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0


《우리 아이의 장래》

 김인회와 40 사람

 뿌리깊은 나무

 1979.4.20.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적에 아름다운 어른일까요? 어른이란 자리에 섰다면 이 대목을 생각하기를 바라요. ‘아이가 배워야 할 것’에 앞서 ‘어른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에 아이하고 함께할 것’을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의 장래》는 이 나라가 몹시 캄캄하고 서슬퍼렇던 무렵, 아이들을 매우 쉽게 때리거나 굴리거나 윽박지르던 길을 언제까지 이어가려 하느냐고 묻는 책이에요. 아이들 앞날을 생각해야지요. 어른들 앞길도 헤아려야지요. 아이들 앞꿈을 살펴야지요. 어른들 앞사랑도 돌아봐야지요. 아이들을 틀에 가두지 않으면 좋겠지만, 가만 보면 어른부터 스스로 틀에 갇힌 채 돈벌이에서 못 헤어나요. 어른 스스로 틀에 갇힌 나날인 터라 아이들이 걱정스럽겠지요. 틀에 갇힌 어른살이 아닌 홀가분한 어른살이를 누리거나 찾아나서지 않았다면, 나이는 먹었되 아이들이 나아갈 새로운 숨빛을 보여주지 못하기 일쑤이거든요. 우리 부디 아름길을 가기를 빌어요. 지난날은 총부리를 들이밀며 캄캄했다면 오늘날은 총부리를 안 들이밀어도 캄캄해요. 그나저나 《우리 아이의 장래》는 두 가지 겉그림입니다. 처음 낸 판에 붙인 사진말이 너무 ‘어른 눈길’인 탓에 갈아야 했구나 싶어요. ㅅㄴㄹ


“의젓한 모습으로 찍혔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얼굴이 간지러워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모처럼 사진기 앞에 섰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도정리에서 이남수가 찍은 뿌리깊은 나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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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노래 우리말꽃 : “하고 있다”라는 말씨



[물어봅니다]

  “이제 밥 먹고 있어”나 “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앉아 있어”에서 ‘있어’가 어쩌다가 영국말에 있는 현재진행형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야기합니다]

  “하고 있다”는 우리 말씨가 아니지만 요즈음 사람들이 꽤 널리 씁니다. 우리 말씨인 척하는 이 말씨는 언뜻 보면 걷잡을 길 없는 듯하지만, 찬찬히 짚으려 한다면 무척 쉽게 걷어낼 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이 말씨를 한동안 썼지만 이제는 말끔하게 털어냈습니다.


  예전에는 왜 썼고, 이제는 어떻게 털어냈을까요? 저 스스로 우리 말씨를 제대로 생각하고 즐겁게 찾아내어 사랑스레 익히자는 마음을 튼튼히 세우기 앞서까지는, 그냥 줄줄이 열두 해를 다닌 배움터에서 들려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책에서 읽은 대로 썼어요. 배움터에서 가르치고 배움책에 나오며 여느 낱말책이나 글책에 적힌 말씨가 더없이 얄궂거나 엉성하다고 느껴, 이 모두를 갈아엎을 노릇이겠다고 느낄 때부터 어느새 싹 씻어낼 수 있더군요.


  ‘배움터에서 가르치는 말이 말다운 말이 아닐 수 있다’라든지 ‘말다운 말을 오히려 배움터에서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친다’라든지 ‘여느 길잡이뿐 아니라 숱한 글꾼도 말을 말답게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려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라든지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쓴다고 하는 붓잡이마저 우리말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어 알맞게 쓰는 길하고는 동떨어지기도 한다’처럼 생각해 본다면 맨 먼저 모두 와르르 무너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아기로 돌아가서 말을 말답게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할 노릇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말이 일그러진 곳은 이 별에 드물거든요. 가만 보면, 몽골이나 만주는 중국말에 밀려서 말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적잖은 나라는 힘센 나라가 쳐들어와서 ‘힘센 나라 말만 쓰라’고 윽박지른다든지 ‘힘센 나라 말이 아름답고 뛰어나다’고 하는 달콤발림에 홀딱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도 싸워요.


