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오늘말. 케케묵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아는 대목이 있어요. 오늘은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지만, 제가 아이로 지내던 무렵을 되새기면, 저도 동무도 누구도 ‘다 아는 아이’였다고 느낍니다. 아기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다 아는’ 채 이 땅에 오기에, 둘레 어른이 이모저모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틀에 따라 하나씩 잊는구나 싶어요. 아이는 어른이 쓰는 말을 물려받는데, 오래된 어른 말씨에 앞서 아이들은 마음으로 주고받는 빛이 있어요. 어른이 되면 어느덧 이 빛을 잃지만 아기를 낳으며 눈을 마주치면서 ‘낡은 말씨로는 아기하고 생각을 못 나누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서 ‘마음으로 생각을 나누는 어버이’로 거듭나는 분이 있지요. 자, 이 삶터를 둘러봐요. 갖은 수렁이 고리타분한 터를 아이한테 주고 싶나요? 곪은 사슬이 넘치는 터를 아이한테 남기고 싶나요? 구지레한 삶을 아이들이 거치거나 지나거나 마주하거나 부딪혀야 할까요? 거꾸로 가는 너덜너덜한 쳇바퀴를 아이한테 넘겨주면 고단하기 마련입니다. 태어난날도 빛을 품은 하루이지만, 아침에 눈을 뜰 적에도 언제나 빛나는 새날이라고 여겨요. 누구나 아이 눈망울로 꽃날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낡다·케케묵다·고리타분하다·오래되다·해묵다·묵다·한물가다·구닥다리·거꾸로·고리다·구리다·고린내·구린내·곪다·메스껍다·구지레·너덜너덜·나달나달 ← 전근대, 전근대적, 전근대사회


겪다·치르다·하다·해보다·마주치다·맛보다·맞서다·마주하다·맞이하다·배우다·익히다·살다·알다·지나다·지나가다·지나오다·먹이다·보다·잔뼈가 굵다·물·소꿉·일·놀이·보내다·지내다·있다·부딪히다·부딪치다·부대끼다 ← 경험


꽃날·빛날·난날·태어난날 ← 생일, 탄생일, 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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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오늘말. 풀


모든 삶과 말을 어린이 앞빛을 헤아리면서 가눈다면, 온누리는 아름답게 달라집니다. 말을 어렵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새말을 까다롭게 지을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 물려줄 말이라면, 우리가 하루를 돌보는 즐거운 기운을 가득 담아서 밝게 빛나는 마음으로 쓰면 돼요. 살림을 추스르는 고운 힘으로 말을 다뤄요. 물결처럼 맑게, 너울처럼 씩씩하게, 바람처럼 맑게, 풀잎처럼 부드럽게, 빛살처럼 눈부시게 쓸 말입니다. 곰곰이 보면 ‘풀’이며 ‘불’이며 ‘빛’은 말밑이 같지 싶습니다. 생김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깊이 들어가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모든 말은 실타래처럼 줄줄 이어가곤 해요. 돌고도는 말이에요. 마음이 흐르는 길이 되는 말입니다. 빙그르르 춤추듯 노래하는 말이지요. 푸르게 가꾸는 말이면서, 불빛처럼 환하게 꾸리는 말이에요. 고갯마루에서 쉬는 구름 같은 말입니다. 멧마루로 넘어가는 해님 닮은 말입니다. 글월을 띄우면서 붙이는 조그마한 종이는 글월에 날개를 달아 띄우는구나 싶으니 ‘날개꽃’이라고 느껴요. 그대한테 글 한 자락을 띄웁니다. 받을 분 이름을 적으며 ‘님’이라 붙입니다. 어른한테도 어린이한테도 늘 ‘님’을 붙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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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기운·용·악·풀·몸·줄기·끓다·불·불길·빛·빛살·너울·물결·바람·흐름·낌새·눈치·느낌·결·기척·눈빛·몸빛·낯빛 ← 기(氣)

돌다·돌아가다·돌고돌다·빙그르르·빙글빙글·에돌다·에두르다 ← 우회

재·고개·고갯마루·마루·멧마루 ← -령(嶺), 영(嶺)

