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게, 봄에게
사이토 린.우키마루 지음,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이하나 옮김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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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22


《가을에게 봄에게》

 사이토 린·우키마루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이하나 옮김

 미디어창비

 2020.9.25.



  옆밭을 일구는 할머니가 우리더러 고구마를 캐 가라 합니다. 할머니는 힘들어서 못 캐신다고 합니다. 두 아이하고 호미를 챙겨 밭고랑을 파는데 고구마알이 하나같이 작습니다. 가만 보니 고구마가 잘 자라지 못하기도 했고, 두더지나 들쥐한테 갉아먹히기도 했네 싶어요. 어느 모로 보면 빼앗긴 셈이지만, 다르게 보면 들이웃한테 나누어 준 셈입니다. 호미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기 때까치가 앉았어요!” 하고 큰아이가 외칩니다. 이윽고 가을햇살이 눈부시게 퍼집니다. 몽글몽글 구름밭은 차츰 걷힙니다. 《가을에게 봄에게》는 철을 따라 철을 읽고 누리는 아이들 몸짓하고 이야기가 흐릅니다. 가을이기에 가을물이 들어요. 봄에는 봄물이 들지요.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곱고, 겨울에는 겨울빛으로 환합니다. 우리는 철마다 다른 숨결이에요. 겨울순이 가을돌이가 되고, 봄순이 여름돌이가 되지요. 어른은 어떤가요? 봄어른이나 가을어른으로 지내나요? 겨울어른이나 여름어른답게 하루살림을 짓나요? 달종이를 덮고, 셈틀은 끄고, 손전화는 밀쳐두기로 해요. 들녘으로 가요. 숲에 깃들어요. 냇물에 몸을 담그고, 바닷물하고 하나가 되어 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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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꽃주기


내가 나한테 꽃을 줍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거든요. 나는 너한테 꽃을 바치지요. 나처럼 너처럼 우리처럼 모두 꽃다이 아름답거든요. 이 일을 해서 보람이 있고, 저곳에서 땀흘리니 열매를 맺어요. 모두 반갑습니다. 돈을 누려도 즐겁고, 노래를 들어도 기뻐요. 덤이 있어야 일하지 않아요. 누가 뭘 주어야 할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드립니다. 저마다 마음이 꽃처럼 피어나 꽃보람이 되어요. 종이쪽을 건네어야 보람차지 않습니다. 꽃송이 하나로 넉넉해요. 또는 꽃씨를 건네어도 좋겠지요. 배움터를 마치는 자리에서든, 어떤 일이 훌륭하다고 기리는 곳에서든, 꽃송이나 꽃씨를 건네면서 보람을 빛내면 어떨까요? 종이쪽은 치우고서 꽃다발을, 꽃송이를, 꽃씨를, 꽃내음을, 꽃빛을 서로 누리면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자리로 꾸미면 어떨까요? 잘 한 일을 남겨야 하는 보람이 아닙니다. 잘 한 그 일을 씨앗처럼 묻고서 새롭게 웃고 노래할 길을 열려는 보람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너한테 꽃을 줍니다. 너는 나한테 꽃을 줍니다. 나는 너한테서 꽃을 받습니다. 너는 나한테서 꽃을 받습니다. ‘꽃자리’요, ‘꽃잔치’입니다. ㅅㄴㄹ


보람·사랑·열매·돈·꽃·꽃덤·꽃보람·노래·덤·덤덤·드리다·드림·바치다·바침·마음·맘 ← 상(賞)

꽃받다·꽃받기 ← 수상(受賞)

꽃주다·꽃주기 ← 수상(授賞), 시상(施賞)

꽃보람터·꽃자리·꽃터·꽃잔치 ← 시상식(施賞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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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거미줄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 새롭습니다. 거미는 하루에도 여러 판 줄을 칠 수 있어요. 새가 끊어도, 바람이 끊어도, 또 사람이 끊어도 거미는 씩씩합니다. 거미줄은 아주 가벼우면서 튼튼하다지요. 사람은 거미한테서 배워 ‘튼튼실’을 짜려 하지만, 아직 거미줄만큼 가볍고 튼튼하게는 못 한대요. 줄을 잇습니다. 그물을 짭니다. 눈을 다스리고, 틀을 엮어요. 판을 마련하고, 짜임새를 보듬으며, 자락마다 알차도록 가꾸며, 얼개를 추스릅니다. 모두 잘 있지요? 다들 잘 계시지요? 문득문득 묻습니다. 그리고 “저도 잘 지내요” 하고 얘기합니다. 오늘은 어떤가요? 하루는 즐겁나요? 삶을 누리나요? 어른한테 여쭙고, 아이한테 묻습니다. 서로서로 알려줍니다. 나무한테도 속삭이고 벌나비하고도 소근소근합니다. 낯빛을 보면서 얘기해요. 얼굴을 살피며 이야기합니다. 어떤 모습인가요? 몸은 어떻게 다스리나요? 하늘에서 드리우는 빛이 땅을 거쳐 누구한테나 퍼집니다. 이 빛을 받고, 저 볕을 먹고, 그 살을 헤아리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마음결처럼 몸결을 가눕니다. 조그마한 풀벗한테서 배운 삶길을 알뜰살뜰 다스립니다. ㅅㄴㄹ


