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18.


《시애틀 추장》

 수잔 재퍼스 글·그림/최권행 옮김, 한마당, 2001.7.10.



어느덧 논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대는 철이다. 이곳도 저곳도 농약바람이다. 때로는 경운기를 끌고서 뿌리고, 때로는 드론을 띄워서 뿌린다. 숨을 쉴 틈이 없도록 시골은 온통 농약바람이다. 이 농약바람이 부는 곳에서 누가 숨을 쉴 만할까? 새도 풀벌레도 나무도 숨이 막히지만, 바로 사람 스스로 숨이 막히지. 먹고살아야 하니까, 벌레가 꼬이니까, 더 거두어야 하니까, 이래저래 농약을 뿌리는데, 이 농약을 뿌린 자취는 얼마 안 된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농협을 앞세워 새마을바람을 일으킬 적부터 농약을 썼고, 이때부터 농약은 돈벼락을 맞고 농약을 다루는 온갖 곳이 떼돈을 거머쥐었다. 《시애틀 추장》을 오랜만에 다시 본다. 우리는 시애틀 슬기님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듣는 삶일까. 시애틀 슬기님이 남긴 말을 곳곳에서 다루거나 쓰기는 하되, 정작 삶으로 새기거나 맞아들이면서 삶부터 갈아엎는 길하고는 동떨어지지 않을까. 흙을 어떻게 가꾸고, 돌림앓이가 퍼질 적에 어떻게 하며,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어른으로서 어떤 살림길을 다스릴 적에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가 하는 대목을 헤아려야지 싶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우리가 어른이라면, 우리가 언제나 웃고 노래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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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0
최원형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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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3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

 최원형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6.25.



시리아가 위치한 곳은 과거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었어요. 그런 땅을 그동안 너무 혹사시켰고 기상이변으로 비까지 내리지 않자 척박한 땅으로 바뀌었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들은 난민이 된 거지요. (38쪽)


감염병이 생기는 원인으로 몇 가지를 꼽아요. 일단 인구가 너무 많은 데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많아졌어요. (56쪽)


의류 폐기물 재활용은 1%도 안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섬유는 2012년 1186톤이었다가 2016년 284톤으로 늘었어요.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500년 이상 썩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태우면 발암 물질이 나오고요. (67쪽)


구글은 2009년 연중 기온이 낮은 북유럽의 핀란드에 데이터 센터를 열었어요. 열을 식히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려고요. 2016년 전 세계 데이터 센터에서 소비한 전력은 영국이 1년 동안 사용한 전력량보다 많았어요. (69쪽)


사람들은 숲을 왜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숲은 무엇보다 수많은 동물의 집이에요. (72쪽)



  어린이한테 ‘기후위기’나 ‘기후변화’란 못 알아들을 말입니다. ‘기상이변’이나 ‘이상기후’도 못 알아들을 말이지요. 이런 말씨는 모조리 일본 한자말입니다. 서양말을 일본사람이 한자말로 풀어내어 쓰는 말씨이지요. 한때 널리 퍼졌던 ‘게릴라성 폭우’도 일본사람이 지은 말씨였는데, 요즈막 뜬금없이 쓰는 ‘물폭탄’은 누가 지은 말씨일까요? 날씨하고 얽힌 말을 이렇게 생각없이 쓰거나 받아들이는 어른이라면, 이 나라에서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길을 놓고도 슬기롭거나 어질거나 참한 생각을 밝히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말씨부터 쉽잖은 ‘기후위기’를 놓고서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최원형, 철수와영희, 2020)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배울 교과서도 대수롭고, 앞으로 나아갈 중·고등학교 입시도 대수롭겠지만, 이제야말로 온누리 어린이한테는 날씨·철·터전·숲·바다야말로 대수롭습니다.


