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퍼내도 퍼내도 : 퍼내도 퍼내도 샘솟는 사랑이 있기에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다. 즐겁게 나누는 눈빛이 아름답기에 사랑이다. 신나게 노래하며 춤추고 뛰놀 줄 아는 마음이기에 사랑이다. 미움이나 시샘이나 짜증이나 따돌림이 아닌, 스스럼없이 다가서고 상냥하게 속삭이기에 사랑이다. 넉넉하게 함께하기에 사랑이요, 먼발치에서 찾지 않고 바로 우리 마음에서 찾아내어 밝히기에 사랑이다. 왜 그 그림책이 아름다운가? 바로 이러한 사랑노래를 넌지시 들려주되,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서 꿈날개를 북돋아 주니 아름답지. 2020.1.29.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동네책방 에디션 ↔ 책집지기 책시렁 :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마을책집에 가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여태 하나도 사지 않은 책이라면, ‘동네책방 에디션’이란 띠를 두른 책이요, 김영하라는 분이 쓴 책이고, 문학동네랑 민음사랑 창비랑 한길사에서 내놓은 책이다. 문학동네 같은 곳에서 시인이나 소설가를 대표란 이름으로 앉혀서 꾸리는 임프린트에서 내놓은 책도 마을책집에서 안 만나고 싶다. 이렇게 따지면 무슨 책을 사고팔 수 있느냐고 묻는 분이 많지만, 영업부 일꾼하고 돈하고 이름으로 거머쥐는 그분들한테서 나온 책이 아니고도 아름다운 책은 엄청나게 많아서, 그 아름다운 책을 날마다 스무 자락씩 만나도, 미처 못 읽는 책이 더 많으리라 느낀다. 돈·이름·힘으로 윽박지르는 큰 출판사에서 꾸민 ‘장삿속 동네책방 에디션’이 아니라, 마을 한켠에서 책숲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땀흘리는 책집지기가 스스로 살펴서 여면 ‘책집지기 책시렁’을 만나려고 마을책집을 다닌다. 2020.8.18.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창천의 권 1
Buronson 글, 하라 테츠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하늘처럼 파랗게 두 손 가득



《창천의 권 1》

 부론손 글

 하라 테츠오 그림

 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5.25.



  중학교 2학년 무렵이라고 떠오르는데, ‘기술’이란 갈래에서 하는 ‘제도’를 배워야 해서 값비싼 ‘제도 참고서’를 사야 했고,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아 학교 앞 문방구로 걸어가다가 그만 주먹떼를 마주쳤습니다. 이들은 대여섯이었나 예닐곱이었는데, 저하고 동무를 두들겨패고서 돈을 빼앗습니다.


  돈을 빼앗긴 채 집으로 울면서 돌아오니 우리 형은 도리어 저를 나무랍니다. 얼간이 같은 놈들한테 돈을 빼앗기고도 모자라, 맞고 울면서 돌아오느냐고, 넌 안 되겠으니 바로 무술학원에 다녀야겠다면서 제 손목을 움켜쥐고 온갖 무술학원을 찾아갔어요.



“염왕을 잡아? 푸하하! 염왕이 폐하의 호위병이 되면 우린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고 말 텐데! 당연히 찾는 즉시 없애버릴 거야!” (40쪽)



  태권도, 유도, 합기도 …… 이런 저런 무술학원을 찾아가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지켜본 우리 형은 이도 저도 내키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데에 저녁나절에 닿는데, 우리 형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대뜸 제 이름을 적어 넣고 이튿날부터 다니라고 얘기합니다.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그곳은 가장 어린 배움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그나마 한 사람입니다. 이이하고 저를 뺀 모든 사람은 스무 살이 넘어요. 어쩜 이렇게 벅찬 곳에 집어넣는가 싶었으나, 무술학원 막내 가운데 그야말로 꼬꼬마라는 대목 때문에 오히려 이를 악물기로 했어요.



“왜 말하지 않았어요, 리! 나에 대해 다 말하지 그랬어요!” “우린 친구를 팔지 않아! 그게 청방이야!” (51쪽)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필요 없어.” “뭐라구?” “친구잖아?” (73쪽)



  우리 주먹은 왜 있을까요? 우리는 주먹으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주먹이란 다른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라고 있을까요? 푸른별 사람들이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하나같이 싸움자취입니다. 어느 나라를 돌아보아도 이른바 ‘역사’란 이름으로 남기는 얘기는 한결같이 싸움박질입니다.