거미줄·길·그물·눈·틀·판·줄·짜임·자락·얼개 ← 망(網), 네트워크

잘 있다·잘 지내다·삶·하루·오늘·묻다·물어보다·여쭈다·여쭙다·알려주다·알리다·절하다·절 ← 안부(安否)

낯빛·얼굴·얼굴빛·모습·몸·몸결·몸빛·빛·오늘·하루 ← 용태(容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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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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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46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해냄

 2020.8.28.



물소리에 스미면서 별빛에 빨려든 적이 있는가. 곡성 섬진강 뿅뿅다리에서 처음 접한 아름다움이었다. (43쪽)


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방이고, 지방이란 곧 촌이란 등식이 성립했던 것이다. 서울 중심주의는 지금도 여전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방 중소도시를 ‘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차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70쪽)


그러나 막지 못했다고 그동안 이어온 활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131쪽)


“그냥 저처럼 들어와 보시죠? 논에 담긴 물과 흙을 맨살로 느껴 보세요.” 장화를 벗지 않고 다시 물었다. “거머리…… 없나요?” “있죠. 많이.” “물지 않습니까, 맨발인데?” “물 틈을 주지 않으면 됩니다.” (215쪽)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276쪽)



소설지기가 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해냄, 2020)는 ‘미실란’이라는 곳을 곡성에서 이끄는 분한테 바치는 책이다. 이렇게 한 사람한테 바치는 이야기를 소설처럼 쓸 수 있네. 새삼스럽지 않지만 서울내기인 김탁환 님이 별빛도 냇물소리도 흙내음도 논물도 사름이나 벼빛도 모를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이 모두를 몰라도 소설을 쓸 수 있고, 서울에서 살 수 있다는 대목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 오늘날 거의 모두라 할 사람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산다. 이제 웬만한 사람은 ‘마당 없는 집’이자 켜켜이 쌓은 잿빛집(아파트)에서 산다. 어느덧 웬만한 사람은 ‘혼씽씽이(자가용)’를 모는데, 하나 아닌 둘셋을 몰기도 한다. 그루(주식)나 벼락종이(복권)를 안 건드리고, 보임틀(텔레비전)을 안 키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하다.


물이며 흙을 맨살로 느껴 본 적이 없이 어떻게 역사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 갈무리한 글이나 책을 살펴서 이리 엮고 저리 짜면 역사소설이 되는가? 바람이며 눈비를 맨살로 느끼지 못하는, 아니 우리를 둘러싸거나 감싸는 이 푸른별을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채 ‘글로 글을 쓰는 길’이 된다면, 그러한 글로 이 푸른별을 더없이 푸르게 누리는 길을 어떻게 열 만할까?


나는 숲길을 맨발로 걷곤 한다. “발 안 아파요?” “발이 왜 아파야 하지요?” “네?” “그 딱닥한 신을 꿰고 걸을 적마다 풀잎이며 흙이 아파서 외치는 소리가 안 들리나요?” “네?” 모기가 팔뚝에 앉아 피를 빨면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기 무는데 안 아파요?” “제 몸 어느 구석에서 피가 막혔나 봐요.” “네?” “모기는 바늘로 우리 몸에서 막힌 데를 뚫어 줘요.” “네? …… 안 간지러워요?” “한의원 가서 바늘(침) 맞고서 아프거나 간지러우셔요?”


서울에서 소설을 쓰는 그분으 이제는 서울을 떠나도 좋겠다. 굳이 서울집을 버려야 하지는 않는다. 그 집은 그대로 두되, 마음이 맞는 시골자락을 찾아 조그마한 빈집 하나 얻어서 그 시골집에서 글을 쓰시면 좋겠다. 한동안 소설쓰기를 쉬신다고 했으니, 온나라를 두루 돌면서 ‘서울사람으로서 서울하고 아주 멀리 떨어져 지낼 만한 숲자락’을 찾아나서면 좋겠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시골자락에서 글샘을 가꾸면, 마을도 서울도 나라도 이웃도 모두 새롭게 바뀌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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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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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36


읽는 직업》

 이은혜

 마음산책

 2020.9.25.



