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8


《깨끗한 환경, 우리가 먼저…》

 두산그룹 환경관리위원회 엮음

 동아출판사

 1994.10.15.



  1991년 3월 14일 터진 ‘두산 페놀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낙동강을 더럽힌 저들은 참말로 찢어죽일 놈이로구나. 그런데 인천 앞바다를 더럽히는 이들은 왜 멀쩡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인천을 보면 웬만한 공장마다 곁에 있는 도랑물이 대단히 지저분하고 고약했습니다. 척 보아도 쓰레기물을 그냥 흘려버리지요. 이 쓰레기물을 다스리거나 지켜보는 벼슬아치를 못 봤습니다. 학교에서 동무들은 “우리가 다니는 학교 옆에는 어마어마한 화학약품 폐수처리장이 있는데? 우리 학교는 뭘까? 우리가 학교로 오려고 걸어오는 길에 화학공장하고 자동차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물이 엄청나잖아. 이들은 왜 안 걸릴까?” 하고 수군거렸습니다. 《깨끗한 환경, 우리가 먼저…》라는 조그마한 책이 1994년에 나온 줄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두산 페놀 사건’을 일으킨 곳은 그 뒤로 다시는 쓰레기물을 몰래 함부로 버리는 짓을 그쳤을까요? 이들을 비롯한 다른 곳은 요즈음 어떠한가요? 공장도 공장입니다만, 살림집에서 버리는 ‘화학세제나 화학비누가 깃든 물’도 흙이며 풀꽃나무이며 뭇목숨을 죽입니다. 우리가 수돗물 아닌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살림으로 가지 않으면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느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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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4


《高等小學 算術書 第二學年 兒童用》

 文部省 엮음

 文部省

 1932.9.30.



  이웃나라로 쳐들어와서 총칼로 짓밟을 뿐 아니라 사람을 마구 죽이고 숲을 함부로 밀던, 이러면서 이웃나라 삶터를 아무렇게나 휘저은 일본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막상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퍼뜨리면서 억지로 쓰라고 닦달한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말끔하게 털어내면서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거나 사랑을 쏟거나 생각을 가꾸는 분은 뜻밖에 드뭅니다. 우리한테 우리말이 없다면야 어느 말이든 받아들여서 쓰겠지요. 우리한테 우리말이 있다면 마음을 기울이고 사랑을 나누며 생각을 짓는 길에 우리 슬기를 빛내어 새롭게 꿈을 그릴 적에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高等小學 算術書 第二學年 兒童用》은 일본에서 1932년에 나온 일본 길잡이책입니다만, 조선총독부란 이름으로 이 나라에서도 이 길잡이책을 그대로 써요. 일본사람이 쓴 ‘ノ(の)’만 ‘-의’로 바꾸고, 일본 한자말은 소릿값만 한글로 적지요. 길잡이책 이름에 나오는 ‘고등’이나 ‘제2학년’이나 ‘아동’이나 ‘-용’이나 ‘-서’ 같은 말씨도 아직 그대로 쓰는 곳(또는 사람)이 많아요. 총칼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가 ‘가르친’ 말씨이건 말건 ‘꽤 오래’ 길들거나 익숙하니까 그냥그냥 쓸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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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5


《CUORE 愛の學校物語》

 エドモンド·デアミ-チス

 大木篤夫 옮김

 アルス

 1930.9.16.



  이탈리아에서 1886년에 “CUORE”란 이름으로 나온 책은 일본에서 《愛の學校物語》란 이름으로 옮기고, 우리나라는 “사랑의 학교”란 이름으로 옮기지요. 이탈리아말로는 수수하게 ‘마음·사랑’을 나타낼 뿐입니다. 일본은 여기에 ‘학교’란 말을 덧입혀서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 어린이를 ‘나라에 한몸 바치도록’ 내모는 구실을 했습니다. ‘오오키 아츠오(大木惇夫)’란 일본사람은 ‘大木篤夫’라는 글이름을 썼다고 하며, 1895년에 태어나 1977년에 숨을 거두었다지요. 일본이 제국주의 총칼을 앞세울 무렵 총알받이로 군대에 끌려가서 죽을고비를 숱하게 넘겼다는데, 이때에 쓴 노래를 일본 언론·정부가 크게 띄워 ‘싸움판(전쟁)을 기리는 노래’를 자꾸자꾸 지었다지요. 이러다 일본이 싸움에서 진 1945년 8월부터 오오키 아츠오란 분은 일본 언론·정부한테서 따돌림을 받았대요. 이녁이 썩 아름다이 노래를 지었다고 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일본 언론·정부는 그들이 짊어질 짐을 글꾼 몇 사람한테 덤터기를 씌우고 빠져나갔다더군요. ‘日本兒童文庫 75’으로 나온 “CUORE”는 애틋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정부·학교에서도 ‘어린이를 군사독재정권에 충성하도록 길들이’는 책으로 많이 써먹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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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말라야에게 - 히말라야가 전하는 위로
서윤미 지음, 황수연 그림 / 스토리닷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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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5


