 졸업장학교를 안 다니고 ‘우리숲놀이터’에서 하루를 지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장학교에서는 일제강점기 발자취를 다루며 으레 ‘민족지’란 이름으로 그무렵 태어난 신문을 이야기하는데, 그때 나온 신문은 일본 우두머리를 깍듯이 섬기고 따르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 자취는 고스란히 있습니다. 이들은 해방 뒤에 군사독재를 다시 알뜰히 모시고 온나라를 사슬터로 가두었지요. 《記者協會報》는 ‘기자끼리 친목을 다지고 권익을 높이려는 뜻’으로 태어납니다. 나중에 ‘언론비평’이란 몫을 어느 만큼 맡는데요, ‘일본 제국주의 섬기기·군사독재 모시기’를 오랫동안 하던 기자하고, 이런 일을 터럭만큼도 안 한 기자는 왜 어느 만큼 ‘친목’을 다지고 서로 ‘권익’을 북돋워야 할까요? 그저 기자란 자리에 선 분한테 묻고 싶어요. 총칼이나 군홧발을 두려워하면서 달삯쟁이로 있는 붓이 기자일 턱이 없습니다. 총칼이나 군홧발이 가신 오늘날, 돈하고 벼슬자리를 거머쥐려고 달품쟁이로 있는 손이 기자일 까닭이 없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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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들 - 자연과 나눈 대화
캐슬린 제이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이도스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숲책

숲책 읽기 161 - 눈길이 닿는 곳에서 피어난 삶길


《시선들》

 캐슬린 제이미

 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2016.12.15.



조용히 해,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침묵을 들어. 큰까마귀에게서 잠시 눈을 뗐고, 다시 보았을 때는 녀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15쪽)


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바로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초록색 오로라를 입속에 넣으면 혀에서 거품이 탁 터지면서 크렘 데 멘테의 맛이 날 것 같다는 것이다. (25쪽)


애 키우는 시절은 끝났다. 내 아들은 이제 휴대폰을 갖고 농담을 할 만큼 컸다. 나중에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범고래 다섯 마리 보았음!” 그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하루 일한 것치고 나쁘지 않네!” (97쪽)


매년 2월 셋째 주만 되면 빛이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날이 있다. 하루로 그칠 때도 있고, 며칠 이어질 때가 더 많다. (107쪽)


“고래 본 적 있어요?” 내가 마리엘레에게 물었다. “살아 있는 고래 말이에요.” “아니요! 우리들 중 누구도 보지 못했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그 이야기를 했어요. 하루 종일 여기(박물관)서 (박제나 뼈로 남은) 고래를 대하면서…….” (136쪽)


“그들(군인)은 마을을 불도저로 밀려고 그곳에 도로를 건설했어요. 당신도 그들의 심중을 짐작하겠죠. 더 이상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은 계획이 꺾였군요.” “그리고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고요.” (166쪽)


“어때요?” “나쁘지 않아요.”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구경했어요.” “그리고?” “세가락갈매기가 새끼를 낳았더군요. 가끔 두 마리도 보이고.” “괜찮네요.” (205쪽)



  큰아이를 낳고서 곁님이 저한테 들려준 숱한 말 가운데 하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해요.”입니다. 이 말은 달리 나타내자면 ‘아이 생각날개를 꺾지 말자’입니다.