  우리나라는 지난 조선 오백 해에 걸쳐서 중국 섬김질에 나라가 찌들었고, 이동안 입말하고 글말이 쫙 갈렸습니다. 조선 위아래틀(봉건신분제)이 무너진 자리에는 유럽·미국 믿음길잡이(선교사)하고 싸움나라 일본이 스며들면서 ‘토씨만 한글’인 글말이 태어납니다. 이러한 때를 거쳐 일본한테 짓밟히던 무렵에는 오롯이 일본말로 생각해서 말하고 글을 쓰는 틀이 뿌리를 내립니다. 1945년에 이 굴레에서 풀려난 다음에 나라살림이며 모든 배움터에 다시 ‘일본 앞잡이 글꾼과 벼슬아치와 길잡이’가 그대로 또아리를 틀었고, 이들이 지난날 싸움나라 일본한테 굽신거리면서 쓰던 일본말이나 일본 말씨를 이때에도 똑같이 ‘토씨만 한글’이고 ‘새까만 한자말투성이’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 이오덕이란 어른이 《우리 글 바로쓰기》란 책을 선보이면서 크게 애쓰기는 하였지만, 1800년대 끝무렵부터 1900년대 끝무렵에 이르도록 백 해에 걸쳐 길들거나 물든 일본말하고 일본 말씨를 놓고서 ‘백 해쯤 썼으면 이제 이 말씨도 우리 말씨라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팔짱을 낀 글쟁이하고 벼슬아치하고 길잡이하고 붓잡이가 수두룩합니다.


  “하고 있다”를 비롯한 숱한 옮김 말씨·일본 말씨는 지난 백 해에 걸쳐서 소용돌이치는 이 나라에서 어지럽게 춤추면서 번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쯤 싸워야 했다면 제 말을 잃거나 잊었어요. 우리나라는 용케 한말(우리말)을 잃지 않았고, 한글(우리글)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어수선하거나 뒤죽박죽인 옮김 말씨·일본 말씨에 젖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 이럭저럭 ‘한글로 한말을 담는 삶’입니다.


  《아빠표 초등영어 교과서 확장패턴》(마이크 황, miklish, 2019)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영어를 배우도록 돕는 책이에요. 이 영어 길잡이책에 나오는 글월을 옮기면서 “하고 있다”랑 얽힌 실타래를 풀어 보겠습니다. 어린이배움터(초등학교) 영어 배움책에 나오는 글월을 옮겨도 되기는 합니다만, 굳이 이 책에 나온 글월을 옮기려 해요. 배움책이든 도움책이든 다 똑같습니다만, 그만큼 여느 사람들이 이런 말씨에 젖어들 뿐 아니라, 어린이가 처음 바깥말을 배우는 자리에 이렇게 ‘우리말 얼개를 망가뜨린 채 틀거리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려고 합니다.


㉮ She has a headache. 그녀는 두통을 가진다.

㉮ She has a cold. 그녀는 감기를 가진다.


  길잡이책은 으레 이렇게 풀이를 붙입니다. 이렇게 풀이를 붙여야 ‘우리말하고 다른 영어’를 알기 좋다고 여기더군요. 그러나 이 풀이가 옳을까요? 이 풀이는 우리말일까요?


㉮ → 그 사람은 골이 아프다.

㉮ → 아이는 콜록거린다.


  우리말에서는 사내나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그’를 씁니다. 영어에 ‘she’라 나와도 우리말로는 ‘그·그이·그분·그님·그 사람’으로 옮겨야 맞습니다. 낱낱이 밝히고 싶다면 ‘그 사람’이 아주머니인지 어머니인지 어린이인지 할머니인지 이모인지 고모인지 누나인지 언니인지 동생인지를 따져서 이러한 이름으로 가리켜야 어울려요. 그리고 영어 ‘have’는 섣불리 ‘가지다’로 옮기지 않습니다.


㉰ He gives a pencil. 그는 한 연필을 준다.

㉱ He gives an answer. 그는 한 정답을 준다.


  우리말은 ‘임자말’을 흔히 지웁니다. 임자말을 안 써 버릇하는 말씨입니다. 자, 보셔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적에도 웬만해서는 ‘저는(나는)’ 같은 임자말을 안 씁니다.