  《창천의 권 1》(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를 읽습니다. 이 만화에 앞서 《북두의 권》이 있어요. 두 만화는 어깨동무를 하는 줄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아니 사내들이 참다운 빛을 잃고서 오직 ‘돈·가시내·마약’에 사로잡혀 노닥질을 하고 쌈박질로 하루를 보내는 어지럼판을 오직 맨주먹으로 때려부수면서 “넌 이미 죽어 있다”라는 한 마디를 날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오호! 북두의 별이 소원을 이루어준 건가? 짐을 위해 잘 와주었다!” (철썩!) “으아악! 아브브브브! 아파! 무슨 짓이냐! 부모한테도 맞은 적이 없는 짐을! 짐은, 짐은, 짐은, 황제다!” “거 참 되게 시끄럽군, 이 얼뜨기!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래? 인간 말종, 똥자루야!” (100∼101쪽)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눈은 왜 있을까요? 우리 이는 왜 있을까요? 우리 귀는 왜 있을까요? 우리 손발은 왜 있을까요? 우리 몸은 왜 있을까요? 스스로 묻고 생각합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도 다시 묻고 자꾸 묻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디에선가 소리를 들려주는 빛덩이가 있어요. “얘야, 사람한테 주먹이란, 작은 씨앗을 든든히 감싸서 지켜 주려고 있단다. 그리고, 이 움켜쥐면서 생기는 주먹이란 눈물을 훔치라고 있고, 빗물을 떨구라고 있단다. 이 주먹은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들을 두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해서 즐겁게 노는 구실이란다.”


  그래요. 그렇지요. 싸우라는 주먹이 아닌, 씨앗을 감싸면서 바깥 그 어느 얄궂거나 자질구레하거나 지저분한 것도 스미지 못하도록 돌보는 주먹일 테지요. 누가 주먹을 쥐어 때리려고 달려들면 손을 활짝 펴서 가볍게 톡톡 스치며 흘려보내라는 손일 테지요. 맞싸우는 주먹이 아닌, 안쓰럽거나 가엾거나 바보스러운 이웃을 보면 스스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눈물을 씻으라는 주먹일 테고요.



“잠꼬대 하지 마! 개가 사람을 물면 그 책임은 주인한테 있어!” (106쪽)


“힘겨루기는 끝났어. 죽을 필요는 없어.”“경호원 생활에 열중하다가 내 권법은 녹슬어 버렸어. 아니, 나 자체가.” (159∼160쪽)



  무술학원이란 곳을 다니면서 날마다 담금질을 했습니다. 무술학원 사범은 날마다 저를 숱하게 집어던졌습니다. 집어던지면서 늘 말하지요. “바닥에 떨어질 적에 바로바로 낙법을 해서 몸이 안 다치게 해라.” 어리다고 봐주는 눈치가 하나도 없는 무술학원에서 이를 깨물고 살아남으려고 집하고 학교하고 무술학원 사이를 날마다 뜀박질로 오갔어요. 버스를 아예 안 탔고, 걷기조차 안 했어요. 등짐이 가볍건 무겁건 늘 달렸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저 눈비를 맞으면서 달립니다. 건널목에 걸리면 제자리뛰기를 했고, 건널목이 푸른불로 바뀌면 이내 다시 달렸지요.


  무술학원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땀을 빼면 저는 두 시간 동안 땀을 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팔굽혀펴기를 백 판 하면 저는 이백 판을 했습니다. 무엇이든 곱빼기로 했고, 온힘을 다해 한 해 동안 무술학원을 버티어 냈어요.



“죽을 자리는, 어디든 상관 없어.” (174쪽)


“보답을 하고 싶네.” “됐습니다.” “그럼 이것밖에 없지만 이거라도 가지고 가게.” “라면 값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자넨, 내 딸의 생명을 구해 줬어.” “그럼 담배 한 개비, 그거면 됩니다.” “왜 구해 준 건가?” “후우, 맛있군. 당신은 여기서 죽기에는 아깝다, 그렇게 보였을 뿐.” (190∼191쪽)



  무술학원을 다닌 뒤로는 얻어맞은 일이 없을까요? 여느 삶터에서는 얻어맞은 일은 없습니다만, 군대에서는 노상 얻어맞습니다. 군대는 병장·상병·일병·이병으로 가른 자리뿐 아니라, 행정보급관·하사관하고 중대장이란 자리로 윽박지르면서 마구마구 두들겨패더군요.


