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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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늘 만나는 (2017.5.1.)

― 순천 〈책방 심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소지품검사를 하며 책을 빼앗든 말든 등짐에 ‘교과서도 참고서도 아닌 책’을 대여섯 자락씩 챙겨서 다녔어요. 쉴틈이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며 이 책을 한 자락씩 꺼내어 읽었어요. 도시락을 먹으면서 읽고, 버스로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읽으며, 걸어다니는 동안에도 읽었어요. 하루에 대여섯 자락씩 챙기고 다녀도 그리 어렵잖이 다 읽을 만했어요.


  아이랑 살며 아이읽기로 부산합니다. 아이는 책보다 아이 눈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꽃내음을 큼큼 맡으며 책보다 꽃읽기를 하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비바람을 마시면서 책보다 비읽기랑 바람읽기를 하자고 손짓합니다.


  아이는 한결 넓고 깊이 책을 읽도록 부추깁니다. 종이에 글씨를 얹는 책뿐 아니라 돌멩이라는 책, 소꿉이라는 책, 눈짓이라는 책, 구슬땀이라는 책, 자장노래라는 책, 별빛이라는 책을 함께 읽자고 잡아당겨요. 이 여러 가지가 새삼스레 하루를 북돋아 주었기에, 두 아이하고 살아낸 열 해를 갈무리해서, 큰아이가 열 살을 맞이한 해를 기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썼지요. 마침 이 책을 〈책방 심다〉에서 ‘이달 심다 책’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신문도 방송도 이 책을 다룬 적이 없지만 마을책집에서 알아보아 주니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바깥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심다〉에 들르니, 이 책을 미리 맡으신 분이 책 안쪽에 이름을 적어 주기를 바라셨다고 하면서 내밉니다. 기꺼이 붓을 쥡니다. “씨앗 선생님. 풀씨가 앉아서 풀밭 되고, 꽃씨가 앉아서 꽃밭 되며, 나무씨가 앉아서 숲이 되니, 저마다 고운 마음씨가 고요히 앉아서 사랑이 됩니다.” 하고 적습니다.


  〈심다〉에는 이 책집에 와야 읽을 수 있는 책이 꽤 돼요. 팔지 않는 책입니다. 나눔읽기를 하는 책이지요. 이 가운데 《Little Tree》(Katsumi Komgate)가 있는데, 곱게 펼치면서 나무를 돌아보는 그림책을 보다가 “삶을 사랑하며 시골에서 곁님·아이들·나를 돌보는 길에 책을 고이 돌아본 이야기를 살포기 책 한 자락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같은 글자락을 90칸 글종이에 적어서 책집지기님한테 건넵니다.


  이곳에 씨앗 한 톨이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은 풀도 꽃도 나무도 되지만, 사랑도 꿈도 노래도 됩니다. 이윽고 책도 이야기도 웃음도 될 테지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씨앗 한 톨을 심는 마을 한켠 책집이라면, 이 책집이 깃든 고장은 앞으로 어떻게 흐드러질 숲으로 푸르게 퍼질까요.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앞에 책집이 적어도 한두 곳씩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큰길가보다 골목 한켠이며 저잣길 한쪽에 책집이 한 곳씩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마을도서관도 좋은데, 마을책집이 언제나 함께하면 더욱 좋겠어요. 살림을 가꾸는 살림집처럼, 책으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나누는 책집이 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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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최혜진 글·신창용 사진, 은행나무, 2016)

《왜냐면》(안녕달, 책읽는곰, 2017)

《시간 상자》(데이비드 위즈너, 베틀북, 2007)

《Haamuvoimi》(Jacques Duquennoy, nemokustannu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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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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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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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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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책한테 (2018.3.31.)