㉰ → 연필을 준다.

㉱ → 풀다.


 ‘저는(나는)’이 없이 말할 적에 부드럽게 흐를 뿐 아니라, 이런 임자말이 없을 적에 오히려 ‘누가 누구를 보며 말하는가’를 환하게 알아차리기도 하는 우리말입니다. 그리고 영어 ‘a·an’은 함부로 ‘한’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 It's sweet. 그것은 달콤하다.

㉳ It's delicious. 그것은 맛있다.


  영어에서는 툭하면 ‘It's’를 붙입니다. ‘It's’를 안 붙이고 말하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이 말씨를 앞에 붙여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이 말씨를 안 붙이다가는 뜬금없는 뜻으로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요.


㉲ → 달콤해.

㉳ → 맛있어.


  우리말로 하자면 ‘그것은’은 아예 없다시피 해요. 더구나 우리말은 ‘-다’로 안 끝내 버릇하지요. 때때로 ‘-다’로 끝맺기도 하지만, 우리 말씨는 말하거나 말을 듣는 사람 마음이나 느낌이나 숨결이나 빛이나 자리나 흐름이나 결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그때그때 말끝을 바꾸어요. 우리말은 토씨랑 말끝을 신바람 내듯 바꾸는 결이 재미납니다.


㉴ I'm happy. 나는 행복하다.

㉵ I'm good. 나는 좋다.


  영어 ‘happy’는 그냥 ‘행복’이란 한자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말하는 자리마다 느낌이 달라요. 게다가 영어에서는 걸핏하면 ‘I'm’을 넣어야 말이 될 텐데, 우리말에서는 으레 ‘저는(나는)’을 지워야 말이 됩니다.


㉴ → 즐거워. / 기뻐. / 사랑해. / 반갑다. / 좋아, 좋아.

㉵ → 좋아. / 좋지. / 좋네. / 좋구나. / 맘에 들어.


  우리말하고 영어가 다른 결을 밝히면서 서로 맞대어 제대로 배우도록 이끌자면, ‘㉵’를 손질한 대목처럼 다 다른 토씨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길잡이책에서도 바로 이 대목, ‘우리말은 스스로 느낌을 살려서 온갖 토씨를 바꾸어야 한다’를 꼼꼼하게 짚습니다.


㉶ They're taking a picture. 그는 한 사진을 찍는 중이다.

㉷ They're riding bicycles. 그들은 자전거들을 타는 중이다.


  우리말은 ‘그들’이란 임자말은 더더구나 안 써 버릇합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They're’도 꼬박꼬박 붙여야겠지요. 자, 여기에서 “-는 중이다”란 말씨가 불거집니다. “-는 중이다”는 “-는 中이다”를 무늬만 한글로 옮긴 말씨이고, 일본사람이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면서 쓰던 말씨입니다.


㉶ → 사진을 찍는다.

㉷ → 자전거를 탄다.


  “-는 중이다”는 일본에서 영어 잇는말씨(현재진행형)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 하고 골머리를 앓다가 찾아내어서 쓰지요. 우리나라는 일본을 거친 영어를 들여와서 배운 터라, 숱한 영어 말씨는 바로 ‘일본 영어 말씨·일본말을 옮긴 말씨’라 할 만합니다.


㉸ She's climbing a mountain. 그녀는 한 산을 오르는 중이다.

㉹ She's drawing a picture.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는 中이다”는 “-는 중이다”라는 옷으로 바꿔 입는데, 이다음으로는 “-고 있다”로 다시 옷을 바꾸어 입기까지 합니다. 우리말로는 “밥 먹어.”처럼 짤막하게 써야 올바르지만, “나는 밥을 먹는 중이다.”라든지 “나는 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라든지 “나는 밥을 먹고 있다.” 같은 ‘일본 옮김 말씨’가 마구 춤을 춥니다.


㉸ → 멧길을 오른다.

