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3


《솔로 이야기 1》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12.8.15.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내거는 누리신문이 나왔을 적에 이 말이 썩 안 믿겼습니다. 말만 달콤하게 하는 먹물꾼이 수두룩하거든요. 여섯 달을 지켜보다가 2000년 가을에 첫글을 띄워 보았고, 5000이 조금 안 되는 글을 그 누리신문에 띄운 끝에 더는 글을 안 띄웁니다. 허울좋게 내세운다고 해서 온목소리를 담아내지 않는구나 하고 깊고 넓게 느꼈어요. 이 나라 골골샅샅에 있는 숱한 책집 이야기를 띄울 적에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도 제가 쓴 ‘책집 이야기’를 저 몰래 네이버에 돈 받고 판 적이 있고,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들려주는 느낌글을 무척 꺼리더군요. 이 가운데 만화책은 매우 얕보았어요. 그 누리신문 엮는이는 ‘편집부에서 만화책을 안 읽어 봐서 모르겠다’고 하던데, 인문책만 읽는 분들은 만화책을 매우 하찮거나 나쁘게 바라보는 눈길을 그냥그냥 잇습니다. 《솔로 이야기》는 띄엄띄엄 우리말로 나오는 만화책입니다. 2019년에 일곱걸음째 우리말로 나오지만, 2012년에 나온 첫걸음하고 두걸음은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저는 《솔로 이야기》가 어깨동무(성평등)로 나아가는 길을 따스하면서 슬프고 기쁘고 아름답게 그린 아름책이라고 봅니다. 홀가분히 사랑하는 길을 찾아나서는 당찬 삶을 담아내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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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0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박정희 글·그림·사진

 걷는책

 2011.6.27.



  1995년 어느 날,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책집지기 곽현숙 님이 저를 조용히 부릅니다. “저기, 최종규 씨,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박정희 할머니라고 아나? 그분이 따님하고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다녀오셨다는데, 네덜란드 잡지에 난 기사가 있어서, 네덜란드말이라는데 영어도 아니잖아, 할머니가 기사에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해 하는데 읽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 길지는 않은데 우리말로 옮겨 줄 수 있을까?” 한글 점글을 빚은 박두성 님 딸이기도 한 박정희 님은 예순이 넘은 나이부터 ‘이제는 내 꿈대로 갈래!’ 하고 외치면서 그때부터 물빛그림을 그렸고, 2014년 12월 3일에 아흔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그림붓을 쥐었다고 합니다. 저는 네덜란드말을 배우려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대학교가 워낙 엉터리라 그만두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보람있게 배움자락을 살렸습니다. 그 뒤 2001년에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란 책이 나온 얘기를 듣고 매우 반가웠습니다. 《나의 수채화 인생》(미다스북스, 2005)도 기쁘게 읽었어요. 그러나 두 책 모두 일찌감치 판이 끊기는데 2011년에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란 이름으로 살아납니다. 그림할머니 손에서는 언제나 빛이 흘렀습니다. ㅅㄴㄹ



https://blog.naver.com/hbooklove/6021109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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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5


《모래 위에 쓴 落書》

 김동명문집간행회 엮음

 김동명

 신아사

 1965.1.30.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는 국민학교하고 참 달랐습니다. 국민학교에서는 가시내·사내로 갈려 툭탁거리더라도 같이 놀고 깔깔거리면서 어울렸다면, 남자중학교에서는 더없이 거친 말씨에 싸움질이 날마다 춤추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중학교부터 갑자기 ‘새벽 여섯 시∼밤 열한 시’를 학교에 갇힌 채 대학입시만 바라보아야 하니 오죽 힘들까요. 갇힌 푸름이나 가두는 길잡님이나 똑같이 고단하기에 입에서 막말이 쉬 터져나왔겠지요. 중학생이 되니 어린이노래는 사라지고 ‘어른스러운’ 노래만 가르치는데, 김동명 님이 쓴 글에 가락을 입힌 〈내 마음〉은 빛줄기 같았어요. 노랫말, 그러니까 시 한 자락이 무척 싱그러웠습니다. 190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숨을 거둔 김동명 님은 대학교수를 오래 했고 책은 몇 자락 안 남겼다는데, 1965년에 ‘김동명 문집’이 석 자락으로 나와요. 이 가운데 《모래 위에 쓴 落書》를 2020년 첫여름에 천안 헌책집 〈갈매나무〉에서 만났습니다. 오늘 보자면 쉰 해를 훌쩍 넘겼습니다만, 쉰다섯 해 앞서는 얼마나 반드르르했을까요. 한국전쟁이 터졌을 적에 ‘거짓말하는 이승만과 경찰’이며, 서울을 떠나는 먼길에 겪은 이야기가 애틋합니다. 이녁은 삶을 시로 쓰셨기에 살아남았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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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계급장을 떼어놓고 읽기 : 내가 사서 읽는 책 가운데 ‘안 팔리거나 적게 팔리는 책’이 많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는 책’은 굳이 덜 읽거나, 애써 읽었어도 웬만해서는 말을 않고 지나가려 할 뿐이다. 책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둘로 나눌 만하다. 첫째, 안 팔리거나 적게 팔리는 책이던데, 우리 이웃님이 이 아름책을 부디 즐겁게 알아보고서 슬기롭게 헤아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숲을 온마음으로 품기를 바라는 뜻이다. 둘째,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는 책에 씌운 꺼풀이나 껍데기나 겉멋이나 겉치레나 겉발림을 벗겨내어 민낯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러한 이름팔이·돈팔이·끈팔이(인맥팔이)라는 허울을 우리 이웃님 스스로 떨치는 길에 징검돌이 되려는 뜻이다.