  무술학원을 다니고서도 ‘주먹으로 남을 때리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다지만, 무술학원을 다니면서 몸을 다스린 바탕이 생겼기에, 군대에서 그렇게 흠씬 맞는 나날이었어도 견딜 만하더군요. 그렇게 때려대는 사람을 보면서 ‘그대야말로 참 불쌍하네.’ 하고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주먹꾼이 군대를 마치는 마지막날 밤에 그 주먹꾼한테 조용히 찾아가서 “야, 오늘 저녁까지는 네가 고참인지 지랄인지 모르겠으나, 이튿날부터 넌 개×끼야. 내가 이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가면, 넌 내가 없는 데로만 다녀. 길에서 나를 봤다가는 너 무슨 꼴이 날는지 모른다.” 하고 속삭였어요.


  《창천의 권》에 잘 나오는데요, 주먹질을 일삼는 이들은 저희보다 힘센 주먹이 눈앞에 있으면 깨갱하면서 꼬리를 내립니다. 아무 데서나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은 얌전하거나 반듯하거나 착하거나 부드러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그래서 그런 주먹꾼이 군대에서 저지른 주먹질을 뒤로 하고 사회로 돌아갈 적마다 흠씬 말벼락을 베풀어 주곤 했습니다. 그들하고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주먹으로 건드리는 짓은 안 했고요.



“라몬, 많이 컸구나! 이제 안심이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계승자다!” “무슨 소리야. 바보야! 형 맘대로 뭐야?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거 잘 알잖아!” “라몬! 만일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창공을 생각해라! 창공에 기원해라!” (206∼207쪽)


“아무리 구름이 끼어도 구름 위는 항상 창공이다! 너의 소망은 창공에 있다!” (208쪽)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에 새삼스레 잠깁니다. 1995∼1997년에 군대에 있는 동안 저를 그렇게 때려댄 그 바보스러운 사내한테 말벼락을 퍼붓는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에서 달려졌을는지 알 길이 없어요. 어쩌면 그들은 군대에서 무슨 짓을 일삼았는지 감쪽같이 숨기거나 꽁꽁 묻어두면서 오늘을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뒤늦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때 그들한테 말벼락이 아닌, 눈물어린 말을 들려주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이를테면 “밤이라서 별빛이 가득한 까만하늘이야. 이 까만 밤하늘을, 또 낮에는 새파란 하늘을, 어디에 가서라도 생각하기를 바라. 그대가 주먹을 휘두른들 저 별빛이나 바람을 부술 수 있니? 건드리지도 못할걸. 부디 이다음에 가는 곳에서는 주먹에서 힘을 풀고서 별빛을 두 손에 담고 바람빛을 두 손으로 쓰다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 이제부터라도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어. 네가 앞으로 착하게 살아간다면, 뭐 그때엔 길에서 그대를 스칠 일이 있으면 빙긋 웃어 줄게.” 같은 말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래곤볼 슈퍼 12 - 메르스의 정체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갈고닦나, 다스리나, 싸우는가



《드래곤볼 슈퍼 12》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7.20.



  싸울아비만 낳고 키워서 다른 별을 마구잡이로 깨부수는 별이 있다고 해요. 그 별에서는 오직 싸움만 헤아릴 뿐이기에,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마주하거나 어우러지는 일이 없다지요.


  싸움별에서 태어났다가 푸른별을 깨뜨리는 싸울아비 노릇을 하도록 다른 별에서 찾아온 아기가 있습니다. 이 아기는 싸울아비로 태어났지만, 아기일 적에 푸른별로 온 터라, 홀로 있는 아기를 안쓰러이 여긴 어느 할아버지가 사랑으로 곱게 돌보면서 ‘몸을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는 길’을 알려줍니다. 싸움이 아닌 사랑을 가르치는 푸른별 할아버지가 있기에, 싸움별 아기는 푸른별 아이로 거듭납니다. 할어비는 싸움이 아닌 ‘몸 갈고닦기하고 다스리기’를 아이한테 물려주고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봐, 앞으로 며칠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지?” “자네는 오공 군보다 더 스피릿이 불안정해. 우선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 참고로 오공 군은 거기서 150일 정도 있었어.” “배, 150일이라고?” (51쪽)



  그저 싸움박질만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마땅히 싸움박질을 배우겠지요. 싸움박질로 위아래를 가를 테고, 싸움박질로 빼앗거나 괴롭히는 짓이 흔할 테고요.


