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6


《노란 손수건》

 오천석 엮음

 샘터

 1975.12.5.



  2007년에 200벌을 찍었다는 《노란 손수건》인데, 펴낸곳에서 말하기를 1977년에 처음 냈다고 하더군요. 꽤 아리송합니다. 제가 장만해서 읽은 《노란 손수건》은 1975년에 780원으로 값을 매겨 나온 검파란 빛깔인 책이거든요. ‘샘터’는 노란 빛깔인 겉그림으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지만 검파란 빛깔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사랑을》이란 책도 검파란 빛깔로 1975년 12월 5일에 나란히 펴냈습니다. 어쩌면 펴낸곳에 이 첫판이 없는지 모릅니다. 노란 빛깔로 낸 첫판은 있되, 검파란 빛깔로 낸 첫판은 건사하지 않거나 못했을 수 있어요. 가만 보면 웬만한 곳마다 따로 발자취를 건사하지 않거나 못합니다. 바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뿐 아니라, 일터를 옮기다 보면 잃기도 하고, 책을 알리고 파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느라, 정작 그동안 흘린 땀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 발자취는 일꾼이 나가고 나면 모두 지워지기 마련이라, 누가 언제 어떤 책을 엮고 꾸미고 알리며 팔았는가도 모르기 일쑤이지요. 함께 일한 사람들이 쓰던 이름쪽(명함)을 알뜰히 건사해서 ‘펴낸곳 발자취’로 갈무리하는 손길이 있을까요? 200벌을 찍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손길이 깃들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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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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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너머 아프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183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최선경 옮김, 안나 회글룬트 그림 / 비룡소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24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

 바르트 무야르트

 안나 회그룬드

 최선경 옮김

 비룡소

 2007.4.20.



  예부터 모든 집은 손수 짓고 가꾸었어요. 남이 지어 주는 일은 없다시피 합니다. 다만, 때때로 남이 지은 집에 살았으니, 임금이나 벼슬아치입니다. 이들은 손에 흙 한 톨이며 물 한 방울 안 묻히고서 먹고 입고 잤어요. 누구나 손수 집을 짓고 가꾸던 무렵에는 저마다 다른 살림새에 보금자리에 말씨에 생각이 홀가분하게 흘렀습니다. 가만 보면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틀에 박힌 말씨에 생각이었지요. 이 나라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중국바라기가 되어 스스로 슬기로이 넋을 가꾸는 길하고 동떨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남이 지어 놓은 집에서 살고, 남이 지어 준 옷을 입으며, 남이 차린 밥을 먹으면서, 모두 틀에 박힌 생각이나 말씨이지는 않나요?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는 ‘나랑 이웃집 아주머니’ 사이에 흐른 하루를 들려줍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내가 쓰는 말하고는 다른 말’을 쓰고, ‘나랑 다른 옷차림’이며 ‘둘레 한터집(연립주택)’하고 다른 집살림으로 나아간다지요. ‘나(아이)’도 어버이랑 손수 집을 짓고 가꾼다면 틀림없이 ‘다르면서 새로운’ 살림이자 생각이 될 테지요. 울타리(틀) 너머는 아름다움(다름)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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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월의 친구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0
미샤 담얀 지음, 이명희 옮김, 두산 칼라이 그림 / 마루벌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23


《십이월의 친구들》

 미샤 담얀 글

 두산칼라이 그림

 이명희 옮김

 마루벌

 1996.9.20.



  그냥 오는 달은 없습니다. 시월도 십일월도 지난 서른 날이 차곡차곡 흐르고서 찾아와요. 그냥 가는 달은 없지요. 십이월도 일도 이 서른 날이 찬찬히 빛나고서야 떠납니다. 똑같은 달이 없고, 똑같은 날도 없어요. 똑같은 아침이 없고, 똑같은 밤도 없어요. 모든 하루는 늘 달라서 새로우면서 반갑습니다. 이리하여 아침저녁을 똑같이 보내는 일이란 없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배움터나 일터를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라 할 어린이하고 어른은 날마다 똑같은 틀에 맞추어 움직여요. 무엇을 배우거나 어느 돈벌이를 하더라도 어쩐지 쳇바퀴입니다. 《십이월의 친구들》에 나오는 ‘십이월’은 다른 열한 달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고 해요. 열한 달을 두루 만나는 사이 한 해를 이루는 열두 길을 비로소 깊고 넓게 헤아리는 마음이 되었다는데, 이러면서 ‘십이월’인 열두걸음이 어떠한 뜻이면서 빛이고 삶인가를 살포시 알아차렸다지요. 우리는 오늘 아침을 열며 무엇을 보고 느껴서 아는가요? 우리는 오늘 밤을 닫으며 무엇을 갈무리하고 담고 나누는가요? 빛나는 하루이면 좋겠습니다. 놀라운 삶이면 좋겠습니다. 사랑스레 누리는 길이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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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책 쥐는 손길 : ‘책읽기’도 책읽기일 테지만 ‘책을 쥐는 손길’조차 배움터에서 못 배우기 일쑤이다. 책숲(도서관)이나 배움터에서 책읽기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기 앞서 ‘책을 쥐는 손길’부터 가르쳐야 할 텐데, 책숲도 배움터도 어린이·푸름이한테 ‘책을 어떻게 쥐고 다루고 만지는가’를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나 길잡이(교사) 가운데 쥠새(책 쥐는 손길)를 제대로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그들도 열림배움터(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쥠새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쥠새는 먼저 어버이한테서 배운다. 어버이가 집에서 책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지켜보고 고스란히 따라하지. 어버이가 집안살림을 어떻게 매만지느냐를 그대로 따라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집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배울 수 있다. 이때에는 어버이나 어른도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제대로 배울 노릇이다. 같이 배워야지. 생각해 보라. 밥지기(요리사)가 되려 할 적에 쥠새가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준다. 주먹솜씨(무술)를 가르칠 적에도 몸차림이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지. 그런데 책은 너무 마구 읽혀 버리고 만다. 책을 제대로 쥐지 않고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망가뜨리는 손길로 책을 많이 읽는들, 엉성하거나 엉터리인 손길에서 어떤 마음길로 이어질까? 왜 예부터 배울 적에는 반듯하게 앉으라 하겠는가? 왜 예부터 배우는 사람더러 등허리를 꼿꼿이 펴고 차분히 지켜보면서 마음을 모으라 하겠는가? 책은 누워서 읽어도 좋고, 국수를 삶아서 먹으며 읽어도 좋다만, 쥠새가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눕거나 국수먹기를 한다면 책이 망가지거나 다친다. 쥠새가 제대로 서면 칙칙폭폭(기차)을 타든 씽씽이(자동차)에서든 책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거이 읽을 만하다. 글씨쓰기를 할 적에 붓을 똑바로 힘을 실어 쥐도록 이끌듯, 책읽기를 할 적에도 책을 참하게 쥐고서 읽도록 먼저 이끌어야겠지. 섣불리 책을 펴서 줄거리부터 읽히지 말 노릇이다. 제대로 쥘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책이고 나발이고 없다. 1999.1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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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귀신 쫓기 : 스스로 사랑하면 되더군. 귀신뿐 아니라 다른 것을 놓고도 무서운 것은 똑같이 있기 마련. 어느 때에나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스스로 나를 믿고 사랑하며 바라볼 적에는, 어느새 둘레에 그 모든 아이들이 이슬처럼 사라지더군. 무슨무슨 퇴치나 굿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나사랑’ 하나로 끝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늘 두려워 떨거나, 이것이 싫거나 저것이 밉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늘 새로우면서 즐겁고 홀가분해서 날아오른다. 2014.1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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