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마르셰에서 봉봉 2
카와카미 준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50


《일요일은 마르셰에서 봉봉 2》

 카와카미 준코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2.9.15.



“그거 알아? 저 애, 밤마다 온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고 돌아다녔어. 괜찮은 척하면서도 사실은 무서운 거지.” (36쪽)


‘마망은 내가 없으면 브르타뉴에 남을 거야? 지금 당장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갈 거야?’ (43쪽)


“나 왠지 오늘 일을 평생의 추억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욤이 리프트를 해줬을 때, 난 한 마리 새가 된 것 같았어.” (100쪽)



《일요일은 마르셰에서 봉봉 2》(카와카미 준코/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2)을 읽다가 생각한다. 두걸음이 끝은 아닐 텐데 2012년을 끝으로 언제 석걸음이 나올는 지 모른다. 아마 한글판은 안 나온 채 이대로 끝일 수 있으리라. 내가 큰고장에서 산다면야 이 그림꽃책을 조금은 재미있게 보았을는지 모르고, 큰고장에서 살더라도 이 줄거리는 따분하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시골이란 터전에서 ‘마침종이 배움터(졸업장 학교)’는 더없이 부질없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눈썰미로 본다면, 그냥그냥 큰고장 틀거리대로 살아가는 수수한 모습은 밋밋하거나 재미없을 만하다. 다만 이 그림꽃책에는 토실토실한 가시내가 이야기를 이끌기에 조금 다르다. 사람마다 삶도 몸도 마음도 다르다는 대목을 어렴풋하게나마 짚으니 볼만할 수 있는데, 너무 서울스러운(파리스러운) 얼개는 썩 당기지 않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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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 김전일 10
가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317


《소년탐정 김전일 10》

 카나리 요자부로 글

 사토 후미야 그림

 이현미 옮김

 서울문화사

 1997.3.30.



  우리가 누리는 삶이란 어쩐지 수수께끼나 실타래일는지 모릅니다. 알쏭달쏭하면서도 천천히 풀어낼 길이 있으니 수수께끼입니다. 새롭게 옷을 뜰 수 있는 실을 뭉쳐 놓은듯 앞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가득하니 실타래입니다. 알쏭달쏭한 일을 겪을 적마다 아찔하지만,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면서 곰곰이 짚어 나갑니다. 어디에서 막히거나 꼬였나 헤아리고, 이 첫머리부터 풀어내기로 하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걷히면서 하나하나 속내가 드러나더군요. 《소년탐정 김전일 10》을 보면, 푸름이가 이런 수수께끼나 저런 실타래를 푸는 솜씨는 꼭 남다르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안 서두르면 풀어낼 길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겪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이 아닌, 이 겉모습에 깃든 속모습을 마음으로 읽으려고 생각하기에 실타래를 한 올씩 풀 만합니다. 눈썰미가 뛰어나다면 좀 빠르게 풀 테지만, 눈썰미가 없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가려 한다면 누구이든 다 풀어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찬찬히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나요? 다른 일이 많다면서 얼른 치우려고 하기에 겉발림에 속아넘어가지 않나요? 이 삶을 오롯이 누리려는 고요한 마음이라면, 속임짓도 밉짓도 사라집니다. ㅅㄴㄹ



“하지만 그 애들은 입시 노이로제 같은 걸로 자살한 거잖아요? 선생님 탓도 아닐 텐데.” “한 마디로 입시 노이로제라고는 하지만, 그 애들은 마음을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19∼20쪽)


“하지만 내가 알아낸 건 더 무자비하고, 잔혹한 사실이었다구!” (158쪽)


“우리들이 직면하는 ‘문제’에선 정해진 답 같은 건 없지요. 난 내 직감에 따라서 한 것뿐이에요. 선생님도 같았을 텐데요. 분명 후카마치는 굉장히 처참하게 죽었죠. 하지만 그 문제의 ‘해답’은 복수 말고도 다른 게 있었잖아요?”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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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4.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한영수 사진, 한선정 엮음, 한영수문화재단, 2020.12.1.



