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


《개구쟁이 아치 11 동생이 있어서 좋아!》

 기요노 사치코 글·그림/고향옥 옮김, 비룡소, 2010.9.27.



비바람이 상큼하다. 큰비가 시원하다. 큰바람이 놀랍다. 이 비바람을 어떻게 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지난 큰바람에는 마당에서 맨몸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면서 작은아이하고 놀았다. 오늘 큰바람은 홀로 자전거를 달리면서 맞이하는데, 빗줄기가 살갗이며 얼굴에 닿을 적마다 따끔따끔하다. 여느 비라면 따끔따끔하지는 않으나, 큰바람이 칠 적에는 빗줄기가 따끔거린다. 재미나지. 바람을 탄 빗방울은 확 다르구나. 《개구쟁이 아치 11 동생이 있어서 좋아!》를 읽는다. 그야말로 두고두고 되읽는 그림책이다. 아기한테만 재미난 그림책이 아니다. 어른이 보아도 살갑고 엉뚱하며 재미나고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에 웅진출판사가 《꾸러기 곰돌이》라는 이름을 붙인 ‘베낌질 그림책’을 펴내어 돈벌이에 나선 적이 있다. 그때 글·그림을 맡은 이들은 여태까지 뉘우치지도 않는다. 지경사에서 《꾸러기 깐돌이》로 나온 적이 있으나 곧 판이 끊어졌고, 비룡소에서 2009년에 되살려 주었다. 아름다운 그림책은 이 아름책을 지은 사람들 숨결을 헤아려 글삯·그림삯을 제대로 치르고 들여와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얕은 짓으로 돈을 벌어 봤자 머잖아 모래알처럼 흩어지리라. ㅅㄴㄹ


‘베낌그림책(표절그림책)’ 살펴보기 https://blog.naver.com/hbooklove/6012762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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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1.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아베 히로시 글/엄혜숙 옮김, 돌베개, 2014.10.20.



한 달 두 달 흐른다. 마음을 놓으면 훌쩍 지나가는구나 싶지만, 하루하루 마음을 쓰면 새롭게 맞이하는 나날을 설레면서 맞이한다. 나는 지난해까지 손으로 적는 글꾸러미를 쓰되 하루적이는 건사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큰아이랑 작은아이가 날마다 스스로 하루를 남기도록 하자면 ‘아버지랑 아이랑 함께 하루를 남기기’를 하면 좋겠다고 여겨, 두 아이하고 따로 하루적이를 한다. 두 아이하고 하루쓰기를 다르게 하기란 만만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재미있다. 나랑 곁님이 낳은 아이라 해도 둘은 다른 숨결이니까. 다른 숨결로 다르게 적바림하는 눈길을 느끼면서, 내 나름대로 두 아이한테 물려줄 이야기를 다르게 건사한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를 조금씩 읽는다. 후딱 읽어치워도 되지만, 이러자면 어쩐지 아깝겠더라. 글쓴님이 그림책을 빚기 앞서 동물원 돌봄이로 꽤 오래 일한 발자취를 읽는 맛이 싱그럽다. 이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저렇게 일벗하고 어우러지고, 그렇게 짐승하고 눈을 맞추었기에, 이 길을 넘어서 그림책을 어린이하고 나누는 일꾼으로 뿌리내릴 만했구나 싶다. 그래, 누구나 어떤 일이든 하고 겪고 마주친다. 어느 일을 거치든 앞길을 바라보며 꿈을 짓는 마음이라면 즐겁고 씩씩하게 일어서겠구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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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숲정이 (2020.3.28.)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요즘은 바깥으로 나돌지 말라고 합니다. 그저 집에 머물라지요. 그런데 집에만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집밥옷을 손수 지어서 누린다면 구태여 바깥에 나갈 까닭이 없습니다. 고작 온 해쯤 앞서까지만 해도 이 나라 벼슬아치·구실바치·먹물붙이·임금·나리 몇몇을 빼고는 모두 손수 지어서 누렸어요. 이때에는 이웃마을에 갈 일조차 없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은 바깥에 가서 사다 쓰는 얼거리입니다. 집살림을 꾸리는 이는 꾸준히 저자마실을 다녀와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도 지며리 아이하고 바람을 쐬며 몸을 마음껏 놀리도록 북돋아야 합니다.


  아픈 사람이 는다면 병원도 세울 만하지만, 이 둘레에는 반드시 숲정이를 둘 노릇입니다. 시설이나 약만으로는 못 낫거든요. 맑은 바람물에 햇볕을 누려야 낫습니다. 도서관도 숲정이를 둘 노릇이고,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여느 일터도 숲정이를 두어야겠지요. 순천 낙안 〈형설서점〉을 찾아갑니다. 책바람이 불어 살그머니 찾아가는데, ‘재일교포 교원’이 ‘대한민국 문교부’에 드린 《朝鮮古文化綜鑑》 석 자락이 눈에 뜨입니다. 이 석 자락을 장만하려면 석 달치 살림돈을 써야겠지요. 살림돈에 앞서 책일 수는 없으니 눈으로 실컷 구경하기로 합니다.