  작은아이를 낳고서 곁님 말을 언제나 되새깁니다. 두 갈래로 다 생각하지요. 처음에는 ‘생각날개를 꺾지 말자’고 생각하는데, ‘꺾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이렇게 하면 꺾는 셈 아닌가?’ 쪽으로 흐르더군요. 바로 멈추고서 다시 생각합니다. ‘꺾지 말자고 생각하니 자꾸 꺾는 쪽으로 가는구나 싶네. 그래, 생각날개를 마음껏 펴도록 북돋우고 이야기하는 길로 가자’ 하고요. 이처럼 생각하며 “언제나 모두 너희 마음에 있단다.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아내지 못하겠다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알려줄 수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버지랑 어머니 스스로 오래도록 생각하고 찾아본 끝에 알아낸 길일 뿐이야. 옳거나 맞는 길이 아닌, 그저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살아오며 스스로 배운 길이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무엇을 생각해서 알아내고 보고 깨닫더라도, 너희가 스스로 찾아내고 생각하면 돼. 틀리거나 맞거나 따지지 않아도 돼. 틀렸으면 어떠니? ‘어라, 틀렸네?’ 하고 여기고서 지나가면 되지. 너희 마음으로 생각을 하면 다 알아낼 수 있어.”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물어보기에 이렇게 대꾸를 하느냐 하면, “아버지, 별은 왜 떠요?”라든지 “아버지, 이 꽃은 이름이 뭐야?”라든지 “아버지, 이 풀 먹어도 돼?”라든지 “아버지, 저 새가 뭐라고 얘기했어?”라든지 “아버지, 저 길고양이가 아프데? 배고프데?”라든지 “아버지, 여름은 왜 덥고 겨울은 왜 추워?”라든지 “아버지, 제비는 어떻게 저렇게 잘 날까?”처럼 묻거든요. 이제는 언제나 “응, 궁금하구나. 넌 어떻게 생각해?” 하고 되묻습니다.


  영어로는 ‘sightlines’란 이름으로 나온 《시선들》(캐슬린 제이미/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2016)을 읽었습니다. 영어로는 ‘-s’를 붙일 테지만, 한국말로는 ‘-들’을 안 붙입니다. 한국말로는 목소리면 ‘목소리’요, 노래이면 ‘노래’요, 글이면 ‘글’이요, 눈길이면 ‘눈길’이에요.


  눈길이란, 눈으로 짓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눈으로 가는 나아가는 뻗어가는 지나가는 거쳐가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눈으로 마주하는 길입니다. 눈길이란, 이 눈하고 저 눈이 어우러지는 길이지요.


  글쓴님이 이녁 아이하고 주고받은 말처럼, 저도 아이들하고 수수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수컷 직박구리가 잠자리를 잡고서 암컷 직박구리한테 다가가더라.” “그래? 둘이 뭘 했어?” “암컷 직박구리는 수컷 직박구리를 안 쳐다보데.” “왜?” “응, 딴 데 보느라고.” “이러다가 수컷이 자꾸 뒤에 붙는다고 여겨 귀찮아 하다가 돌아보니, 어라 수컷 직박구리 입에 잠자리가 있잖아?” “그래서?” “암컷 직박구리가 수컷 직박구리더러 ‘응? 나 주려고 불렀구나?’ 했지.” “그리고?” “그런데 암컷 직박구리가 저를 한참 안 쳐다보고 딴청만 했다고 토라져서 날름 삼키고 날아가더라.” “하하하.” “암컷 직박구리가 따라 날아가면서 ‘너, 나 놀리는구나!’ 하면서 끄악끄악대고.”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라나며 푸른 눈망울로 꿈을 키우고는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철이 듭니다. 《시선들》은 이러한 삶길 한켠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마음에 담는 사람으로 오늘 이곳에 있는가 하고 찬찬히 짚는구나 싶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요? 새벽을 맞이하면서, 아침을 열면서, 낮에 해가 하늘 높이 뜨는 동안, 차츰차츰 기우는 해가 고개 너머로 사라질 무렵, 바야흐로 깜깜한 밤을 맞이한 때에,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가요? 그리고 이렇게 바라본 눈썰미로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요?


  지식이나 정보도 대수롭다고 여깁니다만, 지식이나 정보만으로는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책이나 교과서나 학교만으로는 아이들이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피어나는 길을 알려주지는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지식이며 정보이며 책이며 학교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에 날개를 달고서 마음을 틔우는 눈길이 되어 사랑으로 삶을 짓는 길을 북돋울 적에 참으로 즐거운 배움살림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살림살이는 돈만 넉넉하다고 해서 즐거웁지 않아요. 간장 종지 하나 덩그러니 놓은 밥자리라 하더라도,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둘러앉았으면, 배부르고 즐거우며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갖은 잔치밥을 차린 자리라 하더라도, 으스스하거나 무섭거나 닦달이 판친다면, 속이 더부룩하고 아무 맛도 없기 마련이에요.