《나의 히말라야에게》

 서윤미 글

 황수연 그림

 스토리닷

 2020.6.20.



최근에 내가 일하는 곳은 포카라시청이다. 시청에는 외국인이 나 혼자다. 아침에 다른 부서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왜 한국에서 네팔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자살하나요?” 순간 나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는 4만여 명에 달한다. (43쪽)


네팔은 1인당 GDP가 1000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이며 해외 이주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이 국가 총수익의 28%, 해외에서 보내는 원조자금이 22%를 차지하는 나라다. 해외에 나가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다. (70쪽)


뜨겁고 차가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날들이 이어졌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쌍둥이 조카를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와 육아를 시작했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없는 일이었다. (165쪽)


길을 걷다 동생을 떠올리며 나는 혼잣말을 곧잘 했다. “동주야, 언니가 여기에 있다. 다시 히말라야를 걷고 있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설산을 너도 보고 있을까?” (190쪽)



  꽤 많은 사람들이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찾아갑니다. 제 나라에는 네팔처럼 아름드리인 멧자락이며 포근한 마을이 없기 때문일 테지요. 제 나라에서 아름드리 멧자락이나 포근한 마을을 누린다면 굳이 네팔을 찾아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많은 네팔사람이 제 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로 돈을 벌러 나갑니다. 네팔에 머물며 돈벌이를 찾기 쉽다면 구태여 제 나라를 안 떠날 테지요.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야 ‘네팔에 없는 돈’을 벌어들일 만하기에 네팔을 떠납니다.


  네팔사람이 떠나고서 빈자리에 이웃나라에서 찾아온 사람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 남긴 빈자리에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이 찾아와서 자리를 채웁니다. 《나의 히말라야에게》(서윤미, 스토리닷, 2020)는 네팔하고 이 나라 사이에서 ‘내가 나답게 설 곳은 어디일까?’를 스스로 묻고 길을 찾으려고 하는 발자취를 들려줍니다.


  우리를 낳은 어버이는 우리더러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어버이가 하는 일’을 고이 물려받고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어버이가 하는 일’은 되도록 멀리하면서 ‘서울이나 서울하고 가까운 큰고장’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찾으라고 등을 떠밀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 찬스·엄마 찬스’란 말이 떠돕니다.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을 물려주지 않고서 ‘오직 돈을 돈·이름·힘으로 거머쥐는 얄딱구리한 길’에 기울어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아빠 찬스·엄마 찬스’예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나 자유하고 꽤 멀어요.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는 벗어났으나 참삶길로 접어들지는 않았어요.


  네팔을 떠나는 네팔사람한테서도 이는 매한가지일 테지요. 돈을 벌어야 한대서 네팔을 떠난다지만, 돈으로는 따지거나 셈할 수 없는 길이 있을 텐데, 그 길이 아닌 돈으로 기울기에 네팔을 떠나고 말아요. 《나의 히말라야에게》는 두 나라 사이에서, 아니 두 삶자리 사이에서 어떻게 서야 할까 하고 망설이는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망설이면서도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줄거리예요. 망설이면서도 한 발짝을 내딛어야 해요. 망설이더라도 밥술을 떠야 해요. 망설이지만 숨을 쉬고 물을 마셔야 해요.