  2019년이 저물 무렵부터 번진 돌림앓이 하나로 숱한 학교가 오래도록 멈추었어요. 학교는 다시 열었다지만 언제나 끙끙 앓을 뿐 아니라, 언제나 조마조마합니다.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수업을 하도록 이끌려 하고, 대학입시나 공무원시험도 억지로 치르려고 하는데요, 이웃 여러 나라처럼 갑자기 너울이 친다거나 물벼락이나 불벼락이 내리면 그 어떤 학교수업이나 대학입시도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더구나 2020년에 거의 모든 대학교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해요.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이 열두 해를 지나서 들어갈 대학교마저 배움터 구실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이제는 교과서를 덮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웬만한 인문책이나 문학책도 내려놓아야지 싶습니다. 바야흐로 삶을 슬기롭게 읽고, 살림을 사랑스레 가꾸며, 날씨랑 철이랑 숲을 제대로 깨우치는 길로 가야지 싶어요.


  다만 여태까지 웬만한 어른은 그냥그냥 수업을 하는 교사 노릇을 했고, 학원이 엄청나게 돌아가며, 입시지옥은 뚱딴지처럼 어마어마한 장사판인 나라입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살림돈을 엄청나게 주무르는데, 배움살림돈은 막상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이 아니라, 대학입시를 잘 치르도록 북돋우는 길로 흐를 뿐이에요.


  학교는 없어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이 없으면 다 죽습니다. 사회나 정치나 공공기관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이 망가지면 다 죽습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안 펼쳐도 언제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어요. 바람을 읽고 하늘을 읽고 물빛을 읽고 풀벌레노래를 읽을 만하지요.


  어린이부터 스스로 눈을 뜨기를 바라요. 졸업장을 따야 하는 학교가 아닌 길이 숱하게 많은 줄 하나씩 알아차리면서 새길을 가기를 바라요. 어린이 곁에 선 어른은 어린이가 씩씩하고 즐겁게 새길로 나아가도록 하나하나 도우면서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읽고 구름빛을 읽고 꽃빛을 읽으면서 튼튼하고 아름다운 숨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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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노트
김규항 지음 / 알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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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07 - 낡은말로는 갈아엎지 못한다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2.1.



최근 부르주아 경제학은 아예 ‘가치’는 빼고 ‘가격’만 말한다. 가치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26쪽)


자본주의가 해결 불가능한 자기모순들을 방어하는 방법은 ‘사회화’다. 부의 사유화를 통해 만들어진 자본주의는 제 본디 모습을 부정하는 요소들을 도입하여 제 모순을 해결하였다. (60쪽)


현대의 고급 노예들도 마찬가지다. 임금과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이 다를 바 없는 임금 노예라는 사실을 잊는다. (76쪽)


세상이 거시적이기만 하다거나 미시적이기만 하다는 식의 생각은 정상 범주의 사람들에겐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실제 현실의 삶을 살 일이 거의 없는, 언제나 책으로만 둘러싸여 ‘지식 과잉’ 상태로 살아가는 지식인들이다. (193쪽)


기존 정치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혁명이 성공했다’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로소 ‘혁명의 시작’이다. 혁명은 인민이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유지하며, 엘리트와 관료를 견제하고 부리며,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 전 분야의 제도와 관습들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자기해방’ 과정이다. (210쪽)



《혁명노트》(김규항, 알마, 2020)는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두벌을 찍었다고 한다. 김규항이라는 이름을 믿거나 따르거나 반기는 손길이 그만큼 있다는 뜻이라고 본다. 이녁은 새책을 선보이면서 〈중앙일보〉하고 만나보기를 했고, 이 만나보기는 매우 크게 실렸으며, 이녁은 〈중앙일보〉에 글을 꾸준히 싣기로 했다고도 한다.


‘자본주의’하고 ‘부르주아’를 그토록 날선 목소리로 까대는 글을 쓴 김규항이라면 〈중앙일보〉랑 만나보기를 할 뿐 아니라, 이곳에 글을 쓰는 까닭이나 뜻을 먼저 이녁 누리집에 밝힐 노릇 아닐까? ㅈㅈㄷ 가운데 〈중앙일보〉는 이제 부르주아도 자본주의도 아니기 때문인가. 이 신문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뉘우치면서 참길을 걷겠다고 밝혔는가.