글이나 책을 왜 쓰는가? 읽히려고 쓰는 글이나 책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그리면서 생각을 짓는 즐거운 하루를 사랑으로 나누려는 꿈이 있기에, 이 꿈을 말이나 글이라는 씨앗으로 고이 묻는 손길로 쓴다.


글이나 책을 왜 읽는가? ‘누구 글이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려고 읽는가? ‘나, 그 책 읽었다’ 하고 내세우려고 읽는가? 우리는 이름있는 책도 이름없는 책도 읽을 까닭이 없다. 잘 팔리는 책도 안 팔리는 책도 읽을 까닭이 없다. 오직 ‘삶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림이라는 사랑’을 새롭게 깨닫고 펴는 신나는 오늘을 살아내는 보람을 누리려고 읽고 쓴다.


나는 어느 글이나 책을 읽든 허울(계급장)을 모조리 떼어놓는다.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을 안 가린다. 글쓴이나 펴낸곳이 대단하든 새내기이든 대수롭지 않다.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글쓴이 숨결이나 펴낸곳 숨빛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읽으려 한다. 이녁이 사랑으로 글을 썼는지, 이름·돈·힘을 거머쥐려는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읽는다. 한자말로 하자면 ‘행간’을 읽으라고 하던데, ‘글씨에 흐르는 마음’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지 않는가?


나더러, 이름높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시집이나 인문책이나 사진책을 놓고서 ‘평점을 매우 짜게 준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름높다는 그 책에 왜 ‘평점을 높게 주어야’ 할는지 아리송하다. 글씨나 그림이나 사진에 사랑을 심었다고 못 느끼는데 왜 평점을 주어야 할까? ‘평점 0’을 주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다고 느낀다만, 차마 ‘평점 0’을 매기지 않고 ‘평점 1, 2, 3, 4’ 가운데 하나를 매긴다. 왜 이렇게 평점을 매기느냐 하면, 부디 글쓴이나 펴낸곳이 그 책을 ‘거름(밑거름)’으로 삼아서 다음 책에서는 새롭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이다. 권정생 할배가 쓴 《강아지똥》에 나오듯, 글쓴이나 펴낸곳이 ‘잘 팔리는 이름값’에 스스로 갇히지 말고 그 책을 거름으로 묻어 놓고서 밑바닥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사람을 마주할 적에 그 사람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를 따져야 할까? 잘난 옷차림에 크고 까만 자가용을 몰면 그 사람하고 사귈 만한가? 웬만한 베스트셀러는 ‘잘난 옷차림에 크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껍데기’라고 느낀다.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없듯, 잘생긴 책도 못생긴 책도 없다. 그런데 적잖은 글쓴이하고 펴낸곳은 ‘잘생겨 보이려고 억지스레 꾸미는 책’을 너무 쏟아낸다. 꾸미는 글이나 책을 만나면 ‘평점 0’을 매기고 싶다. 다만 그분들이 흘린 땀값을 헤아려 ‘평점 1, 2, 3, 4’ 가운데 하나를 매길 뿐이다. 2020.9.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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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팔레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540
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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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54


《밤의 팔레트》

 강혜빈

 문학과지성사

 2020.5.9.



  미리내를 두 눈에 새긴 때는 아홉 살이었지 싶지만, 아마 더 일찍 마음에 새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외사촌 언니들을 따라서 들길을 걷거나 멧길을 타면서 비로소 깨달은 미리내가 아홉 살이었고, 이미 갓난쟁이 무렵부터 어머니 옛집에 마실을 가서 이모 등에 업혀 콜콜 잠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모 등판에서 잠들며 보았을 테고, 그분들 시골집에서 잠들며 꿈에서도 보았을 테지요. 스무 살이 갓 넘어 강원도 양구에서 군대살이를 하며 다시금 미리내를 보았고, 살림을 전남 고흥으로 옮긴 2011년부터는 구름 없는 날이면 맨눈으로 늘 별빛잔치를 누립니다. 자, 우리 함께 미리내를 보는 곳에서 밤을 맞이해 봐요. 전깃불빛이 없는 곳에서 밤빛을 맞이해 봐요. 책이나 사진으로 말고, 또 유튜브로도 말고, 우리 눈으로 저 하늘 별빛을 맞아들이기로 해요. 잎망울을 쓰다듬는 마당을 누릴 터에서 하루를 지어 봐요. 자동차도 셈틀도 손전화도 아닌 우리 손길로 잎자락을 어루만져 봐요. 《밤의 팔레트》를 쓴 분은 서울(큰고장) 한복판에서 매캐한 숨에서 살아남으려고 밤을 허위적거렸지 싶어요. 자, 그러면 이제 떠나요. 붓을 내려놓고서 노래할 수 있는 별빛마을로 가요. ㅅㄴㄹ



옆집은 밤중에만 못을 박고 / 세탁기를 흔들어 깨운다 // 벽에 귀를 대보면 조용해지는 / 혼자 사는 사람이 흘리는 / 물은 얼마나 될까. (드라이아이스/10쪽)


뉴스는 토마토의 보관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 설탕에 푹 절여지고 싶어 / 사소한 기침이 시작된다 / 내 컵을 쓰기 전에 혈액형을 알려줄래? (커밍아웃/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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