  오직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무엇을 배울까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으로 나누거나 보듬는 손길이 언제나 눈부실 테지요.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갈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등돌릴 적에 스스로 바보스럽거나 따분할까요?



“저 녀석들이 수련 중이라고 말했지?” “네, 그때 도망친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놀랍군요.” “그렇다는 건, 조금만 기다리면 더 거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86∼87쪽)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도록 나쁜만화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드래곤볼》이 있어요. 모든 줄거리가 싸움이요 죽임짓이니 섣불리 좋은만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좋다 나쁘다’라는 틀을 내려놓고서 생각해 보기로 해요. 만화책이 싸움판을 다루어서 안 좋다면, 이 나라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은 어떠한지요? 이 나라에서 싸움판 아닌 데가 있는가요? 이 나라 아이들은 배움길이 아닌 입시지옥을 걸어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취업지옥이에요. 취업지옥을 겨우 빠져나왔더라도 ‘우리 집을 마련하는 불구덩이’가 잇따릅니다. 이 불구덩이까지 빠져나왔어도 ‘아이를 돌보는 수렁’이 잇달지요. ‘사회를 이룬 모든 길’은 고스란히 싸움판입니다. 우리 터전 어디에서도 싸움 아닌 길을 찾아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입시지옥으로 나고 자라면서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 아이한테 입시지옥 아닌 놀이터나 참배움터를 베풀 수 있을까요? 오직 입시지옥만 치르면서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이 아이들한테 학원이 아닌 놀이판을 같이 누릴 수 있나요? 《드래곤볼 슈퍼 12》(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0)은 《드래곤볼》로 잇던 기나긴 이야기를 마치고 또 마치고서 새로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드래곤볼 Z》도 있었는데요, 이 만화에서 꽃님으로 나오는 ‘손오공’은 푸른별 싸움판을 거쳤고, 푸른별을 깨뜨리려는 다른 별하고 맞서는 마당도 거쳤어요. 이다음에는 푸른별이 깃든 별누리 님(우주 하느님)을 만나는 마당도 거쳤고, 저승나라도 거쳤으며, ‘별누리 님’이 섬기거나 따르는 더 깊고 너른 ‘온별누리(은하계)’까지 거쳤어요. 미르구슬(드래곤볼)하고 얽혀 일곱 미르님이 맞물리는 싸움판마저 거친 손오공인데요, 이 끝없어 보이는 누리싸움판에서 새삼스레 ‘한별누리(모든 은하를 아우르는 한복판)’를 맞닥뜨립니다.


  이 한별누리에서까지 일어나는 새삼스러운 싸움판을 치러야 하는데, 언제나 더 높이 거듭나야 하는 길이에요. 싸움솜씨를 기르는 겉모습을 넘어, 푸른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만큼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하계인들의 훈련을 봐주는 일이라면 저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지구의 음식이 목적이잖습니까?” “호호호, 전부 꿰뚫어보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아슬아슬하긴 해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101쪽)



  높고낮음을 가르기에 싸움판이 생깁니다. 높낮이가 없이 즐겁게 너하고 나를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어깨동무가 나타나지요. 너희랑 우리를 사랑으로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두레를 지펴요. 자, 생각해 봐요. 여러 나라가 있다면, 여러 나라는 싸울아비에 총칼을 앞세워 서로 으르렁거릴 노릇인가요, 아니면 서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아끼는 즐거운 눈빛으로 어우러지는 잔치가 될 노릇인가요?


  으뜸지기 한 사람만 가리는 길이란 따분합니다. 누구나 살림지기가 될 적에 신납니다. 꼭두지기 한 사람이 우쭐거리는 곳이란 무시무시합니다. 누구나 사랑지기가 되는 데라면 보금자리를 일굴 만해요.



“하하하, 우쭐대지 말게. 이건 꽤 고등 술법이거든. 자네에겐 아직 일러.” “칫, 그럼 어떤 걸 할 수 있지?” “우선 기초 중의 기초인 순간이동부터 가르쳐 주겠네.” “기초……인가? 순간이동이?” (106쪽)



  푸른별사람은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합니다. 잊은 길이 수두룩하거든요. 마음으로 움직이고,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날고, 마음으로 넉넉할 숱한 길을 죄다 잊은 푸른별사람이라고 합니다.