《혁명노트》를 읽는 내내 왼길은 언제나 오른길하고 만난다는 대목을 한결 새롭게 느꼈다. 왼길하고 오른길은 서로 다르면서 으레 으르렁거린다고 여기곤 하지만, 곰곰이 보면 왼길하고 오른길은 늘 만난다. 더 왼길일수록 더 오른길이랑 만나고, 더 오른길일수록 더 왼길하고 가깝더라. 《혁명노트》는 ‘부르주아 자본주의 말씨로 혁명을 노트’한 꾸러미이다.


우리는 ‘부르주아 자본주의’ 말씨로도 얼마든지 새판을 짜거나 새물결을 일으키거나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말씨이기에 이 썩어문드러진 나라를 갈아엎는 이야기를 못 펼 까닭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 손에는 낫이나 쟁기나 호미를 쥐고서, 다른 손에는 붓이며 종이를 쥔 일꾼이나 살림꾼이나 사랑꾼이라면, 이제는 달리 생각할 노릇이라고 여긴다.


새로 담근 술은 새 자루에 담아야 한다. 새로 끓이는 국은 새 그릇에 담아야지. 밥을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설거지조차 안 한 지저분한 솥에다가 짓는가? 새로 밥을 지어서 차리는데, 행주로 자리를 안 닦고 지저분한 수저랑 그릇을 올리는가? 새로 빨래하거나 마련한 옷을 입으려는데 몸을 안 씻고서 걸치는가? 온누리를 새롭게 가꾸고 싶은 꿈을 들려주려는 이야기라면, 이제는 우리 삶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여느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를 새삼스레 배우고 가다듬어서 쓸 노릇이라고 본다. 더더구나 김규항은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잡지를 엮는 일꾼인걸. 어린이한테 ‘인문교양’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라. 부르주아 자본주의 말씨 그대로 ‘인문교양’을 어린이한테 집어넣지 말아라. 어린이한테는 오직 ‘놀이살림·이야기소꿉’이면 된다.


돈길(자본주의)이 스스로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면서 스스로 잘못을 풀어낸다면, 돈길이 아닌 삶길을 외치는 이들은 언제쯤 스스로 잘못을 풀거나 허울을 벗고서 새 모습이 되려는가? ‘녹색당·녹색평론·녹색연합’처럼 먹물붙이는 ‘녹색’이란 일본 한자말을 사랑한다. 이들 먹물붙이는 ‘풀빛’이라는 푸른 낱말은 도무지 안 쳐다본다. 이들은 ‘풀’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채식’이나 ‘야채·채소’만 외칠 뿐이고, 요새는 ‘그린’이란 영어에 ‘워라벨’에 어지럽다.


《혁명노트》란 책에 적은 말이야말로 ‘먹물잔치(지식과잉)’이지 않은가. 얼어죽을 ‘미시적·거시적·정상 범주의 사람’ 같은 말은 싸그리 집어치우자. ‘실제 현실의 삶을 살 일’이란 뭔 소리인가? 제발 ‘삶말’을 쓰자.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쓰는 ‘살림말’을 생각하자. ‘혁명 + 노트’란 먹물붙이 스스로 씻지 않고 털지 않고 거듭나지 않는 낡아빠진 일본 말씨 + 번역 말씨이다.


