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
권윤덕 지음 / 돌베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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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41


《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돌베개

 2020.5.29.



나는 이 책을 만들면서, 마치 이 일을 하려고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2쪽)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를 그리고 쓰면서, 지우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소중한 일상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61쪽)


내가 상상했던 대로 중국집 주방은 황홀했다. 요리사가 일하는 모습은 멋졌다. 나는 이런 것들을 글과 그림에 담았다. (175쪽)


어린이들에게 전쟁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어른들은 갖은 이유를 들어 계속 전쟁을 벌이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더 많은 부를 위해 환경파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221쪽)


사실 어린이들은 ‘배틀그라운드’ 게임에 익숙해 있었고, 총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으며, 총에 대한 정보는 어디나 널려 있었다. (328쪽)



  2020년대로 접어든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끼리 즐기는 그림책’이 꽤 나옵니다. 그림책을 어린이만 즐길 까닭이 없으니 ‘어른끼리 즐기는 그림책’을 얼마든지 그려낼 만하지요. 다만 ‘그림책이 왜 그림책인가’를 조금 더 헤아린다면 ‘어린이하고 어른이 어깨동무하는 살림길을 노래하는 그림책’으로 피어나리라 봅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는 책입니다. 삶을 읽은 눈길을 그림으로 들려주고, 삶을 읽어낼 눈빛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그림책이지요.


  글에 앞서 그림이 있습니다. 글이란 그림을 간추려서 수다를 피우는 무늬라고 할 만해요. 그림은 수다스럽지 않습니다. 그림 한 칸에 온갖 이야기를 품어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나누거든요.


  어른끼리 나누는 그림이 있습니다만, 그림책이 오늘날처럼 널리 퍼지고 읽히는 바탕은 바로 ‘이야기를 포근하게 품으면서 함께하는 길’로 그림책이 매우 좋기 때문이에요. 글은 따로 익혀야 하고 겨레나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와 달리 그림은 글을 몰라도 누려요. 그림은 겨레나 나라를 가로지릅니다. 그림은 사람뿐 아니라 풀꽃나무랑 풀벌레랑 새랑 들짐승도 누리지요. 그야말로 울도 담도 없는 그림인 터라, 그림은 늘 ‘가장 여리거나 작지만 가장 빛나고 사랑스러운 숨결’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었어요.


  《나의 작은 화판》(권윤덕, 돌베개, 2020)은 그림책을 짓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분이 이녁 발자취를 더듬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어떻게 처음 그림책 지음길로 접어들었는가를 밝히고, 여러 그림책을 지은 살림을 보여줍니다. 손수 지은 그림책을 둘러싼 곁이야기를 들려주고, 앞으로 새롭게 짓고 싶은 그림책 꿈을 차분히 적습니다.


  그림책을 짓는 분은 그림으로 여태 모든 말을 털어놓았어요. 먼저 그림책을 보면 그림님 마음을 환히 헤아릴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 지음이로서 글책을 따로 썼다면, 그림책을 짓는 동안 새롭게 배운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나의 작은 화판》을 읽으며 바로 이 대목을 눈여겨보려 하는데, 뜻밖에 이러한 생각은 얼마 안 되지 싶습니다. 그림책이 나아갈 길, 그림책을 누리는 눈썰미, 그림책으로 가꾸는 터전, 반갑거나 아쉬운 그림책, 그림이라는 이야기로 펼 수 있는 꿈이며 사랑, 이 같은 대목을 깊고 넓게 짚지는 않는구나 싶어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책이름에 ‘나의’란 일본 말씨를 넣은 대목도 아쉽습니다. ‘화판’이란 말도 썩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만한 말씨는 아니지 싶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길이니 ‘그림판’이란 이름이면 되는걸요. “내 작은 그림판”이지요. “이 작은 그림판”이고요. 그림책을 그림으로만 엮기도 하지만, 글을 가만히 보태어 ‘글·그림’으로 엮기도 합니다. 그림 못지않게 ‘글에 담아 마음에 씨앗으로 심을 말 한 마디’를 한결 깊고 새롭게 살피시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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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4.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가네코 미스즈 글/서승주 옮김, 소화, 2006.2.21.



2018년에 이효리 씨가 방송에서 얘기한 뒤 갑자기 불티나게 팔렸다는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를 참으로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었다. 이제는 책숲으로 옮기자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되읽는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저리는 글쓴님 마음이 물결친다. 마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쓴 멧골마을 아이들 같은 글자락이 춤춘다. 그래, 오직 삶을 사랑하는 숨결로 붓을 손에 쥐니 이러한 글이 태어난다. 가네코 미스즈란 분도, 이오덕 어른이 가르친 멧골마을 아이들도, ‘굳이 글을 쓰려’는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하루를 꽉 차게 보내다가 조그마한 틈바구니 한켠으로 문득 붓을 쥐어서 쏟아내는 글이다. 우리 집 뒤꼍에서 풀을 베다가 그만 취꽃까지 베었다. 아차 싶었으나 벌써 벤걸. 벤 취꽃을 부엌에 놓는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며 곁님한테 보여준다. “꽃송이를 먹어 볼래? 잎도 나물로 먹지만, 꽃도 향긋한 나물이란다.” 부추꽃을 혀에 얹어 살살 씹으면 달싸한 기운이 훅 퍼진다. 취꽃을 혀에 얹어 슬슬 씹을 적에도 취나물다운 달싸한 기운이 자르르 흐른다. 예부터 멧나물이건 들나물이건 잔뜩 안 먹어도 배불렀겠다고 느낀다. 이 아름다운 들꽃이며 들풀이 늘 우리 곁에 있으니, 이 기운을 고이 맞아들이면 노상 가멸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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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3.


