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28.


《책 좀 빌려 줄래?》

 그랜트 스나이더 글·그림/홍한결 옮김, 윌북, 2020.7.10.



두달책(격월간지)을 내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철책(계간지)을 생각했는데, 온나라 마을책집 지기님 스물한 분하고 전화로 얘기하거나 누리글월을 주고받으면서 ‘두 달에 한 자락을 내는 길’이 서로 좋겠다고 여겼다. 다달이 내자면 모두 바빠서 빠듯하지만 석 달은 틈이 좀 길고, 두 달이면 이럭저럭 어울리겠다고들 말씀한다. ‘새 두달책을 내는 밑틀’을 짰고, 문화예술위원회로 보냈다. 이제 그곳에서 이 밑틀을 살펴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알려주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렇게 한 가지를 마치고 숨돌릴틈이 없이 책집 빛그림(사진)을 새로 맡긴다. “책집 빛그림 잔치(책방 사진 전시회)”를 할 곳이 하나둘 늘어난다. 빛그림도 그림판도 많이 든다. 밑돈이 나올 길은 뾰족하지 않지만, 적은 살림돈이어도 책집 빛그림을 바라는 분이 있다면 씩씩하고 즐겁게 마련해서 나누기로 한다. 《책 좀 빌려 줄래?》를 읽었다. 여러 마을책집을 다니며 여러 곳에서 거듭 읽어 본다. 나쁘지는 않은 만화책인데 여러모로 아쉽다. 그린님이 책을 ‘더 많이’ 보고 나서야 만화를 더 잘 그리리라 보지는 않는다. 종이책만 있지 않은 줄 읽지 않는다면, 모든 숲이며 사람이며 숨결이며 바람이며 풀꽃나무에 새랑 풀벌레도 책인 줄 읽지 못하면, 쳇바퀴일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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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0.27.


《풀이 나다》

 한나 글·그림, 딸기책방, 2020.9.21.



서울 사는 분들이 풀꽃나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 글이나 그림을 짓고 책을 펴내는 길이 반가우면서 살며시 아쉽다. 조금 더 풀꽃나무를 마음으로 품고서 글이나 그림을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려 한다. 오늘까지 맞아들이고 바라보며 담은 글이나 그림도 나쁘지 않지만 좀 모자라다고 느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철뿐 아니라, 적어도 열 해를 마주한 뒤에 풀어내면 좋겠다. 왜냐하면, 옛말이 그렇게 알려준다. “열 해이면 들숲이 바뀐다”고 하지.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를 다녀야 하는 열두 해가 아닌, 살림길을 닦는 “들숲이 바뀌는 열 해”를 바라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열 해’란 나무씨 한 톨을 심어서 열매를 얻기까지 드는 날이다. 《풀이 나다》를 펴면서 이 그림책이 제법 삭히고 묵히며 가다듬은 줄거리이지만 조금 더 삭히고 묵히며 가다듬으면 얼거리나 실마리가 사뭇 달랐으리라 본다. 이 그림책이 나쁘단 뜻이 아니다. 예전에 이효리가 알림이로 나와서 퍼뜨린 말 ‘2퍼센트 모자라다’는 말처럼 살짝 밍밍하다. 풀이 돋고, 온풀이 바로 우리 스스로인 줄 알았다면, 우리가 모두 이 별이요, 서로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오롯이 마음으로 헤아려 ‘어른끼리’만이 아니라 ‘아이랑 어깨동무할’ 길로 그려 주시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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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그렇게 하면 : 그렇게 하면 나쁘다고 여기기에, 그렇게 하는 동안 내내 나쁘게 될 일을 그리고, 이 그림대로 받아들이거나 바꿔서 스스로 이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어떤 일놀이도 우리 스스로 그리거나 생각하는 대로 간다. 아프고 싶기에 아프고, 튼튼하고 싶기에 튼튼하다. 일하고 싶으니 일하는 사람이 되고, 놀이하고 싶으니 놀이하는 아이로 웃는다. ‘뭘’ 먹어서 나쁘지 않고, 또 좋지도 않다. ‘뭘 먹는 마음이며 생각’에 따라서 나쁘거나 좋다. ‘뭘’ 읽어서 나쁘지 않고 또 좋지도 않다. ‘뭘 읽으려는 마음이며 생각’에 따라서 나쁘거나 좋다. 이리하여 내가 보기에 참 허접한 책이라 하더라도, 누구는 ‘내가 보기에 허접한 책’을 쥐었어도 그이 마음에는 ‘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살겠어!’ 하는 생각이 흐르기에 그이한테는 아름책이 된다. 거꾸로 ‘남들이 보기에 허접한 책’을 내가 쥘 적에도 매한가지이니, “아니, 그런 허접한 책은 왜 읽어요?” 하고 묻는 이웃님한테 “이 책이 아무리 허접하더라도 배울 대목이 있어서 배워요. 그리고 이런 허접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즐겁게 웃는 마음이 보여서, 이렇게 즐겁게 웃는 마음을 배우려고 읽어요.” 하고 대꾸한다. 2005.10.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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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요? : 둘레에서 으레 “어떻게 그런 데까지 다 알아요?” 하고 묻는다. “저기요,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알 뿐이에요. 제가 모르는 만큼은 모르지요.” “네? 무슨 소리예요?” “저는 제가 찾아보고 살펴보고 헤아리고 생각하고 견주고 따지고 짚고 …… 이렇게 하여 알아내어 받아들인 만큼 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말할 뿐인데, 둘레에서는 제가 ‘다 안다’고 여기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늘 새롭게 배워요. 저는 제가 모르는 것을 배워서 제가 아는 것으로 삼고, 제가 알아내어 즐거이 누리는 살림은 누구한테나 스스럼없이 털어놓아 함께 나눠요.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은 앞으로 언제라도 알아내고 만나리라 여기면서 그 ‘모르는 앎’이 저한테 찾아올 때까지 기쁘게 기다린답니다.”2010.10.2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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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뜻이랑 소리는 하나 : 소리만 알거나 뜻만 짚을 수 없다. ‘말’을 할 적에 ‘교과서 읽듯’ 안 하기에 서로 이야기가 흐른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가볍게 수다를 떨더라도 ‘교과서 읽듯’ 수다를 떠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가볍구나 싶은 말을 종알종알하는 아이들을 보라. 어떤 아이도 ‘교과서 읽듯’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말 아이도 어른도 배움책(교과서)을 손에 쥐면 ‘교과서 읽듯’ 하고 만다. 배움책 아닌 노래책(시집)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조차 “읽어 보셔요” 하고 여쭈면 하나같이 ‘교과서 읽듯’ 말한다. 왜 ‘읊’지 못할까? 왜 ‘수다’나 ‘얘기’를 하지 못할까? 그래서는 뜻도 알 길이 없고, 뜻을 담은 소리인 말이 어떻게 흐르는가도 종잡지 못한다. 이른바 ‘의사소통’이란, 그러니까 ‘이야기’란 소리만으로는 못 한다. 소리에 뜻을 담기에 이야기를 한다. 글은 어떨까? 글씨만 적는대서 글이 될까? 아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종이에 새긴 무늬인 글이라 하더라도, 글쓴이 스스로 이 무늬에다가 이녁 마음이며 사랑이며 꿈을 함께 새겨야 비로소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이야기인 글이 된다. 2020.10.3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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