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씨앗 꿈을 그린 에릭 칼 1
에릭 칼 지음, 허은미 옮김 / 더큰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56


《작은 꽃씨 해미》

 에릭 칼

 이현주 옮김

 보림

 1989.9.15.



  씨앗은 작습니다. 씨앗이기에 작습니다. 씨앗이 크다면 사람이며 짐승이며 풀벌레이며 풀꽃나무이며 얼마나 더 커야 할까요? 씨앗은 작지만, 굳이 작다고 할 만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씨앗은 저마다 앞으로 커 나갈 길이 다를 뿐이거든요. 처음을 여는 길이자 마무리를 짓는 곬이 씨앗이지 싶어요. 씨앗으로서 움트고, 삶을 마감하며 씨앗으로 돌아가요. 비롯하는 자리이면서 마감하는 데가 씨앗이랄까요. 1989년에는 《작은 꽃씨 해미》란 이름을 달고서 꾸러미로 나왔고, 2007년에 《아주 작은 씨앗》이란 이름으로 새로 나온 그림책은 자그마한 씨앗 한 톨이 어떻게 빛나는가 하는 줄거리를 산뜻하면서 시원스레 보여줍니다. 이 작은 씨앗은 어린이 같달 수 있지만, 어른이기도 해요. 씨앗은 풀도 꽃도 나무도 되는데, 풀이나 꽃이나 나무란 모습은 바로 어른입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생각해야지요. 아이도 꽃이지만 어른도 꽃입니다. 아이도 씨앗이면서 어른도 씨앗이에요. 겉모습이 아이어른으로 다를 뿐,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 같은 빛으로 눈부신 씨앗이자 꽃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어내면, 어른 곁 아이란 가장 살가운 동무이자 이웃이며 사랑인 줄 알겠지요.

.

ㅅㄴㄹ

#EricCarle #Thetinysee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여기에 있어 정원 그림책 11
M. H. 클라크 지음,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윤정숙 옮김 / 봄의정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59


《우리는 여기에 있어》

 M.H.클라크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윤정숙 옮김

 봄의정원

 2017.8.25.



  아이가 크면 칸을 갈라 따로 지내도록 할 만하지만, 아이가 아직 어릴 적에는 또 아이가 크더라도 다같이 잠자리에 들 만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서도록 따로 재우기도 하지만, 굳이 일찌감치 잠자리를 갈라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숨소리를 느낄 적에 가장 잘 자요.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숨길을 느끼면 스스로 포근하고, 이 포근한 기운을 두고두고 담아 자라기에 사랑스럽고 듬직한 어른으로 서는구나 싶어요. 《우리는 여기에 있어》를 읽는 내내 어쩐지 ‘아이가 있는 곳’하고 ‘어른이 있는 곳’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어디서 사나요? 서울이나 큰고장 같은 이름이 아닌, 우리 삶터는 어디이고, 우리 살림터나 사랑터는 어디인가요? 아이하고 삶을 나누는 터전인 보금자리는 무엇인가요? 나라일꾼은 집값(부동산)을 잡는다며 안달이지만, 우리가 돈으로 셈하는 집값이 아닌 보금자리를 찾아 아이들하고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다면 나라일꾼이 용쓸 일도 없고, 우리도 걱정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어디에 있나요? 우리가 오늘 하루를 짓는 ‘여기’는 보금자리인가요, 살짝 머물다 갈 곳인가요?

.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시선 277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68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시영

 창비

 2007.6.15.



  1995년부터 2020년에 이르도록 제가 하는 일을 ‘일칸(직업 기입란)’에 적어 넣지 못합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말꽃지음이(사전집필자), 갈무리지기(유고 정리자), 책숲지기(도서관장), 살림꾼(가정주부) 같은 일을 적을 만한 일칸이란 없습니다. 가만 보면 일칸에 ‘흙살림꾼(농부)’ 자리도 없습니다. 일칸은 언제나 큰고장에서 돈을 버는 자리만 다룰 뿐입니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을 살피는 ‘살림꾼’은 왜 일이 아니라고 여길까요? 새벽을 여는 나름이를 비롯해 짐을 옮기는 나름이도 이제는 어엿이 일칸에 넣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를 읽으니, 노래님하고 술을 마신 사람들하고 얽힌 글자락은 퍽 푼더분하되, 다른 글자락은 먼발치에서 뒷짐을 서며 바라본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뒷짐을 선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머리끈을 질끈 동이며 앞장서지는 않으며, 뒷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뒤켠에도 삶이 있으며, 살림과 사랑으로 오늘을 녹여 노래로 빚을 만합니다. 그나저나 노래님은 일칸에 어떤 이름을 적어 넣었을까요? 시인? 창비? 교수? 이사장? 먼데보다 곁을 보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달빛이 대숲에 하얗게 부서져내리는 밤, 웬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방 창문 앞에 쿵 하고 무언가를 부려놓았다. 아버지 등에 업혀 시오릿길을 꼬박 걸어온 옻칠이 반지르르한 앉은뱅이책상이었다. (책상 동무/18쪽)


금강산에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요?”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바지를 몇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시인이라는 직업/3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68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문학과지성사

 2004.8.27.


