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슈퍼 13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39


《드래곤볼 슈퍼 13》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10.20.



“요, 욕. 메탈맨에게 그런 약점이.” “천진반이 할 수 있을까? 욕을?” (21쪽)


“이건 인간의 기술이 아니로군?” “그래, 신들이 사용하는 기술, ‘무의식의 극이’의 ‘징조’다.” (97쪽)


“지금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출발해도 열흘이 넘게 걸려요!” “당장 가르쳐라. 내게 당장 순간이동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하고 있잖아.” (165쪽)


“메르스 씨, 별이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건 우주의 긴 사이클 속에서는 모두 필요한 일입니다. 과도한 간섭으로 자연의 흐름을 바꿔버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 그건 그렇지만.” “심지어 그것을 판단하는 건 비루스 님이나 계왕신 님이지, 우리 천사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172쪽)



《드래곤볼 슈퍼 13》(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0)은 열석걸음에 맞게 재미나구나 싶은 이야기가 갈마든다. 푸른별을 지키고 싶은 푸른별 싸울아비는 다른별 싸울아비하고 맞서는데, ‘착한 천진반이 막말(욕)만큼은 하지 못해서 애먹는’ 대목이라든지, 동무 손오공이 늦지 않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크리링이 마음으로 온누리에 기운을 쭉쭉 내보내는 대목이라든지, 저마다 한 걸음씩 발돋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곰곰이 보면, 우리는 발돋움하려고 새롭게 하루를 맞이하지 싶다. 더는 발돋움할 꿈이 없다면 폭삭 늙으면서 이 몸에 깃들던 넋이 떠나 버리지 싶다. 손오공이나 베지터는 어떻게 몸을 갈고닦아서 자꾸자꾸 거듭날까? 수수께끼는 쉽다. 둘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은 물러서지 않는다. 때로는 ‘오늘은 안 되겠군. 이곳을 떠나 기운을 더 키우자’ 하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에서도 막바른 벼랑끝까지 가지 않고서야 ‘아, 안 되겠네’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열석걸음째에 이르니 베지커는 그토록 못마땅해 하던 바로가기(순간이동)까지 익히는데, 이들 모두한테 가장 여린 대목 하나라면 ‘자랑(자만심)’이다. 예전에서 한 걸음 딛고 일어섰다면 바로 끝내면 좋을 텐데, 어쩐지 다들 ‘새롭게 거듭난 자리’에서 슬쩍 자랑을 하다가 일을 그르치곤 한다. 만화책에는 아직 안 나왔으나 만화영화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손오공도 베지터도 그만 ‘힘자랑’을 하다가 푸른별을 통째로 날려먹을 뻔한 적이 있다. 가만히 따지자면, 손오공하고 베지터랑 맞붙는 다른별 싸울아비도 ‘네까짓것이 나한테 되려고?’ 하면서 비웃거나 힘자랑을 하다가 고꾸라지지. 다음 열넉걸음에서는 손오공하고 베지터가 또 얼마나 한 걸음 나아가는 몸짓이 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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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숲노래 글쓰기

나는 말꽃이다 7 혼배움



  ‘보편성’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사람들한테 익숙한 일본 한자말”이란 썩 알맞지 않은 말이에요. ‘사람들’이 아닌 ‘몇몇 어른’이라 해야 할 테고, ‘책을 좀 읽은 어른’이나 ‘배움터를 오래 다닌 어른’이나 ‘벼슬자리나 일터를 다니는 어른’이라 해야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짓는 어른이라든지 어린이는 사뭇 다르거든요. 아무리 어른한테 익숙한 일본 한자말이어도 어린이나 시골사람한테는 매우 낯설어요. 게다가 이웃나라 사람한테도 낯설 뿐 아니라 어렵지요. ‘자작·자작자음’ 같은 한자말은 어린이도 이웃나라 사람도 참 까다롭습니다만, ‘혼술’, 곧 ‘혼 + 술’ 얼개로 지은 말은 어린이도 이웃나라 사람도 참 쉬워요. 게다가 말을 이렇게 지으면서 우리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삶결대로 스스럼없이 나타내면 되는구나 하고 깨달을 만하지요. 붓꾼이 지어 주는 말이 아니라, 살림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스스로 즐겁게 지으며 이웃 누구나 서글서글 받아들일 만한 말을 지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말꽃입니다. ‘혼’을 붙여 ‘혼배움’이라면 ‘독학’이며 ‘가정교육·홈스쿨링’을 가리켜요. 집에서 혼자(스스로) 배우기에 ‘혼배움’이거든요. 삶을 지으면 말을 함께 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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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숲노래 글쓰기