‘인민’이란 말을 사랑하는 김규항. 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국민·시민·백성·민중·대중’ 모두 우스꽝스럽다. 그 어느 말도 사람들 사이에 없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사람들’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면서 갈아엎기(혁명)를 할 수 있을까? 갈아엎고 싶다면 괭이를 들라. 갈고 싶다면 호미를 쥐라. 괭이랑 호미하고 동떨어진 채 자가용 손잡이를 거머쥐기만 하는 그들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똑같다. 자전거를 탈 적에도 더 천천히, 무엇보다 여느 때에 늘 두 다리로 마을을 차근차근 아이들 발걸음에 맞추어 거닐 때라야, 비로소 갈아엎든 갈든 바꾸든 고치든 하겠지.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 우리말을 새롭게 배울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이 일본 한자말하고 번역 말씨에만 물들거나 길든 채, 이 말씨를 곧이곧대로 붙잡는다면, 스스로 어떤 생각이 될까? 모름지기 ‘어른’이라면, 수수한 살림살이에서 어질거나 슬기로운 생각을 길어올려 마음에 새롭게 씨앗을 심는 길을 아이한테 보여주고 물려주는 사람이리라. 《혁명노트》에 담은 줄거리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지만, 이 책도 다른 먹물붙이하고 매한가지로 먹물잔치이다. 이놈이나 저분이나 한통속 먹물판이다. 이이나 저치나 서울에 또아리를 틀고서 서울 떡고물에 매여서 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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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 7
마스무라 히로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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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06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 7》

 마스무라 히로시

 이은숙 옮김

 대원씨아이

 2004.12.15.



- “어째서 나만 괜찮은 거지? 항상 같이 있다 보니 마비된 걸까.” “틀려, 템푸라. 그건 우리가 친구니까.” (27∼28쪽)

- “은보라 바다의 주인, 그 모습을 뵐 때마다 머리가 숙여진다.” “틀려. 틀려. 침이 떨어지겠지. 그런 거보다, 모즈마. 너희들이 훔친 보물을 나한테 넘기고 지금 즉시 바다에 뛰어들어라.” (119쪽)

- “하지만 신기한 건 말이지, 판츠 같은 현자(賢者) 옆에 너 같은 바보가 있다는 거다.” (177쪽)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 7》(마스무라 히로시/이은숙 옮김, 대원씨아이, 2004)을 읽었다. 가볍게 읽고 가붓하게 돌아본다. 아타고올숲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랑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길을 찾아나서고, 스스로 즐거운 하루를 지으려 한다. 모두 다른 넋이기에 좋아하는 길은 다르기 마련이고, 서로 다른 빛이니까 짓고 싶은 하루도 다르다. 누가 보기에 이이는 좀 멋있겠지만, 저이는 좀 엉터리 같다. 그런데 멋이랑 엉터리는 무엇이 다를까? 보는 눈길에 따라 갈릴 뿐이지만, 보는 자리에 따라 다르겠지. 밑바탕을 캐면 멋하고 엉터리는 매한가지이다. 이렇게 해야 아름다울 까닭이 없고, 저렇게 해야 못미덥지 않다. 마음을 오롯이 쓸 줄 안다면 즐겁게 춤춘다. 마음을 감추거나 숨기거나 덮어씌울 적에는 춤도 노래도 웃음도 이야기도 없지. 터무니없건 수수하건 스스로 마음에 꿈이란 씨앗을 심으니 그 터무니없거나 수수해 보이는 꿈을 이루는 오늘길을 걷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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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タゴオルは猫の森 #ますむら·ひろ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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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45. 꿍꿍쟁이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가 ‘일본사람은 이런 데에서 이런 영어를 흔히 쓰는구나?’라든지 ‘일본사람은 이런 한자말을 참 좋아하네?’ 하고 느낍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영어나 한자말을 쓰지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만하지요. 일본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양 물결이 출렁이기 앞서까지는 ‘그냥 일본말’을 썼어요. 일본에서도 벼슬아치나 먹물을 뺀 여느 사람들, 이를테면 흙을 일구고 바다를 마주하던 수수한 마을사람은 언제나 마을말을 썼습니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마을사람은 마을말을 쓰고, 바닷가 사람은 바다말을 씁니다. 숲에 깃든 사람은 숲말을 쓰며, 멧자락에 깃들어 살기에 멧말을 쓰고, 너른 들판을 품에 안으면서 들말을 쓰지요.