㉹ →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우리말을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고 생각하려면, 이제까지 배움터랑 책이랑 누리집에서 듣고 읽고 본 모든 말씨를 까맣게 지워야 한다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모두 잊고서 처음부터 새로 배울 노릇이라고 여겨요. 그런데 모두 지워 놓았더라도 똑같이 배움 불구덩이라는 쳇바퀴로 들어가서 배움책하고 숱한 책을 편다면, 일본말꽃(일본말사전)을 그대로 훔친 듯한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을 그냥 읽는다면, 또 이와 엇비슷한 어린말꽃(어린이사전) 《보리 국어사전》(보리 출판사)을 그냥그냥 읽으면 도루묵이 되어요.


  영어 길잡이책에서 여러 보기글을 들면서 이야기를 엮었는데요, 영어를 우리나라에서 찬찬히 가르치려 한다면, ‘바로옮기기(직역)’나 ‘뜻옮기기(의역)’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노릇이 아닌, 우리 말씨를 제대로 밝힌 다음에, ‘맞대기’를 풀이해 주어야겠지요. 다음 보기글을 더 보겠습니다.


ㄱ. 나는 눈들을 가진다.

ㄴ. 나는 한 얼굴을 가진다.

ㄷ. 나는 한 코를 가진다.

ㄹ. 그들은 한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ㅁ. 나는 한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ㅂ. 나는 한 과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ㅅ. 그는 이것을 하는 중이다(자기 위해.)

ㅇ. 나는 2학년에 속해 있다.

ㅈ. 그것은 5월 5일이다.

ㅊ. 나는 사야 한다(그 표들을.)

ㅋ. 그것은 너의 것이 아니다.


  영어 길잡이책 《아빠표 초등영어 교과서 확장패턴》에 나오는 글월을 열한 가지 더 옮겼고, 이다음에는 이 열한 가지 글월을 어떻게 손질해야 우리 말씨가 되는가를 밝힐 텐데요, 제가 손질한 글월에 앞서, 이 열한 가지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려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스스로 생각해 봐요. 이러면서 우리 마음을 밝히는 말씨란 무엇일는지 곰곰이 짚기로 해요. ‘말씨’란 “말이 되는 씨앗”입니다. 말이 되는 씨앗이란, 우리 삶을 이끌거나 일구는 바탕이 되도록 마음자리에서 흐르는 생각입니다. 마음에 담거나 마음을 드러내는 생각이 ‘말이라는 씨앗’으로 우리 입이나 손을 거쳐서 태어납니다. 어떤 말씨를 가려서 쓰느냐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떻게 생각을 가다듬느냐 하는 삶하고 맞물려요.


  말만 곱게 쓰지 못해요. 언제나 삶을 곱게 가다듬으면서 말이 저절로 곱게 빛날 뿐이랍니다. 말만 꾸미거나 치레하지 못해요. 언제나 살림을 손수 짓는 즐겁고 신나는 하루를 누리기에 말이 시나브로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ㄱ. 눈이 있다.

ㄴ. 내 얼굴이다.

ㄷ. 코가 있다.

ㄹ. 노래를 부른다.

ㅁ. 글을 쓰고 싶다.

ㅂ. 과학자가 되려 한다.

ㅅ. 이렇게 한다(자려고.)

ㅇ. 나는 2학년. / 나는 2학년이다.

ㅈ. 5월 5일이다.

ㅊ. 사야 한다/표를.

ㅋ. 네 것이 아니다.


.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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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솜골


오늘날 ‘익산’이라 이르는 고장은 예전에 ‘이리’란 이름이었다지요. 이 이름을 쓰기 앞서는 ‘솜리’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리(里)’는 ‘마을’을 가리키는 한자예요. 이 한자를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솜리’란 이름을 쓰던 그 고장이나 고을이나 마을은 ‘솜골’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겨울날 쓰는 ‘솜’이 있어요. 솜옷을 짓고 솜이불을 펴지요. 솜은 ‘솜꽃’한테서 얻습니다. 풀이름이 ‘솜’이요, 이 이름 그대로 우리 옷살림에서 아늑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우면서 조용히 돌보는 결을 담은 말입니다. 자, 이 ‘솜’은 겉에 두지 않습니다. ‘속’에 두지요. ‘속’에 두는 ‘ㅁ(집)’이 ‘솜’이에요. 솜골이라는 고을이나 마을은 크게 드러나거나 바깥에 널리 알려진 데가 아니었대요. 바로 조용조용 아늑아늑 포근포근 지내던 터전이었다지요. 속에 있기에 작거나 보잘것없지 않습니다. 그저 속에 있으면서 고요하고 좋지요. 이러한 이름 얼개를 헤아려 본다면, 전북 익산에서만 쓸 ‘솜골(솜리)’이 아닌, 나라 곳곳 오랜 터전을 ‘솜골·속골’이라 할 만해요. 또는 ‘골목마을’이나 ‘오래마을’ 같은 이름도 좋아요. ㅅㄴㄹ