날개꽃 ← 우표(郵票)

그대·자네·너희·님·이 ← 귀댁(貴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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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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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오늘말. 포근하다


어릴 적에 둘레에서 “너희는 사이가 좋구나.”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푸근했습니다. ‘사이좋다’라는 낱말은 서로 흉허물이 없이 지내자는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느꼈어요. 나쁜 사이가 아닌 좋은 사이로 살도록, 동무로 도란도란 어울리도록, 미움도 시샘도 아닌 오순도순 벗하는 하루를 누리도록 아끼면 마음이며 몸이 대단히 가벼워요. 어깨동무를 한다면 둘 사이에는 무거운 짐이 없겠지요. 짐을 내려놓고서 즐거운 기운을 싣는 사이랄까요. 같이 해바라기를 하고, 함께 달리기를 하고, 나란히 걷습니다. 꼭 어떤 놀이를 해야 좋지 않아요. 말없이 드러누워도, 그냥 앉아서 조용히 있어도, 둘 사이에서는 살갑구나 싶은 바람이 흐릅니다. 반가운 사이라면 굳이 뭘 해야 하지 않아요. 반갑지 않은 사이라서 어정쩡한 기운을 씻으려고 자꾸 뭘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믿는 사이라면 군말이 덧없지요. 믿지 못하는 사이라서 이런 군더더기 저런 껍데기를 자꾸 들추는구나 싶어요. 시골에 지으니 시골집일 텐데, 어느 곳에 둥지를 틀더라도 집 안팎이 꽃밭이 되면 따사롭지요. 꽃뜰집이며 꽃마당집을 이루면 아늑합니다. 숲집을 가꾸면 넉넉합니다. ㅅㄴㄹ


사이좋다·도란도란·오순도순·동무·동무하다·벗·벗하다·사귀다·따뜻하다·따사롭다·따스하다·포근하다·믿다·믿음·반기다·좋아하다·좋다·사랑·이웃사랑·이웃·살갑다·아끼다·어울리다·어깨동무 ← 우호(友好), 우의(友誼), 우정(友情)


내리다·부리다·싣다 ← 하역(荷役)


시골집·꽃밭집·꽃뜰집·꽃마당집·숲집 ←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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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저절로 노래가 되는 곳 (2020.11.19)

― 인천 〈시방〉



  어제 슈룹을 얻었습니다. 슈룹이 없이 늦가을비를 맞으면서 인천 골목을 거닐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 몸이나 옷은 젖으면 말리면 되어도, 어제 장만한 책이며 빛꽃틀(사진기)은 적시면 안 되겠구나 싶습니다.


  빗방울이 길바닥이며 슈룹이며 등짐이며 적시는 소리를 들으며 주안동을 걷고 간석동을 걷고 구월동을 걷습니다. 인천에서 어린날·푸른날을 보낼 무렵에는 신흥동이나 동인천부터 이곳까지 걷는 길이 썩 가깝지는 않아도 다닐 만했습니다. 호젓하고 조용하거든요. 예전에는 기찻길을 따라 걷기를 즐겼는데, 기찻길이 막히면 골목으로 접어들어 해가 흐르는 빛줄기를 살펴 길을 어림했어요. 한참 걷고 나서 마땅히 쉴 데가 없기 마련이지만 어디이고 털썩 주저앉아 땀을 훔친 다음에 집까지 다시 걸었습니다. 오늘은 마을책집 〈시방〉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걷다가 고흥에서는 못 본 넓은잎나무 곁에 섭니다. 빗물에 젖은 줄기를 쓰다듬은 다음 “둘 얻을게.” 속삭이고서 넓은가랑잎을 줍습니다. 빗물에 젖었으니 등짐 주머니에 꽂아요.

  조그맣다면 조그마한 책집은 자그맣다면 자그마한 마을 저잣길 한켠에 깃듭니다. 책집 둘레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작게 한 바퀴를 더 돌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갑니다.