  저는 담배를 안 피웁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담배짬을 안 누립니다. 그냥 일해요. 일하다가 숨을 돌리는 짬은 매우 짧다고 여길 만하지요. 둘레에서 “안 힘들어요? 좀 쉬지요?” 하고 묻고 “왜 힘들어야 해요? 저는 제가 쉬고 싶은 만큼 쉬어요.” 하고 대꾸합니다. 12월에 접어들어도 저는 반바지에 민소매를 걸칩니다. 그렇다고 긴소매에 긴바지를 안 입지 않아요. 해랑 날씨랑 바람에 따라 달리 입어요. 둘레에서 “안 추워요?” 하고 묻기에 “안 더워요?”로 대꾸합니다. 12월 저녁, 작은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우고 반바지 차림으로 달립니다. 《사라진 손바닥》을 읽으며 ‘젊음이 간다’고 느끼는 노래님 마음을 문득 느낍니다. 몇 살 나이여야 젊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으레 서른이나 마흔 줄은 젊음이 아니라고 여기지 싶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보면 쉰 줄조차 아기로 여겨요. 서울살이라면 고작 스무 줄 언저리만 젊음으로 볼 뿐, 다른 나이는 어떠한 결인가를 헤아리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젊음은 몸 아닌 마음빛으로 헤아려야지 싶어요. 마음이 젊어야 젊음이요, 마음이 맑아야 맑음일 테지요. 손바닥에 꽃씨를 얹어 보면 좋겠습니다.



방에 마른 열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 깨달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 책상 위의 석류와 탱자는 돌보다 딱딱해졌다. / 향기가 사라지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 그들은 향기를 잃는 대신 영생을 얻었을까. (풍장의 습관/16쪽)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연두에 울다/5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말꽃

오늘말. 흘러넘치다


사랑이 흘러넘치면 귀찮을 일이 없습니다. 혼자 사는데 먹을거리가 흘러넘치면 이때에는 귀찮거나 번거로울는지 몰라요. 돈이 넘쳐서 어려울 일이 있기도 합니다. 돈내음을 맡고 달라붙는 사람이 있거든요. 돈이 남아돈다면 돈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도록 먼저 둘레에 아름다이 나누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마음이면 어렵지 않아요. 사랑이 없으니 힘들거나 버겁지요. 움직여 봐요. 쓱싹하지 말고 다스려요. 이웃을 끝장내려는 마음이 아닌, 이웃을 토닥이면서 스스로 어루만지는 마음이 되어요. 즐겁게 손쓰니 환하게 피어납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거머쥐려 한들 참말로 벅찹니다. 혼자 먹어치울 생각은 깨끗이 치우고서, 가볍게 몸을 쓰면서 살림을 꾸리고 마을을 달래며 온누리를 가누는 기쁜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두름손을 펴면 돼요. 곱게 뜻을 품으면 되지요. 얼른 해치울 생각은 말고, 남을 제쳐서 올라서려 하지도 말고, 같이 해보는 상냥한 손빛이 되면 좋겠습니다. 많기에 나누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눕니다. 안 흘러넘쳐도 얼마든지 나눌 만해요. 콩 한 톨도 나누고, 돈 한 닢도 나누기에, 바로 이곳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ㅅㄴㄹ


귀찮다·성가시다·번거롭다·어렵다·힘들다·까다롭다·버겁다·벅차다·너무하다·지나치다·많다·남아돌다·넘치다·흘러넘치다 ← 처치곤란


가누다·꾸리다·추스르다·가다·하다·해보다·삼다·여기다·갈무리·걷다·굴리다·움직이다·몸을 쓰다·끝내다·끝장·치우다·잡다·제치다·박살·죽이다·없애다·해치우다·쓱싹하다·다루다·다스리다·두다·만지다·매만지다·주무르다·다독이다·달래다·토닥이다·돌보다·어루만지다·두름손·팔다·뜻·손대다·손쓰다·시키다·쓰다·힘쓰다·애쓰다·주체하다·먹다·먹어치우다 ← 처치(處置)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