  어른으로서 어떤 눈길인지 같이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길인지 함께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매한가지인 이 푸른별 아름다운 숨결로서 어떤 사랑길인지 나란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눈길이 빛나는 꽃길이 되도록 하루를 가꾸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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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숲을 헤엄친 깃털 (2020.6.8.)


― 부산 〈동주책방〉

부산 수영구 과정로15번길 8-1

https://www.instagram.com/science_dongju



  부산 연산동에 새로 움튼 헌책집 〈글밭〉에서 길을 나섭니다. 헌책집을 한 곳 들렀으니 새책집도 한 곳 들르고 싶습니다. 부산마실을 하며 어느 곳을 찾아가면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한테 이야기꾸러미를 든든히 챙길 만할까 하고 헤아리니 〈동주책방〉이 마음에 꽂혔어요. 〈글밭〉으로 걸어오던 길을 거슬러 다시 골목을 걷습니다. 후끈후끈한 여름볕이 매우 좋습니다. 이 후끈볕을 맨몸으로 받으며 걸으니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열일곱 살에 너나들이랑 나눈 말이 있어요. “넌 눈부시지 않니? 너만 멀쩡한가 봐.” “응? 햇살이 따갑다고 이맛살을 찡그리면 더 눈부셔. 그냥 해를 바라보면 괜찮던데.” 너나들이가 들려준 한 마디는 그 뒤로 ‘해를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다스리면 즐거운가를 이끌어 주었어요.


  골목을 걷는 동안 이 둘레 초·중·고등학교 어린이랑 푸름이가 무리를 짓고 어깨동무를 하고 깔깔대며 걷는 소리가 쩌렁쩌렁 퍼집니다. 아이들 입에서는 “아, 더워! 더워!”란 말이 끝없이 흐릅니다. 어쩌면 유월볕은 이 부산에서 무척 덥다고 여길 만하지요. 그런데 ‘덥다’고 자꾸 말하기 때문에 참말로 자꾸 덥고 끝없이 덥다가 못 참겠도록 더더더 덥지 싶어요.


  저는 한여름에도 굳이 그늘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한여름에도 땡볕자리에 가만히 서서 해를 온몸으로 받기를 즐깁니다. 하나도 안 덥거든요. 고맙지요. 겨울엔 겨울볕이 반갑고 여름엔 여름볕이 사랑스럽구나 싶어요. 건널목에서 푸른불을 기다리면서 가볍게 춤을 추면서 햇볕이며 햇살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이제 부산경상대 앞에 다 옵니다. 54 시내버스를 탑니다. 아까 시내버스를 타다가 그만 걸상 모서리에 무릎을 세게 찧었는데 아직 찌릿찌릿합니다. 어릴 적에도 걸상 모서리에 가끔 무릎을 찧고 주저앉은 적이 있는데 쉰 살이 가까운 이 나이에도 무릎을 찧네 싶군요.


  어느 골목에 마을책집이 깃들었으려나 하고 헤아리며 걷습니다. 부산은 집이 빼곡하고 길이 좁은데, 〈동주책방〉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아파트 꽃밭이 옆으로 제법 넓습니다. 부산이지만 부산스럽지 않은, 퍽 아늑하면서 조용한 데에 책집이 있네요.


  파랑하고 공룡이 어우러진 책집에 닿습니다. 가만히 여닫이를 당겨 들어갑니다. 이모저모 알뜰하게 손질하고 돌본 티가 물씬 흐르는 빛을 느낍니다. 얼마나 깊고 넓게 ‘자연·생태’ 책을 살폈으면 이만하게 꾸밀 수 있을까요. 책시렁 한켠이며 책 한 자락이며 즐겁고 따사로이 어루만진 숨빛입니다.