  한국이나 일본은 한자가 스며든 지는 얼마 안 됩니다. 한자가 스며들었어도 임금이나 벼슬아치나 먹물 언저리에서나 조금 쓸 뿐, 99.99퍼센트에 이르는 조촐한 삶터에는 한자가 스미지 않았어요. 한자말이라 하면 으레 중국말을 떠올릴 만하지만, 막상 중국에서도 여느 중국사람은 한자를 안 쓰거나 모르지요. 그저 ‘말’을 할 뿐입니다.


  누에실, 솜실


  흔히들 글을 놓고서 삶터나 살림터를 가릅니다만, 글삶터나 글살림터로만 가르기에는 어쩐지 엉성하지 싶어요. 글이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되었거든요. 나라나 겨레를 넘어, 마을이란 터전에서 말이 흐른 지는 까마득히 오래되었어요. 삶터나 살림터를 묶자면 ‘말삶터’나 ‘말살림터’를 묶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한자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정작 한자를 안 쓴 여느 사람이 99.99퍼센트라 한다면, 이러한 살림터 가르기란 부질없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글 아닌 말을 바탕으로 바라보면서 ‘흙살림터’라든지 ‘바다살림터’라든지 ‘마을살림터’라든지 ‘숲살림터’라든지 ‘멧살림터’를 바라보면 우리 눈길을 새롭게 뜰 만하리라 생각해요.


  오월이 무르익고 유월로 접어들면 뽕나무마다 오디가 검붉게 익어요. 뽕잎은 펑퍼짐하면서 도톰하게 풀빛으로 반짝이고요. 오디는 사람을 먹여살린다면, 뽕잎은 누에를 먹여살려요. 흔히 중국에서 서양으로 가던 살림길 하나를 ‘실크로드’나 ‘비단길’이라 이릅니다만, ‘비단’이란 한자말은 ‘누에에서 얻은 실로 짠 천’을 가리켜요. 다시 말해서 ‘실크로드 = 비단길’로 한자 ‘비단’을 써서 풀었다면, 이다음에는 ‘비단길 = 누에길(누에천길)’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매무새로 풀어낼 만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 가운데 ‘면’은 ‘목화’에서 왔다고 하는데, ‘목화’는 한자말이요, ‘솜꽃’을 가리킵니다.  ‘목화솜’이나 ‘목화꽃’은 겹말이에요. ‘솜’하고 ‘솜꽃’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솜천’이란 말을 지어서 쓸 만해요. “면 소재 옷”이 아닌 “솜실로 지은 옷”이나 ‘솜실옷·솜천옷’처럼 말하면 쓰임새나 얼거리고 환하게 드러납니다.


 ‘낫’ 바라보기


  말을 바탕으로, 말살림을 뼈대로, 말로 이야기를 펴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짓는 길을 바라보면서 살림터를 헤아린다면, 우리가 손으로 지어서 누리는 옷살림이나 집살림이나 밥살림을 살피면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호미란 연장은 어떻게 지었을까요? 이 멋진 연장은 어느 곳에 어느 만큼 퍼졌을까요? 가래나 낫이란 연장도 대단하지요. 이 알뜰한 낫이나 가래 같은 연장을 쓰는 테두리는 어떠할까요?


  더 들여다보면, ‘낫’이나 ‘호미’처럼 오래오래 쓰던 수수한 살림살이 말밑부터 헤아릴 적에 비로소 말길을 풀 만해요. 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셈입니다. 먹물꾼이라면 “낫 놓고 기역 글씨 모른다”고 할 테지만, 살림꾼이라면 “낫 쥐고 풀 벨 줄 모른다”라든지 “낫 벼릴 줄 모른다”고 했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는 왜 낫을 바라보면서 ‘ㄱ’이라는 글씨를 떠올려야 할까요? 한글이 놀라운 글씨이기는 합니다만, 한글보다 낫이 엄청나게 오래되었어요. 오래오래 쓰던 살림인 낫이라면, 이 낫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살림을 지으면서 어떤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돌보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살림터를 가꿀 적에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뭘까?


