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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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읽는이 : 글쓴이가 언제나 첫 읽는이인 만큼, 첫 읽는이인 스스로 보기에 가장 마음에 들 때가, 바로 글꾸러미를 출판사에 넘기는 때라고 여긴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다르게 볼 텐데, 나는 ‘욕심 내려놓기’를 할 뜻이 없다. 나는 ‘스스로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오늘을 사랑하는 길을 꿈으로 지어서 글로 담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한다. 욕심을 내려놓느니 버리느니 치우느니 하고 따질 마음이 없다. 나는 욕심이 아닌 꿈만 바라보려고 한다. 나는 스스로 즐겁게 짓고 스스로 기쁘게 펴며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날갯짓을 글 한 줄에 담으려고 생각한다. ‘욕심 내려놓기’를 하면 뭐가 달라질까? 글쎄, 뭔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꿈짓기’랑 ‘사랑짓기’로 하루를 살아내면 글이란 어느새 태어나지 싶다. ‘삶짓기’하고 ‘살림짓기’로 하루를 누리면 글이란 저절로 샘솟지 싶다. 누구나 스스로 아름꿈을 꾸면서 나아가면 누구나 아름글을 일굴 만하다고 여긴다. 2005.6.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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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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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 우리가 스스로 눈을 밝히고, 고요하면서 정갈한, 이러면서 따스하고 넉넉한, 이러면서 슬기롭고 참다운 사랑이란 마음이 된다면, 비바람을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숲이 되겠지. 비나 바람은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비가 오기에 숲이 푸르게 자란다. 바람이 불기에 푸른별이 푸르게 빛난다. 비바람이란 우리 몸마음을 먹여살리거나 가꾸거나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아름드리 숨결이지 싶다. 1994.7.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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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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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쓰기 : 말썽거리가 된 소설꾼이 낸 소설책을 마을책집에 찾아간 길에 처음으로 문득 펼친다. 말썽을 피운 이 책은 출판사에서 드디어 모두 거둬들이기로 했다는데, 앞으로는 참 드문 책이 되겠구나. 설마 ‘말썽책(문제도서)’이 ‘드문책(절판 희귀본)’으로 되는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부끄럼짓으로 문학상을 받고 장사를 하다가 책집에서 사라진 책으로 두고두고 이름이 남기를 빈다. 그나저나 이이 글을 훑으니 어쩐지 겉멋(폼) 같더라. 잔뜩 허울(폼)을 잡고서 손재주를 부린 껍데기이지 싶더군. 말썽이 되기 앞서부터 겉치레로 가득한 꾸미기인 셈이었지 싶다. 마을책집 책시렁을 둘러보다가 ‘말썽이 안 된 시인’이 선보인 시집을 여러 자락 읽는다. 첫 꼭지부터 끝 꼭지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지 종잡지 못한다. 글씨는 틀림없이 한글이지만, 이 한글을 엮어서 무슨 줄거리를 짜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논문이나 평론을 읽을 적에, 페미니즘 담론이나 역사비평을 읽을 적에, 적잖은 수필이며 동화를 읽을 적에, 더구나 요새는 그림책을 읽을 적마저 글쓴이가 선보이는 ‘한글 엮기’가 글인지 글이 아닌지 모르겠다. 겉멋이 아닌 글은 어디에 있을까? 치레질이나 꾸미기 아닌 글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쓴 동시마저 글쓰기학원에서 길든 티가 물씬 나는 겉질이 넘친다. 2020.7.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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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20.


《새를 사랑한 새장 이야기》

 로둘라 파파 글·셀리아 쇼프레 그림/김혜진 옮김, 한솔수북, 2016.2.25.



아침에 무말랭이를 불리고 보니, 어제 열무김치를 담느라 마늘을 다 썼구나. 오늘 무말랭이를 곁밥으로 마련하려고 생각했다면 마늘을 넉넉히 건사할 노릇인데, 깜빡 잊었네. 비가 신나게 오던 어제였으나, 오늘은 비가 그치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빛이다. 그래, 좋아. 자전거를 달리자. 싱그러운 바람을 마신다. 상큼한 바람을 쐰다. 산뜻한 바람을 즐긴다. 이 바람결을 새 곁밥에 듬뿍 담아 보자. 《새를 사랑한 새장 이야기》는 어느 만큼 읽혔을까. 그리 안 읽힌 그림책이지 싶은데, 이러한 이야기야말로 어린이하고 어른이 무릎을 맞대고서 차근차근 읽고 꿈을 그리면 좋겠다고 여긴다. 숱한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랑 대학교는 어떤 곳일까. 이런 학교를 마치고 들어가는 일터는 어떤 데일까.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새우리에 가두는 몸짓이지 않나. 왜 아이들은 뛰놀 엄두를 못 내면서 학교 다음에는 학원에 매여야 하는가. 큰고장에서는 초등학생마저 밤 열 시 넘을 때까지 학원 뺑뺑이를 시킨다는데, 뛰놀지 못한 어린 나날을 보내고서 푸름이가 되고, 어른이 되면, ‘놀지 못한 채 우리에 갇힌 넋’이 얼마나 슬기롭거나 씩씩하거나 튼튼하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사랑을 꽃피우려나. 어른부터 스스로 우리에 가둔 삶일는지 모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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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19.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 2》

 무라타 야유 글·그림/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0.2.6.



열무김치를 담는다. 나는 김치를 안 먹지만 곁님이 먹는다. 어느덧 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머니랑 나란히 김치를 먹는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쑥쑥 자라면서 어머니랑 누나랑 김치를 먹는다. 세 사람은 몸에 김치가 받는구나. 나는 어릴 적부터 김치가 몸에 안 받았지. 나는 어릴 적부터 몸에 안 받아도 “한국사람이 어떻게 김치를 못 먹어?” 하는 꾸지람에 꾸중에 호통에 나무람에 손가락질에 매질에 …… 들볶는 나날을 보냈지.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 2》을 읽는다. 첫걸음을 읽고서 두걸음도 읽어야겠다고 여겼고, 두걸음까지 보고 나니 이 만화가 썩 뜻있네 하고 느낀다. 석걸음은 어떨까. 넉걸음도 나올까. 다시 태어나는 삶을, 다시 태어난 곳에서는 고단한 길을, 잊거나 잃지 않은 옛마음을, 오늘 새롭게 지피면서 가꾸고 싶은 사랑을, 여러모로 차근차근 엮어서 보여주는 만화이지 싶다. 문득 거꾸로 생각해 본다. 가시내인 곁님이 아닌, 사내인 곁님이 차에 받혀 죽은 지 열 해쯤 지나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에 이녁을 알아보고서 반가이 맞이하는 보금자리라면 어떠한 품이 되려나 하고. 우리는 지난날을 얼마나 떠올릴까. 우리는 오늘을 얼마나 아로새길까.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길은 바로 여기에서 펴는 수수한 살림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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