나는 말꽃이다 6 보편성



  말꽃 가운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다 보니 꽤 자주 “그런데 있잖아요, 그 말은 아직 사람들이 널리 안 쓰는, 이른바 보편성이 떨어져 보이는데, 그런 낱말을 말꽃에 실어도 돼요? 그냥 익숙한 일본 한자말을 쓰면 되지 않아요?”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때 저는 아주 홀가분하게 “네, 얼핏 보자면 어느 말은 아직 사람들이 덜 쓸는지 몰라요. 그래서 이제부터 쓰자는 뜻으로 말꽃에 실어요. 말꽃에 싣는 말이란 ‘사람들이 자주 쓰거나 흔히 쓰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앞으로 즐겁거나 새롭게 쓸 말’이 되기도 해요. 늘 이 두 갈래를 갈마들면서 올림말을 다룬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혼밥·혼술’ 같은 낱말을 올림말로 다룰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혼술’은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없으나 ‘자작(自酌)’은 있어요. 게다가 ‘자작자음(自酌自飮)’ 같은 한자말까지 싣더군요. 제가 쓰는 말꽃에는 ‘자작(자작자음) → 혼술’처럼 다룹니다. 이러면서 ‘혼술’을 즐겁게 올림말로 삼으면서 뜻풀이를 붙이지요. 제가 쓰는 말꽃은 ‘혼밥’뿐 아니라 ‘혼멋·혼살림·혼마실·혼배움·혼노래·혼넋’ 같은 낱말도 나란히 실으면서 우리 스스로 말길을 새롭게 여는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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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숲노래 글쓰기

나는 말꽃이다 5 알기에 배운다



  1994년에 ‘낱말책’이란 이름을 짓고서 2020년에 ‘말꽃’이란 이름을 붙여 보는데, 1994년에는 “낱말책 : 낱말을 모은 책”으로 바라보았다면, 2020년에 이르러 “말꽃 : 새롭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도록 마음에 생각으로 심을 씨앗이 될 말을 차근차근 짚어서 차곡차곡 엮은 다음 알맞게 가다듬고 골라 서로 다른 자리에 저마다 다른 결하고 쓰임을 즐겁게 읽고 느껴서 아름답게 쓰도록 이끌어 넉넉히 피어나도록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책”으로 바라봅니다. 두 낱말 ‘낱말책·말꽃’을 섞어서 씁니다. 자리에 맞게 쓰고 싶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낱말은 꼭 하나만 있지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여러 낱말로 한 가지를 가리켜도 좋아요. 또, 한 낱말로 여러 가지를 가리켜도 재미나지요. 이를테면 ‘눈’이나 ‘배’란 한 가지로 여러 가지를 가리키거든요. 말꽃짓기란 ‘배우면서 새로 알아가는 기쁜 길’입니다. ‘배워서 알았기에 이다음으로 더 알아차려서 한결 깊고 넓게 나아갈 넋이 있으리라 여기는 새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이 낱말을 오늘 이렇게 풀어냈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배울수록 뜻풀이를 새롭게 할 만하고, 살을 붙일 만하며, 다르게 바라볼 만해요. 알기에 안 끝내고, 알기에 더욱 신나게 배웁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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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7


《人間의 壁 中編》

 石川達三

 육순복 옮김

 보성사

 1962.3.1.



  스물다섯 살 무렵일 즈음, 군대도 다녀오고 책마을 일꾼으로 지내다가 어느덧 어린이말꽃(어린이 국어사전) 엮음이로 일할 때, 인천 배다리 헌책집 아주머니가 “그런데 자네 《인간의 길》이라는 책 읽어 봤나? 다른 책도 많이 읽는 줄 알지만, 그 책부터 좀 읽어 보면 어떨까?” 하셨어요. 요새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인간의 길》은 열 자락으로 나온 꽤 긴 책이요, 일본이 여러 나라를 짓밟을 적에 ‘그 일본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멍울과 생채기’를 붙안는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치르는가를 담습니다. 그런데 헌책집지기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인간의 벽》이란 책을 찾아서 읽었지요. 이러고서 “이 책 말씀하셨지요? 참 아름답던데요?” 하니 “아니, 난 ‘벽’이 아니고 ‘길’을 말했는데 …….” “네? 어, 다른 책이 있나요?” “그래, 그런데 ‘벽’도 ‘길’처럼 아름다운 책이지.” 책이름을 잘못 알아듣고서 ‘이시카와 다쓰조(1905∼1985)’를 만났어요. 책이름을 제대로 들었다면 아마 못 만났거나, 한울림에서 1984년에 새로 옮긴 책이나, 양철북에서 2011년 다시 옮긴 책을 만났겠지요. 1965년 일이 있기 앞서까지 아름다운 일본 글이 이 나라에 무척 많이 나왔다가 1980년에 이르도록 꽉 막혔어요. 갑갑한 나라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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