  큰책집도 작은책집도 아닌 마을책집이기에 이처럼 꾸미고 돌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길을 일구면서 배우고 느끼고 맞아들인 기쁜 눈물웃음을 고이 건사한 몸짓이기에 이러한 마을책집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백 살이 넘었지 싶은 《Familiar wild flowers》 같은 책을 살살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넘깁니다. 풀꽃을 아끼는 눈빛으로 엮은 이 도감을 언제쯤 장만하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Flowers of the farm》도 넘깁니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책이 꽤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책이 안 나오다시피 합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전문스럽게 치우거나 멋져 보이는 사진·그림으로만 엮으려 합니다. 삶자리나 마을에서 문득 바라보고 즐겁게 마주하고 동무할 상냥한 ‘풀꽃 그림꾸러미’가 드물어요. 어린이 눈썰미나 눈높이로 다룬 풀꽃 그림책이 없다시피 하달까요. 스웨덴 분인 엘사 베스코브 님이 1800년대 끝무렵부터 1900년대 첫무렵에 빚은 그림책은 자연생태 그림책이 아닌 이녁 딸아들을 담아낸 그림책입니다만, 이 그림책에 깃든 풀꽃나무가 얼마나 따사롭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꼼꼼하게 담아내어도 나쁘지 않으나, 이보다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즐거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마음이 되고서 풀꽃나무를 붓끝으로 옮길 적에 아름답게 나눌 풀꽃책 하나가 태어나지 싶습니다.


  곱게 깃털을 붙인 펜은 다음에 마실하면서 장만하자고 생각하며 《고래책》을 들여다보고 《내가 더 커!》도 천천히 읽습니다.


  이 책도 저 책도 마음에 들지만 오늘 다 사들여서 고흥으로 챙겨 가기는 어렵습니다. 이모저모 끙끙거린 끝에 《개복치의 비밀》(사와이 에쓰로/조민정 옮김, 이김, 2018)을 쥐고, 《시선들》(캐슬린 제이미/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2016)을 쥡니다. 저녁에 길손집에 들면 《시선들》부터 읽을 생각입니다. ‘the collected badges of birds’ 가운데 ‘검은머리물떼새’하고 ‘물총새’ 둘을 장만하기로 합니다. ‘참새’를 뒤늦게 보았는데, ‘참새’는 부디 다음에 마실할 때까지 남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빕니다. 이러고서 ‘책 하나 천바구니’까지 더 고릅니다. 여느 때에도 늘 어깨로 가로지르는 천짐을 둘 몸에 매달고 사는데, 하나를 더 매달 생각입니다.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등짐에 챙긴 ‘마을책집 사랑하기’ 꾸러미가 있습니다. 〈동주책방〉 책집지기님한테 이 꾸러미를 드립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에 담은 ‘책나무’ 그림으로 걸개천을 하나 찍었고,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에 그림을 담아 준 사름벼리 어린이 연필그림까지 섞어서 꽃종이를 네 가지 찍었어요. 온나라 모든 마을책집이 마을에서 ‘책나무’가 되고, 이 책나무는 시나브로 책숲이 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나무 곁에 책집 있고

 책집 옆에 숲이 있고

 이 둘레에 집을 짓고

 집집이 어울려 마을로


  문득 떠오른 넉줄글입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마을책집이란 나무 곁에 있는 쉼터이지 싶습니다. 이 책집으로 찾아오면서 숲을 느끼고, 이 숲을 느끼는 마음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가꾸는 즐거운 눈망울로 자라나지 싶어요. 그냥그냥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마을이 아닌, 숲바람을 마시고 함께 노래하는 발걸음으로 보금자리가 하나둘 피어나서 저절로 태어나는 마을이라면 기쁘겠어요.


  찌릿거리는 무릎을 쉬려고 걸상에 앉습니다. 책집지기님은 스무 살 무렵부터 ‘내 책집’을 지피려는 꿈을 키우셨다고 합니다. 즐겁게 하는 다른 일이 한 가지 있고, 즐겁게 돌보는 책집이 한켠에 있고, 즐겁게 마주하는 이웃이 둘레에 있는 삶길이시네 싶어요.