  어느 마을책집에 찾아가더라도 안팎이 다릅니다. 바깥이 어수선한 마을이어도 책집은 고즈넉합니다. 바깥이 씽씽 찻길이 넓더라도 책집은 고요합니다. 책집 한 곳은 마을에서 어떻게 새롭게 빛이 될까요? 크지도 넓지도 않은 책집인데 어떻게 차분하면서 정갈한 바람이 새삼스레 흐를까요?


  수수께끼는 바로 책 한 자락이 풀지 싶어요. 더 좋거나 아름다운 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책집지기 손길을 즐겁게 타면서 가만히 이웃을 기다리기에, 이곳에서는 포근하면서 차분한 바람이 물결치듯 흐르지 싶습니다.


  누구라도 마을책집에 찾아가서 책을 열 자락이나 스무 자락씩 장만하지 않습니다. 아마 잔뜩 장만하는 분도 가끔 있을 테지만, 살며시 찾아와서 한 자락을 장만하고, 이다음에 또 와서 한 자락을 장만하는, 마음하고 마음을 잇고 이야기랑 이야기를 잇는 징검다리인 쉼터가 바로 마을책집이지 싶습니다. 둘레 마을가게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는 마을가게에 ‘잔뜩 사서’ 가지 않아요.


  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꽃을 즐기고 싶기에 마을에 안긴, 마을을 품은, 마을에서 빛나는 이곳으로 찾아간다고 느낍니다. 사뿐히 드나들 적마다 싱그러이 바람이 일렁이니, 이 바람을 넌지시 종이에 옮기면 저절로 노래가 되겠지요. 그러니 ‘시방’인 《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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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내가 지킨다!》(이현숙, 모락, 2018.6.8.)

《고양이를 버리다》(무라카미 하루키/김난주 옮김, 비채, 2020.10.26.)

《시 읽는 엄마》(신현림, 놀, 2018.5.15.)

《파일을 열며》(서부길, 교음사, 201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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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숲노래 사전]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88%B2%EB%85%B8%EB%9E%98&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35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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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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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53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2020.9.4.



한동안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안전한 공간에 매일 밤 안락하게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 활기차게 사교 생활에 몸을 던져야 하나? (24쪽)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종종 암호로 말한다. 내 어머니는 대단히 과묵하고 뼛속까지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엷은 온기가 있었고, 어머니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다들 그 온기를 알아차리는 법을 익혔다. (30쪽)



  숨어서 산다고들 말하지만, 막상 숨는 사람이란 없다. ‘그 사람’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숨는다’고 말한다만, 그 사람은 늘 그 삶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간다. 보라. ‘숨는’ 사람은 하늘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 조용히 살아가기에 숨는 사람이지 않다. 떠들썩하기 싫으니 떠들썩쟁이 곁에 안 갈 뿐이다. 숲에서 살거나 시골에 있기에 숨은이가 되지 않는다. 보금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기에 숨은삶이지 않다. 삶을 가장 즐겁게 지낼 만한 터전이라고 여기는 데에서 아늑히 하루를 보낼 뿐이다. 누가 쳐다보면 싫고, 다른 이가 다가오면 꺼릴 뿐이다. 그대가 사는 보금자리에 아무나 아무 때나 쳐들어오면 즐거운가? 호젓하게 바람을 쐬고 볕바라기를 하는 데에 누가 불쑥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면 좋은가? 《명랑한 은둔자》(캐럴라인 냅/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2020)를 읽으며 ‘숨다’라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억지로 웃어야 하고, 뭔가 번쩍거리거나 잘생겨 보여야 하고, 있는 척해야 하며, 아는 척해야 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눈치를 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자리라면, 얼마나 고될까? 지치지 않나? 오늘날 서울살이란, 오늘날 숱한 일터란, 다 ‘눈치를 봐야 하고, 눈치를 느껴야 하는’ 흐름이지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서울을 못 떠나는 지친 마음’을 달래어도 좋겠지. 그러나 호젓하게 보금자리를 조용한 숲터로 옮긴다면 가장 좋으리라. 멧새랑 이웃을 하고, 우람나무하고 벗삼을 만한 데에서 홀가분하고 조용히 지내는 이웃이 늘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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