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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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문고 : 나는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내는 동안에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책을 읽을 틈이 없기도 했으나, 강원 양구 ‘완전무장지대’에 있던 작은 중대 작은 내무반에는 텔레비전이 하나 있을 뿐, 종이뭉치란 있지 않았다. 대대쯤 가면 어디에선가 진중문고란 조그만 책꾸러미를 구경할 만했지만, 이 진중문고를 중대 소총수는 건드릴 수 없었지. 이런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남으려고 하면서 언제나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벗어나는 날부터 책을 반드시 만나고야 말겠다”고, “군대에서 살아남아 바깥으로 나가는 날부터 책을 두 손에서 안 떨어뜨리겠다”고 굳세게 다짐에 다짐에 다짐에, 하늘을 보고 들꽃을 보고 골짜기를 보면서 이렇게 버티며 살아남았다. 2019.7.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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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6.20. 무릎맞춤


“멈췄기에 망정이지, 그냥 달렸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말끝에 붙는 ‘망정’이란 한 마디가 꽤 깊어요. 숨을 돌린다는,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마음을 토닥인다는, 바야흐로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결이 흐릅니다. 사람들은 만날 적에 서서 만나기도 하고 앉아서 만나기도 합니다. 좀 떨어지기도 하지만 가까이 있기도 해요. 이런 여러 자리 가운데 ‘무릎맞춤’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릎을 대고 마주하니까 서로 똑바로 쳐다볼 테지요. 두 쪽에서 하는 말을 낱낱이 들으려고, 또는 두 쪽이 어떤 마음인가를 환히 밝히려고, 무릎을 맞추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두 쪽은 어떤 눈으로 볼까요. 우리는 어떤 눈길로 마주할까요. 우리가 선 자리에 따라 생각도 셈도 마음도 다를 텐데, 무엇을 보면서 어떤 길을 살피려 하는가요. 꼭 지켜야 할 길이 있다면, 단단히 버텨야겠다는 자리가 있다면, 붙잡고서 놓치기 싫다는 때가 있다면, 어떠한 매무새로 마주하는가요. 밀어붙이거나 얽매이거나 매달리기도 하겠지만, 그대로 나아가기도 해요. 고이 이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잡으려고도 할 테지요. 차분차분 다스립니다. ㅅㄴㄹ


망정 ← 괜찮다, 다행, 천만다행, 안도, 안도의, 안심, 불행 중 다행

무릎맞춤 ← 대질, 대면(對面), 삼자대면(三者對面), 중매(仲媒), 소개(紹介), 연계

눈, 눈길, 생각, 자리, 틀, 틀거리, 얼개, 얼거리, 보다, 바라보다, 생각, 생각하다, 마음, 따지다, 헤아리다, 살피다 ← 견지(見地)

지키다, 버티다, 내버티다, 따르다, 붙잡다, 잡다, 펴다, 나아가다, 가다, 밀다, 밀어붙이다, 매달리다, 얽매이다, 굳다, 같다, 똑같다, 그대로, 잇다, 이어가다 ← 견지(堅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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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6.19. 그들나라


가꾸려는 손끝에서 곱게 태어납니다. 가다듬는 손길에서 새롭게 자랍니다. 갈고닦는 손빛에서 눈부시게 거듭나고, 어루만지는 손에서 즐겁게 샘솟습니다. 나무를 깎아 세간을 얻듯 차근차근 다듬습니다. 살림을 다루어 보금자리를 건사하듯 사랑을 되새기며 반가이 만납니다. 말 한 마디를 여미고 글 한 줄을 엮습니다. 이야기 한 자락을 추스르고 수다 한 판을 곱씹습니다. 혼자 움켜쥔다면 재미없어요. 몇몇만 휘어잡으면 따분합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만 말해야 하지 않아요. 조용조용한 사람도 한 마디를 할 노릇이에요. 잘하는 사람만 도차지한다면 지겨워요. 못하는 사람도 자꾸 해보면서 솜씨를 키우면 좋겠어요. 이곳은 그들나라가 아닙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입니다. 여기는 그들잔치가 아니에요. 여기는 함께 지어서 누리는 잔치판입니다. 끼리끼리 주무르는 짓은 그들한테도 이바지하지 못해요. 얼크러져서 다듬고, 어우러지면서 손보고, 어깨동무로 만지작거리기에 비로소 모두한테 이바지합니다. 혼차지 아닌 함나눔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깔고앉아서 윽박지르는 몇몇이 아닌,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노래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라요. ㅅㄴㄹ


