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중력
박광명 지음 / 고래뱃속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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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02


《안녕, 중력》

 박광명

 고래뱃속

 2020.6.29.



  고흥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파주로, 파주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이곳저곳을 옮기면서, 이 땅에 풀꽃나무가 어느 만큼 어떻게 퍼지거나 일렁이나 돌아봅니다. 시골이기에 풀꽃나무가 푸르게 춤추지는 않습니다. 시골이어도 비닐집이며 잿빛집이 넘치고, 큰고장이지만 거님길 한켠에 돌콩이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온통 까만길이거나 하얀길인 큰고장이지만, 흙이 모두 까맣거나 하얗게 덮인 곳에 흙을 이고 지고 날라서 꽃그릇을 놓거나 꽃밭을 꾸미는 손길이 있습니다. 둘레 어디나 흙이지만, 이 흙에서 아무 들풀이 못 자라게 농약을 끝없이 뿌려대는 시골이 있고요. 《안녕, 중력》은 아이가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길을 ‘오늘날 큰고장 살림길’ 눈썰미로 담아냅니다. 거의 모두 큰고장에서, 무엇보다 서울에 가장 몰려서 살아가니 그림책에서 담아내는 바탕이나 터전도 ‘서울 눈썰미’이곤 합니다. 풀을 밟은 적 없이 자라는 사람은 무엇을 볼까요? 별빛이 물결로 넘실대는 하늘을 본 적 없이 크는 사람은 무엇이 될까요? 홀가분하게 즐거이 살아간다면 누구라도 ‘중력’ 없이 하늘을 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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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 그림책은 내 친구 56
정연숙 지음, 김동성 그림 / 논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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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85


《꽃밥》

 정현숙 글

 김동성 그림

 논장

 2020.1.28.



  모든 열매는 꽃이자 씨앗입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로 맺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으면 씨앗을 품습니다. 씨앗 한 톨이 움트고 뿌리를 내리면서 무럭무럭 자라더니 어느새 꽃이 피어 새롭게 여러 씨앗을 품는 열매가 되는데, 우리는 이 숱한 씨앗을 넉넉히 누리면서 이다음에 새로 심을 씨앗을 따로 건사해 놓습니다. 아무리 배고프더라도 씨앗은 안 건드리지요. 씨앗을 건드렸다가는 새로 심을 길이 없고, 새로 심지 못하면 손수 지어서 거둘 살림이 사라져요. 《꽃밥》을 펴면서, 나락 한 알이 논이라는 땅에서 해를 먹고 바람을 마시고 비를 머금으며 자라는 길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밥이라는 숨결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끼니를 때우는 살림인가요? 같이 나누고 함께 누리는 길인가요? 여리거나 어린 사람한테 한 숟가락을 더 건네는 손길인가요? 나한테 넉넉하니 기꺼이 내줄 줄 아는 눈빛인가요? 2020년 여름은 볕이 들 날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나락을 비롯해 푸성귀가 해랑 바람을 느긋이 맞아들일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생각해 봐야 해요. 전기나 정부가 없어도 살아갈 길이 있지만, 해·바람·비가 없다면 꽃밥도 삶도 아예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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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8.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

 이성갑 글, 스토어하우스, 2020.7.1.



부산에서 하루를 묵었다. 어쩐지 서면에서 길손집을 찾고 싶어 한참 헤맸는데 부산은 서울보다 잠삯을 세게 부르더라. 어쩜 이리 세게 부르나 싶어 놀라니 “왜요? 비싸요?” 하고 묻네. 허허, 그대가 그리 부르는 값은 그냥 나가란 뜻이잖아? 터덜터덜 걷다가 ‘이곳만 더 물어보고, 정 안 되면 부산역으로 가자’고 생각했는데 “이만오천 원 주셔요.” 한다. 이곳에서는 왜 이렇게 싸게 부르나 싶어 새삼 놀란다. 내 차림새를 보고 어느 길손집은 그냥 내쫓는지 모른다. 여태 물어본 곳은 ‘묵는’ 데가 아니라 ‘빌려주며(대실)’ 돈벌이를 하는 데였지 싶다. 지친 몸을 쉬며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을 읽었다. 〈주책공사〉란 마을책집을 가꾸는 지기님이 하루하루 책으로 노래하며 살림길을 꿈꾸는 마음이 그득그득하다. ‘닥책’이란 말이 자주 보여 갸우뚱하다가 ‘아하, 닥치고 읽을 책’이란 뜻이라고 알아챈다. ‘닥책’도 재미나겠는데, 나는 ‘아름책’이나 ‘꽃책’이란 이름을 쓰고 싶다. 아침에 기차로 서울로 간다. 2200 버스로 파주에 간다. ‘타이포그래피 배곳 파티’에서 우리말이 어떤 숨결로 빛나는 말인가 하는 이야기를 편다. ‘꾸미다’가 ‘꿈 + 이다’이기도 하다고 말하니 놀란다. 함께 날개를 펴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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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7.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

 김재욱 글, 한솔수북, 2020.8.25.