  말을 생각하고 살림을 헤아리며 삶을 들여다볼 적마다 늘 먼저 부딪히거나 만나야 하는 대목이라면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란 몸을 입었어요. 살빛이나 얼굴이나 몸매나 키나 덩치가 모두 다른 사람인데, 다 다르게 생겼어도 이름은 똑같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 + 암’으로 엮는다고 하는데, ‘살’하고 ‘암’이란 무엇일까요? 말밑을 파헤치는 일도 대수롭지만, 또 어떤 말씨를 왜 배우느냐도 대단하겠지만, 어릴 적부터 흔하고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으레 쓰는 말마디에 얽힌 살림을 함께 바라보도록 이끌면 좋겠어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길에서 바탕말을 둘러싼 밑살림을 바라보도록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살’이라는 말씨를 생각하면, ‘살다’라는 낱말에도 나오듯 ‘살’이 얽힙니다. ‘살갗’에도 ‘살’이 있지요. ‘삶·살림’도 매한가지입니다. ‘사랑’이란 낱말도 한동아리로 들어가요.


  ‘암’을 담은 말씨로 ‘암수’도 있습니다만, ‘개암’도 있어요. ‘암·알’은 맞물리는 터라 ‘알·알맹이·알갱이’를 비롯해 ‘낟알·씨알·알속·알짜’로 줄줄이 이어지고, ‘알뜰하다’나 ‘아름답다’도 이 틀에 깃듭니다.


  “살아가는 알(알맹이·씨알)”인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그저 팔다리가 있고 말을 하고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하는 몸뚱이를 넘어서, “살아가는 씨알”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알’은 ‘얼’하고도 맞물리니, “살아가는 얼”이라고 하는 대목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겉몸을 넘어 마음으로 함께 만나고 얼크러지는 사이인 줄 알아차릴 만합니다.


  꿍꿍쟁이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 보면, 참 뜬금없는 영어나 한자말이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비밀주의’를 요즈막에 보았어요. 남한테 숨긴다고 하는 뜻이고 ‘-주의·주의자’를 구태여 붙여서 나타내는구나 싶던데, 문득 궁금해서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니 ‘비밀주의’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어라, 이런 일본 말씨가 왜 한국말사전에 실리지?’ 하고 놀랐어요. 이러고서 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펴는 사전에는 하나같이 일본 한자말이 그득합니다. 말이 아닌 글로 배운 분들이 엮은 사전이기에, 아무래도 우리 배움밭 곳곳에 퍼진 일본 말씨가 알게 모르게 사전에 스며들어요. 더욱이 우리 스스로 말을 새로 짓거나 가꾸자는 생각을 못했지요.


  자꾸 감추려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로 가리키면 어울릴까요? 처음에는 수수하게 ‘감춘다’고 하면 되고, 자꾸자꾸 감추니 ‘-쟁이’를 붙여 ‘감춤쟁이’라 할 만합니다. 숨긴다면? ‘숨긴다’고 하다가 ‘숨김쟁이’라 하면 되어요. 이 말씨하고 비슷하게 ‘꿍꿍이’가 있지요. 남몰래 뭔가 꾀하기에 ‘꿍꿍이’입니다. 아하, 그러면 재미나게 ‘꿍꿍쟁이’ 같은 말을 지을 만해요.


  이러다가 한 마디를 더 생각해 봅니다. 혼자서 앓는 사람이 있어요. 근심걱정을 나누지 못하고 끙끙거리지요. ‘끙끙쟁이’입니다. 혼자 토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꽁꽁쟁이’라 해도 어울리겠지요. 말끝 하나를 바꾸어 보려고 생각을 하노라면 어느새 온갖 말이 함박꽃처럼 피어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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