어제 안경을 잃었다. 어디서 잃었을까? 작은아이하고 밤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눈이 허전해서 짚으니 안경이 없네. 이튿날 낮인 오늘, 눈을 찾으러 나선다. 길바닥을 곰곰이 본다. 길바닥에는 안 흘렸다. 바퀴에 안 밟혔겠구나. 어제 들른 가게에 가서 묻는다. 이곳에 있네. 이 겨울에 치마반바지를 두르고 달림이를 몬다. 바람을 가른다. 뭐 달림이를 몰 적뿐 아니라 이불빨래를 할 적에도 깡똥바지를 입어야지. 우리 팔다리는 햇볕을 쬐고 싶어한다. 우리 팔다리는 맑게 흐르는 물을 맨살로 누리고 싶다. 우리 팔다리는 풀잎을 바람결을 빗방울을 고스란히 맞아들이고 싶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를 넘긴다. 속에 깃든 빛꽃은 까망하양이지만, 책낯은 배롱꽃빛이다. 진달래빛이요, 코딱지나물꽃빛이다. 온누리에 이 바알간 빛깔인 꽃이 참 많다. 꽃빛을 담고 싶어 배롱꽃빛 치마를 저고리를 옷을 지어 입었으리라. 이 고운 빛살은 가시내한테도 어울리지만 사내한테도 어울린다. 누구한테나 어울린다. 진달래가 바알간 꽃송이를 터뜨린대서 놀리는 사람이 없다. ‘코딱지나물’이란 이름이어도 이 꽃빛이 얼마나 고운가 들여다보면 좋겠다. 가을날 살살이꽃도 이 바알간 꽃으로 물들곤 한다. 바알갛게 영근 빛꽃책에 ‘눈뜨다’를 올린다.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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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3.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글/김난주 옮김, 비채, 2020.10.26.



어둑어둑한 저녁. 겨울이 깊어가니 어둠은 일찍 찾아온다. 하루하루 눕는 햇살이니, 12월 끝자락까지 이 ‘눕햇살’과 ‘깊저녁’을 누린다. 이제 바깥은 조용할 듯하다. 오늘로 우리나라 배움수렁이 끝나지 않겠지만, 이 하루를 지나니 좀 조용하겠지. 작은아이하고 밤빛을 누리려고 달림이를 몰기로 한다. 밤빛을 보고, 밤별을 본다. 뒷불만 켜고 앞불은 안 켠다. 천천히 달리면서 우리 둘레로 별이 얼마나 흐드러지는가를 느낀다.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었다. 꽤 짧고 수수한 이야기이다. 굳이 무라카미 하루키 아닌 누구라도 쓸 만한 이야기이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읽을 만할 테지만, 하루키를 딱히 안 좋아한다면 건너뛰어도 좋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를 낳은 아버지’ 이야기를 아버지한테서 바로 들으면 되니까. 이웃님이 이런 글쓰기를 하면 좋겠다. 글감을 먼발치에서 찾지 말고, 이웃님 어머니랑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이웃님 할머니랑 할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이웃님 아이들 이야기를 쓰기를 바란다. 수수하게 쓰면 된다. 살아오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며 사랑한 모두를 그대로 쓰면 된다. 우리가 쓴 우리 이야기는 펴낼 곳을 따로 안 알아봐도 된다. 손수 내면 되지. ‘혼책(독립출판물)’으로 내놓아 이웃 사이에 나누면 즐겁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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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2.2.


《할머니의 좋은 점》

 김경희 글, 자기만의방, 2020.6.2.



면사무소에서 12월 3일에 경운기도 자동차도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알린다. 그래그래, 나쁘지 않은 알림말이긴 한데, 푸름이한테 더 마음을 써야 한다는 뜻인 줄은 알겠는데, 어른으로서 여태까지 배움수렁(입시지옥)을 그대로 둔 일을 조금이라도 뉘우치거나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배움수렁을 없애지 않고서 무엇이 달라질까? 앞배움길(대학입시)이라면 그야말로 앞으로 가는 배움길이 되어야 한다. 서로 치고받으면서 동무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면 배움길이 아니다. 마침종이(졸업장) 하나를 흔들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하니, 다들 악을 쓰면서 싸우지 않을까? 즐겁게 일하고, 힘껏 일하며, 듬직히 일하는 누구나 고르게 일삯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어른으로서 땀흘릴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좋은 점》을 보면서 생각한다. 할머니란, 얼마나 슬기로운 눈빛일까. 그리고 할아버지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길일까. 아, 푸름이가 배움수렁에서 헤매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삶하고 살림을 배우면 좋을 텐데. 교원자격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 말고, 슬기로운 삶하고 사랑스러운 살림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새길을 열면 좋을 텐데. 나는 할머니 품을 거의 모르고 자랐지만, 우리 집 두 아이들한테는 두 할머니가 있으니 좋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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