《귓속에서 운다》

 이창수 글, 실천문학사, 2011.6.27.



무화과나무 옆으로 무너진 돌담을 뒤늦게 알았다. 언제 무너졌을까? 무너진 자국을 보아하니 올여름에 끝없이 비가 내리던 즈음 무너졌지 싶다. 우리 집에서 보는 쪽이 아닌 옆밭에서 보는 쪽으로 돌담이 무너진 터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기에 무너진 데를 더 살피고 긁어낸다. 밑돌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고서 든든하게 받치는 자리가 있는 데부터 새로 쌓는다. 그저 돌을 옮기고 되쌓는 일이라지만 담돌은 안 가볍다. 집안일도 하고 여러모로 다른 일이 수두룩하니 너무 힘을 빼지 말자고,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되쌓기로 한다. 《귓속에서 운다》를 장만해 놓고 거의 세 해 만에 읽었다.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글쓴님이 들려주려는 노래에는 글쓴님 어떤 삶이 묻어날까? 우리 터전은 늘 달라진다지만 모든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삐삐부터 손전화에 이르기까지, 또 끝없이 거듭나는 셈틀하고 누리그물을, 누구는 발빠르게 누구는 더디게 따라간다. 가시버시가 어깨동무하는 길을 놓고도 나날이 나아지지만 여태 제자리걸음인 고장이나 집도 많다. 2011년 글을 2020년에 바라보며 생각한다. 스스로 사랑하는 눈길이라면 예전이든 오늘이든 ‘화냥질’ 같은 낱말을 입에 올릴 일이 없지 않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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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2 : ~소설가가 되는 방법~ - S코믹스 S코믹스
야나모토 미츠하루 지음, 김아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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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27


《히비키 2》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4.25.



“히비키는 항상 소설을 읽고 있던데, 어떤 걸 좋아하니?” “여러 가지.” “그렇구나. 여러 가지구나.” (14쪽)


“순수문학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히비키가 쓴 소설이 재미있는 거야. 그 애는, 이상하리만큼 특별해. 그러니까 어설프게 흉내낼 생각은 하지 마. 카요가 쓴 이야기도 나쁘진 않았어.” (25쪽)


“그렇구나. 정말로 평범하네.” ‘대단하다. 특별한 배경도 없이 그냥 재능이 있는 거구나.’ (111쪽)


“소부에 아키히토의 딸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다른 사람 딸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131∼132쪽)



《히비키 2》(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은 첫걸음하고 다르게 ‘부러움·시샘’하고 ‘스스로 깎아내리기’라는 마음이 엇갈리는 줄거리가 흐른다. 곰곰이 읽다가 생각한다. 저 아이가 저렇게 쓴다고 해서 왜 부러워야 할까? 내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왜 깎아내려야 할까? 더 잘 쓰는 글이 있을까? 엉터리나 바보인 글이 있을까? 저마다 삶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담아내는 글이니, 삶읽기라는 얼거리에서 모든 글은 다 다르게 빛난다. 다만, 삶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겉멋을 부린다면 이때야말로 엉터리나 바보인 글이 된다. 왜 꾸미나? 왜 치레하나? 이른바 ‘기교법·수사법’을 쓰는 글은 몽땅 엉터리나 바보이다. 겉으로 멋스러워 보이려고 뜯어고치는 글은 삶도 이렇게 ‘스스로 제 삶을 즐기지 못하면서 남 앞에서 꾸미는 길’일 테니, 이런 글이 마음을 울릴 일이란 없다. 히비키란 아이가 쓴 글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면, 히비키는 오직 히비키 스스로만 바라보고 글을 쓰기 때문이지. 누구네 딸이나 아들이어야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이른바 이름난 글꾼이 낳은 아이라서 훌륭한 글꾼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책을 고르면서 흔히 ‘글쓴이 이름’하고 ‘펴낸곳 이름’을 너무 따지는데, 이 모든 이름을 가려 놓고서 오직 글만 들여다보자. 글쓴이하고 펴낸이 이름을 가려 놓고 글만 바라보려 한다면, 아마 사람들 누구나 ‘겉멋에 빠진 베스트셀러’가 끔찍하도록 넘친 이 나라인 줄 쉽게 알아채리라. 그런데 못 알아챈다면? 아아, 못 알아챈다면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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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위치 4
이시즈카 치히로 지음, 문기업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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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26


《플라잉 위치 4》

 이시즈카 치히로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6.9.30.



“직접 만들어야 이것저것 공부도 되고 돈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앗. 찢어졌네? 아카네도 직접 만들어?” “아∼. 언니는 인터넷으로 산대요. “아하하, 역시나.” (10쪽)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즐거운 인생이 마녀를 훌륭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많이 발견해서 즐겁게 놀며 배우면 되는 거야. 네 언니를 봐 봐. 놀기의 달인이잖아?” (103쪽)



《플라잉 위치 4》(이시즈카 치히로/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6)은 놀이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놀듯이 나아가고, 놀면서 나아가며, 언제나 놀이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면 된다고 한다. 일은 일이요 놀이는 놀이라 하지만, 놀이처럼 일을 마주할 줄 안다면 오래오래 두고두고 자꾸자꾸 다시다시 할 만하다. 일을 그저 일이라고만 여길 적에는 제풀에 지치거나 걸려넘어지기 일쑤이다. 신나게 놀며 땀을 흘렸기에 신나게 쉬며 새로 기운이 솟으면 다시 논다. 이 마음 그대로 신나게 일할 수 있으면 언제나 신나게 쉬고 새삼스레 신나게 일할 만하지 않을까. ‘마녀(위치)’뿐 아니라 누구라도 매한가지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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