글을 쓰는 동안 여명을 자주 봤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려고 동트기 전 집을 나설 때면 늘 어스름한 하늘 아래서 집 앞에 놓인 파란 쓰레기봉투를 치워주던 키 큰 청년과 마주쳤다. (10쪽)


하지만 출판 시장의 상황에 따라, 혹은 자기 욕망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관계가 삐걱거릴 계기는 도처에 널려 있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문제의식이 치밀해질수록 글은 더 빽빽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년과 중년의 독자들을 모두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청년은 아직 그와 공유할 만한 세계가 별로 없는 반면 중년에 이른 독자들은 그나마 그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치적·역사적 이슈에서 양자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져갔다. (22쪽)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면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2쪽)



책이름부터 누가 썼는지 알 만한 《읽는 직업》(이은혜, 마음산책, 2020)을 읽었다. 나는 ‘쓰는 일’을 하지만, ‘쓰는 일’을 하자면 ‘읽는 일’을 무섭도록 해야 한다. 읽지 않고서는 쓰지 못한다. 거꾸로, ‘읽는 일’을 하자면 어찌해야 할까? 아주 쉽다. ‘읽는 일’을 하자면 ‘쓰는 일’을 해야 한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이 책을 쓰기 앞서까지 ‘쓰는 일’을 얼마나 해봤을까? ‘했을까’가 아닌 ‘해봤을까’이다. ‘읽는 일’이란 거의 일터에 나가서 하지만, ‘쓰는 일’은 여러 갈래인데, 집에서 하거나 길에서 한다. 숲에서 하거나 서울에서 한다. 자다가도 하거나 아기를 돌보면서 한다. 똥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씻기다가 하며, 밥을 지어 차려놓고서 후다닥 쓰기도 한다.


아무래도 ‘읽는 일’만 하는 사람은 ‘쓰는 일’을 아예 모른다고도 할 만하다. ‘쓰는 일’을 하자면 아이들 자장노래를 몇 시간을 부르고 토닥이느라 손에 붓을 못 쥔다. ‘쓰는 일’을 하자면 마감이 닥친 글이 있어도 아이들을 달림이(자전거)에 태워 바람을 쏘이고 같이 놀아야 한다. ‘쓰는 일’을 하자면 나무를 타고 열매도 따고, 밭자락을 돌보며 나물을 훑고, 설거지에 비질에 하루가 더없이 길다. 그러나 ‘쓰는 일’을 하기에 구름빛하고 별빛을 고루 누린다. ‘쓰는 일’을 하기에 구태여 서울에 안 살고 시골에 고즈넉히 깃들 만하다. ‘쓰는 일’을 하기에 하루 내내 밥을 안 먹고서 오롯이 마음을 불태워 새 이야기를 짓곤 한다.


새삼스럽지만 “노년에 이른 작가”는 나이만 먹지 않는다. 두 갈래이다. 한켠은 나이·이름·돈·힘을 먹으면서 고리타분하다면, 다른켠은 살림·사랑·삶·슬기를 먹으면서 짙푸르면서 새롭다. 젊은이라 해서 안 슬기롭지 않고, 젊다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다. ‘읽는 일’만으로는 이 길을 헤아리지 못하니, 적잖은 출판사 엮음이는 ‘속글 아닌 겉글’을 훑다고 그치곤 한다.


이래저래 ‘쓰는 일’을 모르기에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야 만다. 참(팩트체커)을 말하는 사람이 왜 차가울까? 참을 찾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차갑지 않은가? 참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을 참으로 여기는 사람’을 가르칠 마음이 없다. 그저 스스로 참을 알고 참답게 살아가고 싶기에 참을 찾을 뿐이요, 애써 찾아낸 참을 혼자만 알 까닭이 없다고 여겨 누구나 알도록 열어 놓는다.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삶길에서 찾아낸 참빛을 그저 스스로 누리다가 혼자만 건사할 뜻이 없기에 누구라도 읽도록 풀어낸다. 그리고 풀꽃나무를 읽고, 구름별을 읽으며, 눈비바람을 읽는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엮음이로 열다섯 해를 살았다는데, 이 책을 쓴 이해가 ‘참다운 엮음이로 첫발을’ 디딘 셈이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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