― 도쿄 진보초 〈慶文堂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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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꽃하고 열매를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문학은 사전을 옆에 여러 자락 놓는다 하더라도 옳게 옮길 수 없습니다. 이웃나라에 가서 문학을 배우거나 석사·학사·박사가 되더라도 잘 옮기지 않습니다. 살림을 읽고 삶을 알며 이웃나라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숲도 알고 풀꽃나무도 읽어야지요. 밥짓기랑 옷짓기도 알아야 하고, 살림이며 빨래나 아이돌보기도 즐거이 맡아야 합니다. 이 여러 가지를 모르는 채 어떤 책을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요? 이 여러 가지를 모르면서 문학비평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해가 없으면 푸나무도 죽고 사람까지 죽습니다. 비바람이 없으면 푸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죽습니다. 냇바닥에 시멘트를 덮으면 물살림도 죽고 사람도 죽어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터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나라(천국)’에 가려고 살아가지 않겠지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꿈을 지으려고 살아갈 테지요. ‘죽은 뒤’에 갈 하늘나라가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두 다리로 디디는 하늘나라를 누릴 노릇이겠지요.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즐거워야지 싶어요.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책을 보면서, 책집골목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틈틈이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봄꽃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하루를 오늘 이곳을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 앞에 이릅니다. 눈에 뜨이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샘솟는 마음, ‘이 책집을 통째로 사고 싶어!’


일본이 만화를 널리 읽거나 아끼기에 오랜 만화책을 쉽게 만난다고 말하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책을 책으로 여기는 눈길이 알뜰하기에 꽤 묵은 책도 어렵잖이 만나고 되읽고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만화는 만화이면서 책이 됩니다. 그림은 그림이면서 책이 되지요. 사진은 사진이면서 책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그저 책으로’ 깊이 마주하는 살림이 얕아요. 그림책을 놓고는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님이 꽤 늘었습니다만, 만화책하고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기까지는 한참 남았지 싶어요. 아이를 안 낳았어도 누릴 그림책이요, 어린이가 아니어도 즐길 만화책이며, 사진을 찍는 일을 안 하더라도 나눌 사진책이에요.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감도는 빛살을 느끼면서, 이 종이꾸러미가 태어난 숨결을 짚을 줄 안다면, 책읽기를 넘어 사회읽기·역사읽기·문화읽기를 슬기로이 하는 눈썰미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慶文堂書店〉에서 사진책 두 자락을 고르고 셈합니다. 뭇책이 저를 쳐다보면서 “더! 더!”라든지 “나도! 나도!”를 외칩니다. 제 손으로 쥐어서 펼쳐 주기를 기다리는 책이 끝없이 외치는데, 이 외침을 못 들은 척할 마음은 없어요. 나긋나긋 속삭입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이 책 하나가 다릿돌이 되어 곧 너희를 만나겠지? 너희는 나한테 올 수도 있지만 다른 이웃님한테 갈 수도 있겠지? 우린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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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路の煙》(長谷川英紀, 六法出版社, 1971)

《NEPAL》(Pierre Toutain, ubspd,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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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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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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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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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 : 바른소리(내부고발)를 하는 사람한테 묻지 말아야 할 말이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왜 이제 와서? 그동안 뭐 하다가?”이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하자. “이제 와서” 따지는 일이란 없다. 언제나 그때그때 따졌으나 안 바뀌었을 뿐이요, 그동안 숱하게 말을 했으나 ‘바른소리가 높다란 울타리에 막혀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바깥으로 바른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모든 길(언론)을 막아 놓은’ 탓이다. 똑바로 보자. 이제까지 바른소리(내부고발)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꽁꽁 틀어막은 그들(권력자·지배자)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울타리를 쳤는가를 따질 노릇이다. 틀어막은 그들을 모두 끌어내고, 울타리를 친 그들을 몽땅 잡아들이지 않고서야 바른소리는 앞으로도 흐르기 어렵다. “왜 이제 와서?”라고 물은 그대한테 한 마디 하련다. “이제서야 새어나온 목소리를 왜 이제조차 못 듣니? 넌 언제 바른소리를 들을 생각이니? 그동안 피터지게 외쳤는데 넌 왜 그동안 이 피터지는 외침을 여태 안 들었니? 네 귀는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그동안 이 피어린 외침을 들을 생각을 안 했니?” 2020.7.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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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YukiUrusibara #蟲師 #むしし #漆原友紀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버려야 할 마음