  숨을 고른 다음 눈을 들어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글쓴님은 하얗게 덮은 히말라야를 눈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담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읽는 저는 한 해 내내 푸르게 일렁이는 남녘 시골자락 풀꽃나무를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에 젖습니다. 하얀바람은 푸른바람하고 만납니다. 두 바람은 하늘바람하고 만납니다. 하늘바람은 바닷바람하고 만납니다. 이윽고 별바람하고 만날 테지요.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길을 가든, 우리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망울을 건사하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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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품집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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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누가 누구를 배울까



《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강동욱 옮김

 미우

 2019.5.31.



  날개가 있으면 날고, 다리가 있으면 걷거나 뛰고, 손이 있으면 쥐거나 잡을는지 모릅니다. 입이 있으면 먹거나 마시고, 이 입으로 말을 하거나 노래하고, 이 입으로 숨을 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할까요? 다리가 없으면 걷지 못할까요? 손에 없으면 잡지 못할까요? 입이 없으면 말을 못할까요?



“자네 회사가 우리 회사를 매수한 게 언제였지?” “7년 전이죠.” “농약 회사가 민간 군사회사를 매수한 까닭이 그거였나?” “우리의 유전자 기술이 우주개발의 꽃이 되는 건 조금 뒤의 일. 그때까지 군사 분야에 응용하여 푼돈이라도 벌겠다는 생각이죠. 우리 회장님은 남들보다 훨씬 부지런하시니까요. 식량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 모양입니다.” (169쪽)



  그저 마땅하다고 여기는 길이 어쩌면 하나도 안 마땅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길이 더없이 대수로울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문득 “내가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은 쪽에서는 “네가 입을 벙긋하지 않아도 얼굴에 다 적혔어.”처럼 대꾸하지요. 때로는 “입으로 말해야 아니? 네 몸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다 알겠던데.”라든지 “네 눈에 다 나타나더라.”라든지 “네 마음을 읽었어.” 하고도 대꾸합니다.



“실험동물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건 인간 아닌가?” “동물입니다. 내 자존심을 걸고 맹세하죠.” (149쪽)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얼마나 볼까요? 우리는 우리가 본 모습 가운데 무엇이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가려낼 만할까요? 밑바탕으로는 하나도 모른다면, 코앞에서 보더라도 무엇인가를 모를 뿐 아니라, 아예 못 느끼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저기 봐. 저기 있잖아.” 하고 손가락으로 콕 짚어도 못 보곤 합니다. ‘모르는’ 것이나 ‘처음 보는’ 것이라면, 대놓고 보여주어도 ‘알아보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아주 쉬운 낱말로 엮은 몇 마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에 흐르는 줄거리’를 듣는 사람으로서는 영 낯설거나 마음을 안 여는 몸짓이라면 그저 한귀로 흘러나갈 뿐입니다. 《움벨트》(이가라시 다이스케/강동욱 옮김, 미우, 2019)는 이 대목을 넌지시 건드립니다.



‘매일 수십 명씩 저렇게 소란을 떠는데, 큰 장어가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 저런 건 도시의 테마파크로도 충분한데. 역시 이 섬의 좋은 점을 좀더 알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야 해.’ (38쪽)


‘사람들에게 알리면, 저 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섬의 환경보호에 진지하게 나서 줄까. 아니면 저 녀석을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섬이 더욱 황폐해져 버릴까. 어떻게 하지? 알려야 하나? 아니면…….’ (41쪽)



  시골집에서 살아가다가 때때로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옵니다. 시골집에 깃들 적에는 풀벌레하고 멧새하고 바람하고 구름하고 풀꽃나무하고 들짐승하고 개구리하고 …… 이런저런 이웃 숨결이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듣습니다. 바람빛하고 구름빛을 헤아리고 별빛하고 햇빛을 읽어요. 이러다가 큰고장에 이르면 눈앞뿐 아니라 둘레를 가로막는 가게에 아파트에 자동차에 어수선합니다. 더구나 큰고장에서는 제비는커녕 참새를 보기도 만만하지 않고, 돌림앓이가 훅 퍼진다는 2020년에는 매미 노랫소리마저 못 들어요.


  버스로 움직이거나 걸으며 돌아다니거나 가게에 깃들면서 구름빛이나 하늘빛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많은 큰고장에서는 천천히 걷는다든지, 걷다가 멈추어 하늘바라기를 할 겨를이 없습니다. 버스에 타서 앉든 서든 하늘을 못 봅니다. 해가 기운 뒤에는 별빛이 아니라 자동차 불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아, 이런 곳, 큰고장, 서울이란 데, 삶터가 아닌 매캐하고 차갑고 꽉 막힌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스치거나 얼크러질까요?