가꾸다, 가다듬다, 갈고닦다, 갈닦다, 곱새기다 2, 곱씹다, 깎다, 다듬다, 다루다, 다스리다, 되새기다, 되씹다, 만지다, 만지작거리다, 만지작대다, 매만지다, 부리다 1, 새기다, 새김, 새김질, 손보다, 손질, 손질하다, 쓰다 3, 어루만지다, 여미다, 엮다, 짓다, 지어내다, 짓기, 짓는일, 추스르다 ← 조탁(彫琢)

쓸다·휩쓸다·움켜잡다·움켜쥐다·휘어잡다·잡다·거머잡다·거머쥐다·검잡다·검쥐다·주무르다·깔고앉다·해먹다·도차지·차지하다·혼자하다·혼차지·홀로차지·그들잔치·그들판·그들나라 ← 독점, 독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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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12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이영미 옮김

 나무생각

 2008.12.17.



  딱딱하면 잘 안 열립니다. 딱딱하다는 말은 열 생각이 없다는 뜻이곤 합니다. 딱딱하니, 부딪힐 적마다 아픕니다. 딱딱하게 군다면 서로 만나거나 사귀거나 어울릴 마음이 없다는 뜻이곤 합니다. 흔히들 ‘산타 할아버지’라고 하지만, 어쩐지 이 이름은 틀에 박힌 소리라고 느꼈어요. ‘산타 할머니’도 있을 테고 ‘산타 아저씨’에 ‘산타 아줌마’도 있을 테니까요. ‘산타 아가씨’나 ‘산타 젊은이’나 ‘산타 어린이’도 있겠지요.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는 오직 한 아이를 바라보려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마음을 차분히 짚습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는 오직 한 아이를 못 바라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대로 바라볼 뿐입니다. 할머니는 할머니 삶결대로 바라볼 뿐이요, 아저씨나 아줌마는 아저씨나 아줌마대로 바라봐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바라볼 테고,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또 나무는 나무대로, 벌나비는 벌나비대로 바라보겠지요. ‘산타 잠자리’라면 우리한테 무엇을 건넬까요? ‘산타 참새’나 ‘산타 들꽃’이라면 우리한테 무엇을 주고 싶을까요?  우리가 스스로 산타라면 숲이랑 바다랑 푸른별에 무엇을 주고 싶은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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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여행
강진영 글.그림 / 상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30


《우표여행》

 강진영

 상

 2010.7.10.



  우체국을 다닌 지 곧 마흔 해가 됩니다. 여덟 살 무렵부터 우체국을 다녔지 싶으니, 마흔여덟이란 나이에 이르면 마흔 해 동안 우체국을 다닌 셈입니다. 우체국을 새로 갈 적마다 어릴 때부터 걸음하던 일이 으레 떠오릅니다. 나날이 이 나라 우체국이 엉망이 되거든요. 딱종이가 아닌 우표를 붙여서 글월을 띄우던 지난날에는 우체국 일꾼이 바지런하고 똑바르면서 꼼꼼하다고 느꼈으나, 기계로 모두 다루는 오늘날에는 어쩐지 우체국 일꾼이 마치 기계스럽습니다. 일꾼이 자주 바뀌면서 일솜씨가 떨어질 뿐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를 도무지 모르는구나 싶어요. 《우표여행》은 어쩌면 우표라고 하는 조그마한 종이에 담은 마음을 들려주는 마지막 손짓일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책이 나온 2010년만 해도 적잖은 우체국 일꾼은 ‘딱종이 아닌 우표’를 붙이려는 손님을 성가셔 했습니다. 이제 시골 우체국에는 우표가 아예 없기도 하고, 엽서를 팔 줄 모르는 일꾼마저 많습니다. 우체국으로 가서 손글씨 글월을 띄우기도 만만하지 않고, 손글씨 글월을 귀찮게 여겨요. 마음을 담아서 걸음하는 사람한테서 마음을 안 느낀다면, 그들은 모두 로봇일 테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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