  매캐한 나라가 되어도 책을 쥡니다. 매캐한 나라가 될수록 더 책을 쥡니다. 마음을 다스려 몸에 새빛을 끌어올리는 책을, 마음을 가꾸어 몸이 즐겁게 춤추도록 토닥이는 책을 헤아립니다. 책하고 나란히 있을 숲정이를 나란히 생각합니다.


《르네상스》(서화) 53호(1993.3.)

《르네상스》(서화) 37호(1991.11.)

《금빛 은빛》(홍희표, 창작과비평사, 1987)

《사랑의 위력으로》(조은, 민음사, 1991)

《소금꽃·안개꽃》(정인화, 일빛, 1991)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박정만, 오상, 1986)

《시운동 동인시집 4 그 저녁나라로》(李隆·이문재·이병천·河在鳳·남진우·박덕규·안재찬, 월인재, 1982)

《겨울의 꿈》(김용범, 고려원, 1980)

《로신선집 1》(로신/박정일 옮김, 민족출판사, 1987)

《로신선집 2》(로신/박정일 옮김, 민족출판사, 1988)

《청춘의 노래》(양말, 민족출판사, 1991)

《중국현대문학작품선 상》(진의·문정 옮김, 민족출판사, 1990)

《중국현대문학작품선 하》(진의·문정 옮김, 민족출판사, 1991)

《말》(민주언론운동협의회) 7호(1985.7.25.)

《드래곤 볼 13》(토리야마 아키라/아이큐 점프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3)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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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오랜 첫걸음 (2020.8.19.)

― 괴산 〈숲속작은책방〉


  상주 푸른누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1997년부터 터를 닦은 숲두레입니다. 상주시에서 가기보다는 괴산군에서 들어가는 길이 낫다고 해서 이쪽 길로 들어섭니다. 길그림을 보면 속리산을 둘러싸고서 충청북도랑 경상북도가 만나는군요. 곁에 문경이며 보은이며 얼크러집니다. 높다란 멧자락이 포근히 감싸는 아늑한 삶터라고 느낍니다.


  곰곰이 보면 오늘날에는 이런 멧자락이나 멧골에서 살려는 사람이 드물어요. 새마을운동이란 이름으로 시골내기에 숲내기를 샅샅이 서울로 보내는 나라살림이었거든요. 그때 우리는 왜 시골이며 숲을 떠나 서울바라기가 되었을까요? 그때 배움터는 왜 배움터 구실을 못했을까요? 그때 우리는 왜 손수 짓고 가꾸며 누리는 슬기로운 살림을 내팽개치고 ‘서울에서 돈을 벌어야 잘살 수 있다’고 여겼을까요?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자연’이란 갈래로 배우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쥐를 좁은 곳에 우글우글하도록 두면 제풀에 너무 넘쳐 서로 사납게 잡아먹으며 확 줄어들지만, 느긋하도록 알맞게 두면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더군요. 먹이가 모자라면서 우글거리면 서로 할퀴고 싸우지만, 먹이가 넉넉하면서 알맞게 떨어지면 더없이 포근한 자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을 지었어요. 1980년대 국민학교야말로 ‘바글바글 콩나물시루’였거든요. 이렇게 좁은 곳에 또래를 잔뜩 가두니 날이면 날마다 서로 툭탁거리고 싸움질이고 막말질이겠더군요. 서울뿐 아니라 큰고장도 사람으로 치이니, 오늘날 서울이며 수도권이란 곳에서 사이좋은 이웃으로 서로돕기를 하기란 까마득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푸른누리 지기님하고 만나고 나서 〈숲속작은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상주하고 괴산은 가깝습니다. 자동차가 없기에 그동안 이곳에 올 틈을 못 내었는데, 부릉부릉 태워 주는 이웃님이 있어 고맙고 홀가분하게 마실을 합니다. 책집을 닫기 앞서 아슬아슬하게 닿아 살짝이나마 ‘숲에 작게 깃든 책집’에 흐르는 빛살을 누립니다. 한 땀씩 손질하면서 돌본 책시렁이고, 두 땀씩 가다듬으면서 일군 책꽂이입니다. 석 땀씩 어루만지며 보살핀 책마당이요, 넉 땀씩 헤아리며 북돋우는 책터예요.