  우리가 저마다 도서관이나 책집을 따로 하나씩 꾸린다면 꽤 재미있겠네 싶습니다. 우리가 꾸릴 도서관이나 책집은 커야 하지 않고, 책이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눈빛을 밝혀서 갈무리한 책으로 이야기를 꽃피우는 자리이면 되어요.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며 마을책숲(마을도서관)이 십만 곳이나 백만 곳쯤 있다면 참 재미나겠지 싶습니다. 서로서로 나들이를 다니고, 서로서로 다 다른 눈빛으로 가꾼 다 다른 책살림을 만나면서 서로서로 배우고 알려주는 마을길이 된다면 이 나라가 어느 만큼 살 만한 터전으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책집은 대단해야 하지 않습니다. 빨래집(세탁소)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할 수 있어요. 빵집 꽃집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할 수 있습니다. 옷집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할 수 있지요. 머리집이나 문방구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할 만하고, 셈틀집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할 만합니다. 출판사이면서 책집이 되어도 좋고, 나들가게나 술집이면서 책집을 나란히 해도 아기자기하겠지요. 숲을 헤엄친 깃털이 나부끼는 〈동주책방〉을 이다음에 찾아올 날을 손꼽으면서 이제 길손집으로 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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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쪽빛책뜰 (2020.6.9.)

― 부산 〈인디고서원〉


부산 수영구 수영로408번길 28

051.628.2897.

www.indigoground.net



  사전짓기라는 길을 가지 않았다면 그저 숲에서 조촐하게 하루를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는 나무를 읽고 풀을 읽고 하늘을 읽고 바람을 읽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맨발에 맨손으로 숲을 누비고 살겠네 싶어요. 사전짓기를 하는 터라 숲 곁에서 지내면서도 큰고장으로 책집마실을 다닙니다. 사전이라는 책에 담을 말을 살펴야 하고, 사람들이 아직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그냥그냥 쓰는 숱한 말을 ‘풀이하거나 풀어내어 다루’어야 하거든요. 요즈막에 ‘자살당하다’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뭔 소리인가 갸우뚱했는데 ‘자살이 되도록 몰렸다’라든지 ‘자살로 보이도록 시달렸다’는 뜻이더군요.


  한국은 ‘어린이·푸름이 자살률’이 무척 높습니다. 어르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쑤입니다만 꽃피울 겨를이 없이 꺾이는 어린이·푸름이는 자꾸 늘어납니다. 돌림앓이를 둘러싸고서 아직도 교육부에서는 ‘교과서 진도+대학입시’만 바라봅니다. 왜 아이들을 시멘트덩이에 밀어넣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이 숲을 껴안는 길로 가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내려 할까요. 왜 아이들 스스로 꿈을 지어 사랑을 가꾸도록 몸소 보여주면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우는 살림하고는 등질까요.


  엊저녁에 남천역 둘레 길손집에 묵었습니다. 아침 일찍 〈인디고서원〉으로 찾아갈 생각으로 가까운 길손집에서 묵는데, 참 잘못 생각했더군요. 이곳에서 광안리란 곳이 가깝다고 하네요. 관광지인 바닷가에는 갈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기에 광안리가 어디 있는 줄 모르고 살았으니, ‘관광지하고 가까운 길손집’이라며 비싸게 부른 값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햇볕을 머금으면서 걷습니다. 아침 열 시가 안 되어 바깥에서 골목새 노래를 들으면서 동시를 씁니다. 이윽고 열 시를 넘고, 드디어 〈인디고서원〉 안쪽을 들여다봅니다. 손으로 찍은 벽돌로 칸칸이 쌓아올린 이 터전은 즈믄해를 바라보면서 지었다고 합니다. ‘즈믄책집’이로군요. 웬만한 나무는 으레 즈믄해를 삽니다. 이웃나라에는 여러 즈믄해를 살아낸 나무가 꽤 있어요. 한국은 숱한 싸움질하고 삽질 탓에 즈믄나무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고흥읍에는 즈믄살 가까운 우람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만, 고흥군청은 이 나무를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아요. 몇 해 앞서는 굵다란 가지를 함부로 쳐내고서 옆에 정자를 들여놓기까지 했습니다. 즈믄살 가까운 고흥읍 우람나무 둘레에 잔뜩 떨어진 담배꽁초하고 술병이란 슬프기까지 합니다.