“집에는 인간만 살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어두워지면 특히. 많은 생물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집 전체에 시끄럽게 울려퍼지지. 지금까지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아.” (111쪽)



  오늘날 시골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시골 푸름이는 생태자연 인문책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아요. 둘레에서 쉽게 숲을 마주할 만하지만, 시골 어린이나 푸름이는 하루빨리 서울로 가고 싶을 뿐이요, 손전화에 코를 박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오늘날 서울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꽤 많이 읽습니다. 서울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숲을 숲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보여주고, 유튜브나 영화로 보여줍니다. 서울 푸름이는 꽤 어려운 말씨가 가득한 인문책으로 생태자연 이야기를 읽습니다. 서울 푸름이도 서울 어린이하고 마찬가지인데, 맨몸으로 숲을 마주할 틈이 없고, 맨손으로 숲을 어루만질 자리가 없어요.


  매미로 거듭나기 앞서 굼벵이로 살아가는 이웃 숨결이 어느 나무 곁에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피지 못하고서 매미 도감만 달달 왼들 매미를 알 턱이 있을까요? 흔하디흔한 참새나 비둘기가 철마다 어떻게 다른 날갯짓에 노랫소리인가를 늘 귀담아듣지 않고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살핀들, 참새나 비둘기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풀개구리하고 참개구리하고 무당개구리하고 멧개구리는 울음소리가 다 다릅니다. 똑같은 풀개구리라 해도 하나하나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여치하고 베짱이하고 방울벌레하고 귀뚜라미하고 곱등이도 노랫소리가 다르지요. 우리는 이 얼거리를 얼마나 스스로 느끼면서 이웃하고 나누는 하루일까요?



“내가 작은 새로 변해 있는 동안에는, 두 분의 동작이나 대화도 느리게 느껴졌어요. 그럼 내가 더욱더 개미만큼 작아지면? 너무 느려서 분명 여러분이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 수 없게 되겠죠. 언덕이나 산과 똑같이 보이고 말 거예요.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상대가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다른 시간 속에 있겠죠. 왠지, 죽는다는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치채지 못할 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21쪽)



  만화책 《움벨트》에 흐르는 이야기는 얼핏 먼먼 꿈나라 같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깊이 감춰진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부나 권력자가 숨기고, 지식인이나 과학자가 모르는 척 지나가려는 모습이라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눈을 감거나 등돌리면서 어느덧 우리 마음에서 사라져 버린 숨결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당신은 개구리의 대합창을 들은 적 있나요?” “아아, 네. 인도네시아에서.” “그 장대한 교향악을 경험했다면 알겠죠. 그들은 소리로 세상과 일체화할 수 있어요. 우주공간은 진공이라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간 물질로 가득 차 있죠. 다만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로서 전달되지 않을 뿐입니다.” (188쪽)


“하지만 개구리라면 그들의 피부는 틀림없이 우주의 교향곡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인간보다 더욱 우주공간에 친숙해지겠죠.” (189쪽)



  누가 누구를 배울까요. 아이는 언제나 어른한테서 배우는데, 오늘날 어른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림하며, 어떻게 일하거나 노는가요? 앞으로 어른이란 자리에 설 아이들은 일하고 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가꿀 적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드론을 다루는 솜씨를 배워서 농약드론도 돌리고 사진드론로 다루고 군사드론을 만지작거리도록 해야 첨단문명이나 직업훈련이나 사회공헌이 될까요? 아이들이 손수 낫을 쥐어 풀을 베고, 풀베기를 마친 다음에는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고, 다시 낫질을 하고서 새참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쉬다가, 일을 마무리짓고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야 어른다운 어른이지 않을까요?


  큰고장에는 빛이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없는 큰고장이기에 앞으로 참답게 고운 빛이 천천히 피어나도록 처음부터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요. 빛이 퍼질 수 없도록 잿빛으로 매캐하게 꽉 막힌 큰고장이기에, 그곳에 빛씨앗 한 톨을 심어서 나무 한 그루로 돌보는 길을 생각하는 어른 한 사람이 씩씩하게 설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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