  푸른별에서 싸움이 안 그치는 까닭은 바로 이 하나 때문이지 싶어요. 스스로 하늘을 날고, 스스로 몸을 고치고, 스스로 마음눈을 뜰 줄 안다면, 배고프거나 가난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나는 길을 잊고,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잃으려 하니, 푸른별사람은 자꾸자꾸 다른 사람 몫을 노리거나 군침을 흘립니다. 스스로 짓기보다는 또다시 이웃사람 몫을 훔치거나 가로채려 하지요.



“어떻게 된 거지?” “방금 그것이 자네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이라네. 수련하기 전, 자네는 스피릿과 육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자신의 힘을 밖으로 잘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어.” (113쪽)



  《드래곤볼 슈퍼》에서 꽃님 손오공이 나온다고 했는데, 손오공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꽃님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빛나면서, 저마다 다르게 길을 가는 꽃님이에요. 한동안 ‘저 혼자 잘난 줄 여긴’ 엉성쟁이였다면, 누구보다 어수룩하지만 착하고 참된 마음을 빛내는 손오공하고 얼크러지면서 ‘스스로 착하고 참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손오공은 딱히 일깨우거나 가르치는 꽃님이 아닙니다. 손오공은 늘 스스로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려는 숨결입니다. 더 높거나 잘나려고 갈고닦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다음으로, 이 너머로 가는 길이 있을 텐데?’ 하고 느끼기에, 이렇게 느끼는 대로 한 걸음 두 걸음 꾸준히 나아가려 하는 손오공입니다.


  살아가는 길은 끝이 아니라 걸음인 줄 아는 손오공이에요. 오늘 하루는 아침저녁으로 누구나 똑같이 흐르는데, 이 똑같은 하루를 스스로 다르게 가꾸어서 어제랑 다르게 북돋우려고 하는 손오공입니다.



“피콜로, 우린 필요없었던 거냐?” “아니, 이제부턴 너희가 아니면 싸우지 못한다. 기가 존재하지 않는 인조인간이 아니면 말이야.” (186쪽)



  마음을 품기에 합니다. 마음을 안 품으면 안 하거나 못 합니다. 마음이 있기에 움직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어디로든 가지 않거나 못 해요. 아기는 스스로 마음을 품기에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뛰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모든 숨빛이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날갯짓이나 헤엄질 모두 스스로 마음이 있을 적에 해내는 줄 알아차릴 만해요.


  마음으로 합니다. 아니, 마음이기에 갈고닦거나 다스립니다. 마음이 아니기에 싸웁니다. 마음이 아니라면 다투거나 윽박지르거나 자랑합니다. 마음이기에 사랑스레 피어나는 길을 가요. 마음이 아니기에 그저 뜻모른 채 싸우다가 스스로 쓰러지고 이웃이며 동무도 나란히 죽음길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개를 기다리며 베틀북 그림책 14
루이스 엘럿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44


《날개를 기다리며》

 루이스 엘럿

 이상희 옮김

 베틀북

 2001.6.30.



  나비가 팔랑 눈앞을 스치며 날아갑니다. 겨울잠을 자고서 새봄에 깨어나는 나비도 있습니다만, 웬만한 나비는 그해에 알로 깨어나서 신나게 풀잎을 갉고는 어느새 고치에 깃들어 깊이 잠들다가 애벌레란 몸을 녹여내어 물로 바꾸고는 날개를 몸에 붙인 새빛으로 깨어나요. 올해에 보는 나비는 올해에 깨어난 나비이곤 한데, 알에서 알로 꾸준히 잇고 이은 숨결일 테니, 제가 서른 해 앞서 스친 그 나비가 낳고 낳은 날갯빛이 이어왔을는지 몰라요. 《날개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날개를 몸에 붙이도록 거듭나는 길을 돌아봅니다. ‘호랑’나비 아닌 ‘범’나비를 바라보면서, 네발나비를 스치면서, 부전나비하고 풀밭에 앉아서 햇볕을 쪼이며, 날개로 바람을 가르거나 타면서 하늘빛을 머금는 하루란 어떤 놀이가 되려나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문득 마음을 내려놓고서 나비를 바라보노라면, 제 숨빛은 어느새 나비한테 스미면서 나비처럼 하늘마실을 누립니다. 이러다가 나비는 저한테 녹아들면서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헤아리지요. 몸을 바람에 싣는 날개요, 마음이 피어나도록 북돋우는 날개입니다. 아이들 꿈날개를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