《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5.15.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흔히들 “욕심을 버려라” 하고 말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어릴 때나 요즘이나 매한가지로 느끼는데, 이런 말은 우리 마음에 피어날 싹을 싹둑 끊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욕심을 버려!” 따위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아카네는 그 후, 어떻게 된 거요?” “글쎄요. 어쩌면, 할머니처럼 누군가와 뒤바뀌어 어디에선가 살고 있지 않을까요?” (29쪽)



  한자말 ‘욕심(欲心)’을 표준국어대사전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풀이합니다만, ‘欲’이라는 한자는 ‘貪’이란 한자가 아닙니다. 둘은 다르지요.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욕심 = 탐내는 마음’으로 풀이한 사전이 알맞나요? 욕심이란 그저 ‘욕 + 심’입니다. 한자 ‘욕’은 “하고자 하다”를 가리킵니다. 이 한자는 ‘좋아하다’를 가리키지요.


  자, 그럼 수수께끼를 풀었을까요? 아니, 이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똑똑히 보고 똑똑히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욕심을 버려라 = 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라”란 뜻입니다.



“너는 어째서, 계속 그 상태인 거냐? 그래, 넌, 차마 밟지 못한 거구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운 아이였으니까. 미안해. 난, 네 그림자를 밟은 아이와, 부부가 됐어.” (47쪽)



  예부터 ‘나라(국가)’나 ‘터(사회)’를 세워서 우두머리에 오르고 벼슬아치를 거느리며 구실아치를 부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로 장난질을 칩니다. 요즈막 우두머리·벼슬아치·구실아치가 치는 말장난 가운데 하나는 “피해 호소인·피해 고소인”입니다. 참 웃기지요. 말인가요, 불낙인가요?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이 하나 있다면 “탐내지 마라”이겠지요. 다만, 저는 이런 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듣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쉽게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욕심 ○, 탐심 ×”가 아닌 “꿈꾸렴, 시샘하지 말고.”처럼 이야기합니다. “꿈을 그리자,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처럼 보탭니다.



“네가 그랬지? 벌레에겐 벌레만의 사정이 있다고. 자기 형편에 맞춰 그걸 비틀어버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그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86쪽)



  벌레가 있으니 벌레잡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충사 9》(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은 벌레하고 벌레잡이 사이를 그립니다. 모두 열 자락으로 이야기를 마무르는 만화책인데, 막판에 이른 아홉걸음을 보면 ‘잡이’가 어떤 구실인가를 새삼스레 되짚어 줍니다.


  벌레잡이란 이름에서 ‘잡다’는 무엇일까요? ‘잡아서 죽이다’라는 잡다일는지요, ‘길을 잡다’라는 잡다일는지요. 우리는 어떤 잡다(잡이)로 나아갈 적에 스스로 빛나는 노래가 될 만한가요.


  칼잡이라 할 적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첫째는 칼을 마구 휘둘러서 사람을 잡아 죽이려는 싸울아비가 있겠지요. 둘째는 칼을 알맞게 다잡고 다스리는 부엌님이요 정지님이 있어요. 잡아서 죽이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사납고 무서우며 곁에 동무가 없습니다. 알맞게 다잡거나 다스리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이웃나눔을 하는 밥짓기에 살림짓기로 나아가니 곁에 동무가 있습니다.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이야. 저 하늘 너머에,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매일같이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엄마. 인형을 숨겨 놓고 같이 놀아 주는 언니. 기억해라.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115쪽)