속마을·속골·속고을·솜골·골목마을·옛마을·오래마을 ← 구도심, 구도시, 구촌(舊村), 고도(古都), 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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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이상해 그린이네 그림책장
베랑제르 마리예 지음, 이보미 옮김 / 그린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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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21


《아델은 이상해》

 베랑제르 마리예

 이보미 옮김

 그린북

 2020.8.24.



  저는 치마를 즐겨입는 사내입니다만 늘 치마를 두르지 않습니다. 치마를 두르고 싶을 적에 치마를 두르고, 치마를 안 두르고 싶으면 바지를 뀁니다. 바야흐로 11월을 앞둔 오늘 저는 꽤나 짤막한 바지를 뀁니다. 민소매를 걸치고요. 둘레에서는 “안 춥니?” 하고 물어요. “왜 추워요?” 하고 되묻지요. “아니, 춥잖아?” 하면 “왜 추워야 하는데요?” 하고 되물어요. 한여름에는 늘 땡볕에 서요. 그늘에 서는 일이 없는 저더러 “여기 그늘로 와.” 하고 묻는데 “왜 더워야 해요? 왜 그늘에 가야 해요?” 하고 되묻습니다. 해바라기를 하고 싶기에 한겨울에도 가볍고 짧은 차림으로 다닙니다. 《아델은 이상해》를 읽으며 어쩐지 알쏭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그림책은 “Adele”이란 이름으로만 나왔어요. 우리말로 옮기며 ‘이상해’를 건더더기로 붙였네요. 참으로 군말입니다. 아델은 그저 아델인걸요. 책이름에 쓰잘데기없이 ‘이상해’를 붙이면서 아델을 비롯한 다 다른 숱한 사람을 마치 ‘다른’ 사람으로 그리는데요, 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다 다른 사람 가운데 하나인 다른”일 뿐이에요. 똑같은 들풀은 하나도 없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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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유은실 지음, 김재홍 그림, 권정생 원작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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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20


《그해 가을》

 유은실 엮음

 권정생 글

 김재홍 그림

 창비

 2018.12.14.



  아이를 돌보는 이웃님을 만날 적에 저는 “아이가 학교는 잘 다녀요?”라든지 “아이가 몇 살이어요?” 하고 안 물어요. 이밖에 안 묻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물을 까닭이 없을 뿐더러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요. 둘레 이웃님은 으레 우리한테 이 두 가지를 묻습니다. 저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우리 집 아이들은 ‘우리 집 학교’를 다녀요.” 하고 말하지요. ‘졸업장 학교’가 아닌 보금자리이면서 배움터인 우리 집에서 저희 마음껏 하루를 지어서 누린다고 들려줍니다. 《그해 가을》을 보며 생각합니다. 아, 권정생 할배 글로 엮었네 싶고, 권정생 할배가 살던 그무렵을, 또 권정생 할배가 마주하고 바라본 그 아이, 그 삶터, 그 마을을 어느 만큼 마음으로 맞아들여서 엮었나 궁금합니다. 아니, 딱히 궁금하지는 않아요. 그해 가을 그 아이는 권정생 할배 곁에만 있지 않아요. 오늘 우리 곁에도 수두룩해요. 아이들은 왜 ‘학교’란 이름이 붙은 곳을 다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졸업장’을 받아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놀이’를 누리면 안 되나요? 아이들은 왜 ‘일’을 안 배우면 안 되나요? 올해 가을은 유난히 구름이 아름답습니다. 구름 좀 보며 살아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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