  책시렁 한켠에 고이 꽂힌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흘깃 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니 ‘우리말’이겠습니다만, 오늘날 이 나라에 퍼지는 말은 ‘휘청이는 말’이나 ‘휩쓸리는 말’ 같아요.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어느 고장에서나 손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바탕으로 고장말(사투리)을 썼으나, 이제는 서울바라기 ‘인문지식 일본 한자말하고 영어 말씨’로 물듭니다. 아무래도 거의 서울사람(도시사람)이니 서울말을 쓸 텐데, 삶터가 서울(도시)이어도 마음으로는 숲을 아끼는 ‘숲말(푸른말)’을 쓰면 좋겠어요. 스스로 숲마음이 되어 숲길을 걷기를 꿈꿉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아베 히로시/엄혜숙 옮김, 돌베개, 2014)

《그림책이 있는 철학교실》(카타리나 차이틀러/황택현·김수정 옮김, 시금치, 2014)

《직업으로서의 음악가》(김목인, 열린책들, 201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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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46. 길을 찾는 글



  우리가 쓰는 말을 곰곰이 보면 ‘씨’라는 낱말이 곧잘 붙습니다. ‘씨나락·씨암탉·씨돼지’처럼 쓰고, ‘씨알·씨주머니·씨물’처럼 쓰며, ‘솜씨·마음씨’처럼 씁니다. ‘맵시’도 ‘씨’하고 얽히는 낱말이지만 글로는 ‘시’로 적되 말로는 ‘씨’로 소리를 냅니다.


  ‘씨’하고 ‘시’는 오가는 사이예요. ‘씨앗’하고 ‘시앗’은 말밑이 같습니다. 어느 고장에서는 겹닿소리를 쓰고, 어느 고을에서는 홀닿소리를 쓸 뿐입니다.


  이 ‘씨’라는 말을 넣어 ‘이름씨·그림씨·움직씨·어찌씨·셈씨’ 같은 낱말을 짓기도 합니다. 영어를 한자로 옮긴 일본 말씨인 ‘명사·형용사·동사·부사·수사’가 아닌, 우리 나름대로 이 삶자락을 헤아려서 우리말을 찬찬히 쓰자는 뜻으로 지은 낱말이에요.


 말이 씨가 된다


  우리말로만 쓰자고 얘기하거나 외우도록 하는 일이든, 꽤 오래 익숙하게 쓰거나 자리잡은 일본 한자말을 그냥 쓰자고 뒷짐지는 일이든, 그리 알맞지 않다고 여깁니다. 말밑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우리 생각을 슬기롭고 사랑스레 가꾸는 징검다리가 될 만하도록 말길을 가르치고 글길을 여며야지 싶어요.


  왜 이름씨일까요? 이름 하나가 씨앗이 되거든요. 왜 그림씨일까요? 그리는 모습이나 느낌이나 결이나 마음이 언제나 씨앗이 돼요. 왜 움직씨일까요? 움직이는 몸짓이 고스란히 씨앗으로 뿌리내립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혀나 손에 어떤 낱말을 얹느냐에 따라서 생각도 삶도 달라집니다. 즐겁게 부를 이름인가요? 기쁘게 그릴 말인가요? 아름답게 움직이는 말인가요?


 명운을 좌우하다 → 삶을 가르다

 국가의 명운은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 나라 앞길은 젊은이한테 달렸다

 책이란 출판사의 명운을 건 상품이 아닐까요 → 책에 출판사 목숨을 걸지 않을까요

 명운이 다한 것처럼 보였던 → 숨이 다한 듯 보인 / 삶이 다한 듯 보인 / 길이 다한 듯 보인


  한자말 ‘명운(命運)’은 “1.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 운명 2.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숨’이나 ‘숨결·목숨’이나 ‘삶·삶길’이나 ‘앞·앞길’이나 ‘길·가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얹고 바라보다가 문득 길을 생각했습니다. 이 ‘길’하고 ‘글’은 참 닮은, 그렇지만 다른 낱말이구나 싶습니다. 닮았으나 다른, 다르지만 닮은, 두 낱말을 둘러싼 수수께끼란 무엇이려나 어림해 봅니다.


 하지만 운명의 상대를 도무지 만날 수가 없어서 → 그러나 꽃짝을 도무지 만날 수가 없어서 / 그런데 아름짝을 도무지 만날 수가 없어서

 어머니와 같은 운명의 길을 갔습니다 → 어머니와 같은 삶길을 갔습니다 /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갔습니다

 우리에게 남북관계는 운명입니다 → 우리는 남북사이를 타고났습니다 / 남북사이는 우리가 갈 길입니다


  앞뒤만 바꾼 다른 한자말 ‘운명(運命)’은 “1.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 명·명운 2.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가리킨다지요. ‘명운’이든 ‘운명’이든 ‘숨’이나 ‘숨결·목숨’이나 ‘삶·삶길’이나 ‘앞·앞길’이나 ‘길·가다’나 ‘둘도 없다·대단하다·놀랍다’나 ‘타고나다’로 고쳐쓸 만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처럼 쓰면 됩니다.