  벌레잡이는 벌레를 족치는 길이 아닙니다. 벌레잡이는 벌레한테서 푸른별 얼거리를 배우는 길입니다. 모름지기 뭇사람은 마구 휘두르는 칼잡이가 아닌, 한집안을 사랑으로 보듬는 부엌지기라는 칼잡이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통통통 도마질을 노랫가락으로 바꾸어 내는 칼잡이가 되기에 아름답습니다. 토도독 채썰기를 노래잔치르 펼쳐 보이는 칼잡이로 살림하기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길을 밝혀야겠지요. 우리가 어버이라면 푸름이한테 사랑스러운 살림을 물려주어야겠지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피해 고소인”이라는 말장난으로 핑계질을 일삼지 않습니다. 어른은 슬기로울 뿐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즐거이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엄마.” “왜?” “강은 어디서 와?” “산속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거야.” “계곡물은 어디서 와?” “하늘의 구름에서 떨어져.” “그럼 하늘의 구름은?” “바다에서 태어나지.” “바다?” “이 강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 물이 굉장히 많은 곳이야.” “많아? 얼마나?” “으음, 엄마도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156∼157쪽)


“눈에 보이는 사방이 전부 물이래.” “우와. 그럼, 바다도, 강도, 비도, 구름도, 다 똑같네?” “그래. 모양은 달라도 전부 똑같아.” “그렇구나.” (158쪽)



  그 어떤 말장난도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치레도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말장난은 이 말장난을 일삼는 사람부터 갉아먹습니다. 모든 말치레는 이 말치레를 듣고서 좋아하는 사람부터 무너뜨립니다.


  이제 ‘욕심·꿈’하고 ‘탐심·시샘(부러움)’ 사이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은 죽어도 못 쓰기 마련입니다. 말뜻을 제대로 어림하시겠나요? “글을 잘 쓰겠다는 탐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이 술술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즐겁게 살아내고, 이 즐거운 노래를 언제나 스스럼없이 펼치고 싶다는 꿈을 그린다”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춤노래이든, 또 사랑이든 살림이든 일놀이나 그 어떤 길이라 하든 솔솔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으레 미움이나 밉질로 흐릅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어느새 따돌림이나 괴롭힘질로, 또 등돌림이나 콧방귀로 흐릅니다. 때로는 팔짱을 끼겠지요.



“유타. 넌 지금 어디에 있니? 강이니? 바다니? 비니? …… 그래. 넌 어디에든 다 있는 거야.” (187∼188쪽)



  꿈이 없다면 죽은 넋입니다. 꿈을 그리지 않으면 죽은 몸입니다. 꿈이 있기에 싱그러운 넋입니다. 꿈을 그리기에 산뜻하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빛나는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마음에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말장난이나 말치레를 그치지 않으면 씨앗은 안 깨어납니다. 기쁘게 살림하고 즐겁게 사랑하면서 오늘 하루를 꿈으로 그리려는 마음이라면 씨앗은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아마도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겠지. 저곳은.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겐 있을 곳 따윈 없으니까.’ (224쪽)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장소 따윈 아무한테도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치가 돌아가도록 허락해 줬잖아. 이 세상 모두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다.” (234∼235쪽)



  애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애쓰지 말고 사랑하셔요. 힘쓰지 않아도 됩니다. 햄쓰지 말고 노래하셔요. 사랑으로 마주하면 어떤 일이든 스스로 뜻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노래로 맞아들이면 어떤 고비가 굴레나 수렁이나 울타리라도 사르르 녹이면서 서로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숲으로 나아갑니다.


  버려야 할 마음인 ‘시샘·부러움’입니다만, 더 생각하면 굳이 안 버려도 됩니다. ‘시샘·부러움’이 우리한테 찾아왔다면, 이런 마음이 찾아올 적에 우리가 어떤 하루가 되는지를 가만히 보면 좋겠어요. ‘시샘·부러움’이란 마음이 있으면서 환하게 웃거나 곱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어떤 마음이 찾아오든 새삼스레 배웁니다. 기꺼이 배우면서 넉넉히 펼칠 적에 ‘사람’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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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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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애장판 3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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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Urusibara #蟲師 #むしし #漆原友紀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민주당 정치독


《충사 3》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5.8.15.