  바깥에서 보면 나무걸상이 있고 꽃그릇을 놓은 느긋한 살림집 같은 〈인디고서원〉인데, 안으로 깃들면 알뜰살뜰 여민 어린이책이 1층에, 요모조모 꾸린 푸른책이 2층에 있습니다.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길목에는 높이 솟은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고, 2층에서 문득 창밖을 내다보면 질경이가 함초롬한 마당이 있어요.


  푸름이를 아끼는 손길로 돌보는 마을책집에 멧새가 깃들어 마을새가 됩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차츰차츰 철이 들면서 마을지기가 될 테지요. 이 마을지기 푸름이가 한 올 두 올 엮는 이야기는 어느새 마을책이 될 테고요. 질경이 곁에 흰민들레가 어깨동무하면 참 곱겠구나 생각합니다. 고흥에 돌아가면 올해에 훑은 흰민들레씨를 이곳에 보내야겠어요.


  쪽빛인 책뜰을 돌아보다가 《세실의 전설》(브렌트 스타펠캄프/남종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이 눈에 박힙니다. 《인디고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궁리, 2018)는 오늘 여기를 일군 땀방울, 또는 사랑방울이 어떻게 출렁출렁 흐르면서 냇물이 되었는가를 다루었지 싶습니다.


  하늘을 담아 새파란 바다는 쪽빛입니다. 가없이 맑은 하늘처럼 그지없이 싱그러운 물빛은 ‘빛깔없음(투명)’이 아닌 ‘파랑’이지요. 새삼스럽지만, ‘쪽빛책뜰’이란, 이 책집을 드나들 어린이하고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들 마음에 어떤 빛깔이 물들면서 생각을 새롭게 씨앗으로 묻으며 아름다이 피어날 만한가 하고 살며시 귀띔하는 터전이지 싶어요.


  그나저나 부산시는 이곳에 여태 ‘훈장’을 안 주었다니 놀랍습니다. 부산시에서 알아보는 눈썰미가 얕은 나머지, 아니 아직 부산시에는 쪽빛마음이 옅은 탓에, ‘보람’을 어떻게 나누는가를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부산이란 고장에서 벼슬아치(공무원)가 되는 이들이, 또 교사로 첫발을 떼는 분들이, 《인디고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를 길잡이책으로 읽고서 일밭을 일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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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돌아온 길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6.10.)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사흘에 걸친 부산마실에서 돌아옵니다. 월요일인 8일에는 부산지방법원에 ‘고흥만 경비행기시험장 취소 소송 기자회견’이란 일이 있었어요. 이 일을 마친 다음에 부산 연산동에 있는 마을책집 〈글밭〉하고 〈동주책방〉을 찾아갔습니다. 화요일인 9일에는 수영구에 있는 〈인디고서원〉하고 〈고서점〉을 찾아갔고, 보수동헌책방골목을 여러 해 만에 찾아가서 그동안 달라진 결을 쓸쓸하게 돌아보고서 용두산 기스락에 있는 길손집에서 다리랑 등허리를 쉬었습니다. 수요일인 10일 아침에 부산 시내버스를 타고서 사상 버스나루로 갔고,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왔지요. 시골집에 닿아 짐을 풀고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비가 시원시원 내립니다. 부산에서 장만한 김밥을 아이들하고 곁님이 먹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산에서 보고 들은 살림을,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놀면서 하루를 짓는 소꿉을, 어버이로서 삶을 슬기롭고 상냥하게 가꾸면서 돌볼 사랑을, 이래저래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잠들었어요. 잠든 줄조차 몰랐더군요. 부산마실 사흘 동안 기운을 이렇게 많이 쓴 터라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부엌바닥에 스르르 곯아떨어졌’더군요. 밤새 여러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새아침에도 새롭게 하루꿈을 지어야지요. 부산마실을 하며 책값을 또 제법 썼는데요, 언제나 스스로 노래하듯 ‘즐겁게 쓴 책값 × 10’을 새삼스레 신나게 벌자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비내음을 마시면서 비바라기로 하루가 흐릅니다. 사름벼리 어린이가 빚는 첫 그림꾸러미 《구름바람 도서관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지어서 출판사에 보여주자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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