이튿날 파주에 바깥일로 가야 하는데 요즈막 시골이며 전라 쪽에서 다니는 버스는 도무지 못 믿겠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확 줄었다면서 버스길까지 갑자기 사라지거나 줄고, 때맞춰서 다니지 않는다. 아이들하고 무말랭이 곁밥을 마련하고, 빨래를 하고, 이래저래 집안일을 추스르고서 택시를 불러 읍내로 간다. 읍내에서는 네 시간 이십 분을 달려 부산으로 간다. 부산 가는 길이 참 멀구나. 마을책집 〈주책공사〉를 찾아간 다음, 길손집을 찾아 서면을 한참 걸었다. 살섞기할 짝이 아닌 혼자 묵는 사람은 찬밥이구나. 어제 읽은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를 돌아본다. 글쓴님은 ‘아이를 크게 키운 옛말’이라 밝히지만, 아이보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인 글쓴님’이야말로 옛말을 되새기면서 새로 배우고 거듭 배우는구나 싶다. 누구나 배운다. 무엇이나 배운다. 어디서나 배운다. 그리고 어버이로서 배우는 살림이며 길을 아이들이 곁에서 지켜보며 나란히 배운다. 애써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른하고 아이 모두 스스로 나아갈 길에 맞추어 스스로 즐거이 빛줄기를 찾아낼 테니까. 무엇보다도 옛말을 씨앗으로 삼아 오늘말을 어버이로서 새롭게 짓는다면 아이가 한결 반기리라 생각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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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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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28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신소희 옮김

 푸른숲

 2020.3.20.



어릴 때 할머니 집 근처 산울타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블루벨 꽃봉오리와 산사나무 이파리, 병꽃풀의 뾰족한 가시와 갈퀴덩굴 어린잎을 쳐다보던 것이 기억난다. (15쪽)


며칠 뒤 나는 방과후 활동을 마친 막내딸을 데려오려고 이웃 마을로 차를 몬다. 동네 농산물 가게 옆에 한 줄로 늘어선 어린 피나무를 지나치는데 가면올빼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96∼97쪽)


11번 국도로 차를 몬다. 그곳에는 다리가 여럿 있다. 머릿속에 다리를 찾아가자는 생각만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어느 다리가 가장 좋을까?’, ‘어느 다리가 가장 높고 효율적일까?’ 불쾌하고 끔직한 소음이 퍼져나간다. (135쪽)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예쁜 새모이 보관소를 산다. (146쪽)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신소희 옮김, 푸른숲, 2020)는 “The Wild Remedy”란 이름으로 나온 책. 영어 ‘와일드’를 ‘들’이나 ‘숲’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을 거의 못 본다. 다들 영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야생’을 쓴다. 책 첫자락에 실은 치킴글 첫 줄이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우울한 감정 그 자체보다 압도적인 자기혐오와 비판을 동반한다는 데 있다(7쪽).”이다. 무슨 소리일까? 무늬는 한글이되 알맹이는 알쏭하다.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들을까? 알아듣고서 책을 읽을까? 이런 말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까? 첫자락 첫 줄을 “슬프면 슬픔보다 스스로 깎아내려서 끔찍하다”로 고쳐 놓는다. 들빛이 마음을 달래고 몸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준다는 줄거리를 다루는구나 싶은 책이면서도, 글쓴이는 내내 자동차를 몰면서 찻길을 가로지른다. 자동차를 몰면서도 멧새 몸짓을 지켜보고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노래를 들을 수 있겠지. 우리가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빠른길 한복판에서도 숲 한복판 둥우리에서 갓 깨어난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부르는 가녀리면서 사랑스러운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책을 덮을 때까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들이나 숲에서 어떻게 마음을 달랬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을 장만해서 읽을 시골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시골사람이라면 종이책을 내려놓고 호미를 손에 쥐고서 밭자락에 쭈그려앉겠지. 숲사람이라면 가벼운 차림으로 나무를 타고 오르며 구름물결을 내다보겠지. 서울사람한테 이 책이 어느 만큼 들빛이나 숲바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옮김말이 하나같이 너무 서울스럽다. 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말씨에 들빛이 감돌도록 하면 안 될까? 무엇보다 글쓴이가 너무 자동차를 몰아대기만 하는구나 싶다. 자동차를 버리고서 맨손에 맨발에 맨몸으로 들이며 숲을 마주한다면, 사진찍기를 안 해도 좋으니, 그저 오롯이 들바람을 먹고 들풀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하루를 누린다면, 이 책에 흐르는 글이 모두 달랐겠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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