  사람이 둘 죽습니다. 한쪽은 때린이인데, 때린짓을 감추려고 죽습니다. 또 한쪽은 맞은이인데, 더 맞고 싶지 않으려고 죽습니다. 때린짓을 감추는 이 곁에는 이 때린짓을 감추어 주는 이들이 물결칩니다. 때린이가 무서워 스스로 죽음길로 간 맞은이는 이 물결치는 주먹질이며 윽박질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여기고 맙니다.


“이 목소리, 무서운 목소리예요. 그래서 망가뜨려 버리려고. 그 동굴에서 이런 목소리가 될 때까지 소리를 질렀어요.” (18쪽)


  “사람은 얼마나 올바른가?” 하고 묻는다면 “글쎄요.” 하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에다가 교육·종교 모두 매한가지인걸요. 더구나 문학·예술마저 “글쎄요”란 말이 아니고서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정치를 볼까요. 저쪽에서 빈틈이나 잘못을 보이면 후벼파려고 합니다. 이쪽에서 빈틈이나 잘못이 드러나면 입을 씻거나 모르쇠이거나 딴청을 하거나 핑계를 댑니다. 경제를 봐요. 길미하고 돈에 따라 움직입니다.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나 문학을 이루는 틀거리도 ‘내 쪽 네 쪽’이기 마련이고, ‘울타리 안팎’을 가릅니다.


“전에 만났을 땐, 아내의 유품이 발견된 시점에서 이미 살아갈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던데.” “지금은 다르오.” (77쪽)


  제넋으로는 사회살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넋을 버려야 사회살이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비롯해 문학까지, 옳은길이 아닌 ‘시키는 길’에 맞추어 흐릅니다. 옳은길을 바라보려는 이라면 어느새 사회란 곳을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라는 곳은 틀을 세워서 이 틀을 고분고분 말없이 따를 적에는 떡고물을 주지만, 이 틀을 깨거나 없애어 누구나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아름터가 되기를 꿈꾸는 이를 내치거나 자르거나 괴롭히거든요.

  푸른별에서 사람 곁에 있는 ‘벌레’를 들려주는 《충사 3》(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5)입니다. ‘벌레’란 이름을 붙입니다만, 꼭 벌레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깨비(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레’란 이름을 받은 그 숨결이 ‘사람’을 바라본다면, ‘벌레란 이름인 숨결이 보기에 사람이란 이름인 숨결이야말로 벌레’로 여길 만합니다.


“괴롭더라도 드세요. 내 생명을 당신이 먹어 줄 거라 생각하니, 왠지 죽음도 두렵지 않아요.” (123쪽)


  오늘 우리는 여태 본 적 없는 나라를 봅니다. 때린이가 우쭐거리면서 힘이며 돈이며 이름을 고스란히 거머쥐고 윽박지르는 나라를 봅니다. 왜 ‘정치권력’이라 하겠어요? 맘대로 휘두를 수 있으니 이런 이름입니다. 왜 서울로 몰리도록 나라를 다스리겠어요? 좁아터진 서울로 들어가는 틈바구니에서 사람들 스스로 다툼질을 하도록 판을 벌여 놓아야 군소리도 딴소리도 쑥 들어가거든요.

  정치권력이나 돈이나 이름이 없는 집에서 태어난 사내는 군대살이를 뼈빠지게 할 뿐 아니라, 군대에서 픽 쓰러져 죽곤 합니다. 정치권력에 돈에 이름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사내는, 이등병이어도 탱자탱자할 뿐 아니라, 군인이면서 대학교에도 다닌다지요.

  정치권력을 거머쥔 그들을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내건 ‘정당 이름’이 아닌, 그들이 낱낱이 보여주는 모습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입시지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수하고 알음알음 짬짜미로 얼마든지 졸업장 따위야 쉽게 얻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입시지옥은 나몰라라 하면서 나라밖으로 목돈 들여 그들 딸아들을 내보내지요.