  글을 쓰거나 다루는 숱한 어른은 한자말 ‘명운·운명’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그러나 글을 안 쓰거나 안 다루는 적잖은 어른은 ‘명운·운명’이 어떤 낱말인가를 어렴풋이 알더라도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아예 모르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한자말은 어린이한테 대단히 낯설고 어렵습니다.


  어른만 읽는 책이나 신문에 ‘명운·운명’ 같은 한자말이 나온들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이런 한자말을 쓴다면 거추장스럽습니다. 어린이가 책을 읽는 길이나 배우는 길을 가로막지요. 어린이가 생각을 새롭게 짓거나 가꾸는 길하고 동떨어지고요.


 죽다 가시다 떠나다


  적기는 ‘운명’이라는 똑같은 한자말이지만, ‘운명(殞命)’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을 가리킨답니다. 더 생각해 봐요. 어린이 곁에서 이런 한자말을 구태여 써야 할까요? 어린이 곁에서 구태여 안 쓰는 길이 낫다 싶은 말씨라면, 어른 사이에서도 되도록 꺼리거나 털어낼 적에 나은 말씨이지 않을까요?


  우리말로는 ‘죽다’가 있습니다. 높임말로 ‘가시다’가 있고, 에둘러 ‘떠나다’나 ‘돌아가다’나 ‘눈을 감다’라고도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드러우면서 쉽고, 깊으면서 너른 말이 꽤 많습니다. 한자말을 써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한자말을 써도 되느냐 아니냐도 아닙니다. 어린이가 달달 외워야만 하는 말이라면 생각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고 말지요. 달달 외워야만 하는 배움수렁 셈겨룸(입시지옥 시험문제) 같은 낱말이라면, 스스로 생각하는 날개를 꺾고 말기에, 이런 낱말로는 틀에 맞추고 판에 박히며 길을 들이고 말아요.


 길을 찾다 ↔ 길을 들이다


  같은 낱말 ‘길’이지만 쓰임새가 갈립니다. “길을 찾다”라 할 적에는 새롭게 닦거나 내거나 짓는다는 몸짓이자 마음입니다. “길을 들이다”라 할 적에는 케케묵은 대로 물들이면서 틀에 박힌 채 그저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종살이입니다.


  개나 고양이를 길들이듯 사람을 길들여도 되지 않습니다. 아니, 개나 고양이도 섣불리 길들이지 말아야 할 노릇입니다. 개는 개답게,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살아야지요. 사람도 사람답게 생각을 펴고 꿈을 키우며 사랑을 나눌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가 쓸 말이란, 우리가 쓰려는 말이란, 언제나 이 ‘길’을 헤아리는 마음에 심는 ‘씨앗’이어야지 싶습니다. 그저 착한 ‘마음씨’가 되라고만 외는 얘기가 아닌, 마음을 상냥하고 슬기로우면서 새롭게 사랑하는 씨앗을 품는 길인 ‘마음씨’가 되도록 어른하고 어린이가 어깨동무해야지 싶습니다.


 글씨 말씨


  이제 ‘길·글’하고 맞물려서 ‘씨·씨앗’을 짚겠습니다. 글로 옮겨서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한 ‘글씨’일 테지만, 글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도록 생각을 담아서 나누려고 하는 ‘글씨’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모습인 ‘말씨’일 텐데, 말이라는 소리로 나타나도록 생각이며 사랑이며 뜻이며 마음을 담아서 함께하려고 하는 ‘말씨’이기도 합니다.


  일본말씨란, 일본사람이 즐겨쓰면 될 말씨입니다. 우리는 우리말씨를 즐겨쓸 노릇입니다. 옮김말씨란, 일본사람이 이웃말(서양 외국어)을 옮기면서 불거진 말씨입니다. 우리는 굳이 옮김말씨를 안 끌여들여도 돼요. 갖은 이웃말이며 일본말이며 중국말을 옮길 적에는 차근차근 가다듬어 우리다운 말씨로 피어나도록 손보고 가꾸면 즐겁습니다. 부드러이 어루만지고 즐겁게 쓰다듬습니다. 따뜻하게 감싸고 아늑하게 돌봅니다. 글로 드러나는 마음이기에 글씨입니다. 말로 나타나는 마음이기에 말씨입니다.


  ‘손글씨’란 마음을 드러낼 적에 우리 손길을 더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오늘 하루를 여는 길을 가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봐요. 어떤 생각을 펼쳐 오늘 하루를 짓는 글을 쓰면 사랑스러울까 하고 꿈꾸어 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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