  입시지옥이 안 사라지는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어야 ‘이 나라를 이룬 여느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 그 입시지옥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쳐다보느라 권력자 허튼짓을 따지거나 살필 겨를이 없어요. 여느 사람들이 입시지옥에서 헤매 주어야, 여느 집안에서 자라는 어린이·푸름이가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다툼질에 익숙한 길을 갑니다. 따져야 할 놈은 정치권력이지만, 입시지옥에서 헤매는 사이에 뜬금없이 ‘이웃밟기’에 길든 나머지, 화살을 어느 과녁에 쏘아야 하는가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벼루를 부순다는 건, 아직 이 안에 잠들어 있는 벌레까지 죽이는 짓이잖아.”“음, 그야 그렇지만, 보시오. 벌레에겐 아무 죄도 없어요.” “그리고 이 벼루, 부셔 버리기엔 너무 아름답지 않소? 당신에게도 자기 자식 같은 벼루 아니오?” (177쪽)


  아무리 농약을 친다 한들 풀은 안 죽습니다. 더구나 농약으로 풀을 모조리 죽이려 든다면, 사람도 죽어버리지요. 풀에 친 농약은 언제나 사람한테 고스란히 들어가는걸요. 농약이 사람한테 이바지한다면 구태여 ‘무농약·저농약·친환경·자연농’이란 이름을 붙일 까닭이 없겠지요. 항생제가 사람한테 좋다면 ‘무항생제’란 이름을 굳이 내세울 일이 없겠지요.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이 휘두르는 대로 휩쓸립니다. 《충사》는 이 대목을 ‘벌레·벌레잡이’ 사이를 줄거리로 삼아서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이 푸른별에서 사라져야 할 벌레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푸른별에서 파리·모기가 모조리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생각 좀 해야 합니다. 파리·모기를 미워한대서 푸른별이 깨끗해지지 않아요. 외려 파리·모기가 사라지면 이 별은 끔찍한 쓰레기판이 되어 버립니다.

  지렁이가 징그럽나요? 그대한테 징그러운 지렁이가 없으면 그대는 밥을 굶어야 합니다. 벌레가 싫고 거미가 무서운가요? 벌레나 거미가 없으면 ‘사람이 세운 모든 문명’은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존재방식은 다르지만, 단절된 존재는 아니야. 우리 생명의 다른 형태지.” (195쪽)

“두려움이나 분노가 눈을 가리도록 놔두지 말아. 모두 각자의 존재방식대로 존재하는 것뿐. 피할 수 있는 것은, 지혜를 가진 우리가 알아서 피하면 돼. 충사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방법을 찾아 헤매온 자들이란다.” (215쪽)


  나무가 없는, 게다가 시늉으로 심은 나무조차 함부로 가지치기를 해버리는, 그런 메마른 큰고장에서는 바람이 매캐합니다. 한밤에 별빛 아닌 전깃불빛이 가득한 큰고장에서는 사람들이 언제나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무시무시하게 떠돈다고 하는 요즈막 돌림앓이를 생각해 보셔요. 나무가 우거지고 숲이 아름다운 터전에서 그 돌림앓이에 걸린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요?

  학교를 제대로 열고 싶다면, 꽉 막힌 시멘트집이 아니라, 탁 트인 숲이나 들에 열 노릇입니다. 사회를 이루고 큰고장이 살기 좋도록 하자면, 찻길을 확 줄이고 자동차가 확 없애면서, 그 자리에 나무를 줄줄이 심고, 10층이 넘는 집은 모조리 치우면서 숲을 가꿀 노릇입니다. 좁은 터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할 수밖에 없는 판으로 키워 놓고서, 이런 곳에서 돌림앓이가 안 퍼지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엉터리가 아닌가요? 나라 곳곳이 고르게 흐르도록 살림을 가꾸지 않으니 돌림앓이뿐 아니라 입시지옥에 갖가지 썩어문드러진 짓이 잇따르지 않나요?

  한두 정치무리한테 너무나 커다란 힘을 얹어 주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요? 우리는 이 막짓을 오늘 코앞에서 하나하나 마주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나무란 그들이 ‘민주당 정치독재’를 한가득 펼쳐 보이는 요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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